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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 -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대담 
프랑크 모베르 (지은이),
박선주 (옮긴이)
그린비 (출판사)
2015-03-10 (국내 출간일)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인 프랜시스 베이컨과 프랑스의 에세이스트 프랑크 모베르의 대담집. 베이컨은 인간의 얼굴이나 신체를 기괴하게 비튼 회화 작품으로 인간에 내재한 잔혹함과 공포, 불안을 유례없는 방식으로 형상화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이 대담집은 베이컨이 이러한 회화 세계를 구축한 동기들,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작가와 화가, 회화를 향한 그의 열정 등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베이컨의 개인적인 관계나 추억을 담담하면서도 유쾌한 어조로 기록하고 있다. 이 대담집을 통해 우리는 화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타고난 예술가일 뿐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기도 한 베이컨의 복합적인 면모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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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는 독서 습관 중 아주 좋지 못한 게 하나 있는데요. 지금 몸이 시원찮다 보니(그러면서 팬싱 갈라는 참 잘도 댕긴...) 도서관까지 가기가 여의치 않아서 일단 '시니어 북 딜리버리'(시니어 일자리 창출 사업인데요, 도서관에 딜리버리 신청을 하면 작은 도서관에 배달된 책을 시니어 분들이 집까지 배달해 주시는 겁니다. 반납은 작은 도서관으로 하면 됩니다) 서비스로 집까지 도서관 책을 배달 받습니다. 책 욕심은 드럽게 많아서 한도 꽉꽉 채워서 3권을 대출 받은 다음 2주 동안 못 읽고 어영부영하다가 연체된 채로 반납하고, 연체 기간 동안 대출이 정지되어 고통받고, 그리고 또 딜리버리 받고, 또 연체되고...(...)

 

이번에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와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그리고 그 외 1권(이 쪽은 AI 관련인데 영 진도가 안 나가네요. 다음에 완독 시도)을 빌렸는데요, 리뷰 쓰고 언능 반납하려고 리뷰에 손을 대 보았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영국 출신의 꽤 유명한 현대미술 화가입니다. 이 분은 기괴하고 폭력적이며 잔혹한 그림으로 유명한데요, 제일 유명하면서 티스토리 심의에 안 걸릴 만한 그림으로는 대충 이런 게 있습니다.

... 저는 이 그림을 십수년 전에 처음 보았는데요, 꽤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매혹되었습니다(제 예술 취향 중 상당수는 제법 익스트림한 편입니다. 아 다 그런 건 아니고요; 심지어 요새 꽂힌 분도 상당히 익스트림한 편;) 그리고 리움 컬렉션(베이컨 그림 조낸 비싼데 암튼 삼성 돈도 많아;)에서 다른 정육점 시리즈;들을 보면서 더 흥미가 갔구요.

 

아, 그리고 저는 예술가가 능력있는 인터뷰 진행자와 자신의 인생과 예술 세계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책을 꽤 좋아합니다. 물론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를 언어로 생생하게 표현할 만큼 말주변이 있어야 하고(의외로 이거 못하는 사람 꽤 많음) 인터뷰 담당자가 노련하게 잘 끄집어내야 하고(그러려면 인터뷰 상대에 대한 애정-최소한 그 사람의 예술에 대해서라도-과 예술에 대한 지식은 기본입니다) 둘이 상성이 잘 맞아야 합니다.

 

다행히 베이컨과 대담자 프랑크 모베르는 이 모든 특성을 갖추고 있어서 훌륭한 인터뷰집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베이컨씨가 소싯적에 파리에서 좀 화려하게 노셔서(...) 프랑스어에 능통한지라 대담은 통역 없이 프랑스어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 히치콕 오빠와 트뤼포와의 대화는 영어, 프랑스어 뿐 아니라 영화에 해박한 통역이 필요했지요. 하긴 뭐 독일어였다면 바로 가능했겠지만.

 

이 책은 여러 모로 모순적이면서도 충실한 화가 베이컨을 잘 보여줍니다. 자신의 그림이 고가에 팔렸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도 돈을 주변 사람에게 아낌없이 퍼 주고 소박한 생활을 하며, 전통적인 그림을 해체하는 작업을 평생 했으면서도 고전적인 화가들, 그리스 극작가들, 서양 문화의 전통을 숭배하고 경모합니다.(이 책의 제목인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도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의 한 문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 번역을 거쳐서인지 아주 딱 들어맞지는 않습니다만; 가장 가까운 번역은 '인간의 피냄새가 나를 미소짓게 한다'라는 거라는데 그건 그거대로 또 충격적;)

 

여러 모로 베이컨에 대해 잘 알게 되어서 만족스러운 책이었지만 두 가지 약간의 불만 사항이 있다면 예산과 컨셉의 문제겠지만 베이컨의 여러 대표작에 대해서 논의했지만 그 그림에 대해서 흑백이라도 삽화가 실려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림 하나 랩탑으로 검색하고, 책으로 읽고...이 과정을 거쳤는데 뭐 머릿 속에 더 잘 남긴 하네요(노린 건가;) 그리고 그의 먼 조상인 철학가 '프랜시스 베이컨'과 일맥상통하는 점에 대해서 모베르가 뒷편에 논문식으로 남겼는데 제가 사상가 베이컨에 대해서 아는 바가 짧아서 그런가 그리 공감가지는 않았습니다.

 

덧. 같이 빌린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은 호크니, 베이컨, 프로이트 등 20세기 중후반의 영국에 살았던 혁신적인 화가들에 대한 책입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연상의 남자들을 유혹하는 데 재능이 집중되었던 젊은 시절의 베이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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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다큐멘터리
러닝 타임: 1시간 14분
감독: Gary Hustwit
플랫폼: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유튜브, 네이버 영화(저는 언제 망할지 조마조마한 왓챠에서 봤습니다. 왓챠야 쥬그지마 ㅠㅠ)

1932년 독일 비스바덴에서 태어난 디터 람스는 2차 대전이 끝나가던 시기에 유년기를 보내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다시 재건하는 일에 자신의 꿈과 열정을 바쳤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에 사로잡힌 그는 50여년 간 ‘브라운’과 ‘비초에’에서의 작업들로 20세기 산업디자인에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이며 눈부신 족적을 남겼으며, ‘좋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그의 디자인 철학을 이야기한다.

https://youtu.be/xFKcJJ1h0K0

저는 이 분의 2022년 한국 전시회를 못 봐서 매우 아쉬웠던 사람이라 다큐멘터리를 구해 보았습니다. 참고로 이 전시회에 대한 리뷰는 현학적이기로는 지큐와 쌍벽인ㅋ 잡지 에스콰이어에서 리뷰가 있습니다.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50415

 

디터 람스 디자인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4560디자인하우스의 모든 것

디터 람스의 영혼과 ‘덕후’ 수집가의 열정이 깃든 디자인 뮤지엄, 4560디자인하우스에서 보낸 하루.

www.esquirekorea.co.kr

이 분은 2차세계대전 당시에 패전국 독일에서 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전후에 이른 취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후 간 예술학교가 그 유명한 바우하우스 출신 교수들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더니즘에 깊은 영향을 받고 이런저런 실습을 거치다가 독일의 전자제품 회사 브라운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이력을 바치면서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고 실용적인 산업디자인 걸작들을 탄생시킵니다. 물론 그는 디자인팀의 수장이었고 팀을 거쳐간 수많은 팀원들과의 협업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브라운사는 그를 스타 디자이너로서 유달리 부각시켰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포토제닉'해서요 ;ㅁ;

아니 그는 정말로 포토제닉합니다. 이미지만 놓고 보자면 젊을 때 입생로랑하고 좀 비슷한데요...

차이점은 입생로랑씨는 대놓고 저 싫어하게 생겼는데(그냥 좀 버러지 쳐다보는 듯한 눈빛이 그러함 그러나 뮤즈에게는 상냥하겠지) 디터 람스씨는 대놓고 싫어하지는 않게 생겼습니다.

 

80대가 된 지금도 존나 스타일리시한 할배심 ;ㅁ;

다큐멘터리는 현재의 디터 람스가 말하는 그 자신과 산업 디자인, 세상과 심플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브라운에서의 걸작들도 집중해서 다루고는 있지만...

(애플의 천재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는 본인이 대놓고 디터 람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현재의 본인 시점에서 전시회나 회상으로 돌아보는 것이구요, 그는 영국의 비초에 사에서 가구 디자인에 관여하면서 여전히 전진 중입니다. 걷는 속도는 떨어졌을지라도 여전히 앞을 보고 있으며, 눈은 여전히 젊은이처럼 총명하고 말투는 또렷합니다. 

하...그리고 할배 너무 잘생겼다... 역시 미청년이 나이가 들어서 미노년이 되는 것이었어... 

아참, 그리고 그의 집도 참으로 모던하고 깔끔하며 스타일리시합니다. 영화도 그 영향을 받았는지 깔끔 그 자체라 눈이 편_안.

 

아참, 이걸 보고 나서 흥미가 생겨 바우하우스 다큐도 보았는데요...(이번에는 유튜브 영화에서 단품 구매함)

음, 뭐랄까 디터 람스로 깔끔함의 극치를 봐서 그런가 좀 난삽합니다. 집중력도 떨어지구요. 하지만 유익합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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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 노르망디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로부터 

데이비드 호크니,마틴 게이퍼드 (지은이),

주은정 (옮긴이)

출판사: 시공아트

국내 출간일: 2022-01-24

원제 : Spring cannot be Cancelled

국내 정가: 25,000원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비싼 화가'(대체로 설명할 때 잘 먹히는 경구라 저는 가끔 써먹습니다)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친구이자 평전 작가, 미술 전문가인 마틴 게이퍼드와 2018년부터 2020년 넘어까지 주고받은 수많은 실제 만남, 전화, 페이스타임, 이메일, 그의 작품과 다른 화가들의 작품, 심지어는 논문까지 담은 책입니다. 실제로 둘의 대화나 이메일 내용이 직접 꽤나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이 위대한 화가(아 죄송합니다 요새 먹고살자고 영어 원문을 자주 봤더니 영어식 표현이...)의 말을 가까이서 듣는 것 같은 효과를 줍니다.

 

2018년에 호크니는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살기 시작했는데요...

(저는 가끔씩 제가 가진 짤 자랑하려고 포스팅하는 것 같습니다;ㅁ;)

여기서 노르망디는 바닷가 메인에 시골과 알콜중독이 좀 겹쳐 있군요. 제가 기억하는 노르망디는 프랑스 소설 '여자의 일생'(예쁘고 돈 많고 착하고 사랑을 믿고 줏대없는 여자가 인생ㅈ되는 이야기;;;) 배경으로 거친 바다에 잇속 빠르고 프랑스치고는 좀 춥고...암튼 에 별로였어요('여자의 일생' 자체가 암울한 얘기라서 뭐 인상이 좋을 리가;;;)

 

그런데 호크니가 말로, 글로, 그림으로 묘사하는 노르망디를 보자 그런 선입견은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모네의 지베르니, 고흐의 아를을 보고 느꼈던 것처럼 노르망디의 아름다움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저는 살면서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해 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요...(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저는 좋은 상태든 나쁜 상태든  그럭저럭 만족하고 적응하는 편이고,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라서요) 호크니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엄청난 부(...아 이게 1도 안 부럽다면 거짓말이겠지만;)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 미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80이 넘는 나이에서도 점점 그 저변을 넓혀가는 끊임없는 호기심과 지성, 그리기를 놓지 않고 조수와 기술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얻어가며 최첨단 앱을 써서 전진하는 작품 세계,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규칙적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자기 관리(너무 인간미 없으려다가 담배 안 끊는 거 보고 좀 안심했음<-;;;) 지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소중함을 잊지 않고 계속 교류하는 자세,

 

결정적으로 그가 사랑하는 그림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인간적인 관심과 애정도 계속 이어가는 마틴 게이퍼드같은 친구가 있다는 게 참 부러워졌습니다. 

 

일화에 보면요, 마틴 게이퍼드가 아내와 함께 트란실바니아를 여행하고 있을 때 호크니가 15세기 러시아 성직자이자 미수사가인 파벨 플로렌스키가 쓴 역원근법에 대한 독특한 주장의 80페이지 글을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게이퍼드는 산에서 아이폰으로 그걸 다 읽었어요(사랑이다...) 역원근법이라는 게 르네상스 때 표준으로 자리잡은 원근법과는 달리 여러 소실점과 중심을 가지는 기법인데요, 게이퍼드는 이걸 이해하고 호크니가 이 이론에 흥미를 가진 이유를 그의 지금까지 작품세계에서 읽어내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호크니는 다음 이메일에서 당연히 80페이지짜리 논문을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을 이어나갑니다(아 님 쫌...)  

 

미술에 관한 책으로도 훌륭합니다. 호크니의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공간 해체와 재조립, 큰 스크린, 여러 소실점과 다양한 터치, 찰나가 아니라 시간이 계속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작품, 영원하지 않고 계속 변하는 색상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구요. 호크니가 비단 그의 우상인 피카소와 현대-인상파 화가 뿐 아니라 르네상스, 고전파, 중세의 여러 나라를 넘나드는 그림에 깊은 감명을 받고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브뤼헐이나 카라바흐(넹 저는 그림도 좀 익스트림한 걸 좋아합니다)를 좋아한다는 걸 보고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 상승. 그리고 비단 그림에만 머물지 않고 영화, 미디어 아트, 심지어 태피스트리에서까지 영감을 받습니다.(아놔 그놈의 호쿠사이는 왜 글케들 좋아하는 거야 나도 좋아한다만;)

 

그림과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넓어지고 깊어진, 그리고 현실적이면서도 좀 부드러워진 기분입니다(응 기분만 그래;) 추천.

 

미술 관련 다음 책은 호크니와 프랜시스 베이컨을 동시에 다룬 책입니다. 베이컨이 누구냐면...

이거 그린 양반요. 제가 그랬잖아요 전 익스트림한 취향이라고 ㅋㅋㅋ(근데 나홍진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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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은이),
최석영 (옮긴이)
출판사: 마티
국내 출간일: 2022-12-12
원제 : 日本の植民地建築―帝国に築かれたネットワーク
 
목차
들어가며

0 왜 식민지 건축을 말하는가

1장 식민지 건축
1 지배기구로서의 청사
2 국책회사 만철의 건축
3 만주국 정부의 청사
4 식민지 은행

2장 지배기구의 건축 조직과 건축가
1 대만총독부의 건축 조직
2 조선총독부의 건축 조직
3 관동도독부의 건축 조직
4 만철의 건축 조직: 만철 건축을 뒷받침한 인력
5 만주국 정부의 건축 조직
6 건축가의 이동

3장 식민지 건축을 뒷받침한 재료
1 벽돌
2 시멘트
3 철

4장 식민지 건축을 뒷받침한 정보
1 건축 단체의 설립
2 건축 단체 간 교류
3 건축 잡지의 발행

5장 식민지 건축과 네트워크
1 식민지 건축의 특징
2 식민지 건축의 보편성·선진성·세계성
3 식민지 건축을 뒷받침한 네트워크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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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여진 책입니다. 오랜 기간의 현장 조사 및 문헌 조사를 근거로 집필되었으며 목적 의식도 뚜렷하고 구조도 확실합니다. 다만 거 뭐냐... 각각 식민지에서 활약한 일본인 건축가들의 시대별 취임 이임일자나 직위 직함 등은 지나치게 자세하게 나열되어 가장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목적 의식'이라고 한 부분은 작가가 앞머리에서 명확하게 다섯 가지를 적시해 놓았습니다. 그 중 좀 신기했던 것은(전 일본인에게 역사 의식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다시 묻다' 이 첫 번째 목적 의식이었습니다. 상당히 삐딱했던 저의 고개를 좀 돌려놨던 부분입니다. '지금 침략과 지배를 다시 묻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고 그 재발을 허용하지 않는 데 있다' 이 부분에서 쪼매 감동을 받았는데 이후는 또 그렇지도 않아요. 세계 열강을 본받아 동아시아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지배하고자 애쎴던 지배의 역사가 건조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나머지는 읽다가 기억에 남은 부분만 간단간단하게 남겨보겠습니다.
 
일본의 동아시아 식민지 지배 시작 순서는 대만->조선->만주 순서로 시차가 있습니다. 따라서 대만부터 겪었던 식민지 건축에서 배운 노하우와 일본 건축 전문 인력을 다음 식민지에서 알차게 써먹은 점도 있고, 그때 그때마다 서구에서 유행했던 건축 양식이 불과 몇 년만에 도입되어 대표 건물에 사용됩니다. 대만은 퀸 앤/튜더 고딕/로마네스크 등을 썼고 조선은 바로크/르네상스 양식이며 만주는 퀸 앤/르네상스/아르누보 양식 등입니다. 대개 서구 열강은 식민지에 자신들의 권위와 주체성을 밝히고자 자기 나라의 주요 양식을 썼는데 일본의 전통 양식은 신사 등에 국한되었고 그때그때 유행했던 서구 양식을 사용했어요.
 
이 점에 있어서 작가는 덤덤하게 '당시 일본의 동아시아 지배는 서구 여러 국가의 협조와 인정으로 이루어진 바, 일본의 지배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따라서 홍콩, 상하이 텐진 등 서구 국가가 지배하는 동아시아 지역에 건립된 건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자신의 지배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서양 건축 규범을 따르는 건물로 지배에 필요한 시설을 정비하는 것이 유효했다'라고 설명합니다. 아, 물론 일본의 서양 건축 역사가 일천했었고 식민지 건축 설계와 시공, 토목의 중추였던 동경제대 건축과 출신은 일본 전통 건축이 아니라 서양 건축부터 배웠다는 배경도 있습니다.
 
- 보통은 지배를 시작하자마자 거하게 총독부 건물부터 올리는 것부터 상상하는데, 대만-조선-중국 동북부 공히 기존 피지배(그니까 망한) 정부의 건물부터 임시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실제 지배를 위한 병원, 경찰서, 감옥부터 지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그래 참 실용적이다;;;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위용을 자랑하는 공식 총독부 건물은 지배 수십년 후에 지어올리기 시작했어요.
 
- 날씨와 자원 획득의 용이도 등 식민지별 배경에 따라 다르게 적용했습니다. 우리가 현대 건축에서도 흔히 보는 철근 콘크리트조와 철골 구조, 혹은 그 둘의 조합은 공통적이었지만 벽돌(그놈의 붉은 벽돌을 주구장창 썼던 이유가 뭔가 했는데 서양에서 유행했던 퀸 앤 양식을 가져온 거래요;)이나 시멘트 등등의 재료는 원료 현지 조달 가능성과 현지 생산 기지 여부에 따라 부지런히 일본-대만-조선-만주를 오갔습니다. 예를 들면 일찌감치 철 등이 풍부하고 생산기지를 일찌감치 지어놓은 조선에서 철과 시멘트 등을 만주로 실어나른다든가, 덥고 습한 대만에서 흰개미 등등으로 철근콘크리트조가 삭아올리자 보완한다든가 뭐 그런...
 
- 당시에 일본에는 주요 건축협회가 세 개가 있었는데요, 배경상 다른 건축협회처럼 건축학자가 주가 아니라 건축학자-건축실무자-건축회사가 긴밀하게 주축으로 돌아갔던 간사이건축협회의 본을 받아 대만, 조선, 만주에 각각 건축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원래도 동경제대 학벌과 식민지를 오가면서 긴밀했지만 이 건축협회로 더욱 긴밀해져서 학회지, 잡지, 컨퍼런스, 서양 건축 견문 등등을 하면서 본토를 거치지 않고 서양 건축 정보를 다이렉트로 입수하기도 했습니다. 어 참 열심히 했구나...아참 제가 열심히 읽었던 '경성의 주택지'
https://kiel97.tistory.com/entry/%EA%B2%BD%EC%84%B1%EC%9D%98-%EC%A3%BC%ED%83%9D%EC%A7%80-%EC%9D%B4%EA%B1%B4%ED%9D%AC-%ED%9A%8C%EC%9E%A5-%EC%A7%91%EC%9D%80-%EC%99%9C-%EC%9E%A5%EC%B6%A9%EB%8F%99%EC%97%90-%EC%9E%88%EC%97%88%EB%8A%94%EA%B0%80ㅇ

경성의 주택지-이건희 회장 집은 왜 장충동에 있었는가

- 제목 : 경성의 주택지-인구 폭증 시대 경성의 주택지 개발(포스팅 제목은 어그로입니다 녜;) - 정암총서 12(건축 역사 시리즈예요) - 지은이 : 이경아 - 출판사 : 도서출판 집 - 출간일 : 2019년 11월

kiel97.tistory.com

에 자주 언급되는 '조선 건축'은 당연한 거지만 관용 건물을 지으면서 활약했던 일본인 건축가들이 주축이 된 조선 건축협회 꺼였습니다.
 
- 행원 출신이라 식민지 은행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래 은행은 무조건 금고 안 뚫리게 튼튼하고 권위적으로 지어야지 ㅋ
 
- 저는 일본인 원저자의 '식민 지배로부터 배우는 역사의 교훈과 반복할 수 없다는 다짐으로 이어지는 연구'라는 목적의 진정성을 그다지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주로 읽었을 일본의 독자들의 받아들이는 자세에는 매우 의구심이 드는 것이.... 경복궁을 훼손하고 총독부 전신을 지었을 때 '만약 지금 조선이 발흥하고 일본이 쇠퇴해 궁성이 폐허가 되고, 대신 그 자리에 거대한 서양풍의 일본총독부 건물이 세워지고 그 벽담을 넘어 멀리 우러러보았던 흰 벽의 에도성이 파괴되는 모습을 말이다... 에도를 기념하는 일본 고유의 건축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한 반발을 기고했던 야나기 무네요시(모가지 다이죠부데스까)같은 사람이 많을까요, 앤초비 프린스가 총독부 건물을 폭파하기 전에 '어머 여기가 우리 땅이었을 때 서울 중앙에 위세좋게 지은 데래 참 좋은 시절이었다'라고 깃발 들면서 까르르거렸던 일본 관광객이 더 많았을까요...
 
언제나 우리는 이상을 가지고 나아가되, 대중의 현실과 인식도 감안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한중일이 단합하여 공동체를 이루는 그날을 경계한다지만 정말 쓸데없는 소리고 ㅋ 한 쪽은 과거를 지우며 애써 모른 척하고, 두 쪽은 끊임없이 되새기며 서로 척을 진 마당에 식민지 시대의 반추와 회상은 여러 모로 씁쓸한 뒷맛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본인 원저자는 조선총독부가 없어졌지만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의미가 있으며 독립기념관에서 야외 설치로 전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입니다 사실이지만... 저도 두 번인가 독립기념관의 전 총독부 기념공원을 가봤는데요...

외진 구석탱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시다시피 대접도 영 좋지 않습니다. 이것이 전 식민지가 전 지배의 아이콘을 기념하는 방식입니다.

덧. 아, 총독부가 워낙 상징적이라 그렇고 경성시청(서울도서관) 등 다른 곳 대접은 나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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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witter.com/hadess1138/status/1317395915263545344?s=20
넵 이 짤 쓰려고 후기 쓰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워낙에 뮤지컬에는 조예도 없고 관심도도 낮은 편이라 이 마스터피스에 대해서도 몇 가지 유명 넘버와 얼굴 다친 천재 작곡자가 지하에 숨어 살면서 신진 여가수한테 겁나 집착하는데 그 여가수는 늘 그렇듯이 멀쩡하고 잘생기고 키 큰 남자랑 사랑에 빠져서 파아아아아국이다.... 이런 얘기 말고는 잘 모릅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샹들리에 꽈과광도 알고 계단 이리저리 내려가고 노 저어서 유령네 집에 가는 장면도 알고 사라 브라이트만 버전도 알고 강형호 암수한상(...) 버전도 알고 아 뭐야 나 많이 알잖아;;;
 
- 부산 드림씨어터는 문현 IFC 건물 내, 아바니 호텔 있는 쪽에 있습니다. 아 맞다 그리고 건강검진센터도 겁나 크게 있는 게 서울 IFC랑 좀 비슷함 그러고 보니 카페가 지천에 널려 있는 것도...

저희는 일찍 도착해서 1층에 있는 식물원 컨셉의 넓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빵도 대따 크고 맛있어 보였습니다.

바닐라 라떼와 디카페인 콜롬비아 커피. 한 캡슐에 360원 하는 거 먹다가 이거 마시니까 아아 이것이 자본의 맛이로구나 싶더군요.

오늘 캐스팅은 팬텀 김주택-크리스틴 송은혜-라울 송원근 트리오입니다.

물론 팬텀씨는 이 얼굴로 나오지 않습니다. 겁나 특수분장을 때려넣고 나옵니다. 전 김주택씨 얼굴도 쫌 좋아해서 약간 안타깝긴 했음. 

- 고딩들이 엄청나게 단체 관람을 와서 ㄷㄷㄷ 했는데 어차피 2층이고 별로 소리가 들린다든가 한 것도 없어서 그냥 잘 보고 갔나부다 했습니다(아 저는 뮤지컬 관람 기준에 대해서는 별로 엄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을 감안해서 필라테스 자세(척추를 뽑으시구요, 머리끝을 하늘로 잡아당기세요)로 관람했습니다. 그나저나 자라나는 애들한테 이런 치정극을 보여주는 게 과연 교육적일까 생각을 했는데,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 뭐 이런 거나 봤던 자가 할 걱정은 아닙니다.

 

- 드림씨어터 부산에 간 건 처음이었는데요, 여러 모로 호평을 받았던 화장실 가는 길 꽃길은 계단투성이라 아직도 계단에 서투른 저는 ㄷㄷㄷ 하고 그냥 안 갔구요, 무대가 서울보다 좀 좁아서 스케일이 큰 서울의 모모 극장들에 비해서 스케일을 살리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팬텀이 크리스틴을 끌고 계단을 이리저리 내려가서 배 젓고 가는 장면은 스케일이 중요한데 가로 길이가 좁으니까 음...좀 그랬습니다.

 

-김주택이야 뭐 쩌렁쩌렁한 성량에 음색, 음악을 가지고 노는 폼이 대단한 클래스였습니다. 근데 제일 유명한 크리스틴과의 2중창 있잖아요, 거기서 생각보다 케미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긴 거기서 제일 처음 만난 거라고 생각하면 뭐 케미고 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고인이 된 아빠의 가스라이팅과 그간의 교감을 생각하자면 일정 케미는 느껴져야 할 것 같은데요. 후반으로 갈 수록 괜찮아졌습니다.

 

-크리스틴은 생각보다 장신이라 음? 싶었습니다(주택씨도 키가 큰 편인데 키 차이가 거의 안 나더라구요) 아참, 라울은 라울답게 키도 크고 훤칠하셨습니다. 오유의 켄('켄은 그냥 켄')이 라울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요. 근데 막판에 올가미 매 놓고 으으윽 괴로워해야하는데 그냥 음?-_-? 이게 밧줄인가? 식으로 나와서 좀 그랬음. 근데 생각해 보니까 목에 밧줄 달려서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꾸에엑하면 7세 이상 관람가인데 애들한테 안 좋을 거 같기도 하네요(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애들 교육에 치정이 좋을지는 다시 생각해 봅시다)

 

-제가 뭐 딱히 깊게 파지는 않지만 오페라를 워낙 좋아해서 극중극으로 나오는 가짜 오페라들에 대해서 본 공연 흐름보다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첫 공연에서 코끼리 나오는 거 봤을 때는 아 코끼리에 돈 쫌 쓰지; 기분이었는데 가면극 오페라할 때는 훨씬 마음에 들었음. 그리고 성악 아리아 발성까지 해야 했던 배우들에게 애도.

 

-근데 팬텀씨 태어날 때부터 기괴하게 태어나서 인간동물원 식으로 구경거리가 될 정도라고 했잖아요? 그런 것 치고는 그냥 피지컬은 당당하고 평범하게 얼굴 반쪽에 화상입고 머리빠진 남자 정도라 아니 뭘 저 정도를 돈 내고 구경하러 가(...) 이런 기분. 뭐 영화 프릭쇼에 나오는 정도는 되어야죠.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7세 이상이고 뮤지컬 주인공이 꼽추인 것도 그렇...아니 리골레토도 있고  콰지모도도 있고(...)

 

- 이 드라마는 팬텀에게 서사를 몰빵하고 크리스틴을 '마이 엔젤'로 객체화하며 라울은 그냥 바비의 켄이라서 나중에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음? 크리스틴이 이제 팬텀한테 마음이 돌아섰나?'하고 쫌 두근두근할 정도로 집착남 스토커 팬텀에게 잘못 이입하게 만드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그랬다가는 가스라이팅에 스톡홀름 증후군에 기타 등등... 근데 라울은 크리스틴이랑 잘 도망가서 잘 먹고 잘 살았으면서 나중에 할배돼서 왜 그렇게 회한에 차서 추억을 반추했대요. 

 

-저는 팬텀씨가 극장주들에게 한 급여 요구는 법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아주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쌍방이 동의해야 하는데 새 극장주들은 팬텀이 위협을 하기 전까지는 동의할 생각이 1도 없었고, 이 돈이 협박의 대가인지, 작곡료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곡료가 맞는지도 좀 애매한 게 그 작곡한 오페라를 강요한데다가 결과적으로 흥행한 거지 극장주들이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도 아니자나여... 굳이 말하자면 돈 받으면 해를 덜 끼치겠다는(그러나 크리스틴을 주연으로 안 삼는다면 해꼬지를 하겠지) 일종의 '토템 비용'인데 불법 협박으로 갈 소지가 큽니다.

 

-뭐라 투덜거린 게 많은데 이렇게 길게 감상을 썼다는 건 잘 봤다는 얘기죠.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고 특히나 외출할 일이 없던 저에게는 특히나 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팬텀씨를 지하실에 키운다는 대안에 대해서는 탄복하면서도 좀 반대하는 게, 언젠가는 사고칠 타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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