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이러다가, 올해 내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 재직기간 15년을 채워야 퇴직금 가산금이 붙는다는 것은 회사에서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버티자고 15년까지 남은 기간을 일로 안분하여 일별 가산금을 계산해가며 한참을 버텼다. 그리고 15년을 넘긴 바로 그 다음날 발병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3년전에 왔던 불면증이 그동안 먹은 나이만큼이나 더욱 강력해져서 돌아왔으며 몇달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 보니(아니 뭐...그 중에 반 정도는 졸피뎀을 처방받아 매일 네시간씩 자긴 했는데 자도 잔 것 같은 휴식 효과가 전혀 없어서;;;) 지력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말도 어눌해졌다. 결정적인 것은 그닥 살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장기에서 발생했다. 그래도 종합 건강검진을 나이만큼이나 꼼꼼하게 받았는데 멀쩡했던 장기에서 무럭무럭 종양이 한 달만에 자랄 수 있단 말인가. 병원에서는 수술을 제안했고 나는 거 괜찮은데 마취약이 안 듣는 체질이니 좀 많이 투여해야 할 거라고 답했다. 그리고 수술 후, 수술대에서 일어나다 수술실 바닥에 장렬히 머리를 부딪치며 기절했으며 식겁한 병원 의사양반은 앰뷸런스를 불러 가장 가까운 5대병원으로 보내버렸다. 그 5대병원 응급실에서 보호자를 찾았는데 평일 낮, 보호자로 바로 나타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

 

친구라고 부를만한 이 나이의 여자들이란(혹은 남자들이란) 전업은 둘 정도의 아이 육아로 미친듯이 바쁘며 직장인은 아래위에서 압박 때문에 역시나 바쁘다. 그리고 친족은 40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친족이 올라올 때쯤 나는 여덟시간 동안 전쟁같은 응급실에서 얌전히 누워있다 아뇨 보호자 없어요를 반복하다 퇴원한 다음이었다.

 

일단 2차병원과 3차병원에 진단서와 입원기록서를 다 뗀 다음 이틀간의 공백에 대해 휴가계를 냈다. 그리고 퇴직을 대비한 계산을 시작했다.

 

그 때 기분은 올해 내로 저세상에 갈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들었지만(실제로 유언장 공증까지 다 끝낸 다음이었다. 장기 기증을 하려면 뭐라도 해 놔야지) 재수없이 오래 살게 되면 한 순간의 기분으로 먹고 살 길까지 막히게 되니 함부로 지를 수 없는 노릇이다. 할 일도 없겠다 노트북을 꺼내 얌전히 엑셀을 돌리기 시작했다.

 

0. 예비절차 - 사망퇴직과 의원퇴직 어느 것이 나은가

구 직장은 1년에 여러명이 재직 도중 죽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 경우를 '사망 퇴직'이라고 하며, 의원퇴직은 죽기 전에 퇴직하는 것을 뜻한다. 구 직장은 몇년 전까지 사망 퇴직시 위로금이 엄청나게 붙어서 사망 퇴직이 유리하였지만, 503 덕분에 그 혜택은 사라졌으며, 심지어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재직 직원 사망시 여러가지 복지까지 사라지게 되어 사망 퇴직이 역으로 불리하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 시점으로는 복지가 부활되어 사망퇴직이나 의원퇴직이나 유불리가 크게 차이가 없게 되었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여러번 계산하는 게 업이었으니 안다. 즉,

 

사망퇴직시 현금유입=(1)퇴직금+(2)각종 복지 환급금+(3)직원 단체상해보험금+(4)전직원 공제 조의금+(5)자발적인 조의금

의원퇴직시 현금유입=(1)퇴직금+(2)각종 복지 환급금+(5)자발적인 조의금

 

으로 차이는 (3)과 (4)에서 발생하며, 사회 인정상 (5)에서도 사망퇴직이 유리하다. 하지만 내가 죽은 다음에 알게 다 무에냐.

 

다음 절차로 올해 넘겨 죽는다고 가정하고 시나리오별 현금흐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계속-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