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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완벽한 아내 만들기-피그말리온 신화부터 계몽주의 교육에 이르는 여성 혐오의 연대기 (이번 책 부제도 참 거창하군요...) 

저자 : 웬디 무어
출판사 : 글항아리
장르 : 논픽션(제목은 무슨 로설처럼 생겨먹어서 하드보일드 논픽션입니다)

옛날옛날 한 옛날,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하기 직전인 18세기 중반에 젠트리 계급의 토머스 데이라는 영국남자(차후에는 제 편의를 위해 줄여서 영남이라고 하겠습니다)가 살았습니다. 이 영남은 조실부하고 모는 재혼을 해서 그 또래의 다른 영남들보다 부모의 보살핌을 덜 받은 모양입니다만 그게 앞으로 저지르는 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추정할 수는 있으나 정당화하기엔 한참 멀었습니다. 

이 영남은 공부 잘하고 유복한 젠트리가 그러듯이 좋은 대학에 갔습니다만, 거기서도 혼자만의 사색과 연구에 몰두하면서 사교와 단장을 경멸하고 소박한 생활을 좋아했습니다. 멋을 모르고 사교 언어에 능하지 않아도 대충 입혀주는 거 입고 남들 하는 것만 들어도 영국 남자 평균은 갈 텐데(언제나 그렇듯이 옆집 프랑스에 비해서 영국의 비주얼 및 에티켓 허들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소질도 없고 본인도 싫어해서 매우 안습한 수준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 영남은 매우 재산이 많고 집안도 괜찮아서 거기에 혹한 영애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가떨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고 영남이 눈이 낮냐...아니오, 이 영남은 자신의 아내감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순진한 시골 처녀일 것(아 물론 물리적 순결성은 디폴트구여;;;)
-자신과 함께 고행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체력적으로 스파르타 여인럼 강인할 것(하녀 없이 집안일을 다 해야 합니다)
-세상을 멀리한 채 검소하게 생활할 것(이 양반 하는 거 보면 한 세기 뒤의 월든 뺨칩니다)
-자신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지적이되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

이런 덕성을 중요시한다는 건 그가 속한 젠트리 계급의 아가씨들이 그런 특성을 가지지 못했다고 씹는 행동과 궤를 같이 합니다. 실제로 이 영남은 영애들이 허영에만 들뜨고 사치스럽고 지적인 면은 떨어지며 남자를 좌지우지하려 든다고 생각했거든요(이거 어디서 본 거 같지 않나요?) 김치녀에게 진저리를 내고 베트남에서 처녀 면접을 보는 한남처럼, 이 영남은 아주 다른 곳에서 신부감을 찾고자 합니다. 그런 덕성을 가진 여자가 없으면 자기가 키우면 되는 거죠. 

아...제일 중요한 게 빠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당연히 예쁜 건 기본 사양이죠. 그건 이 영남이 완벽한 아내 프로젝트를 위해 스물한살의 나이에 고아원에서 열두살, 열한살 여자애들 둘 고를 때 참하게 이쁜 애, 생기발랄하게 이쁜 애 골랐으니 이미 빼도박도 못한 진실입니다. 걔들 고를 때 뭐 구술 시험을 쳤겠어요, 덕성 시험을 쳤겠어요...걍 이쁜 애들 골라서 자기가 가르쳐서 빚어내면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나 18세기의 영국에서 온갖 인권유린과 별별 괴이한 일들이 있다쳐도 스물한살의 독신남이 10대 초반의 여자아이들 둘을 입양도 아니고 이건 잉첩(같은 시대에 지구 반대편 중국에서는 귀족 나리가 어린 나이의 여자애들을 하녀로 부리다가 첩으로 들이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으로 들이는 건데 제도적, 사회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죠. 이 어려운 일을 알탕연대...아니 젠트리간의 우정으로 해냅니다. 유부남인 친구 이름을 빌려서 그 집에 하녀견습하러 간다고 절차 다 밟아놓고 그때부터 애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주경야독을 시켰습니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나고 그 중에 생기발랄하게 이쁜 애(하필이면 지어준 이름도 루크레티아...열녀를 만들고 싶었나;;;)가 지적인 면에서 잘 못 따라온다고 떨어뜨리고 참하게 이쁜 사브리나 하나만 자신의 고독한 아내 레이스에 남겨놓게 됩니다.       

버림받은 루크레티아는 나름 한 재산 받아서 새로 견습생활을 시작하면 될 일이었지만, 사브리나는 두 명이 하던 집안일을 고스란히 떠맡으면서도 영남이 요구하는 각종 학습을 따라가야 했으며, 영남의 파트너로서 사교계에서 사교 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예쁘고 교양있는 사브리나를 사교계 사람들은 매우 좋아했지만, 모두다 알고 있으나 사브리나만 모르고 있던 사실-하녀로 키워지고 있지만 주인의 개념녀 테스트에 합격하면 마님이 될 예정으로 키워진다는 건 함구했습니다. 영남이 아무리 괴벽이 있어도 결국 영남은 자기들과 같은 계급의 사람으로 감싸줘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브리나가 자라면서 영남의 개념녀 테스트는 더 괴악해졌습니다. 인내심을 알아본다고 맨 어깨와 팔에 뜨거운 왁스를 떨어뜨리질 않나, 예고없이 발치에 총을 발사하지 않나, 수영을 못하는데 영국의 드러운 늪에 처넣질 않나, 말 공포증이 있는 애한테 말을 억지로 태우질 않나...그래도 그 중에서 제일 잔인했던 건 아주 예쁜 드레스를 사준 다음 사브리나 손수 찢고 태우게 시킨 거였습니다. 가만 있자, 동시대에 영국 해협 건너편에 사드라고 비슷한 SM플레이를 즐기던 귀족이 하나 있었을 겁니다.

이 모든 개념녀 테스트를 그러저럭 인내하면서 따라오던 사브리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면...9부 능선을 넘어 놓고 마지막 테스트에서 떨어져서 쫓겨났습니다. 영남이 입으라는 대로 옷을 안 입어서 그렇다는데, 이게 고의였는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 후에도 사브리나의 인생은 깁니다. 결혼하고, 애 둘 딸린 돈 없는 과부가 되었지만 기숙학교의 관리자 자리를 얻어서 평생 일하며 살다가 유복한 할머니로 죽었습니다.

아 영남요? 영남은 실망했지만 마침 좋은 집안에 교양있는 상속녀를 만났는데 줏대가 없는 건지 어쩐지 자기 말에 몸을 갈아 순종하는 여자라 만족하고 결혼해서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될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마누라가 자기가 바라는 이상에 못 따라온다고 계속 죄책감을 주입시켜가며 엄청 갈궈가며 살았습니다. 마누라는 그걸 또 좋다고 참아가며 따라갔으니 제 짝 지가 만났네여(...) 그리고 집 밖에서는 흑인 노예 인권 운동가였고, 미국의 독립을 지지했고, 아이들의 인성을 생각하는 베스트셀러 동화작가로 살았습니다. 이런 그의 진보적인 행보가 더욱더 그의 여성관의 빻음과 대치되어 보일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도 진보 개저 많잖습니까. 세상에는 별별 모순되는 행보의 사람들이 많지요. 찾아보면 자한당 지지하는 게이도 있을 거예요;;;

저는 이 영남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한 생태학 보고서 쯤으로 읽었습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한국의 장삼이사를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현실의 여성에 불만족하고 멸시하다 이상의 여성을 숭배하는데 돈까지 많아서 머리가 훽 돌면 저런 일을 하게 되는구나 뭐 그 정도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영남이 진지하면 진지할 수록 웃기더라구요. 물론 '피그말리온'처럼 주체적으로 엿먹이는 사이다는 없다고 불만이 있을 만도 한데요, 이건 논픽션이잖아요. 현실은 고구마와 사이다의 중간 어드메에 있기 마련입니다. 거기다 사브리나는 영남이 신부수업으로 주입한 지식과 교양을 평생 커리어로 잘 써먹었으니 나름 엿먹이긴 한 셈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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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운 떨어질 때마다 보고 힘을 얻는 가난 포르노(...) 소설이 두 권 있습니다. 하나는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고 나머지 하나는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입니다.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객관적으로는 정말 바닥의 바닥을 구르면서도 유머러스한 글을 읽으면 기분이 나아지더라구요. 전 객관적으로는 태어나면서부터 중산층이었습니다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난에서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첫 소설입니다. 저는 십대때 이 소설을 읽고 너무나 생생한 빈곤 묘사에 몸서리를 쳤죠. 그리고 조지 오웰이 식민지 공무원 자녀로 사립학교 다닌 인텔리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화자인 '나'도 인텔리 영국인으로 나옴) 이건 누구에게나 갑자기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특히 요즘 한국처럼 중산층 몰락이 급속도로 이루어질 때는.

조지 오웰과 화자의 차이라면...조지 오웰은 스스로 1928년부터 18개월 동안 밑바닥을 탐사한 거고, 화자인 '나'는 빠리에서 영어 가정교사로 일하다가 갑자기 해고당하는데 일은 안 구해지면서 몇개월만에 접시닦이로 영락합니다. 그리고 영국에 돌아가서는 돈이 안 구해지자 노숙자가 됩니다. 여기서도 이튼 출신 젠트리라는 게 뼛속 깊이 느껴지는 게...친구한테 돈 빌려달란 소리가 안 나와서 노숙을 택합니다 어이구.

다음은 소설의 주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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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생활의 발견**

그때부터 나의 가난 경험이 시작되었다. 하루 6프랑이라는 것은 실질적인 가난은 아니더라도 그 언저리 정도는 된다. 6프랑이면 1실링에 해당하는 데 방법만 알면 파리에서 하루 1실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처음에 발견하는 것은 가난의 독특한 비천함, 어쩔 수 없이 겪는 변화, 복잡스러운 째째함, 주눅들기 따위다.

이를테면 가난에 들러붙는 비밀주의를 발견한다. 어쩌다 갑자기 하루에 6프랑의 수입으로 줄어들었다. 빨랫감을 맡기던 세탁소에 발을 끊는데 그러면 세탁소 여자가 지나가는 당신을 보고 왜냐고 묻는다. 뭐라고 얼버무리면 그 여자는 다른 데에 맡긴다고 여기고 평생토록 당신과 원수가 진다. 담뱃가게 주인이 볼 때마다 왜 담배를 줄였느냐고 묻는다.

다음은 끼니 문제인데 끼니는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배고픔이 어떤 것인지를 발견한다. 빵과 마가린만을 먹고 밖에 나와 가게 유리창을 들여다본다. 낭비되듯 거대하게 쌓인 음식이 당신을 모욕한다. 그런 많은 음식을 보면 울먹거리는 자기연민이 몰아닥친다. 빵 한 덩이를 잡아채고 내달아 붙잡히기 전에 먹어치우자는 생각도 들지만 순전히 배짱이 없어서 자제한다.

가난과 뗄 수 없는 따분함을 발견한다. 아무런 일도 할 것이 없고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아무런 일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때이다. 오직 음식만이 몸을 일으키게 한다. 사람이 빵과 마가린만 먹고 일주일이 지나면 그건 더 이상 사람이랄 수 없고 그저 장기 몇 개 달린 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파리의 접시닦이 생활**

접시닦이가 현대적인 세계에서 노예들 중에 하나라는 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같다. 그의 일은 노예적이고 기술이 없다. 그는 닦 살아 있을 만큼을 보수로 받는다. 이 순간에도 파리에는 학사학위를 가지고 하루 열시간에서 열다섯 시간 접시를 닦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게으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으른 사람은 접시닦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그는 호텔이나 음식점의 노예이고 그의 노예생활은 무익하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큰 호텔과 고급 음식점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이것들은 사치를 제공한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 이것들은 사치의 값싸고 조악한 모조품을 제공할 뿐이다. 호텔과 음식점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의심할 수 없지만 그것들이 수백명의 사람들을 노예화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본질적으로 '고급'호텔은 2백명이 정말로 원하지는 않는 것들에 대하여 바가지를 쓰도록 1백명이 악마처럼 고생하는 장소이다. 만일 이러한 넌센스가 호텔과 음식점에서 사라지고, 단순한 능률을 가지고 일이 행해진다면 접시닦이는 하루 열시간에서 열다섯 시간이 아닌 여섯시간에서 여덟 시간을 일하게 될 것이다.

마르쿠스 카토(로마의 정치가)는 노예는 자지 않을 때에는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예가 하는 일이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 자체가 노예에게 좋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서는 아직도 잔존하고, 그런 정서가 산더미 같은 무익한 고역을 쌓아오고 있다.

나는 무익한 노동을 영속시키려는 이런 본능이 근본적으로는 대중에 대한 공포일 뿐이라고 믿는다. 대중은 너무 하등한 동물이어서 여가가 생기면 위험할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중은 너무 바빠서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걸인의 사회적 지위**

걸인은 왜 경멸당하는가. 나는 걸인들이 웬만큼 생활비를 벌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꼼꼼이 살펴보면 걸인의 생계비와 남부끄럽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의 생계비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걸인은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인가. 잡역부는 곡괭이를 휘두름으로써 일한다. 회계사는 숫자를 더함으로써 일한다. 걸인은 어떤 날씨에도 한데에서 서 있고 하지 정맥류와 만성기관지염 등에 걸림으로써 일한다. 이것도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직업이다. 물론 아주 무익한 직업이긴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평판 좋은 많은 직업들도 아주 무익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유형으로서도 걸인은 다른 수십가지 직업인들과 비교하여 더 나은 사람들이다. 걸인은 대부분의 특허 매약 판매 상인과 비교하여 정직하고, 일요신문 사주와 비교하여 고상하며, 집요한 할부 판매원과 비교하여 상냥하다. 간단히 말해서 걸인은 기생충이지만 상당히 무해한 기생충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정도 이상을 사회로부터 뜯어내는 일이 거의 없다.

실제로 일이 유익한가 무익한가, 생산적인가 기생적인가를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구되는 것은 그 일이 수익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뿐이다. 에너지, 능률, 사회복지사업 기타 등등 모든 현대적인 이야기에서 '돈을 벌고, 합법적으로 벌고, 많이 벌어라'하는 의미 말고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돈은 미덕의 주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 기준에서 걸인은 낙제이고 이것 때문에 그들은 경멸당한다. 구걸을 해서 일주일에 10파운드라도 벌 수 있다면 걸인은 즉각 남부끄럽지 않은 직업이 될 것이다.

사실적으로 보아 걸인은 다른 비즈니스맨처럼 일이 들어오는 대로 생활비를 버는 비즈니스맨일 뿐이다. 걸인은 대부분의 현대인들과는 달리 명예를 팔지 않는다. 다만 그는 부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직업을 선택하는 실수를 한 것뿐이다.

***부랑인에 관한 소견**

부랑인은 위험한 인물이라고 하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관념을 살펴보자. 부랑자 구호소 한 곳이 보통 하룻밤에 백 명의 부랑인을 받는데 이들을 다루는 직원이 기껏해야 경비원 세 명이다. 무장도 하지 않는 세 사람이 무법자 백 명을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유순하고도 기가 꺾인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부랑자 구호소와 부랑인의 하루 일상에 대해 이미 서술했지만 강조해 두어야 할 세가지 특별한 악폐가 있다. 첫째는 배고픔인데, 이것은 부랑인의 거의 일반적인 운명이다. 부랑자 구호소에서는 충분히 먹을 만큼 준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을 정도로 배급량을 주기 때문에 그 이외의 음식은 구걸을 함으로써 즉 법을 어김으로써 얻어야만 한다. 그 결과로 거의 모든 부랑인이 영양실조로 쇠약해져 있다.

부랑인 생활의 둘째로 큰 악폐는 여자와의 접촉이 완전히 단절된다는 것이다.

부랑인은 우선 그들과 같은 사회적 수준에 있는 여자들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도 여자들과 단절된다. 사람들은 극빈자들 사이에도 남녀 성별이 다른 곳에서처럼 똑같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상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실제로 어떤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사회가 전적으로 남자들뿐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실직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덜 영향을 미치거나 볼품 있는 여자라면 마지막 수단으로 어떤 남자에게 의탁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결과로 남자 부랑인은 영속적인 독신 생활의 운명을 맞게 된다.

왜냐하면 부랑인이 자기와 같은 수준에 있는 여자를 찾을 수 없다면 수준이 자신보다 더 높은 여자들은 비록 아주 조금만 높다 하여도 달나라만큼이나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논의할 가치가 없지만 여자가 자신보다 훨씬 더 가난한 남자에게 자신을 낮추는 일은 결코, 또는 거의 없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

따라서 부랑인은 부랑하는 순간부터 독신자이다. 그는 아주 드물게 몇 실링를 모아서 매춘부를 상대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아내나 애인 또는 어떠한 부류의 여자라도 얻을 만한 희망이 전혀 없다.

이것의 결과가 어떠할지 분명하다. 그것은 예를 들면 동성애와 가끔 벌어지는 강간 사건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결과는 자신이 아예 결혼에 적합한 대상으로 간주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남자에게서 작용하는 품격 하락이다. 성 충동은 더 고상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근본적인 충동이라고 할 수 있고 성적 굶주림은 거의 육체의 굶주림만큼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 가난의 악폐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데 있다기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람을 썩게 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성적 굶주림이 이러한 썩어가는 과정에 기여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모든 부류의 여자들과 단절된 부랑인은 스스로 절름발이나 정신병자의 등급으로 하락했다고 여긴다. 이보다 더 남자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굴욕도 없을 것이다.

부랑인 생활의 나머지 큰 악폐는 강요된 게으름이다. 필요한 것은 그를 극빈하지 않게 하는 일인데, 이것은 오직 그에게 일자리를 구해주는 것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

***에필로그**

현재로서는 가난의 언저리까지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돈에 쪼들리면서 확실히 배워둔 한두 가지는 짚어낼 수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구세군에게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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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인 의견은 가난은 암 같은 겁니다. 개인의 폭식이나 게으름, 무절제한 생활이 영향을 줄 수 있지만...대부분은 통제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벼락같이 삶을 망치고, 대물림되죠.

평생을 가난에서 떨어져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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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1997년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분분한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겠지만, 그 당시를 체험했던 한국인이라면 97년 IMF 구제금융이 수위에 올라갈 겁니다. 전 97학번이었는데 1학년과 그 이후가 현격하게 나뉘었죠. 그 전까진 공부 잘하면 취직 되겠거니에서 날고 기어도 이 낯짝으론 여자가 영남에서 멀쩡한 데 가기 힘들겠다 싶어서 자격증을 수집할 결심을 2학년 때 하게 됩니다.

거기다 금융으로 밥먹고 살았고 하니 이 영화는 제 흥미를 저격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가장 제가 끌렸던 이유는...

영화 ‘혈의 누’ 와 같이 조선이(대한민국이) 왜 쫌 진보란 것을 하려다 내부 권력자들의 아집으로 망하는가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왜 얘가 교이쿠상도 아닌데 일본식 양반계급 저격논리에 물들었냐 하실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그러한 면이 없지 않잖습니까.

걍 잡담식으로 본 사람만 알만한 얘기 풀겠습니다. 스포 들어갑니다.

1.90년대 종금사는 은행 증권사보다 연봉도 최고급인데다가 일종의 투자은행적 업무까지 안 다루는 게 없는 최고의 직장이었습니다. 안전지향적 수재들이야 은행에 갔지만 똘똘하고 야심있는 애들은 종금사에 꽤 갔죠. 빛아인씨가 종금사 과장이란 건 꽤 그럴듯합니다.

문제는 종금사 97 신입 연수장에서 신입들에게 딴 데 가지 말라며 현금봉투를 나눠주길래 인사부 연수팀인 줄 알았던 빛아인씨가 갑자기 본사 자금조달팀이나 할 만한 해외전화를 연수 버스에서 겁니다. 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지점 소속 개인금융 PB더라구요...뭐지;;; 소규모 부띠끄도 아니고 종금사면 대기업인데 말입니다.

우리 빛아인씨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영화적 허용이라고 해 둡시다.

2.실제로 한국은행이나 금융감독 당국엔 97년도 당시에 팀장급 여자가 없었습니다. 구 회사도 겨우 90년대 초반에야 중견 여직원을 뽑기 시작했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죄다 나가고...3-4년차 똘똘한 애널리스트 박진주(전 이 여배우 좋아합니다. 아우 똘망똘망해)가 가장 근접한 설정일 겁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이 영화의 카산드라가 김혜수인데요.

아...예언을 믿긴 했네요. 다만 해결책을 아무도 믿지 않았을 뿐이지. 결과로 보면 그게 그거죠.

3. 메인 빌런 조우진(근데 왜 빛아인씨가 크레딧 두번쨀 차지하는 겁니까. 전 안 봤지만 미스터 선샤인이다 뭐다 해서 요즘 상종가지 않나요)이 맡은 재정경제부 차관 역이 너무 평면적인 악악악역이지 않냐는 의견이 꽤 있던데, quasi-공노비로서 그 조직 분들을 만나본 제 의견으로는...

똑같던데요-_- 그 선민의식, 의사결정자로서의 압도적 우월감, 도덕성 따위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우위 인지, 그리고 조직에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소명 의식까지 말입니다. 그 조직 참 똑똑해요. 근데 참...(후략)

3.김혜수에게 대외비를 강요한 위정자들이 실제로 이익이 될만한 ‘우리가 남이가’들에게 국가 부도 위기 정보를 공유하고, 김혜수는 육친인 오빠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건 그래서 시사점이 있습니다. 김혜수도 나름 명문 나오고 소속이 있어서 그 위치까지 갔겠지만, 마이너라서 지킬 수 밖에 없는 지독한 결벽성이 있을 거예요.

4.빛아인씨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넘 연기가 투자하는 조태오지 않냐, “하... 돈에 미쳤지만 위악 속에 고뇌하는 나” 연기가 부담스럽단 지적도 나올 만 합니다. 근데 제가 본 386(97년에 과장 달았으면 60년대 후반생일 겁니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좀 있어서요 ㅋ 걍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봤습니다.

5.오히려 오렌지족 투자자(크레딧에 배역 이름이 ‘오렌지’라고 나와서 족터짐) 류덕환이 더 놀랍더만요. 아니 우리 한떨기 수선화같던 더콴이가 왜...연기 잘 하네...근데 왜 ㅠㅠ

6.허준호씨가 90년대엔 방황하는 터프가이 청춘으로 날렸던 분인데, 그 시대를 그렇게 살아내니 짠하더만요.

7.진지먹은 설명충 모드로 들어가자면, 한은은 대출 업무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뒷방 늙은이...아니 연구소 모드보단 검사권이 더 있을 때라 시중은행에 영향력은 있었을 겁니다.

8.이 영화를 빅 쇼트의 한국판 마이너 카피 정도로 보는 해석도 있는데, 혈의 누 1997로 보는 저는 그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애시당초 빅쇼트는 뭘 해도 이길 수 밖에 없는 글로벌 투자은행 이너서클의 머니게임이구요, 변방의 이 나라는 뭘 해도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9.97년도 기업에 대한 잣대 전가의 보도는 부채비율 200프로였구요, 은행은 BIS 8%였습니다. 양인들은 언제나 야만인들이 익숙치 않은 숫자를 들이미는 걸 좋아하죠. 다음 번엔 뭘까요? 이래봤자 또 당하겠지만 ㅋ

10.현재 씬에서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보고서를 던지는데, quasi-공노비로 너무 익숙한 양식이라 터졌습니다.

끝난 김에 한국판 위아더 월드 ‘하나 되어’ 뮤비나 보고 갑시다. 뜻하지 않은 아픔을 겪은 건 맞는데 갑남을녀가 앞만 보고 달려간 게 아픔의 원인이었을까요 ㅋ
https://youtu.be/ADct5rBI1Ng

-시간 날 때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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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제목 : 남성 과잉 사회-지워져버린 소녀들의 진실과 도래할 인류의 재앙(책 제목 한번 심각함요)
마라 비슨달 저, 박우정 역
출판사: 현암사

2013년 추석 연휴에 고향에서 잉여하던 저는(의외로 저는 설 추석 때 일을 그리 안 합니다. 노처녀 고모는 이런저런 술심부름 말고는 할 일이 별로 없어요) 서점에 갔읍니다. 갔는데 저 책이 딱 보여서 서가에서 설렁설렁 40분만에 다 읽었습니다. 이게 아시아에서 특히 심각한 인구 증가 억제->태아 성 감별->낙태->남성 비율의 폭발적 증가->이로 인한 장가 못간 '잉여남성'의 증가와 이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 분석으로 이어지는 테크를 타는 방법론을 택했습니다. 르포르타주 형식을 많이 빌려와서 쓱쓱 읽히는 편입니다.

작가의 분석은 이렇읍니다.

1.1960년대 로마 클럽 등에서 세계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공멸 가능성이 높으니 인구를 억제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옴

2.당시 인구 증가의 주 진앙은 아시아 등. 각 나라들 자체적으로도 여러 문제로 인해 인구 증가를 낮추고 싶어했음.

3.아시아 각 나라들은 가구당 자녀 목표를 정하고 각종 억제책을 혹독하게 시행함.

4.구로나 사람들은 남자아이를 갖고 싶어함. 옛날엔 남자 낳을때까지 죽어라 낳으면 땡인데 이제 못함.

5.선진국으로부터 도입한 초음파 의료기기로 태아 성감별을 통해 여자아이를 낙태함. 낳은 여자애도 죽임.

6.가족은 남자애 낳고 해피해피...하였으나 20여년 지나니 그 귀한 아들들이 장가를 못 갈 형편임을 알게 됨. 잉여남성 20% 넘게 속출.

7.개중 이미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 타이완은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신부를 수입함

8.이미 신부 수입의 부작용은 나타났으나 한국, 타이완은 그나마 인구가 적은 편. 중국, 인도가 신부수입을 본격화할 때 헬게이트 오쁭.

9.한국은 20여년 동안 자연스럽게 성비 불균형을 최근 해소했다...고 알려졌지만 현지 조사를 해본 결과 걍 애 키우기가 팍팍해서 한 자녀 이상 키우기를 포기하다 보니 남녀 안 가리고 낳는 것. 상류층의 남아 선호는 지속.

10.고로 아시아의 남아선호로 인한 인류 헬게 오쁭은 근본적 해결이 없는 한 이제 시작일 뿐임...

의미심장한 분석이 많습니다. 미국 서부 개발시대에서 보여주다시피 극 남초 지속될 경우 남성 건강이 저하되고 폭력성 과다로 인한 사회 불안이 심화됨. 근본적인 해결 없이 남자 비율만 높아질 경우 여자한테도 유리할 게 없음. '아내, 어머니, 섹스상대'로서의 여성성이 강조되고 '동반자, 지성을 지닌 주체, 사회 생활' 등은 거세됨. 자국 여성과 외국인 남성의 결합에 대한 분노, 매매춘 증가, 여성 학대 증가 등의 부작용이 심각해짐. 한국에서 여자의 사회 고위층 비율은 6%에 불과하다는 통계 나옴. 그리고 이런 현상이 심각하게 안 다뤄지는 이유가 선진국의 무지 및 모른척이라는 분석도 쩜. 전세계에서 2억의 여성이 사라지고 있으나 별로 눈에 안 띔. 실제로는 미국 여성 전체 수임. 그러나 인구 성장률 억제의 대가이므로 모른 척 하고 초음파 검사기구 지원까지 공공연하게 함. 

저는 이 책을 읽고 계속 많은 생각이 들었음. 과연 최근 '일부' 한국 인터넷 남성유저들의 여성혐오 현상과 남초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실제로 10~30대까지 남초 현상은 심함) 그리고 정말 헬게는 열릴 것일까?

최근 남녀대립현상을 보고 답답한 사람은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는 있습니다. 권함.

이게 2013년에 남긴 메모였는데요, 5년 지난 지금 회고해보자면 남녀대립의 헬게이트는...열렸습니다 ㅋㅋㅋ 그러나 저는 지금의 대립과 혼돈이 일방적인 삭제보다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첨언하자면, 이 얘기를 하면 한국 30대의 '딸 선호' 얘기가 꼭 나오는데요, 한국의 가까운 미래, 일본에서는 이미 딸 선호가 생긴지 꽤 오래됐습니다. 일본의 사회학자,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작가 우에노 치즈코 여사가 본인도 나이가 좀 드셔서 그런가, 요즘 초고령 노인 환자 돌봄노동이 화두인 '개호사회'에 푹 빠져 계시는데요, 당연한 수순이라고 합니다.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자식은 부모에게 자신보다 나은 삶을 주고 자신의 노후를 책임질 '투자재'가 될 수 없어요. 그러면 그때그때 기쁨을 주는 '소비재'로서 딸의 비교우위가 더 강해지는 거죠. 그리고 여성의 저렴...내지는 무가의 노동은 고령 부모의 돌봄노동으로 아주 적합하죠.

한국 트렌드를 하나 더 얘기하자면, 며느리 또는 딸에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게 하는 게 유행이라고 합니다. 시부모가 아프면 며느리나 딸이 전통적인 무가의 돌봄노동을 제공하는데 정부 보조금까지 챙기는 거죠.

또 덧글 올리자면, 혹시 '너 ㅁㄱ임?'이런 반응 있을까봐 미리 얘기할게요. 저는 이미 3년상 치른 없어진 그 사이트의 초기 눈팅 유저 맞습니다. 저야 뭐 수십가지 사이트를 눈팅하는 인간이죠. 그리고 그 때 워낙 상사 스트레스가 심해서 개그글이 많이 필요했어요. 그 사이트의 개그는 정말 최고였거든요. 특히 일베와 오유가 이복 형제로 나오는 근친BL물은 어우....내가 왜 그걸 저장을 안 해놨지...그렇게 게이 때문에 빨리 망할 줄 알았나 ㅠㅠ 아, ㅇㅁㄷ는 안 합니다. 거기가 닫힌 사이트인데 가입 자체를 안 했어요. 그리고 그 이후 나오는 이런저런 물의들을 볼 때마다 분노가 개그를 압도해서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2근데 올해 구 직장 상사가 엄청 심각한 말투로 ㅁㄱ과 ㅇㅁㄷ에 대해 본인이 좀 알아봤다고 맨스플레인을 시전하셨을 때 정말 얌전하게 그으래요?하고 들었습니다. 딱히 전 누군가가 제게 너 **지?하고 캐지 않는 이상 저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다만 웃었습니다. 남자에게서 여성 최신 트렌드를 여성이 강의받는 이 2018년 현실 ㅋㅋㅋ 페미니즘에 대한 제 관심은 제 나이대 미혼 여성 평균에서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아요. 응? 관심 존나 많은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나이대 여성분들은 그 화제를 입에 올리지 않을 뿐이지 마음속에 방 하나쯤은 있어요 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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