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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야기한 구직급여 증빙 중 두 건은 마침 다니던 불면증 관련 네번째 병원에서 충분히 발급 가능했으니 잠깐 차치하기로 하고, 회사 측의 확인서는 아무리 고용노동부와 고용플러스센터 사이트 등등을 털어봐도 소정 양식을 찾는 것이 불가능했다(내 특기 중 하나는 정부 사이트에서 법령집, 매뉴얼, 질의회신집, 소정양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없으면 내가 직접 만들자. 10분간의 작업을 통해 공공기관 양식으로 아주 그럴싸하게 '전 직원이었던 얘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러저러한 사유로 소정 인사휴직을 사용하고 어쩔 수 없이 퇴직합니다'라는 문서를 만들어내고 인사 담당 부서의 확인서 담당 직원에게로 갔다.

 

역시나 나에게 동정적이었던 그 직원은(구 회사에서 나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지 않을 사람은 딱 한명밖에 없다...후...잘 계시죠?) 그 양식에 회사 직인을 바로 찍어주었으며 드디어 퇴직 전에 필요한 밑작업은 다 끝났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1.회사 경영관리 실무직원과는 아무리 잘 지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에게는 사소하지만 대상자들에게는 꽤나 중요한 여러가지 이슈는 그들의 재량인 경우가 많은데, 그들도 사람인지라 평소의 사소한 응대를 통해 가지고 있는 인상으로 가부 여부를 결정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2.회사 나가면 그냥 동네 아저씨 아줌마인 관계로 받을 수 있는 증빙은 미리 다 받아두고 나가는 게 좋다.

 

그리고 이래저래 마음 편해진 나는 6월의 어느 더운 날에 잠을 못 자 비쩍 마른 몸에 또 새로 산(...단아해보이는 걸로 새로 사고 싶었어 내가 그렇지 뭐) 원피스를 걸치고 생글생글 웃으며 퇴사순회공연을 몇시간 벌이고는(구 회사가 얼마나 소문이 빠르냐면, 두 사번 위의 양반한테 인사하러 갔더니 '야 니가 지금 몇주만에 나타나서 인사하러 댕긴다고 소문 다 났어'하고...ㅋ...ㅋ..) 인사팀장과 점심을 먹고 퇴사했다.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몸은 급속도로 나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종양도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역시 회사는 만악의 근원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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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썰을 풀기 전에 밑밥을 깔아보자면, 저 구직급여라는 물건은 실업급여라고 통칭되는 것으로서 여러가지 공작 끝에 퇴사한지 넉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1회차 수급을 시작한 터라 우리 갑님인 고용노동부님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굳이 실업급여도 아닌 구직급여, 그리고 검색 방지를 위해 *구*직*급*여* 라는 심히 온라인 바카라 홍보스러운 문구로 대체한다. 방금 시작한 블로그에 무슨 자의식 과잉이냐고 하겠지만 살다가 신상도 거하게 털려본 적이 있는지라 올 사람만 오라고 네이버 블로그도 아니고 티스토리까지 꾸역꾸역 기어들어온 사람이라..(굳이 있는 이글루스 블로그 놔두고 왜, 라고 하겠지만 이글루스에는 정사갤 병신들이 너무 많고 맨스플레인을 시전할 병신들은 더욱 많아;;;)

 

제목에 대한 설명을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시작.

 

내가 구직급여에 대해 듣게 된 것은 퇴직 협상, 그러니까 재직 마지막 기간 중의 일이었다. 당시 회사밖 지인과 퇴직에 대해서 담소를 나누던 도중 '내가 자발적으로 퇴직하였지만 손목터널증후군 증세도 있던 터라 회사와 적당히 얘기를 잘 해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한번 알아보도록 하여라'라는 요지의 말을 듣게 되었다. 음? 퇴직자 매뉴얼에는 자발적 퇴직에 의한 경우는 실업급여 대상이 아니라고 하던데? 그러나 그 퇴직자 매뉴얼은 대부분의 직원이 정년 퇴직을 하고 극소수의 야심찬 직원들만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명예퇴직을 하는 구 직장의 사정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으로서 나같은 특이한 케이스(얼마나 특이한 케이스였는지 퇴사한지 넉달이 지난 지금도 아니 왜 나갔냐며 전화가 가끔 온다;)는 당연히 감안하지 않은 것이었다. 잠깐 구글링을 통해 '자발적 케이스는 원칙적으로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아주 특이한 경우에는 가능하기도 하다'라는 요지의 고용노동부 FAQ를 득템하였다.

 

그리고 재직기간/퇴직연령 조견표(당연히 재직기간이 길 수록, 그리고 퇴직연령이 높을 수록 지급받는 일단가와 지급받을 수 있는 기간이 커진다)에서 내 상황을 대입하여 보니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유럽을 몇바퀴 돌고 소위 말하는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몇달 시전해도 넉넉한 금액임을 확인하고(폰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읽은 후부터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 1달간 살아보려는 가당찮은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물욕은 본격적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구 직장의 4대보험 담당자는 내가 사내 갑, 그가 사내 을의 관계였는데 그가 무서운 팀내 누님들에게 치이고 일에 허덕이는 걸 평소에도 딱하게 생각하던 내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서 프로젝트 일정을 '2주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허덕이는 정도'에서 '힘들긴 한데 그럭저럭 할 만한 정도'로 넉넉하게 조정해 준 적이 있다. 마침 그 프로젝트는 전작 프로젝트가 회사의 장까지 직접 나설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받아서 일정에 조정 여지가 전혀 없던 것에 비하면, 이제 단물 꽤 빨아먹고 윗사람들 관심도가 좀 떨어진 상태라 일정 조정이 가능한 상태였으므로 전가의 보도 'ERP 시스템의 후진성과 외주 직원의 무능함' 핑계를 대서 가능했다. 나는 대체로 윗사람들에게 매우 정직하게 대했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_-

 

이런 일들로 꽤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4대보험 담당자는 갑 대장들에게서 방어막이었던 내가 사라져서 매우 슬퍼하며 세무신고 중에서도 직접 발로 뛰어 고용보험 당국으로부터 쓸만한 답변을 가져와주었다.

 

구직급여는 구직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구직을 장려하기 위해 지급하는 것으로서 나와 같이 도저히 회사 생활을 계속할 수 없이 병마에 시달려서 퇴직하는 사람은 일단 지속적인 치료로 구직활동이 가능해진 후에 신청 가능하다. 그 때 필요한 증빙은,

-퇴직 시점에서 이 사람은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불가능하며 최소 2개월 이상의 가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양반의 진단서

-다 나은 시점에서 이제 드넓은 구직의 바다로 떠날 수 있다는 '그' 의사양반의 진단서

-퇴직 전 시점에서 얘는 쓸만한 인병 휴직 다 써서 바닥나는 등 노력을 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퇴사한다는 전 회사 측의 확인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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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사라는 우산이 걷히기 전에 비 맞을 준비

 

인사 주관 부서(ㅋㅋㅋㅋ...그저 웃지요)와 퇴직 관련 협상에 대해서 길게 쓰고 싶지 않다. 다만 나는 좋게좋게 나가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관부서와는 꼭 그런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차후 실업 급여 관련된 절차에서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암튼, 퇴직 협상 후 퇴직일까지는 약 3주 정도 기한을 두었다.

 

구 직장에는 퇴직 직원을 위한 매뉴얼이 존재한다. 제법 상세하고 친절한 매뉴얼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회사와 관련된 절차만을 안내하는지라 개인적으로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대전제는, 직장인은 회사에 노동력과 영혼을 헌납하고 월급과 스트레스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의 신용도와 상당한 복지도 받는다. 물론 자신이 받는다는 자각도 없이 무럭무럭 유비의 허벅지처럼 나태해져 간다. 퇴사한 다음에야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직장인으로서 보호받아왔나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1)건강보험

국민연금은 자신이 돈이 없음을 필사적으로 읍소한다면 정기적인 추궁 끝에 납부 의무를 면제받는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그렇지 않다. 퇴직으로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자동전환되고, 전환 후 각종 종소세와 재산세 빅데이터를 근거로 하여 주택, 전세금, 자동차 등등을 근거로 한 금액 납부를 통보받는다. 직장가입자처럼 사업주가 50% 부담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자신의 부담이다.

 

나는 건강보험 앱을 깔아 내 주택의 시가와 지방세 기준가액, 자동차 과세가액을 기초로 내 지역보험금액을 개략적으로 산출한 후 화들짝 놀라서 집이고 차고 다 팔아버리는 게 낫겠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해버렸다(...사람이 잠을 못 자면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인사 주관 부서의 모 차장은 나의 퇴사 결정을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퇴사는 극단적 선택이 아니었지만 집 판 건 극단적 선택이 맞는 것 같다. 심지어 팔고도 몇천 더 오르더라...아 속쓰려;;;)

 

그리고 나서야 좀 합리적인 대안을 알아보았는데, 직장가입자인 친족에게 기생하는 것이었다. 마침 아버지는 파트타임으로 자신의 구 직장에 고용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정을 종합하여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해 보았다. 답변인즉슨 만 30세 이상 자녀는 실직하여도 부모 밑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거주하던 곳의 주민센터의 자동발급기에서 1,000원의 수수료를 주고 '혼인사실관계증명서(이전 사실 포함)'이라는 해괴망측한 문건을 떼어 신청서와 함께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여 회사의 우산을 떠나 70대 아버지의 우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우산을 앞으로 벗겨질 가능성도 있으므로 최대한 이 우산 안에 머물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후술할 예정.

 

(2)각종 마이너스 대출, 신용카드

10여년간 직장 우산 안에서 내 신용등급은 1등급이었지만 다단계 하락이 확정적이었다. 물론 단기간은 재산세 납부 데이터를 기반으로 방어 가능하지만 아니 주부는 남편이라도 있지 나이는 많지 직장도 없지 남편도 없지 이건 뭐...내가 담당자라도 나 믿고 안 빌려주겠다. 고로 cherry picking 목적 등으로 신용카드 발급을 생각한다면 퇴직 준비 기간에 냉큼 발급받고, 마이너스 대출 한도도 높여두는 게 낫다.

 

아직 퇴직한지 넉 달밖에 되지 않아 각종 민원과 소명시 '직장명' 이 없음에 대한 페널티는 받은 게 없지만 받을 것이 불보듯 뻔하다. 겪어나가면서 쓰도록 하겠다. 

 

그러나 퇴직자는 퇴직으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급부가 있다. 일명 '실업급여'라고 불리는, 구체적으로는 구직급여라는 물건인데 이는 받기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구직급여로 가는 험한 길'이라는 항목으로 따로 쓰도록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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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실직 후 생존시 시나리오별 분석

이 방법론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1)생애 끝까지 시나리오별로 현금 유입을 계산하여 현가화하고

(2)생애 끝까지 시나리오별로 현금 유출을 계산하여 현가화하여

(3)Worst case 현금유입 현가 >Worst case 현금유출 현가 여부를 검증하면 된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되물을 줄 안다. 간단히 다시 설명하겠다.

 

(1) 현금 유입 누계

base case : 현재 가지고 있는 현금성, 비현금성 자산을 현금화시킨 후 목표수익률(target rate 5%)로 운용수익까지 감안

worse case : 현금화된 자산,  수익률 0%

worst case : 현금화된 자산 및 운용손실 20%

 

여기서 연금저축과 개인IRP는 만 55세 이후 연금으로 분할하여 지급받고 국민연금은 만 65세 이후 지급받아서 모든 연금소득에 대해 종합소득세를 낸다는 가정 하에 세후 금액을 산출하였다.(의외로 나는 국민연금은 신뢰하는 편이다. 아니 뭐 국민연금 망가질 정도면 이 나라 자체가 제대로 돌아가겠어 그냥 죽어야지...)

 

(2) 현금 유출 누계

현재 가계부에서 월별 평균 항목별 지출을 추출한 후 실직 후를 가정하여 조정, 월별/항목별 현금 유출액을 조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절약 능력에 대해서는 최대한 의심을 가지는 것이며, buffer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실직 후 식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든 별로 줄여질 것 같지 않으며(...) 의류비는 다소 조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경조사비는 실직한 노처녀에게까지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회 인정상 대폭 삭감이 가능하다.(그래도 나이가 나이다 보니 장례식장은 댕겨야 된다) 또한 향후 불안한 건강을 생각하자면 의료비용은 최근 엄청난 지출보다는(네번째 불면증 관련 병원에서 쓴 돈이 6백만원을 넘어간다 어허허...) 다소 줄어들지만 그래도 동년배 평균보다는 높이 산정하였다. 또한 조카 호구이므로 조카 관련 지출 비용은 어떡하든 잡아놓아야겠고, 숨통은 틔여야겠으니 여행 관련 비용도 매월 적립하여 연 1~2회 해외여행, 연 4회 국내 여행을 가정한다. 주택 관련 장기수선충당금으로 15~20년에 한번 평당 100만원 수리를 가정하여 월별 적립하고 각종 보험료(여기서 차후 건강보험료 이슈가 나왔다) 계산을 끝냈다.

 

한국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이니까 물가는 계속 오른다. 물가상승비용은 한국은행 발표 최근 10년간 소비자물가상승지수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시나리오 변수는 역시나 건강 쪽인데 주요 암마다 지출 비용 및 보험 커버 금액을 계산하다가 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앓느니 죽지;;;

시계열로 확장해나가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기대 수명인데, base case는 84세(집안 내력을 봐서 90까지 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술 과로 스트레스를 고려해서 -6세 적용) worst case는 95세.

 

(3)Worst case 현금유입 현가와 Worst case 현금유출 현가 비교 검증

base는 그저 worst를 계산하기 위한 기준점일 뿐이요 best는 아웃오브 안중. 돈에 있어서 나는 심히 비관적인 사람이다.

 

다 돌려보니 worst case대로 가도 서울의 집을 팔고 고향에 적당한 집을 찾아 정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투자에 좀 잃어도 평생 놀고 먹어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론을 내리고 나니 이틀간의 인병휴가는 끝나고 퇴직 협상을 위해 출근하는 것이 남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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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올해 내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 재직기간 15년을 채워야 퇴직금 가산금이 붙는다는 것은 회사에서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버티자고 15년까지 남은 기간을 일로 안분하여 일별 가산금을 계산해가며 한참을 버텼다. 그리고 15년을 넘긴 바로 그 다음날 발병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3년전에 왔던 불면증이 그동안 먹은 나이만큼이나 더욱 강력해져서 돌아왔으며 몇달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 보니(아니 뭐...그 중에 반 정도는 졸피뎀을 처방받아 매일 네시간씩 자긴 했는데 자도 잔 것 같은 휴식 효과가 전혀 없어서;;;) 지력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말도 어눌해졌다. 결정적인 것은 그닥 살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장기에서 발생했다. 그래도 종합 건강검진을 나이만큼이나 꼼꼼하게 받았는데 멀쩡했던 장기에서 무럭무럭 종양이 한 달만에 자랄 수 있단 말인가. 병원에서는 수술을 제안했고 나는 거 괜찮은데 마취약이 안 듣는 체질이니 좀 많이 투여해야 할 거라고 답했다. 그리고 수술 후, 수술대에서 일어나다 수술실 바닥에 장렬히 머리를 부딪치며 기절했으며 식겁한 병원 의사양반은 앰뷸런스를 불러 가장 가까운 5대병원으로 보내버렸다. 그 5대병원 응급실에서 보호자를 찾았는데 평일 낮, 보호자로 바로 나타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

 

친구라고 부를만한 이 나이의 여자들이란(혹은 남자들이란) 전업은 둘 정도의 아이 육아로 미친듯이 바쁘며 직장인은 아래위에서 압박 때문에 역시나 바쁘다. 그리고 친족은 40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친족이 올라올 때쯤 나는 여덟시간 동안 전쟁같은 응급실에서 얌전히 누워있다 아뇨 보호자 없어요를 반복하다 퇴원한 다음이었다.

 

일단 2차병원과 3차병원에 진단서와 입원기록서를 다 뗀 다음 이틀간의 공백에 대해 휴가계를 냈다. 그리고 퇴직을 대비한 계산을 시작했다.

 

그 때 기분은 올해 내로 저세상에 갈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들었지만(실제로 유언장 공증까지 다 끝낸 다음이었다. 장기 기증을 하려면 뭐라도 해 놔야지) 재수없이 오래 살게 되면 한 순간의 기분으로 먹고 살 길까지 막히게 되니 함부로 지를 수 없는 노릇이다. 할 일도 없겠다 노트북을 꺼내 얌전히 엑셀을 돌리기 시작했다.

 

0. 예비절차 - 사망퇴직과 의원퇴직 어느 것이 나은가

구 직장은 1년에 여러명이 재직 도중 죽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 경우를 '사망 퇴직'이라고 하며, 의원퇴직은 죽기 전에 퇴직하는 것을 뜻한다. 구 직장은 몇년 전까지 사망 퇴직시 위로금이 엄청나게 붙어서 사망 퇴직이 유리하였지만, 503 덕분에 그 혜택은 사라졌으며, 심지어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재직 직원 사망시 여러가지 복지까지 사라지게 되어 사망 퇴직이 역으로 불리하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 시점으로는 복지가 부활되어 사망퇴직이나 의원퇴직이나 유불리가 크게 차이가 없게 되었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여러번 계산하는 게 업이었으니 안다. 즉,

 

사망퇴직시 현금유입=(1)퇴직금+(2)각종 복지 환급금+(3)직원 단체상해보험금+(4)전직원 공제 조의금+(5)자발적인 조의금

의원퇴직시 현금유입=(1)퇴직금+(2)각종 복지 환급금+(5)자발적인 조의금

 

으로 차이는 (3)과 (4)에서 발생하며, 사회 인정상 (5)에서도 사망퇴직이 유리하다. 하지만 내가 죽은 다음에 알게 다 무에냐.

 

다음 절차로 올해 넘겨 죽는다고 가정하고 시나리오별 현금흐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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