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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플러스센터는 대개 교통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간 **고용플러스센터는 지하철 계단 바로 앞에 정문 입구가 있는 초역세권 입지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 문으로 들어가는 잠깐 동안도 각종 '떼인 임금 받아드립니다' '최고의 노동분쟁 상담 ***노무사'(솔직히 괜찮은 사업 아이템 같아 보이긴 했는데 너무 레드오션인 것 같아서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등등의 찌라시를 들이미는 분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경제가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고 실업이 늘어난다는 조중동 호들갑이 과연 사실이었는지 **고용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상담창구는 북적여서 앉을 틈도 없었다. 나름 체계적으로 법정동별로 권역을 나눠서 창구를 나누고, 번호표를 뽑아서 대기했으니 나는 같은 동네의 실업자와 같이 앉아있었던 셈이다. 솔직한 감상은...음...여기 나의 고향은 노령화가 진행되어 중년/고령 실직자가 참으로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거기다 지역 특유의 조급한 성미까지 더해서 번호표가 무색하게 창구에 다짜고짜 들이밀고 자신의 소원수리를 하는(이 지역의 또다른 특성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상대방 말은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 때문에 아비규환이었다. 나는 일단 주민등록증을 얌전히 지갑에서 뽑아들고 고분고분히 말을 잘 들어 비교우위적 호감을 주기로 결심했다.

 

이미 내가 워크넷에서 구직급여 관련 교육 동영상을 시청하고, 이력서를 등록했으며 전 직장에서 실업급여 수령 의사를 밝히는 서류를 전송해 놓았으므로(*과장 감사) 특별히 구구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고도 감독관은 빠르게 나의 이력을 스캔해서 '자발적 실직자'임을 확인했고, 내가 조신하게 꺼내든 진단서 두 부 및 내가 만들어온 회사측 확인서를 보고는 아직 미비한 점이 많은 것을 지적했다. 즉, 진단서는 좋은데 발병 기간동안의 '진료사실확인서'가 없으며, 회사측 확인서는 기실 고용노동부의 소정양식이 있으니 거기 맞춰서 회사의 답변과 회사 직인을 받아와야 하며, 퇴직자 너님의 확인서가 필요하다며 한 세트의 서류를 내밀었다.

 

...그렇다... 회사측 확인서는 직접 내방해서 상담을 하는 경우에만 주는 하드카피 아이템이었던 것이다;;;(왜 안 올려놓는지는 알 것 같다)

 

회사측 확인서 소정양식은 굉장히 닫힌 구조로 되어 있다. 굉장히 촘촘한 질문을 통해서 근로자 너님이 아팠는데 회사는 휴직도 해 줬는지, 다른 부서로 직부를 바꿔줄 의사가 있다거나 혹은 못 바꿔줄 상황이 있는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비극적인 퇴사가 너님의 귀책인지 회사의 귀책인지를 캐물어서 '회사가 잘못했네'로 자기고백을 시키는 구조이다.

*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만일을 대비해서;;; 한 부를 더 빼돌렸으므로 내용을 간단히 올려보겠다.

 

- 확 인 내 용 - (여부 내역에는 구체적 사유 기재)

 

1.상기인의 업무내용(구체적으로)

 

2.상기인이 평소 질병으로 인하여 업무수행이 곤란함을 호소한 적이 있었는지 여부

 

3.상기인의 질병과 관련하여 소관업무의 수행이 곤란 또는 불가능 여부

 

4.상기인을 업무가 가능한 부서로 전환배치 할 수 있었는지 여부

 

5.상기인이 직무전환 배치를 요청한 적이 있었는지 여부

 

6.상기인의 질병과 관련하여 퇴사 대신 병가휴가를 요청한 사실 있는지 여부

 

7.회사 규정상 상기인에게 퇴사 대신 병가휴가를 부여할 수 있는지 여부

 

8.기타 상기인의 질병 등으로 이직과 관련된 참고사항(동 질병 부상 관련 병가, 휴직, 휴가 등 사용 내역 등)

 

이 확인서를 읽는 동안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잠시 내가 거대한 이성의 생식기로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됐구나... 그들이 4,5번을 조직의 귀책이라고 인정할 리 없어;;;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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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여름, 몸은 점점 나아져서 tapering 과정 끝에 수면제를 서서히 끊게 되어 술도 마실 수 있게 되고, 자신감도 붙고 기고만장해진(여름철 내 전형적인 특성이다) 서울 Farewell party라는 명목으로 두어달을 술을 퍼마시면서 술살이 붙기 시작했다. 16년간 모셨;던 15명의 팀장 중 가장 윗길로 모시는 모 실장은 자신의 체질 때문에 체중 관리에 집착하는 양반이었는데 드디어-_- 내가 살이 찌자(매번 먹을 것에 집착하고 술을 퍼마시는 날 보며 저년은 언제쯤 대자연의 역습을 받아 살이 찔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안다.) 대따 크게 남들 다 듣도록 "야 너 진짜 살쪘다!!! 5키로 넘게 쪘지?"라고 본인의 감상을 피력하셨다. 어차피 난 뻔뻔하고 그의 선의를 믿으며 그래봤자 정상 체중 언더인지라 "아뇨 실장님 저 7키로 쪘는데여"하고 히죽 웃으며 술을 퍼마셨다.

 

시간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흘러갔다. 그 중에서 좀 가슴아픈 일은 모 부서에서 옆팀 팀장으로 모셨던 양반이(당시에 참 소가 닭보듯 데면데면하게 대하셨다. 회사 지인에게 그 얘길 했더니 아냐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데면데면해 내가 팀원일 때도 그랬어 하고 답했다) 말기 암에 걸려서 임금피크를 2년쯤 앞두고 한직-휴가-휴직 테크를 탔는데 당시에 나는 그 사람이 복직 가능성 유무에 불구하고 챙겨드릴 건 챙겨드리고 싶어서 팀장 수당을 보전할 수 있도록 결재를 해 드렸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영원히 모를 거야. 시간은 2년이 지나고 투병 중에 인사 담당과 카톡으로만 띄엄띄엄 연락이 가능하던 그 사람은 퇴직금 제도 관련해서 내게 카톡으로 문의를 했고 '건강상 퇴사를 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이고(답변 다함) 잘 지내고 건강하시기 바란다'라고 답변을 드렸다. 그리고 몇주 후 그 사람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세상 참 허무하다.

 

암튼 9월 말이 되어 수면 클리닉을 마무리하고 예의 두 장의 진단서를 챙겨 포장이사를 하고(이 때 포장이사 선정과 관리 관련해선 별도 포스팅으로 쌔울 예정) 주소지 이전 및 전입신고, 부동산 매도 신고까지 다 마치고 9월 말일이 되자 아 맞다 구직급여; 상태가 되어 구체적인 신청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여기서 빡침의 공감 정도는 대한민국 minwon24를 겪어본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대한민국은 IT강국이라(...솔직히 인건비 아끼고 민원 비용 줄이려고 더 그런 것 같긴 하지만) 가족관계증명서 발급부터 각종 신고 등록과 같은 난해한 업무가 민원24로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사이트답게 각종 무익한 보안프로그램 떡칠 강요+액티브X성애자+크롬이뭐고파이어폭스가다무에냐익스플로러온리럽+공인인증서성애자 등등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민원의 모든 단계를 넘어 어둠의 동굴 속 멀리 그대가 보일 때쯤 ㅈ같은 뽀로로가 약올리는 웃음을 지으며 오류 메시지를 날린다. 다행히 요즘은 민원24 미러링 사이트+확장판 같은 것을 구축하여 훨씬 편해지긴 했는데, 고용보험 관련된 것은 그때의 빡침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구직급여를 신청하려면 모바일 기반에서는 '고용보험 모바일' 앱과 '워크넷' 앱을 까는 것이 필요하다. 고용보험 모바일에서는 실업급여와 관련된 각종 기본정보를 알아보고 신청 정보를 등록하고, 워크넷에서는 고용보험 제도 관련 1시간 교육 동영상을 시청하고, 자신의 이력서를 등록하는 용도이다. 문제는 이 모든 절차에 대한민국 관공서답게 공인인증서가 필요한데...

 

...공인인증서 등록 및 관리는 모바일 환경을 지원하지 않고 PC환경에서만 가능하다;;;

 

마침 나는 무려 2011년 말에 대학원 다니려고 구입한 노트북이 있었는데 얘가 늙어서 그러는지 이사하면서 완충재를 뛰어넘는 충격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유무선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고(와이파이를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오프라인 PC 상태에서 머무는 것이다. PC방에 가면 되지만 역시 의심이 많은 나는 공인인증서 USB를 들고 PC방에 가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본가에 가서 본가 네트워크에 내 노트북을 굴려봤더니 역시 그집 와이파이도 받아먹지를 못하고 본가 노트북을 워크넷에 접속시켜봤더니...

 

아 맞다 공인인증서...

 

스마트폰에 있는 공인인증서를 본가 노트북에 내보내는 뻘짓을 해 보았지만 그런 관대한 일을 관공서 사이트에서 해줄 리가 없다. 잠시 고민하다 굴러다니는 USB(...부모님 자동차에 흘러간 팝송 놔드리려고 구입한 거였다;;;)를 내 오프라인 상태의 노트북(이미 여러가지로 맛이 가 있었다)에 꽂고 인증서를 옮겨서 부모님 노트북에서 교육동영상 시청 및 이력서 등록을 마치고 나니 이미 낮 열두시 반이 되어 있었고 밖에서 일을 보고 오신 아부지가 안방에 들어앉은 중년의 딸년을 한심하게 보고 계셨다.

 

얘야 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정부의 돈을 타먹기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랏돈 타먹는게 그리 쉬운지 아니 나가서 밥이나 먹자

 

아 그렇죠 밥...측은해 보이셨는지 아부지는 오래간만에 밥을 사주셨고 비빔밥은 참으로 맛있었다.

 

후일담을 얘기하자면 결국 내 노트북은 삼성서비스센터 온라인에서 가르쳐 준 대로 오만 짓을 다 해봐도 네트워크 오류가 고쳐지지 않는지라 서비스센터에 데려가서 3만1천원으로 포맷을 하고 새 생명을 얻었다. 윈도우7을 너무 오래 써서 그런가, 윈도우10으로 업글된 노트북은 쌩쌩하고 새 환경은 이쁘기까지 하다. 삼성서비스센터 *** 기사님 사랑해요. 제가 서비스 10점만점 드렸어여.

 

이제 **고용플러스 센터로 오프라인 신청을 하러 가자.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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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야기한 구직급여 증빙 중 두 건은 마침 다니던 불면증 관련 네번째 병원에서 충분히 발급 가능했으니 잠깐 차치하기로 하고, 회사 측의 확인서는 아무리 고용노동부와 고용플러스센터 사이트 등등을 털어봐도 소정 양식을 찾는 것이 불가능했다(내 특기 중 하나는 정부 사이트에서 법령집, 매뉴얼, 질의회신집, 소정양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없으면 내가 직접 만들자. 10분간의 작업을 통해 공공기관 양식으로 아주 그럴싸하게 '전 직원이었던 얘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러저러한 사유로 소정 인사휴직을 사용하고 어쩔 수 없이 퇴직합니다'라는 문서를 만들어내고 인사 담당 부서의 확인서 담당 직원에게로 갔다.

 

역시나 나에게 동정적이었던 그 직원은(구 회사에서 나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지 않을 사람은 딱 한명밖에 없다...후...잘 계시죠?) 그 양식에 회사 직인을 바로 찍어주었으며 드디어 퇴직 전에 필요한 밑작업은 다 끝났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1.회사 경영관리 실무직원과는 아무리 잘 지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에게는 사소하지만 대상자들에게는 꽤나 중요한 여러가지 이슈는 그들의 재량인 경우가 많은데, 그들도 사람인지라 평소의 사소한 응대를 통해 가지고 있는 인상으로 가부 여부를 결정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2.회사 나가면 그냥 동네 아저씨 아줌마인 관계로 받을 수 있는 증빙은 미리 다 받아두고 나가는 게 좋다.

 

그리고 이래저래 마음 편해진 나는 6월의 어느 더운 날에 잠을 못 자 비쩍 마른 몸에 또 새로 산(...단아해보이는 걸로 새로 사고 싶었어 내가 그렇지 뭐) 원피스를 걸치고 생글생글 웃으며 퇴사순회공연을 몇시간 벌이고는(구 회사가 얼마나 소문이 빠르냐면, 두 사번 위의 양반한테 인사하러 갔더니 '야 니가 지금 몇주만에 나타나서 인사하러 댕긴다고 소문 다 났어'하고...ㅋ...ㅋ..) 인사팀장과 점심을 먹고 퇴사했다.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몸은 급속도로 나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종양도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역시 회사는 만악의 근원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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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썰을 풀기 전에 밑밥을 깔아보자면, 저 구직급여라는 물건은 실업급여라고 통칭되는 것으로서 여러가지 공작 끝에 퇴사한지 넉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1회차 수급을 시작한 터라 우리 갑님인 고용노동부님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굳이 실업급여도 아닌 구직급여, 그리고 검색 방지를 위해 *구*직*급*여* 라는 심히 온라인 바카라 홍보스러운 문구로 대체한다. 방금 시작한 블로그에 무슨 자의식 과잉이냐고 하겠지만 살다가 신상도 거하게 털려본 적이 있는지라 올 사람만 오라고 네이버 블로그도 아니고 티스토리까지 꾸역꾸역 기어들어온 사람이라..(굳이 있는 이글루스 블로그 놔두고 왜, 라고 하겠지만 이글루스에는 정사갤 병신들이 너무 많고 맨스플레인을 시전할 병신들은 더욱 많아;;;)

 

제목에 대한 설명을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시작.

 

내가 구직급여에 대해 듣게 된 것은 퇴직 협상, 그러니까 재직 마지막 기간 중의 일이었다. 당시 회사밖 지인과 퇴직에 대해서 담소를 나누던 도중 '내가 자발적으로 퇴직하였지만 손목터널증후군 증세도 있던 터라 회사와 적당히 얘기를 잘 해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한번 알아보도록 하여라'라는 요지의 말을 듣게 되었다. 음? 퇴직자 매뉴얼에는 자발적 퇴직에 의한 경우는 실업급여 대상이 아니라고 하던데? 그러나 그 퇴직자 매뉴얼은 대부분의 직원이 정년 퇴직을 하고 극소수의 야심찬 직원들만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명예퇴직을 하는 구 직장의 사정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으로서 나같은 특이한 케이스(얼마나 특이한 케이스였는지 퇴사한지 넉달이 지난 지금도 아니 왜 나갔냐며 전화가 가끔 온다;)는 당연히 감안하지 않은 것이었다. 잠깐 구글링을 통해 '자발적 케이스는 원칙적으로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아주 특이한 경우에는 가능하기도 하다'라는 요지의 고용노동부 FAQ를 득템하였다.

 

그리고 재직기간/퇴직연령 조견표(당연히 재직기간이 길 수록, 그리고 퇴직연령이 높을 수록 지급받는 일단가와 지급받을 수 있는 기간이 커진다)에서 내 상황을 대입하여 보니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유럽을 몇바퀴 돌고 소위 말하는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몇달 시전해도 넉넉한 금액임을 확인하고(폰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읽은 후부터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 1달간 살아보려는 가당찮은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물욕은 본격적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구 직장의 4대보험 담당자는 내가 사내 갑, 그가 사내 을의 관계였는데 그가 무서운 팀내 누님들에게 치이고 일에 허덕이는 걸 평소에도 딱하게 생각하던 내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서 프로젝트 일정을 '2주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허덕이는 정도'에서 '힘들긴 한데 그럭저럭 할 만한 정도'로 넉넉하게 조정해 준 적이 있다. 마침 그 프로젝트는 전작 프로젝트가 회사의 장까지 직접 나설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받아서 일정에 조정 여지가 전혀 없던 것에 비하면, 이제 단물 꽤 빨아먹고 윗사람들 관심도가 좀 떨어진 상태라 일정 조정이 가능한 상태였으므로 전가의 보도 'ERP 시스템의 후진성과 외주 직원의 무능함' 핑계를 대서 가능했다. 나는 대체로 윗사람들에게 매우 정직하게 대했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_-

 

이런 일들로 꽤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4대보험 담당자는 갑 대장들에게서 방어막이었던 내가 사라져서 매우 슬퍼하며 세무신고 중에서도 직접 발로 뛰어 고용보험 당국으로부터 쓸만한 답변을 가져와주었다.

 

구직급여는 구직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구직을 장려하기 위해 지급하는 것으로서 나와 같이 도저히 회사 생활을 계속할 수 없이 병마에 시달려서 퇴직하는 사람은 일단 지속적인 치료로 구직활동이 가능해진 후에 신청 가능하다. 그 때 필요한 증빙은,

-퇴직 시점에서 이 사람은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불가능하며 최소 2개월 이상의 가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양반의 진단서

-다 나은 시점에서 이제 드넓은 구직의 바다로 떠날 수 있다는 '그' 의사양반의 진단서

-퇴직 전 시점에서 얘는 쓸만한 인병 휴직 다 써서 바닥나는 등 노력을 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퇴사한다는 전 회사 측의 확인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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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사라는 우산이 걷히기 전에 비 맞을 준비

 

인사 주관 부서(ㅋㅋㅋㅋ...그저 웃지요)와 퇴직 관련 협상에 대해서 길게 쓰고 싶지 않다. 다만 나는 좋게좋게 나가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관부서와는 꼭 그런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차후 실업 급여 관련된 절차에서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암튼, 퇴직 협상 후 퇴직일까지는 약 3주 정도 기한을 두었다.

 

구 직장에는 퇴직 직원을 위한 매뉴얼이 존재한다. 제법 상세하고 친절한 매뉴얼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회사와 관련된 절차만을 안내하는지라 개인적으로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대전제는, 직장인은 회사에 노동력과 영혼을 헌납하고 월급과 스트레스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의 신용도와 상당한 복지도 받는다. 물론 자신이 받는다는 자각도 없이 무럭무럭 유비의 허벅지처럼 나태해져 간다. 퇴사한 다음에야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직장인으로서 보호받아왔나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1)건강보험

국민연금은 자신이 돈이 없음을 필사적으로 읍소한다면 정기적인 추궁 끝에 납부 의무를 면제받는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그렇지 않다. 퇴직으로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자동전환되고, 전환 후 각종 종소세와 재산세 빅데이터를 근거로 하여 주택, 전세금, 자동차 등등을 근거로 한 금액 납부를 통보받는다. 직장가입자처럼 사업주가 50% 부담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자신의 부담이다.

 

나는 건강보험 앱을 깔아 내 주택의 시가와 지방세 기준가액, 자동차 과세가액을 기초로 내 지역보험금액을 개략적으로 산출한 후 화들짝 놀라서 집이고 차고 다 팔아버리는 게 낫겠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해버렸다(...사람이 잠을 못 자면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인사 주관 부서의 모 차장은 나의 퇴사 결정을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퇴사는 극단적 선택이 아니었지만 집 판 건 극단적 선택이 맞는 것 같다. 심지어 팔고도 몇천 더 오르더라...아 속쓰려;;;)

 

그리고 나서야 좀 합리적인 대안을 알아보았는데, 직장가입자인 친족에게 기생하는 것이었다. 마침 아버지는 파트타임으로 자신의 구 직장에 고용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정을 종합하여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해 보았다. 답변인즉슨 만 30세 이상 자녀는 실직하여도 부모 밑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거주하던 곳의 주민센터의 자동발급기에서 1,000원의 수수료를 주고 '혼인사실관계증명서(이전 사실 포함)'이라는 해괴망측한 문건을 떼어 신청서와 함께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여 회사의 우산을 떠나 70대 아버지의 우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우산을 앞으로 벗겨질 가능성도 있으므로 최대한 이 우산 안에 머물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후술할 예정.

 

(2)각종 마이너스 대출, 신용카드

10여년간 직장 우산 안에서 내 신용등급은 1등급이었지만 다단계 하락이 확정적이었다. 물론 단기간은 재산세 납부 데이터를 기반으로 방어 가능하지만 아니 주부는 남편이라도 있지 나이는 많지 직장도 없지 남편도 없지 이건 뭐...내가 담당자라도 나 믿고 안 빌려주겠다. 고로 cherry picking 목적 등으로 신용카드 발급을 생각한다면 퇴직 준비 기간에 냉큼 발급받고, 마이너스 대출 한도도 높여두는 게 낫다.

 

아직 퇴직한지 넉 달밖에 되지 않아 각종 민원과 소명시 '직장명' 이 없음에 대한 페널티는 받은 게 없지만 받을 것이 불보듯 뻔하다. 겪어나가면서 쓰도록 하겠다. 

 

그러나 퇴직자는 퇴직으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급부가 있다. 일명 '실업급여'라고 불리는, 구체적으로는 구직급여라는 물건인데 이는 받기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구직급여로 가는 험한 길'이라는 항목으로 따로 쓰도록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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