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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손톱만큼 좀 닮긴 했네)

연이은 시리즈를 보고 몇몇 지인들이 나를 레미제라블의 팡틴(코제트는 초년이 좀 힘들었지만 장발장 영감이 잘 주워가서 공주처럼 길러주고 시집도 잘 가서 행복하게 살았다. 근데 팡틴은 개거지같은 귀족남자한테 물려서 나중엔 이도 뽑히고 머리도 잘라 팔고 죽을 때도 비참하게...흑)처럼 보길래 본연의 알찬 생활정보 개그 블로그로 돌아가고자 한다.

1년 이상 실 재직하고 퇴직할 경우 퇴직일로부터 2주 내에 사측으로부터 퇴직금을 받을 것이다. 이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아아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으로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못 받을 경우 사장과 회사 상대로 노동청에 너 고소를 시전해도 좋다. 근데 요즘은 엔간한 규모 이상의 사업장의 경우 의무적으로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목적은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한다는 건데,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근로자 너님들이 퇴직금 일시불로 받으면 돼지파티에 주식질로 날려버리고 늙어서는 정부의 보조에 기대 부담이 되니, 너네 돈을 가급적 묶어놔서 정부의 향후 부담을 줄여버리겠단 얘기다.

퇴직연금은 IRP(INdividual Retirement Plan)이라는 계좌를 개설하여 그쪽으로 받는다. 이 계좌를 쉽게 말하자면 근로자가 이 직장 저 직장 전전할 때마다 받는 퇴직금을 넣어놓는 퇴직금 지갑이라고 보면 되겠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으므로 퇴직금도 퇴직소득세를 내는데, 이 IRP에서 일반 계좌로 이체하는 순간에 퇴직소득세를 납부하게 된다.

퇴직소득세는 일반인이 계산하기엔 넘나 복잡하기 때문에 산식을 쓰기는 좀 그렇다. 국세청에 매년 템플릿 엑셀을 올려놓으니 궁금하면 자료실에서 다운받기 바란다. 썰로 풀 수 있는 것은 ‘재직기간이 길 수록’ 실 부담세율은 낮아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 말하자면 한 해 한 해가 흘러갈수록 부담세율이 올라가는 구조인데 이는 ‘너님 세금 올릴 거임’하면 국민적 조세 저항이 커지므로 복잡한 산식 속에 얌전히 묻어놓았다. 참고로 내 퇴직소득 부담세율은 반올림하여 9% 수준이었다.

정부는 이 퇴직금을 만 55세 이후에 연금 형태로 분할해서 받으면 개인의 부담세율을 30% 할인하는 당근을 주어 가급적 말년에 타 쓰라고 유도해놓았다. 그러나 말년에 타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도 중년의 나이라 한참 세월이 남았기도 하지만 세금도 아끼고 싶은지라(세금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내고 싶지 않다) 또 엑셀을 돌리기 시작했다.

개인 재무관리책의 조언은 한결같이 ‘고정비를 변동비화하여 절약하라, 특히 계좌 수수료같은 고정비’라고 되어 있다. IRP에 퇴직금을 킵해놓으면 매년 금융기관에 일정 수수료를 내게 되어 있다.


http://pension.fss.or.kr/fss/psn/pubannounce/fss_announcement.jsp

여기서 금융기관별 요율이 조회 가능하다.

퇴직하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업계 최저 요율 0.35%(맨날 무료라고 선전해서 잠시 설렜는데 그건 개인 재테크용 계좌만 무료다)인 삼성증권으로 계좌를 이전해버리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여러분이 금융기관 재직중이라면 분명 소속회사는 퇴직연금 사업자일 테고 소속사 계좌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당장 업계 최저사로 이전하기 바란다. 회사는 너님들을 케어하지 않고, 퇴직 후엔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직원 할인 따위 없다.

그리고 산식 하나를 세웠다

퇴직소득 부담세율*30%>=T*IRP 수수료율

뭔 소리냐면, 말년에 분할지급받아 아끼는 세금과 매년 부담하는 수수료율에다 말년까지 연수를 곱해서 비교해 보자는 얘기다.

나는 말년까지 기다리면 2.7프로 세금을 아낄 수 있었지만, 업계 최저로 가도 0.35%*15년=5.25%로 암만 봐도 유지하는 게 밑지는 장사라 해지하고 9프로 세금 다 부담한 후 알아서 굴리고 있다. IRP 전용상품이 위험관리가 잘 된다고 하는데 원리금 비보장이 마이너스 가면 해당 금융기관은 금감원에 한 소리 듣는 거 말고 별 페널티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러분도 퇴직시 계산해보기 바란다. 귀찮으면 인출해라. 대체로 인출하는 게 유리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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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운전은 사고 후에도 계속 했다. 그 곳은 홈리스보다 카리스가 더 비참할 것이다. 그러나 프리웨이 장거리 운전은 도저히 못하겠어서 다른 사람들의 차를 얻어타고 다녔다. 지금도 그건 좀...무리다.

 

학기도 끝나고, 일찍 돌아가는 사람은 이미 짐을 싸고 있을 6월 초, *시 경찰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사건을 종결하기 위해(음?) 사고 경위 보고서 draft를 보내니 확인하고 의견 달라는 메일이었다.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되어 있었다.

 

당시 흰 색 코롤라 오른쪽 뒷편을 SUV가 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나타났다. SUV 운전자는 금발머리의 10대 백인 소녀로 보였으며, 눈이 풀리고 운전 행태가 비정상(우회전하면서 1차선을 치진 않는다 보통;)인 것으로 보아 마약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몇 시간 후, 인접 장소에서 그녀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소녀가 차에서 내려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증인도 나타났다.

 

경찰은 이 증언과 기타등등을 참작하여 1차 가해자는 잡을 수 없으며, 나는 과잉 방어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므로 사건을 종결짓고자 했다.

 

사실 이 시리즈의 제목 '미국 내 대형 교통사고 사후처리하는 법'은 과장광고다. 내가 뭘 잘해서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다행히 증인이 몇 달만에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아났는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3)번, 다른 다섯 차량 및 대인 보상도 영세 한인 보험회사가 다 보상하기로 결정하여 원만하게 끝났다.

 

즐거워진 나는 토론토와 오타와, 퀘벡을 돌아다니며 역시 미국은 별로고 캐나다가 짱이여 아 캐나다로 이민가고 싶다 하며 캐나다 이민청에 들어가 이민 가능 점수(이민청은 해당자의 스펙을 통해 정량화된 이민 가능 점수를 제공한다)를 제공하고 기술이민을 할까 적당한 브로커를 잡아서 위장결혼이민을 할까 고민하다가 귀국했다.

 

후일담을 얘기하자면 장거리-정확하게 말하면 과속 운전- 트라우마에 걸린 나는 대학원 졸업 직전에 모 지방 지점으로 발령받았는데(남들이 도저히 가려고 하지 않는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내근직 본점 모 부서에 자원하였으나 네년은 이제 지점에 갈 차례라며 처참하게 짤렸다.) 처음으로 여성 중견 관리자를, 그것도 선임 팀원으로 받아서 불행의 나락으로 빠져서 술을 더 퍼마시게 된 **출신의 **한 *씨 팀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불신하였으며 고급 기생 용도 말고는 딱히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내가 장거리 운전을 기피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기업체 출장이 잦은 경우 치명적이다) 더욱 불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처음으로 심각한 불면증에 걸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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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한인 브로커는 전화를 해서 정말 살아있는 게 맞냐고, 차 상태가 저 정도인데 정말 멀쩡한 게 맞냐고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안부를 묻고는 차는 역시나 완파이므로 폐차 처리가 적당해 보이며 차 안에서 몇가지 잡동사니를 찾아왔다고 했다. 역시나 견인장 누군가가 GARMIN 네비(갤럭시 S2 정도 크기의 네비게이션인데, 매우 구리다. 한국에서는 자기 스마트폰으로 티맵을 켤 지언정 저 물건을 130불 돈을 주고 살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를 들고 튄 것 같...지만 살아있는 게 어딘가.

 

마침 당시 동거인 언니는 다른 연수생과 플로리다에 놀러간 상태였다(같이 놀러가자고 했는데 수업 나가고 골프 연습이나 하자 싶어서 거절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갈 걸 그랬다) 경찰이 길바닥에서 집에 데려다주마 했는데 도저히 빽차를 타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서; 거절하고 당시 동승자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다른 연수생 모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가족이 오기 전이라 한가했던 그는 바로 현장에 와서는 각각의 집에다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내게 전화를 해서 사고 사실에 대해서 회사는 물론 다른 연수생에게도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진의에 대해서는 선의로 또는 악의로 해석할 여지가 꽤 있다. 굳이 그 일의 시효가 다 지나고 같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에 진의에 대해서 굳이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의 말에 그러네요 오빠, 하고 동의를 했다는 것이며 25명의 유학생 동료들의 머리와 경험을 빌릴 기회(그 중에는 잘나가는 로펌의 변호사도 있었다) 없이 혼자 힘으로 대응해 나가야 했다는 것이다. 내가 무슨 일이든 혼자 힘으로 꾸역꾸역 책임을 지려 한다는 평판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런 케이스처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는 법이다.(아 그리고 이젠 늘거서 고쳐지지도 않네여 독거가 좀 그래여)

 

이후 사후관리는 크게 세 가지 이슈로 나뉘어진다.

 

(1)경찰에 대형 교통사고 가해자 후보 1번으로서 중과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

(2)영세 한인 보험회사에 완파된 내 차에 대한 부담금 납부 후 손해액을 보상받는 것

(3)동 보험회사에 줄줄이 접수될 다섯 차 및 운전자, 동승자의 인적, 물적 피해액을 보상하는 것

 

(1)번은 철저히 이메일을 통한 서면 조사로 진행되었다. 물론 이 동네가 그런 행정절차가 기본이어서도 있겠지만, 문해력 및 작문>>말하기인 내 입장으로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다른 피해자들의 진술을 확인하고 정정하며 내 입장을 밝히는 일이라 미묘한 영어의 뉘앙스를 감안해서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고, 어느 정도까지 정정해야 할 것인가는 좀 골치아픈 일이었다. 언제나 하는 말인지만 나는 의심이 많은지라; 상대방이 우다다다 쏟아내오는 말에 대해서 네네 맞습니다 했다간 *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가장 큰 이슈는 내가 주장하는 런어웨이 가해자에 대해서 목격자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며, 두번째로 내가 사고 당시 핸들을 얼마나 꺾었는지-그러니까 과잉 방위를 하지 않았는지 하는 것이었다. 두번째에 대해서는 하도 여러번 설명하다 보니 이제는 내가 실제로 핸들을 꺾고 거짓말을 하는 건지 스스로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2)는 자 부담금 1,000불을 납부하고 손해액을 보상받으면 되는 문제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소유주와 임차인이 죄다 구라라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뭐 안 되면 내 돈 없어진 셈 치지 뭐. 예의 브로커가 며칠 만에 똑같은 차종을 리스해주었다. 다른 차를 타고 싶었지만 타 연수생에게 차가 바뀌었다는 정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좁은 사회답게 상대에게 관심이 지나치게 많다) 같은 차로 했더니...흰색 코롤라만 봐도 치가 떨린다.

 

(3)이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성가신 일이었다. 미국은 정말 더럽게 행정절차가 느리고 중요 서류가 등기도 아닌 일반우편으로 뭔가가 랜덤으로 날아오기 때문에(신용카드를 신청했는데 6개월 뒤에 떠날 때까지 받지 못했고, 나중에 우편함에 일반 우편으로 꽂혀 있더라는 얘기는 1년 전 선배 유학생의 얘기였다) 나는 우편함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며 다섯 개 보험회사의 다섯 가지 청구에 대해 계속 읽고 대응해야 했다. 다행히 같은 한인 교회의 교포 아가씨가 다른 한인 보험회사에 다녀서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으며, 역시나 같은 업계의 약혼자에게서 대응 전략에 대해서도 알아봐주었다. 그러나 조언은 조언이고 할 일은 많아서...collision(충돌), policy(보험 약관), coverage(보상 범위), premium(보험 납입액), under-insured(보장 금액 부족) 등등의 자동차 사고 용어 및 보험 영어만 일취월장하는 세월이었다.

 

사건은 느리게 진행되고, 2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를 다니고, 여행을 다니고, 사람을 만나면서 일을 처리해나갔다. 가끔 장거리 여행을 떠나서 사고 관련 이메일에 회답하고 보험회사 전화를 받을 때마다 빚쟁이처럼 현실이 목을 조르는 걸 느꼈다. 마침 내가 스물다섯명 같은 유학생들에게 숙제를 해서 돌리는 숙제봇이었는데, 그 중의 한 명은 내가 새벽 시간에 숙제 이메일을 돌리는 걸 보고 마음 아팠다고 얘기했다.

 

...사고 처리 이메일보다는 숙제가 훨씬 낫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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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백은 터졌고, 차문은 완전히 찌그러져 있어서 나오기도 쉽지 않았다. 출동한 경찰이 차 문을 열어주어 나오자 차 네 대가 완파되어 있으며, 끄트머리의 프리우스 한 대는 찰과상 정도를 입은 게 눈에 들어왔으며 멕시칸 계열의 한 남자는 이미 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 특히 한국 대도시에 도처에 있는 CCTV가 빅브라더 어쩌구로 통하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만한 게 없다. 꽤 중심 사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거리 CCTV도 없고, 다들 운전하느라 보도에 보행자도 없는 상황에서 문제의 가해자는 이미 튀어버렸고, 결국 남은 팩트는 흰색 코롤라가 갑자기 1차선에서 미쳐 날아올라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유턴을 해서 반대 차선의 차 다섯대를 줄줄이 받아버렸다는 것 밖에 없다. 다행히 나와 동승자는 얼떨떨한 것 빼고는 다친 데가 하나도 없었으므로(나중에 집에 도착해서 보니 얼굴에 생채기가 좀 생겼다) 앰뷸런스는 도움이 필요한 다른 운전자들에게 갔고, 출동한 경찰에게 띄엄띄엄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시의 80~90년대 영어교육은 문법에 치중한 것이었으며, 심지어 선생들의 발음은 일본식+그 지역 사투리에 기반한 것이라 들어줄 만한 게 못 되었다. 또 모종의 이유로(...) 사교육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던 나는 문법독해봇으로는 영어 최상위권이었고, 회계사 1차 시험에 영어가 있긴 했으나 또 그게 토플 베이스로 한 객관식이라 ㅋ 실제 생활 영어하고는 거리가 있다. 구 직장에 들어온 후로 우와 서울의 외고 나온 애들은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이 되는구나 싶긴 했으나 이력상 국제 부서에 갈 일은 없었으므로 토익 토플 따는 것 외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미국 연수 관련해서도 가장 긴장했을 때는 미대사관에 비자 인터뷰 갔을 때였고(워낙 막 대하셔서들;) 입국 인터뷰야 설마 돈 쓰러 온 사람한테 막 대하겠어 싶었고 나머지야 미국 집에 인터넷 계약하거나 가스 연결하고 학생증 만들고 골프장 부킹하는 행정 실무였는데 갑자기 가해자 1순위 후보가 되어 영어로 '내가 안 그랬어여'를 설명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상황에 맞부닥치게 된 것이다-_-

 

다행히 경찰은 그다지 고압적으로 대하진 않았다. 여권과 학생 정보를 고스란히 알아간 다음 추가 조사를 통해 성실히 대응할 것을 당부한 후 물러갔다. 이제 남은 것은 각자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차를 치우고 자기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마침 내 차는 sub-lease였다. 뭔 얘기냐면, 돈만 있으면 외국인에게 그다지 뒷통수를 후려갈기진 않는 한국에 비해 미국은 특히 단기 유학생에 대해 '뭘 믿고 네놈에게 신용등급을 주냐'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은행계좌나 신용카드 거래실적, 직장이 없는 외국인은 자동차 리스 가격조차도 매우 비싸다. 이런 틈새 시장을 이용해서 현지 한인 브로커가 차를 대거 리스한 후 필요한 단기 유학생에게 bid-ask spread를 먹고 다시 리스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나도 그 서비스를 이용 중이었다. 고로 내 차는 정체불명의 다른 한인이 소유하고 있었고, 또 쌩판 남남인 한인2세가 리스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뭐 하나 야매가 아닌 게 없다. 평소야 별 문제 없지만 소유주와 임차인이 중요한 이 시점에선 매우 골치아파진다.

 

현지 한인 브로커는 잠시 당황하더니 침착해져서는 견인장(이미 누더기가 된 차는 견인되어 가 있었다) 주소를 불러받고 다음날 자신이 상태를 확인해 볼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야매 과정으로; 가입한 한인 계열 손해보험 회사에는 내가 직접 연락해서 대응하라고 말했다. 그 회사는 장점: 한국어 ARS 서비스가 가능하다, 단점: 영세하다라는 특징을 가진 곳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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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내 운전 경력에 대해서 말해보자면...남들이 보통 운전면허를 딴다는 수능 후 대학 입학하기 전에 좀 뻘짓을 하느라 바빠서 지나쳐버렸으며, 대학교 2학년 2학기 이후로는 그놈의 고시 공부(회계사 면허가 과연 고시인가에 대해서는 사법고시 입법고시 외무고시의 강력한 비웃음이 있긴 하지만 요즘 워낙에 이런저런 시험을 다 고시라고 퉁치는 경향이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내 구 직장 입사시험도 고시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더라;) 때문에 바빠서 못 따고 있다가, 2006년 여름 처음으로 영업부서(지금은 비영업부서로 분류되지만 당시에는 꽤 잘 나가는 영업부서였다. 아 좋은 00년대;;;)로 발령받아 영업부서 가면 운전을 할 줄 알아야하던디...하고 매일 새벽 **운전학원에 가서 딴 것이었다. 그나마 그 면허도 ktx가 다니는 모 지방도시에 주로 출장을 다니게 되면서 전혀 필요없게 되었고, 수도권 대중교통에 통달하여 운전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아서 차를 사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미국에 연수 가는 2012년 연말까지 내 운전면허증은 장롱에서 자면서 세컨드 신분증 정도로나 썼단 얘기다. 당시에도 모종의 이유로 미국 동부의 모처로 연수처를 바꿔볼까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랬다면 나는 그때도 운전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내 운전 실력은 그냥 보통 멸칭으로 '여자 운전'이라고 남자들이 부를 만한 것인데, 시동 걸고 출발할 때부터 끌 때까지 두 손을 휠 위에 얌전하게 꼭 붙잡고 엄청나게 긴장해서 몬다. 당시 연수가기 전에 한국에서 도로 연수를 다시 받았었는데 연수 강사의 평에 따르면 '태생적으로 방어운전이라 큰 사고는 치지 않겠다'라고 했다.

 

큰 사고는 치지 않겠지만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는 법이다-_-;;;

 

당시 내가 있던 미국 *시는 그럭저럭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시내에 버스 노선이 단 세 개 있었으며, 차를 몰면 단 5분인 번화가 수제 버거집이 구글맵 대중교통 조회를 하면 1시간 넘게 걸리게 나오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냥 돈도 많은데 차를 몰고 다니지 왜 대중교통을 타?'라는 곳이었다. 따라서 당시 연수중이었던 대학 가는 것은 물론이고 집앞 카페 가는 것부터 자녀 유치원, 골프 연습장과 같은 사소한 일까지 모두 차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쉬워보였다. 미국식 불친절 행정의 극치인 DMV에서 미국 내 면허를 따고, 도로가 넓으니 교통체증도 없고 주차장소가 넓으니 미세조정 따윈 없이 바로 전면주차하고... 프리웨이 타는 거야 각각 차가 있었던 당시 동거인 *언니님이 주로 해줬으니 단거리에만 집중하면 되고. 그래서 13년 2월, 심지어 나보다 더 운전을 못하고 흥미없는 다른 연수생을 옆자리에 태우고 골프연습장으로 향하던 중, 사거리를 좀 감속해서 가고 있을 때도 여전히 긴장은 하고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였다. 나는 사거리 1차선을 막 직진하고 있었는데 웬 차가 엄청나게 미친 속도로(...라고 하지만 죽지 않은 걸 보면 40-45마일을 갓 넘긴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내 차의 오른쪽 후면을 들이받고는 도망쳤다. 1차선에 있었던 내 차는 왼쪽으로 확 비껴나가 꽤나 거창했던 중앙분리대를 넘겨 180도 유턴 안착, 마침 이른 퇴근길 차가 있었던 반대 차선의 차를 줄줄이 들이받고 완파되었다. 눈을 뜨고 나서 제일 먼저 보인 풍경은 운전하다가 마시려고 남겨둔 스타벅스 아이스 카페라떼 벤티사이즈가 엎어져서 차 안을 구석구석 물들인 것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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