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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밑져야 본전일 경우 시도는 해본다는 평소 지론대로 미비한 서류를 보완하기로 했다. 첫번째로, 진료사실확인서를 서울의 해당 수면클리닉에 발행해달라고 전화를 걸었더니(제1/제2/제3 병원은 병가, 민간의료보험 증빙 등으로 빠짐없이 발급받았는데 마지막 병원은 진단서에 집중하느라 까먹었다. 분하다;) 개인정보 관련 법령이 개정되어 팩스, 이메일, 등기우편 등 전송 방법은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며 본인이 직접 내방하거나 직계가족이 가족관계증명서 등 증빙을 가지고 오는 경우에만 발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 클리닉은 40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근시일 내에 '엑셀을 활용한 전표분석 실습'(지인들에게 상경하는 이유를 설명했더니 무슨 강의가 그런 이름이냐고, 한국말 맞냐는 비난을 들었다-_-)이라는 강의를 듣기 위해 상경할 작정이었으므로 진료사실확인서를 발급받는 것은 간단한 발품만 들이면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관건은 회사측 확인서였다.

 

예의 인사 주관부서의 확인 실무자는 내가 만들어간 문건에 회사 직인을 선선히 찍어줄 만큼 협조적이긴 했지만, 고용노동부 소정 양식을 작성해서 작성자와 확인자 성명, 연락처와 함께 회사 직인을 찍어서 팩스를 넣으라고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당연히 상위 확인자에게 해당 내용을 보고하고 검증받아야 하는데 내가 아는 상위 확인자는 해당 내용을 그냥 내보내줄 사람이 아니었다. 잠깐만, 인사 주관부서가 꼭 이 확인서를 내보내야 할 필요가 뭐가 있어? 4대보험 실무자가 변동되었지만, 그 직무가 소속되어 있는 서무 부서는 훨씬 협조적이었다. 일단 새 4대보험 담당자에게 연락해 보았으나 새 담당자는 듣자마자 자신이 고용보험 담당자는 맞지만 인사 확인서는 인사 주관부서의 소관이라고 답변했다. 그래, 맞는 얘기지, 맞는 얘기야...

인사 주관부서의 확인 실무자는 마침 한글날을 끼고 기나긴 연휴 중이었다. 백업 담당자에게 연락해볼까 싶었지만 내가 아는 백업 담당자는 응용력과 상황 판단이 0에 수렴하는 분이셨으므로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다 일주일이 흘러가고 한글날을 넘긴 후 확인 실무자에게 고용노동부의 취지를 담은 서류, 해당 소정 양식 빈 서류, 그리고 내가 직접 작성한 소정 양식 풀 버전(연차휴가 날짜 및 상세한 사유 관련한 서류는 미리 빼돌려 놔서 적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해당 작성자와 확인자 란 기재 및 회사 직인을 찍어서 **팩스로 회신하면 된다는 부탁을 상세히 기재해 팩스로 보내고 전화했다.

 

...그리고 일주일 가까이 지나간 후, 확인 실무자가 회신 전화를 걸어왔다. 역시나 상사가 4,5번(직무 전환배치 가능여부, 전환배치 요청여부)에 대해서 이건 아니지 않냐고 태클을 걸었다는 것이다. 미리 시나리오를 짜 놨던 나는 상냥하게 답변했다. 

 

과장님, 실은 **님께 제가 퇴사할 때 4,5번 관련해서 설명드리지 않은 불가피한 이유가 있는데 꼭 다시 설명드리고 싶어요. **님이 돌아오시면 통화할 수 있을까요?

 

**님이 만약 전화가 오면 답변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하여 불면증에 걸렸으며, 정신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하여 근원 원인인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 집중적인 상담과 심리치료, 약물치료를 받았으나 개선하지 못하였고 그 후 석달간 인병휴가 동안 병원을 세 번을 바꿔가며 같은 상담을 반복할 때마다 의사는 같은 환경에 돌아가면 불면증이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경고를 했었다.(물론 의사들은 환자에게 밥줄을 끊으라는 말을 절대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매우 유하게 돌려서 말했지만 요약하자면 저 내용이었다) 나에게 직무를 바꾼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같은 상황이 4년간 두 사람에 의해 반복된 이상 이 직장 자체가 내 트라우마 공간이다.

 

그러나 **님은 전화를 해 오지 않았으며 살짝 열이 받기 시작한 나는 회사에 화풀이성 민사소송을 걸 계획을 세웠다. 참고로 내가 2년 살짝 넘는 기간동안 회사에 해 준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엑셀봇, 그리고 민사소송 전담기. 회사를 대상으로 한 민사소송 여덟건을 세우면서 어떻게 하면 회사의 담당자를 괴롭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마스터했다. 우선, 괴롭힘 당사자 본인과 관리주의 의무를 해태한 회사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건다. 소장도 내가 쓰고, 손해배상액 산정도 내가 한다. 손해배상액 산정의 가장 기초자료인 급여대장과 퇴직금 기초가액은 머릿속에 다 있지만 기대 재직 연수와 승진 여부 등을 가지고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세워서 담당자에게 자료를 요구하면서 미치게 할 자신이 있었다. 소송관할법원은 서울에서 400km 떨어진 원고의 주소지로 해서 궐석재판을 할지 출장을 오게 만들지에 대해 머리를 쥐어뜯게 만들어야지. 기간은 한 3년쯤 할까...

 

이틀이 지난 후 여전히 전화는 오지 않았지만, 내가 보낸 내용에 작성자와 확인자의 기명날인, 그리고 회사 직인이 찍힌 확인서가 팩스로 도착했다.

 

그래, 돈이면 됐지 뭐. 그 돈이 회사 돈이 아니라 정부 돈이지만 돈에 꼬리표가 있나, 그냥 받아서 쓰면 되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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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플러스센터는 대개 교통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간 **고용플러스센터는 지하철 계단 바로 앞에 정문 입구가 있는 초역세권 입지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 문으로 들어가는 잠깐 동안도 각종 '떼인 임금 받아드립니다' '최고의 노동분쟁 상담 ***노무사'(솔직히 괜찮은 사업 아이템 같아 보이긴 했는데 너무 레드오션인 것 같아서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등등의 찌라시를 들이미는 분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경제가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고 실업이 늘어난다는 조중동 호들갑이 과연 사실이었는지 **고용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상담창구는 북적여서 앉을 틈도 없었다. 나름 체계적으로 법정동별로 권역을 나눠서 창구를 나누고, 번호표를 뽑아서 대기했으니 나는 같은 동네의 실업자와 같이 앉아있었던 셈이다. 솔직한 감상은...음...여기 나의 고향은 노령화가 진행되어 중년/고령 실직자가 참으로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거기다 지역 특유의 조급한 성미까지 더해서 번호표가 무색하게 창구에 다짜고짜 들이밀고 자신의 소원수리를 하는(이 지역의 또다른 특성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상대방 말은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 때문에 아비규환이었다. 나는 일단 주민등록증을 얌전히 지갑에서 뽑아들고 고분고분히 말을 잘 들어 비교우위적 호감을 주기로 결심했다.

 

이미 내가 워크넷에서 구직급여 관련 교육 동영상을 시청하고, 이력서를 등록했으며 전 직장에서 실업급여 수령 의사를 밝히는 서류를 전송해 놓았으므로(*과장 감사) 특별히 구구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고도 감독관은 빠르게 나의 이력을 스캔해서 '자발적 실직자'임을 확인했고, 내가 조신하게 꺼내든 진단서 두 부 및 내가 만들어온 회사측 확인서를 보고는 아직 미비한 점이 많은 것을 지적했다. 즉, 진단서는 좋은데 발병 기간동안의 '진료사실확인서'가 없으며, 회사측 확인서는 기실 고용노동부의 소정양식이 있으니 거기 맞춰서 회사의 답변과 회사 직인을 받아와야 하며, 퇴직자 너님의 확인서가 필요하다며 한 세트의 서류를 내밀었다.

 

...그렇다... 회사측 확인서는 직접 내방해서 상담을 하는 경우에만 주는 하드카피 아이템이었던 것이다;;;(왜 안 올려놓는지는 알 것 같다)

 

회사측 확인서 소정양식은 굉장히 닫힌 구조로 되어 있다. 굉장히 촘촘한 질문을 통해서 근로자 너님이 아팠는데 회사는 휴직도 해 줬는지, 다른 부서로 직부를 바꿔줄 의사가 있다거나 혹은 못 바꿔줄 상황이 있는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비극적인 퇴사가 너님의 귀책인지 회사의 귀책인지를 캐물어서 '회사가 잘못했네'로 자기고백을 시키는 구조이다.

*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만일을 대비해서;;; 한 부를 더 빼돌렸으므로 내용을 간단히 올려보겠다.

 

- 확 인 내 용 - (여부 내역에는 구체적 사유 기재)

 

1.상기인의 업무내용(구체적으로)

 

2.상기인이 평소 질병으로 인하여 업무수행이 곤란함을 호소한 적이 있었는지 여부

 

3.상기인의 질병과 관련하여 소관업무의 수행이 곤란 또는 불가능 여부

 

4.상기인을 업무가 가능한 부서로 전환배치 할 수 있었는지 여부

 

5.상기인이 직무전환 배치를 요청한 적이 있었는지 여부

 

6.상기인의 질병과 관련하여 퇴사 대신 병가휴가를 요청한 사실 있는지 여부

 

7.회사 규정상 상기인에게 퇴사 대신 병가휴가를 부여할 수 있는지 여부

 

8.기타 상기인의 질병 등으로 이직과 관련된 참고사항(동 질병 부상 관련 병가, 휴직, 휴가 등 사용 내역 등)

 

이 확인서를 읽는 동안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잠시 내가 거대한 이성의 생식기로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됐구나... 그들이 4,5번을 조직의 귀책이라고 인정할 리 없어;;;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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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여름, 몸은 점점 나아져서 tapering 과정 끝에 수면제를 서서히 끊게 되어 술도 마실 수 있게 되고, 자신감도 붙고 기고만장해진(여름철 내 전형적인 특성이다) 서울 Farewell party라는 명목으로 두어달을 술을 퍼마시면서 술살이 붙기 시작했다. 16년간 모셨;던 15명의 팀장 중 가장 윗길로 모시는 모 실장은 자신의 체질 때문에 체중 관리에 집착하는 양반이었는데 드디어-_- 내가 살이 찌자(매번 먹을 것에 집착하고 술을 퍼마시는 날 보며 저년은 언제쯤 대자연의 역습을 받아 살이 찔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안다.) 대따 크게 남들 다 듣도록 "야 너 진짜 살쪘다!!! 5키로 넘게 쪘지?"라고 본인의 감상을 피력하셨다. 어차피 난 뻔뻔하고 그의 선의를 믿으며 그래봤자 정상 체중 언더인지라 "아뇨 실장님 저 7키로 쪘는데여"하고 히죽 웃으며 술을 퍼마셨다.

 

시간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흘러갔다. 그 중에서 좀 가슴아픈 일은 모 부서에서 옆팀 팀장으로 모셨던 양반이(당시에 참 소가 닭보듯 데면데면하게 대하셨다. 회사 지인에게 그 얘길 했더니 아냐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데면데면해 내가 팀원일 때도 그랬어 하고 답했다) 말기 암에 걸려서 임금피크를 2년쯤 앞두고 한직-휴가-휴직 테크를 탔는데 당시에 나는 그 사람이 복직 가능성 유무에 불구하고 챙겨드릴 건 챙겨드리고 싶어서 팀장 수당을 보전할 수 있도록 결재를 해 드렸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영원히 모를 거야. 시간은 2년이 지나고 투병 중에 인사 담당과 카톡으로만 띄엄띄엄 연락이 가능하던 그 사람은 퇴직금 제도 관련해서 내게 카톡으로 문의를 했고 '건강상 퇴사를 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이고(답변 다함) 잘 지내고 건강하시기 바란다'라고 답변을 드렸다. 그리고 몇주 후 그 사람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세상 참 허무하다.

 

암튼 9월 말이 되어 수면 클리닉을 마무리하고 예의 두 장의 진단서를 챙겨 포장이사를 하고(이 때 포장이사 선정과 관리 관련해선 별도 포스팅으로 쌔울 예정) 주소지 이전 및 전입신고, 부동산 매도 신고까지 다 마치고 9월 말일이 되자 아 맞다 구직급여; 상태가 되어 구체적인 신청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여기서 빡침의 공감 정도는 대한민국 minwon24를 겪어본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대한민국은 IT강국이라(...솔직히 인건비 아끼고 민원 비용 줄이려고 더 그런 것 같긴 하지만) 가족관계증명서 발급부터 각종 신고 등록과 같은 난해한 업무가 민원24로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사이트답게 각종 무익한 보안프로그램 떡칠 강요+액티브X성애자+크롬이뭐고파이어폭스가다무에냐익스플로러온리럽+공인인증서성애자 등등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민원의 모든 단계를 넘어 어둠의 동굴 속 멀리 그대가 보일 때쯤 ㅈ같은 뽀로로가 약올리는 웃음을 지으며 오류 메시지를 날린다. 다행히 요즘은 민원24 미러링 사이트+확장판 같은 것을 구축하여 훨씬 편해지긴 했는데, 고용보험 관련된 것은 그때의 빡침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구직급여를 신청하려면 모바일 기반에서는 '고용보험 모바일' 앱과 '워크넷' 앱을 까는 것이 필요하다. 고용보험 모바일에서는 실업급여와 관련된 각종 기본정보를 알아보고 신청 정보를 등록하고, 워크넷에서는 고용보험 제도 관련 1시간 교육 동영상을 시청하고, 자신의 이력서를 등록하는 용도이다. 문제는 이 모든 절차에 대한민국 관공서답게 공인인증서가 필요한데...

 

...공인인증서 등록 및 관리는 모바일 환경을 지원하지 않고 PC환경에서만 가능하다;;;

 

마침 나는 무려 2011년 말에 대학원 다니려고 구입한 노트북이 있었는데 얘가 늙어서 그러는지 이사하면서 완충재를 뛰어넘는 충격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유무선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고(와이파이를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오프라인 PC 상태에서 머무는 것이다. PC방에 가면 되지만 역시 의심이 많은 나는 공인인증서 USB를 들고 PC방에 가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본가에 가서 본가 네트워크에 내 노트북을 굴려봤더니 역시 그집 와이파이도 받아먹지를 못하고 본가 노트북을 워크넷에 접속시켜봤더니...

 

아 맞다 공인인증서...

 

스마트폰에 있는 공인인증서를 본가 노트북에 내보내는 뻘짓을 해 보았지만 그런 관대한 일을 관공서 사이트에서 해줄 리가 없다. 잠시 고민하다 굴러다니는 USB(...부모님 자동차에 흘러간 팝송 놔드리려고 구입한 거였다;;;)를 내 오프라인 상태의 노트북(이미 여러가지로 맛이 가 있었다)에 꽂고 인증서를 옮겨서 부모님 노트북에서 교육동영상 시청 및 이력서 등록을 마치고 나니 이미 낮 열두시 반이 되어 있었고 밖에서 일을 보고 오신 아부지가 안방에 들어앉은 중년의 딸년을 한심하게 보고 계셨다.

 

얘야 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정부의 돈을 타먹기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랏돈 타먹는게 그리 쉬운지 아니 나가서 밥이나 먹자

 

아 그렇죠 밥...측은해 보이셨는지 아부지는 오래간만에 밥을 사주셨고 비빔밥은 참으로 맛있었다.

 

후일담을 얘기하자면 결국 내 노트북은 삼성서비스센터 온라인에서 가르쳐 준 대로 오만 짓을 다 해봐도 네트워크 오류가 고쳐지지 않는지라 서비스센터에 데려가서 3만1천원으로 포맷을 하고 새 생명을 얻었다. 윈도우7을 너무 오래 써서 그런가, 윈도우10으로 업글된 노트북은 쌩쌩하고 새 환경은 이쁘기까지 하다. 삼성서비스센터 *** 기사님 사랑해요. 제가 서비스 10점만점 드렸어여.

 

이제 **고용플러스 센터로 오프라인 신청을 하러 가자.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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