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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여름, 몸은 점점 나아져서 tapering 과정 끝에 수면제를 서서히 끊게 되어 술도 마실 수 있게 되고, 자신감도 붙고 기고만장해진(여름철 내 전형적인 특성이다) 서울 Farewell party라는 명목으로 두어달을 술을 퍼마시면서 술살이 붙기 시작했다. 16년간 모셨;던 15명의 팀장 중 가장 윗길로 모시는 모 실장은 자신의 체질 때문에 체중 관리에 집착하는 양반이었는데 드디어-_- 내가 살이 찌자(매번 먹을 것에 집착하고 술을 퍼마시는 날 보며 저년은 언제쯤 대자연의 역습을 받아 살이 찔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안다.) 대따 크게 남들 다 듣도록 "야 너 진짜 살쪘다!!! 5키로 넘게 쪘지?"라고 본인의 감상을 피력하셨다. 어차피 난 뻔뻔하고 그의 선의를 믿으며 그래봤자 정상 체중 언더인지라 "아뇨 실장님 저 7키로 쪘는데여"하고 히죽 웃으며 술을 퍼마셨다.

 

시간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흘러갔다. 그 중에서 좀 가슴아픈 일은 모 부서에서 옆팀 팀장으로 모셨던 양반이(당시에 참 소가 닭보듯 데면데면하게 대하셨다. 회사 지인에게 그 얘길 했더니 아냐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데면데면해 내가 팀원일 때도 그랬어 하고 답했다) 말기 암에 걸려서 임금피크를 2년쯤 앞두고 한직-휴가-휴직 테크를 탔는데 당시에 나는 그 사람이 복직 가능성 유무에 불구하고 챙겨드릴 건 챙겨드리고 싶어서 팀장 수당을 보전할 수 있도록 결재를 해 드렸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영원히 모를 거야. 시간은 2년이 지나고 투병 중에 인사 담당과 카톡으로만 띄엄띄엄 연락이 가능하던 그 사람은 퇴직금 제도 관련해서 내게 카톡으로 문의를 했고 '건강상 퇴사를 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이고(답변 다함) 잘 지내고 건강하시기 바란다'라고 답변을 드렸다. 그리고 몇주 후 그 사람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세상 참 허무하다.

 

암튼 9월 말이 되어 수면 클리닉을 마무리하고 예의 두 장의 진단서를 챙겨 포장이사를 하고(이 때 포장이사 선정과 관리 관련해선 별도 포스팅으로 쌔울 예정) 주소지 이전 및 전입신고, 부동산 매도 신고까지 다 마치고 9월 말일이 되자 아 맞다 구직급여; 상태가 되어 구체적인 신청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여기서 빡침의 공감 정도는 대한민국 minwon24를 겪어본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대한민국은 IT강국이라(...솔직히 인건비 아끼고 민원 비용 줄이려고 더 그런 것 같긴 하지만) 가족관계증명서 발급부터 각종 신고 등록과 같은 난해한 업무가 민원24로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사이트답게 각종 무익한 보안프로그램 떡칠 강요+액티브X성애자+크롬이뭐고파이어폭스가다무에냐익스플로러온리럽+공인인증서성애자 등등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민원의 모든 단계를 넘어 어둠의 동굴 속 멀리 그대가 보일 때쯤 ㅈ같은 뽀로로가 약올리는 웃음을 지으며 오류 메시지를 날린다. 다행히 요즘은 민원24 미러링 사이트+확장판 같은 것을 구축하여 훨씬 편해지긴 했는데, 고용보험 관련된 것은 그때의 빡침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구직급여를 신청하려면 모바일 기반에서는 '고용보험 모바일' 앱과 '워크넷' 앱을 까는 것이 필요하다. 고용보험 모바일에서는 실업급여와 관련된 각종 기본정보를 알아보고 신청 정보를 등록하고, 워크넷에서는 고용보험 제도 관련 1시간 교육 동영상을 시청하고, 자신의 이력서를 등록하는 용도이다. 문제는 이 모든 절차에 대한민국 관공서답게 공인인증서가 필요한데...

 

...공인인증서 등록 및 관리는 모바일 환경을 지원하지 않고 PC환경에서만 가능하다;;;

 

마침 나는 무려 2011년 말에 대학원 다니려고 구입한 노트북이 있었는데 얘가 늙어서 그러는지 이사하면서 완충재를 뛰어넘는 충격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유무선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고(와이파이를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오프라인 PC 상태에서 머무는 것이다. PC방에 가면 되지만 역시 의심이 많은 나는 공인인증서 USB를 들고 PC방에 가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본가에 가서 본가 네트워크에 내 노트북을 굴려봤더니 역시 그집 와이파이도 받아먹지를 못하고 본가 노트북을 워크넷에 접속시켜봤더니...

 

아 맞다 공인인증서...

 

스마트폰에 있는 공인인증서를 본가 노트북에 내보내는 뻘짓을 해 보았지만 그런 관대한 일을 관공서 사이트에서 해줄 리가 없다. 잠시 고민하다 굴러다니는 USB(...부모님 자동차에 흘러간 팝송 놔드리려고 구입한 거였다;;;)를 내 오프라인 상태의 노트북(이미 여러가지로 맛이 가 있었다)에 꽂고 인증서를 옮겨서 부모님 노트북에서 교육동영상 시청 및 이력서 등록을 마치고 나니 이미 낮 열두시 반이 되어 있었고 밖에서 일을 보고 오신 아부지가 안방에 들어앉은 중년의 딸년을 한심하게 보고 계셨다.

 

얘야 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정부의 돈을 타먹기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랏돈 타먹는게 그리 쉬운지 아니 나가서 밥이나 먹자

 

아 그렇죠 밥...측은해 보이셨는지 아부지는 오래간만에 밥을 사주셨고 비빔밥은 참으로 맛있었다.

 

후일담을 얘기하자면 결국 내 노트북은 삼성서비스센터 온라인에서 가르쳐 준 대로 오만 짓을 다 해봐도 네트워크 오류가 고쳐지지 않는지라 서비스센터에 데려가서 3만1천원으로 포맷을 하고 새 생명을 얻었다. 윈도우7을 너무 오래 써서 그런가, 윈도우10으로 업글된 노트북은 쌩쌩하고 새 환경은 이쁘기까지 하다. 삼성서비스센터 *** 기사님 사랑해요. 제가 서비스 10점만점 드렸어여.

 

이제 **고용플러스 센터로 오프라인 신청을 하러 가자.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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