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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내 운전 경력에 대해서 말해보자면...남들이 보통 운전면허를 딴다는 수능 후 대학 입학하기 전에 좀 뻘짓을 하느라 바빠서 지나쳐버렸으며, 대학교 2학년 2학기 이후로는 그놈의 고시 공부(회계사 면허가 과연 고시인가에 대해서는 사법고시 입법고시 외무고시의 강력한 비웃음이 있긴 하지만 요즘 워낙에 이런저런 시험을 다 고시라고 퉁치는 경향이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내 구 직장 입사시험도 고시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더라;) 때문에 바빠서 못 따고 있다가, 2006년 여름 처음으로 영업부서(지금은 비영업부서로 분류되지만 당시에는 꽤 잘 나가는 영업부서였다. 아 좋은 00년대;;;)로 발령받아 영업부서 가면 운전을 할 줄 알아야하던디...하고 매일 새벽 **운전학원에 가서 딴 것이었다. 그나마 그 면허도 ktx가 다니는 모 지방도시에 주로 출장을 다니게 되면서 전혀 필요없게 되었고, 수도권 대중교통에 통달하여 운전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아서 차를 사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미국에 연수 가는 2012년 연말까지 내 운전면허증은 장롱에서 자면서 세컨드 신분증 정도로나 썼단 얘기다. 당시에도 모종의 이유로 미국 동부의 모처로 연수처를 바꿔볼까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랬다면 나는 그때도 운전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내 운전 실력은 그냥 보통 멸칭으로 '여자 운전'이라고 남자들이 부를 만한 것인데, 시동 걸고 출발할 때부터 끌 때까지 두 손을 휠 위에 얌전하게 꼭 붙잡고 엄청나게 긴장해서 몬다. 당시 연수가기 전에 한국에서 도로 연수를 다시 받았었는데 연수 강사의 평에 따르면 '태생적으로 방어운전이라 큰 사고는 치지 않겠다'라고 했다.

 

큰 사고는 치지 않겠지만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는 법이다-_-;;;

 

당시 내가 있던 미국 *시는 그럭저럭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시내에 버스 노선이 단 세 개 있었으며, 차를 몰면 단 5분인 번화가 수제 버거집이 구글맵 대중교통 조회를 하면 1시간 넘게 걸리게 나오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냥 돈도 많은데 차를 몰고 다니지 왜 대중교통을 타?'라는 곳이었다. 따라서 당시 연수중이었던 대학 가는 것은 물론이고 집앞 카페 가는 것부터 자녀 유치원, 골프 연습장과 같은 사소한 일까지 모두 차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쉬워보였다. 미국식 불친절 행정의 극치인 DMV에서 미국 내 면허를 따고, 도로가 넓으니 교통체증도 없고 주차장소가 넓으니 미세조정 따윈 없이 바로 전면주차하고... 프리웨이 타는 거야 각각 차가 있었던 당시 동거인 *언니님이 주로 해줬으니 단거리에만 집중하면 되고. 그래서 13년 2월, 심지어 나보다 더 운전을 못하고 흥미없는 다른 연수생을 옆자리에 태우고 골프연습장으로 향하던 중, 사거리를 좀 감속해서 가고 있을 때도 여전히 긴장은 하고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였다. 나는 사거리 1차선을 막 직진하고 있었는데 웬 차가 엄청나게 미친 속도로(...라고 하지만 죽지 않은 걸 보면 40-45마일을 갓 넘긴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내 차의 오른쪽 후면을 들이받고는 도망쳤다. 1차선에 있었던 내 차는 왼쪽으로 확 비껴나가 꽤나 거창했던 중앙분리대를 넘겨 180도 유턴 안착, 마침 이른 퇴근길 차가 있었던 반대 차선의 차를 줄줄이 들이받고 완파되었다. 눈을 뜨고 나서 제일 먼저 보인 풍경은 운전하다가 마시려고 남겨둔 스타벅스 아이스 카페라떼 벤티사이즈가 엎어져서 차 안을 구석구석 물들인 것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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