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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저자: 하인리히 뵐
출간: 1975년
국내출판: 민음사
번역: 김연수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하인리히 뵐(저는 이 사람 소설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고는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의 문제작입니다. 제목과 부제, 그리고 표지까지 아주 인상깊게 잘 빠졌죠.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꽤나 근성있게 살아온 젊고 매력적인 여자가 기레기한테 나흘만에 인격살인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스물 일곱살의 여자가 ‘짜이퉁’(독일어로 ‘신문’입니다. 꽤나 성의없는 작명인데, 누가 봐도 독일 대중 황색신문 ‘빌트’지를 빗댄 걸로 보여요. 저자부터가 서문에서 ‘빌트지와 유사하다면 불가피한 일임’하고 짚고 넘어가고 있고)지의 기자를 권총으로 살해하고 체포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여자가 왜 기자를 죽였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나흘 전으로 돌아가서 서사를 쌓아올립니다.

카타리나 블룸은 수배 중인 은행 강도(로 추정되는) 루트비히 괴텐을 숨겨주고 도망치게 한 혐의로 살인 사건 나흘 전에 체포됩니다. 루트비히 괴텐이 어떤 사람인지는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가 여러 범죄에 연루된 건 맞지만 은행 강도라는 증거는 없고, 공산당 테러 조직의 일원이란 건 억측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사당국과 언론과 대중 시야에는 카타리나 블룸밖에 안 들어오거든요.

카타리나 블룸은 불우한 어린 시절과 결혼 생활을 마치고 도시로 상경합니다. 주로 그녀가 한 일은 가정 관리와 케이터링 쪽이었어요. 유능한데다가 일 중독일 정도로 밤낮 주말 없이 여러 일을 해서 차도 사고 대출을 받아 그럴싸한 아파트도 장만했습니다. 그녀는 외모도 매력적이고 해서 접근하는 남자들은 많았지만 수녀라고 불릴 정도로 조심성이 많았습니다. 어릴 때 가정부 생활을 하면서 남자 주인이 접근하고-여주인이 해고하고 등등을 겪었는데, 거기서 기인한 철벽으로 보입니다. 자차를 장만해서 ‘드디어 태워주겠다고 추근거리는 남자들에게서 벗어났다’고 술회할 정도니까요.

그녀의 이 모든 덕성-젊음, 미모, 유능함, 경제적 독립, 그리고 성적인 면에서의 결벽은 루트비히 괴텐에게 끌려 원나잇하고 탈출시킨 사건 하나로 그녀에게 비난의 이유로 작용하게 됩니다. 황색언론 ‘짜이퉁’지에서 연일 쏟아내는 기사에 의하면 그녀는 공산당 테러 조직원의 정부로 자금줄로 집과 차를 사고(젊은 여자가 무슨 돈으로 그런 걸 사냐며 발작하는 건 어쩜 옛날이나 지금이나;;;) 방탕한 생활을 즐기며 사는 마타 하리쯤으로 묘사됩니다. 그녀의 결벽성이나 조심스러움도 냉혹함 내지 무정함으로 묘사되고, 주변인의 증언도 다 왜곡됩니다. 그녀는 이제 ‘시대사적인 인물’이 되어 ‘알 권리’의 대상이 되고, 모든 왜곡은 ‘알 권리가 있는 대중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 포장됩니다.

나흘동안 그녀는 ‘짜이퉁’지의 모든 기사를 읽고 절망합니다. 다른 신문은 비교적 온건하단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짜이퉁지만 읽어요!”) 그리고 그녀가 집에 돌아오자 온갖 종류의 색정적 비난이 담긴 우편이 괴롭힙니다(그 중에 제일 짜증났던 건 이웃 인텔리 남자가 보낸 ‘그놈한테 주고 왜 나는 안 주냐 조만간 올테니 줘라 징징징’;;; 아 일남하고 한남만 영혼의 파트너인줄 알았더니 독남도 왜 이 꼬락서니)


결정적인 타격은 짜이퉁지의 기자가 시골 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위장 취재를 무리하게 하다 어머니가 죽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러고도 기자는 카타리나 블룸에게 죽음의 이유를 덮어씌우는 기사를 냈고, 여기서 이제 더 이상 잃을 사회적 평판도 뭐도 없는 그녀는 기자 살해를 감행한 거죠.

중편소설이고 비교적 가독성 좋은 드라이한 문체라 읽기 괜찮습니다. 문제는 주인공 이름 빼놓고는 다 독일 이름치고도 혀가 많이 꼬이는 괴상한 이름들이 다 거기서 거기같아서 좀 힘들었어요. 소싯적에나 전쟁과 평화에서 일리야 일리리이치 뭐 이런 거 읽었지 이젠 좀 힘들;;

서사만큼이나 흥미있는 건 저자인 하인리히 뵐이 자신의 저작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소설’과 ‘이야기’는 화자와 청자 사이의 경험을 주고받는 소통이 가능하냐로 구분되는데 근대 이후의 소설은 이 소통의 기능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작품은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 또는 더 나가면 ‘팜플렛’이라고 하네요.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담론이지만, 이 사람이 현실과 아주 밀접한 낮은 곳에서, 현실의 이야기를 전달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40여년 뒤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소통하는 힘이 있어요.

아, 오늘의 카타리나 블룸은 기레기한테 총 들고 찾아갈 때까지 나흘도 안 걸렸을 겁니다. 인격살인은 하루면 충분하죠;;;

덧. 이 소설에서 제일 재수없는 캐릭터는 죽는 기레기가 아니라 카타리나 블룸에게 껄떡대는 인텔리 상류계층 유부남입니다. 카타리나는 자신이 불리한 오해를 받아도 그 남자를 밝히는 걸 거부했는데 그냥 ‘너무 싫어서’(“나같은 (노동계급) 여자가 그런 (상류층) 남자가 매력없다고 거부한 걸 누가 믿어주겠어요?”) 결국 카타리나와 그녀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 다 몰락해도 껄떡남은 승승장구합니다. 하이퍼리얼리즘(...)

덧2. 전 ‘빌트’ 지를 근 30년전 이원복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로 처음 접했습니다 ㅋㅋ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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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각본: 미키 데자키
나라: 미국
장르: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뒷목 블랙 코메디)

http://naver.me/G1dtzNtH
<-여기 감독 인터뷰에 엔간한 배경 얘기는 다 나와 있습니다. 전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 ‘일본 우익 학습에 유용’ 만 알고 갔어요.

보러 간 이유는...
-전 일본 우익을 싫어하는데, 상세히 조목조목 까고 싶었습니다​


대충 이런 거죠. 알아야 잘 깝니다. 물론 전 그분들이 호날두 빨았던 것처럼 일 우익을 사랑한 적도 없어요. 그래서 뜨문뜨문 싫어하는데 한번에 좀 꿰고 싶어서.

-한데 이걸 나중에 웹에서 구매해서 보려면...세상에 자극적이고 재밌는게 얼마나 많은데 끝까지 보겠어요; 저도 2분짜리 유투브 동영상이 길다고 느껴질만큼 말초신경이 쩔어서. 이런 건 역시 영화관에 셀프 감금시켜놓고 봐야죠.

-그런데 어째 이번주 목요일 이후로는 상영 스케줄이 훅 줄어들더라구요. 아니, 좌석점유율도 괜찮고 요즘 이슈랑도 잘 맞는데 좀 버텨주면 안 되겠나 싶지만 일단 예매했습니다.(사실 전 흥행예측에는 별로 재능이 없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도 설마 퀸 전성기 다음에 태어난 절므니들이 락밴드 영화 보겠어 하고 1주차에 허겁지겁 본 인간)

보고 나서 감상을 요약하자면,

-한일 갈등은 당분간 잠잠해지기 힘들겠다
-모든 논거의 2차 가공 소스를 의심하자. 논문, 기사, 연설, 인용구 캡처의 전후 맥락, 사회적 함의에 따라 충분히 왜곡되고 오도될 수 있다.
-중국 힘조(...)

뭔 얘기인지 좀 풀어서 써보겠습니다.

이 다큐는 ‘미키 데자키’, ‘나’로 지칭되는 일본계 진보 성향 미국인의 문제 인식-팩트 체크-근원적인 원인 분석-전망-제언으로 마무리짓는 상당히 괜찮은 구성입니다.

1. 문제 인식
진보 성향의 일본계 미국인인 ‘나’는 유투브 등등 웹에서 활동하는 극우 성향 일본인과 ‘일빠’ 미국인에 대해 코멘트했다가 그들에게 엄청나게 다굴당합니다. 근데 조리돌림 기간 메인 1년 동안 이 양반은 스님 수행 중이었다네요ㅋㅋ(뭔가 비범하다)

돌아온 그는 그들의 발언, 그리고 주요 이슈 중의 하나인 위안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됩니다. 아까 일빠 일본인 중에 유투버 ‘texas daddy’(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여러 모로 제가 지난번에 읽었던 미국 400년 계급사의 그분들이 떠올랐습니다)가 미국 내 소녀상에 대해서 쓰레기라고 모욕적인 언동을 업로드하고, 무려 백인이 자신을 지지해준다고 환호하는 일본 대중들에게 방일 행사도 하고 책도 내고 하는데 일본어는 하나도 못하더란 말이죠? 그 뒤에 그의 모든 발언에 영향을 미치는 일본인 매니저, 그 또 뒤에 일본인 ‘수정주의자’ 그룹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들의 주장을 인터뷰하게 됩니다.

미키 데자키가 그의 진보 성향을 감추지 않고 접근함에도 불구하고 일본 우익 그룹은 자신들의 견해를 꽤나 솔직하게 피력합니다. 아, 물론 정제된 말투죠. 그러나 그 와중에도 빤스까지 벗...아니 여성비하적, 인종차별적 천박한 표현이 툭툭 나와요. 물론 이들은 이게 옳지 못하고 천박하다는 인식도 없습니다. 이게 왜 이런가 생각해봤는데 이 사람들은 데자키가 일본계 미국인이라서 ‘뭔가 인정할만하고 서방에 우리 얘길 잘 알려줄만한’ ‘우리’ 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최소한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대할 때처럼 멀찍히 경멸하는 태도는 없습니다.(제일 웃기면서 빡쳤던 건 텍사스 할재가 데자키 대상으로 여성비하발언 매우 편하게 할 때. 할재 일빠되기 전엔 잽 잽 했을 관상임)

2.팩트 체크-20만/강제징용/성노예
그들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위안부 이슈에서 문서 증거로 인정된 건 없으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은 일관성이 결여되어 증거력이 없다고. 이 와중에 저는 일본 우익의 발작 버튼 두 개를 줏었습니다. 고노 담화(statement), 성노예.

앞의 고노 담화는 91년 위안부 최초 증언과 이어지는 일본측 진상 조사를 근거로 93년에 발표한 것으로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어느 정도 관련이 있으며, 이를 교과서 등에 성실히 명기하겠다는 지극히 정제된 담화입니다만 일본 정부는 65년 한일 수교 그리고 2015년 합의로 모든 할 일을 다 했다는 일관성을 해치는 데다 지금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게 하나도 없는 등 이행도 안 되는 거라, 고노 담화 작성했던 외무 관료 할배를 부관참시...아니 아직 살아있지 참; 다 죽어가는 할배를 수십년째 불러서 ‘그때 그 취지는 그게 아니라...’라고 발언을 시키는 등, 실질적 무효를 만들고 싶어하는 겁니다.

아, 고노 담화 배웠는데 그게 그렇게나 버튼이었나. 하긴 아예 없던 걸로 묻어버리려는 게 목적일 지도.

그럼 일본 칭 위안부, 피해자 칭 성노예 세 가지 이슈에 대해서 더 살펴 봅시다.

(1)20만명
우익 주장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 숫자 최대 350만명, 전방 50만명 빼고 300만명 중 일본 정부 지침인 군인 백명당 위안부 한명을 따르자면 위안부 3만명, 교체 생각해도 최대 5만명이다, 위안부 주장대로 20만명인데 하루 수십번씩 위안소 방문이 있었으면 일본군 한 명이 매일 여섯번씩 해댄다는 거냐(...)

정대협 등 피해자측 주장에 따르면 공식적인 기록에도 동남아 등 여러 곳에서 지침인 백명당 한명에 만족하지 못하고 민가를 점령하여 위안소를 추가 운영한 사실이 확인된다. 20만명은 당시 증언 중 실제 비율인 29.1명으로 추산한 거랩니다.

위안부 관련 호의적 활동을 하는 일본 학자에 따르면, 숫자는 일반 대중에게 한번 입력되면 고치기 어렵고, 반대편의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일본인의 성 능력과는 무관하지만 성에 대한 괴이한 열정을 생각할 때 20만명에 좀 더 무게추가 쏠리는군요.

(2)강제징용
일본 우익들이 강제징용은 없었다고 할 때 맥락은 대체로 집안에 난입하여 물리력을 행사하여 납치한 분명한 증거가 없다는 뜻입니다. 위안부들 중 상당수가 위안부와 무관한 활동에 종사할 것이라고 속아서 간 증언은 비일비재하며, 이것은 의사에 반한 강제 요건이 성립합니다.

이 ‘속임’이 더 심각한 이슈인 것이, 일본 당시 헌법과 형법에서는 여성과 미성년자의 의사에 반한 해외 유인이 범죄에 해당합니다. 일본 법이 조선과 대만 등 식민지에 성립 안 한다고 해봤자 동일 취지의 국제법에 걸립니다. 그냥 자충수.

여기에 대한 우익의 주요 공격은 당시 조선의 가부장적 분위기로 여성은 교육에서 소외되고 가족을 위해 매춘으로 빠지기 쉬운 분위기였다는 전형적인 피해자 흠집내기. 조선이 가부장적이고 여성이 열위한 존재였다고 부녀자 약취 유인이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내지 즤들도 공창제 있고 여성 인권 시궁창이었구만 어딜;

뭐...여러가지 개소리가 있어요. 한국전쟁에도 위안부가 있었다, 베트남전에서 늬들은 등등... 한국전쟁에서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기획해서 일본 제도 그대로 들어왔는데여, 정대협에서 베트남전 강간건 후원하고 기념하는데여 대답하지만...

(3)성노예
이게 두번째 발작버튼입니다. 일본 우익은 성노예란 말을 정말정말 싫어해요. 이게 프레이밍이 되어서 잘못된 편향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그 와중에 ‘왜 성노예라고 계속 그러죠? 포르노적인 흥미를 불러 일으켜서 그런가요’ 하는 자지신ㄱ...아이고, 오타. 자기신고도 합니다.

갸들 논지는 노예가 풍족한 대가도 받고, 허락받은 시내 외출도 하고, 만찬도 하고 그러는 게 어딨냐는 건데 반박측 얘기는 ‘풍족한 대가’란 주로 일본군이 주는 팁이었는데 동남아 지역의 엔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패색이 짙은데 엔화 따위) 가치가 없는 돈을 그냥 뿌린 거고...미국에서 흑인 노예한테도 일종의 여흥은 있었다, 중요한 건 노예 상태=타인의 완벽한 지배 종속이란 거죠.

위안부보다는 성노예가 훨씬 깔끔한 프레임입니다. 위안부 하면 명예남성; 시오노 나나미 할매의 희대의 빻은 소리가 생각나서 영 별로...

3.근원적인 원인 분석-누가 위안부에 집착하는가?
한일 불문하고 빻은 소리 하는 분들의 특징 중 하나는, 상대방을 향해 ‘너네는 이래서 저렇다’라고 비난하는데 사실은 그게 본인 얘기인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일본 우익은 피해자국이 위안부에 집착해서 안전과 미래를 망친다고 하는데, 그게 본인들 얘기예요.

아까 말한 고노 담화 이후 97년부터 일본은 교과서에 위안부 관련 언급을 짧게나마 했었습니다. 그런데 몇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위한 모임’(어우 한국 뉴라이트가 이름까지 따라했나봐;)이 생기고 이들의 지속적인 압력과일본 정부의 위안부 언급 교과서 반려 조치로 2012년에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일본 젊은 층은 위안부 성범죄에 대해 머릿속이 꽃밭이에요. 모르고 아무 생각 없습니다. 넷 우익은 알려나요... 그게 죄다 우익단체 자료 발이던데;

감독 코멘트로도 본인은 처음에는 미국 내 소녀상 활동이 너무 과하지 않나 싶었는데 일본에서 ‘일본 정부의 정책 사업으로’(일본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국제 공식 문서로 본인들이 작성한 표현입니다) 위안부에 대해 (각종 날조와 조작)하는 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라고 느꼈다네요.

이들의 과거 미청산과 한일 수교, 합의에 대해 미국쪽 책임도 있다는 걸 언급해서 이 미국인 감독은 일본계치고 막 나가는구나 싶었습니다;

4.전망
위안부 이슈와 난징 대학살은 2차 세계 대전...아니다 대동아전쟁ㅋ 때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라는 점에서 괘를 같이 합니다. 대동아전쟁은 침략이 아니라 열강에서 아시아를 구해주고자 하는 의롭고 무결한 전쟁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위안부 성범죄와 대학살은 꼭 없었어야 하는 겁니다.(영화에서 별도의 언급은 없었지만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 및 무역갈등의 이유로 지목되는 강제징용 이슈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 우익 수정주의 위안부 단체와 난징 단체 관련인은 같고, 결국 파 보면 일본 본토 신도와 정치 유착으로 올라갑니다. ’일본 회의’로 대표되는 그들의 목적은 헌법을 수정해서 메이지헌법, 전쟁 전으로 돌아가서 천황을 숭배하고 자위대가 공격권을 가지게 하는 거죠.

5.제언
감독은 일부 위안부 인권단체에게 인원이나 연령처럼 자극적인 상황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일본 국민에게 너네 자위대가 미국 시키는대로 전쟁 나갔다가 뭔 꼴이 나겠냐고 2차대전 당시 미 공습 영상 보여주는 강수를...

문제는 이 영화를 보는 일본인은 이미 문제 인식을 한 사람들일 거고 이 제언이 필요한 사람들은
저게 공습인지도 모를 거 같은데요;;;

어차피 저 양반들은 위안부 문제도 한국이 중국 사주를 받은 거다, 중국 망하면(그럼 일본 경제도 망하는데;) 한국은 다시 친일할 거다 등등 회로 돌리고 있는데 중국이 난징 문제로 열받으면 무척 혼란하고 재밌어지겠습니다. 어차피 양측 이해의 간극이 너무 넓어서 평화는 글렀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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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루시 아이젠버그

번역: 강혜정

국내 출간: 2019.4.8

제게 대체로 미국 역사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국으로의 독립 이후로 300년이긴 합니다. 그걸 또 영국 식민지 이주 이후부터인 400년이라고 탈탈 털어서 착즙하는게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근데 인디언들은 역사 안중에도 없냐 역시 재수없어 이렇게 귀결되곤 하죠. 이 책 고른 이유는 요즘 디지털 난독증이 좀 완화되고 있어서 800페이지짜리 양장본도 읽을 만하고, 결정적으로는,

https://twitter.com/2nd_rate/status/1104390167022821376

암울한 몇 달간 삶의 낙이 되어주셨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쓰레드 덕이 큽니다. 제가 이 분 아니었으면 카펫베거(남북 전쟁 후에 남부에 한탕 하러 온 북부 하층민들 멸칭. 집에 가진 게 카펫밖에 없어서 그거 둘러매고 남부까지 겨들어왔다는 소리죠)나 스캘러왝(북부 공화당에 협력하는 남부 하층민들 역시나 멸칭)같은 말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하여 읽고 메모겸 남깁니다.

원래 저는 이 책 한글 제목만 읽고 덥썩 고르면서 대체로 미국 동부 WASP를 중심으로 한 지배가문과 핵심계층을 중심으로 한 서사를 기대했었습니다. 빌려오고 나서 원서 제목인 'WHITE TRASH'은 그 반대-소위 '백인 쓰레기', 백인 하류 계층인 걸 보고 에이 번역이 뭐 이래 하고 투덜거렸는데 다 읽고 나니 재미는 없지만 대체로 맞는 번역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이 책은 미국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지배계층과 그에 동조하는 중산층이 바라보는 '객체로서의' 하류 계층에 대해 다룬 글이거든요. 따라서 각각의 시대에서 지배 계층의 출신과 배경, 지배관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며 어떤 의미에서는 대상인 하류 계층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400년 미국 역사에서 하류 계층은 긴 세월 동안 의도적으로 '없는 것' 취급을 받아 왔습니다. 이는 미국 역사의 특수성 및 정치공학적 이점에도 기인합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실은 이주민 중에서 청교도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신대륙에 정착한 근면하고 성실하고 우수한 인종은 계급이 없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신화에서 나태 음란 등등의 신대륙에 정반대되는 특질을 보이는 백인 하류 계층은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판자촌처럼 있으나 없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고 아주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 터, 수백년동안 그들의 외모, 행동, 주거 등등의 거슬리는 특징을 비하하는 멸칭은 수도 없이 존재해 왔습니다.(평범하긴 한데 그 중에 제 마음을 제일 두드린 건 Clay-eater ;;; 백년간의 고독에서 흙먹는 묘사를 너무 생생하게 봐서 그런가;) 그러나 이들은 나름의 이용가치가 있어서 선동되고, 이용되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자본주의 끝판왕답게 백인 하류계층의 조야함을 대중문화로 섹시하게 구현해서 팔아먹기도 해 왔구요.

연대기적으로 서술되어 있으니 장 순서대로 기억나는 거 몇개 말해봅시다.

제1장 쓰레기 치우기: 신세계의 폐기물 인간

17세기 영국에서 골칫거리는 청교도들(실제 미국 초기 이주민들 중 청교도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보다는 하류 계층의 잉여 현상이었습니다. 이들을 처리하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로 기근이나 질병 등등으로 자연사하는 게 있었고 둘째로 범죄를 저질러 사형당하는 게 있었고 셋째로 해외 전쟁에 보내버리는 게 있었고 넷째로는...해외 식민지에 이주시키는 거였어요. 식민지 경쟁이 본격화된 17세기부터 네번째 방법이 선호되었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꿈과 희망을 담아 보냅니다. 여기서도 미국-신대륙은 정복을 기다리고 있는 처녀 포카혼타스 쯤으로 묘사되었고 구대륙은 신랑으로 묘사되었죠(여기서 야무지게 배운 일본이 내선일체를 결혼으로 미화시킵니다;) 실제로는 정착에 실패해서 굶어죽을 뻔한 땅그지 백인들을 가엾게 여긴 원주민들이 먹을 것 줘서 살려 놓은 거지만 그들은 곧...(중략)

제2장 존 로크의 느림보 나라: 캐롤라이나와 조지아 정착지

존 로크의 실용주의적 철학 기저에 깔린 철저한 계급주의와 인민주의 통치철학 아래 식민지는 지역적 특성과 지방 행정가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는 늪지대 때문에 진즉 땅그지들이었고(...)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노예 노동을 쓰는 대농장주 사회였고 일찌감치 백인 하류계층은 불하받은 빈약한 땅을 담보잡히거나 팔아치워서 소작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사우스 캐롤라이나 꼴을 보고 잉글소프라는 조지아 행정가는 조지아 내에서는 노예노동을 금지하고 토지 불하에 상한선을 지정하는 등 건전한 농민 계층을 육성하려고 했습니다. 뭐 딱히 잉글소프가 하류층을 이뻐해서가 아니라 적정한 인구와 경제 기반을 갖춘 하류계층은 백인 지배계층과 흑인 노예의 완충 지대를 해 주거든요.

그러나 싸고 말 잘 듣는 노예를 부려서 부를 증식하고 싶은 농장주들의 생명의 위험을 받아 잉글소프 선생님은 도망갔고 조지아는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능가하는 노예제 대농장제가 되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월드가 된 거죠.

제3장 벤저민 프랭클린의 미국종: 중간층 인구통계

인종주의보다 더 재밌었던 건 프랭클린 뒷 얘기였습니다. 누구든 노력하면 자신처럼 신대륙의 성공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은 그 성공신화에는 그를 믿어주고 선뜻 후원해주는 상류계층 지인이 있었다거나 하는 요즘에도 흔한 얘기죠.

제4장 토머스 제퍼슨의 폐물: 특이한 계급 지형학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의 정체성을 농부라고 하긴 하지만 본업이 아니라 신사 소일거리로서의 취미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먹고 살기에 급급한 하류 계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죠.

이 양반 철학 중에서 좀 주목할 게 1/8 이론인데... 유색인종 피가 1/8까지 옅어지면 건전하고 우수한 미국 신인류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이론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쿼터 노예와 1/8 섞인 사생아를 왕성히 생산하셨고...

제5장 앤드루 잭슨의 크래커 나라: 보통 사람으로서 무단토지점유자

이제 19세기 초에 미국은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미국 서부은 미국의 ‘식민지’라고 불렸는데 잉여 하류 계층을 방출하는 면에서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무단으로 토지를 점유해서 변변찮은 농사를 이어갔습니다.

여기서 잠깐, 영국에서 넘어온 하류 계층들이 토지 불하라던가 초기 자본 등 구조적인 불평등도 있지만 일 안 하면 개죽음당하는 노예들은 차치하고 독일계 이민자들보다 훨씬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때부터 연구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농민들인 독일계에 비해 기술자 장인들인 영국인이 터프한 농지에 적응을 못했다거나 그 때부터 복지에 쩔어서 무력해졌다거나... 어쨌든 첫 단추를 잘못 꿰면서 빈곤은 대물림됩니다.

제6장 가계도와 가난한 백인 쓰레기: 나쁜 피, 잡종, 클레이이터

몇 세대가 거듭되면서 백인 하류계층은 고착화되었고 그들의 좋지 않은 특성에 대한 비난도 다양해졌습니다. 누렇게 뜬 혈색없는 흰 피부, 왜소한 몸, 바랜 머리칼 등등 신체적인 특징부터 게으름, 무기력함, 음란함 등 정신적인 특징까지 죄다 비난의 대상이었죠.

제7장 겁쟁이, 비겁자, 머드실: 계급 전쟁으로서 남북전쟁

남북전쟁에서 아까 언급했던 미국 종특인 ‘계급 지우기’와 정치공학 종특인 ‘우리와 그들 편가르기’는 꽃을 피웁니다. 북쪽 입장에서는 우리는 미국 독립의 고귀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미국종이고 남부는 구대륙의 뒤떨어진 계급주의를 고수하는 퇴물인 거죠. 남부 입장에서야 우리는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투쟁하는 거고 북부는 물질주의의 천박한 괴물인 거고.

이 이념전쟁에서 일반 병사로 내몰린 건 북쪽이나 남쪽이나 다 하류계층이었고, 전쟁이 끝나도 별다른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잊혀졌습니다. 이 계층의 초상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아치죠. 아내를 죽여서 감옥에 들어갔다가 전쟁에 끌려가서 부상을 당해서 돌아오는데, 그를 전쟁으로 내몬 남부 지도층보다는 북부인들, 여성, 흑인을 증오합니다.

이건 남부빠인 미첼 생각이고, 실제 하류 계층들은 부지런히 탈영하고 댕기는 지각이 살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전후의 북부 카펫배거나 남부 스캘러왝도 지배층의 지탄과 달리 자기 계급의 이익을 취했을 뿐이죠.

제8장 순종과 스캘러왜그: 우생학 시대의 혈통과 잡종

20세기 초가 됩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도에 넘친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벼락출세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호적에 금칠하는 거잖습니까. 얘들은 자기 선대 조상을 정복왕 윌리엄까지 갖다붙이면서 경제적 성공을 고귀한 혈통 때문이었다고 포장합니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하류 계층의 경제적 열등함은 조상들이 내려준 열등한 유전자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튀고, 당시 쓰잘데기없이 발전한 우생학과 결합해서 미래의 하류인생들을 없애고자 격리 불임조치를 시행합니다. 뭐 당시야 지체/지적장애인 불임이야 전세계 어디든 있었는데 정상 살짝 경계선, 그러니까 노둔(moron)한 사람들까지 죄다 판결로 불임시술을 했어요. 그 중엔 생후 7개월된 아기도 있었습니다.

끔찍한 시대입니다.

제9장 잊힌 남자와 가난뱅이들: 하향 이동과 대공황

역설적으로 대공황시대가 미국 400년사 중에서 계층 이동과 성공 실패에 대해 개인의 노력을 탓하지 않는 유일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대공황 후에는 다시 잊어버렸죠.

제10장 촌뜨기 숭배: 엘비스 프레슬리, 앤디 그리피스,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
제11장 레드넥 뿌리: <서바이벌 게임>, 빌리 맥주, 태미 페이
제12장 레드넥 정체성 선언: 슬러밍, 뺀질이 윌리, 세라 페일린

점점 쓰기 귀찮아져서...2차세계대전 이후는 하나로 묶습니다. 케네디 이후의 좀 인기없는 대통령; 존슨은 미국 촌뜨기, 직설적으로 말하고 거친 지방민의 특징을 가진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면에서 미국 하류계층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최초의 대통령은 빌 클린턴이에요. 하류층 출신이라는 것부터 저질 식습관, 섹소폰 취미, 성적 매력까지 하층 계급의 모든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오바마보다 더 흑인같다고...

성적 매력하니까 엘비스 프레슬리, 티나 페이, 돌리 파튼 등 너무 성적으로 노골적이라 음란해보이는 대중문화 아이콘들 특질이 다 백인 하류계층에서 보기 좋게 가공한 겁니다. 결국 팔아먹기 좋게 예쁘게 가공한 걸(돌리 파튼 명언이 ‘이렇게 싸구려같이 보이려면 얼마나 돈이 들어가는줄 아세요?’) 중상류 도락으로 남기고 하류 계층은 계속 멸시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굉장히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두꺼운 교양서치고 가독성이 상당히 좋아서도 있구요.. 선진국의 양태는 언젠가는 이곳으로 넘어올 거라고 생각해서도 있습니다. 린든 존슨 대통령 이 말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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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을 기리러 필라이트든 하이네켄이든 사러 갔는데 남은 건 칭따오밖에 없네요...하...이게 내 한계다...

사실 그 다음 전개는 관객들이 예상하다시피입니다. 이선균네가 캠핑하러 간 새(꼬아보자면 이것도 부자들의 가난체험같다고 하면 욕먹으려나요...근데 솔직히 이선균 옷이 사파리에 처음 도착한 제1세계 탐험가처럼 너무 고급진 린넨이라) 송강호네가 와서 재미지게 왁자왁자 노는 거죠. 주인 집 비었을 때 하인들이 주인행세하며 노는 건 어느 시대나 있었던 일이고 적당히만 하면 주인들도 눈감아줄 수도 있죠. 문제는 이 피고용인 1-2-3-4가 유난히 끈끈한 가족인데 이걸 고용주들은 전혀 모르고...

이들이 완전고용을 위해 밀어낸 전임 가정부(이정은)과의 갈등이 가시화됩니다.

이 전임 가정부가 굉장히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전 주인인 건축가때부터 가정부였는데(여기서도 이선균네의 고질적인 ‘중요한 일 아닌데
성가시면 편할 대로 맡기자’가 나옵니다) 가정부로서 그 큰 집의 가사 총괄과 말단 하녀의 집안 실무까지 다 하는 거 같아요(일단 그 집에 다른 하녀는 없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교양있는 말투, 크고 우아한 안경테, 모노톤의 정장에 가려져 이 집 외에 그녀의 정체성은 없어 보입니다.

알고 보면, 이선균 말대로 그 아줌마 말고도 그 일 할 사람은 쌔고 쌔서 후임으로 온 송강호 아내 장혜진도 오자마자 우아한 모노톤의 정장 차림으로 가사 일을 그럴싸하게 해냅니다. 이 사람들은 제 때 출근해서 자신들의 배경이나 출신이 드러나지 않게 완벽하게 엄폐된 복장으로 시킨 서비스를 해내면 되는 거죠. 하지만...

전임 가정부인 이정은은 지하 식품실 숨겨진
벙커에 남편을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상당히 인텔리인듯 하지만(그 벙커까지 꾸역꾸역 가지고 온 곰팡내나는 책들이 죄다 386....아니 586;;;) 예의 대왕카스테라 등등을 말아먹고 국민연금도 기대하면 안 되는 불귀의 객으로 자리잡게 된 겁니다(전해 들은 바로는 일본에 이런 분들 많다고 합니다)

대왕카스테라의 공통추억이 있으니 사이좋겠다...는 희망찬 소리는 뒤로 하고 이 두 가족은 살벌하게 싸웁니다. 송강호 가족은 반지하에서 살고 연체로 핸드폰은 끊겼지만 명의를 지울 만큼 사채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들(최우식)은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하면서도 ‘이건 제가 내년에 갈 대학을 미리 한 거니까요’하고 좀 찜찜할지언정 지금 열심히 노동을 제공해서 당당합니다. 그리고 반지하가 지하보다 반 층 높아서 긍가 송강호는 ‘넌 계획이 있냐?’ 이런 평가질을 이정은가족 상대로 시전합니다. 상대적으로 우월하단 거죠.

반면 이정은 가족은 선대로부터 내려온 정당성(전건축주가 미학에 어울리지 않는 벙커를 숨기고 싶어했단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보 비대칭성이죠), 자신들의 교양(송강호 가족이 이선균네 그 훌륭한 뷰를 양주나 먹는 데 비해 본인들은 훨씬 고상하게 즐겼다고 강변합니다. 아, 그나저나 송강호네 반지하 뷰랑 이선균 단독채 뷰가 시간차 둘 지언정 노골적으로 대비되는데 볼만합니다)이 당연히 씨도 안 먹히지요. 그래서 송강호 가족사기단 동영상으로 협박하려 합니다. 이 와중에도 두 가정의 가장은 이선균(요샛말론 알파메일요)에 대한 ‘리스펙’으로는 대동단결하네요.

이정은네는 무력으로 갇히고 캠핑에서 급 귀가한 이선균네에 송강호네도 갇히죠. 현 가정부인 장혜진 말고는 다 여기 있으면 안 되니까 숨는데 그 와중에 이선균 부부15금(이게 왜 15금이냐는 비난도 있는데 뭐 노출이 하나도 없잖습... 상당히 정직하고 꼴리는 묘사긴 한데 수요없기도 하고……)이 있고 그 동안 계속 암시를 줘 오던 송강호의 ‘냄새’에 대해 쇄기를 박아요.

송강호 가족의 냄새, 퀴퀴한 반지하 냄새에 대해 같은 차를 계속 쓰는 이선균이나 신체 접촉이 심한 이선균 아들은 감을 잡죠. 이 신분의 냄새에 대해 두 계층 다 난감하죠. 송강호 가족은 세제도 충분하고 위생에 민감한데 (아.. 오프닝 페브리즈 눙무리...) 뭘 더 어떻게 해야 내 신분을 엄폐할까 싶은 거고 이선균네는 나름 우리집의 위험요소를 사람을 내쫓는다거나해서 해결했는데(노동법과 평판을 신경씁니다) 이 거슬리는 냄새는 지하철 타는 사람한테서 난다는데 지하철 안 타봐서 모르겠어...

여튼 15금 준수 내에서 뭔가 하신 거 같은 이선균 부부는 단잠에 빠지고, 송강호 가족은 탈출하지만 송강호네 터전인 반지하촌 전체가 폭우로 떠내려갑니다. 여기서 압권인 장면이...


오프닝에서는 와이파이를 잡으려고 했던 희망의 장소, 반 층 높이 변기에 딸(박소담)이 앉아서 흘러넘치는 똥물 위에 허탈하게 담배를 피우는 겁니다. 목 위까지 오수가 집안에 들이치는 상황에서 뭘 어쩌겠어요.

‘06년 괴물에서 별로 변한 거 없는 한국적 재난의 대피소...체육관으로 가구요, 넘나 한국적으로 방문 정치인과 주민이 언쟁을 벌이는 가운데 매우 상쾌하게 조여정이 아들 생일 파티에 이 가족을 하나하나 징발시키게 됩니다.

괴물에서도 있었던 한국적 재난의 부조리는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선균네 가족은 전날 밤에 소나기가 와서 집에 왔을 뿐이고, 미세 먼지가 없어 다행일 뿐이죠. 생일 파티에 난입한 노숙자의 냄새에 이선균이 찌푸릴 뿐이었는데 그게 송강호의 빡침 포인트가 되었다고 뭐 어쩌겠어요. 이들이 인디언놀이에, 짜파구리에, 자잘한 가난놀이를 했다고 누가 버튼이 눌렸다면 그건 차라리 법정에 안 가서 다행일 겁니다. 다만 뉴스에 나오는 대로 원인모를, 파편화된 개인의 재난인 거죠.


송강호 가족은 오프닝에 얻었던 수석을 이선균네 고용되어 자신감을 얻은 다음에나 썼습니다. 그것도 자기 반지하 창 밖에 오줌싸는 취객 대상이었죠. 살아남은 아들은 그 돌을 곱게 버리고 돈을 벌어 이선균네 집을 사서 아버지를 ‘개인의 경제적 영달로’ 구원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끝까지 너무 한국적으로 개연성있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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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로 포인트가 굉장히 많은 리뷰짤로 오프닝. 저기서 맞는 얘기는 송강호가 사투리를 쓴다는 거랑 가난한 가정의 아빠라는 거 말고는 딱히 없습니다. 그런데 송강호가 사투리를 쓴다는 건 지금 6월이 되었으니 더워졌다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거고(사실 송강호가 연기에서 쓰는 건 경상도인들이 공적인 석상에서 쓰는 '진한 억양이 들어가 있는 표준어'에 가깝긴 합니다;) 가난한 가정이라는 것도 포스터만 보면 바로 보이는 거잖습니까.

재밌게 잘 봤습니다. 잘 만든 상업 영화예요. 평범한 관객 입장에서 잘 만든 상업 영화라고 판단하는 포인트는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령...

-기승전결 구조가 명확하고 깔끔하게 끝난다

-러닝 타임 내내 시계나 폰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하다(요즘 제가 유튜브 몇분짜리 영상도 끝까지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산만의 극치를 달리는 상황에서 굉장히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떡밥(아들 표현에 따르면 ‘상징’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회수가 확실하다

-설명충 없이 서사적으로 진행되지만 인물의 감정이나 인과관계를 이해하기에 충분히 친절하다(송강호가 이선균을 칼로 찌르는 행동에 대해서 선악이나 호오 판단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충동까지 서사에 대해서는 이해 가능합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면서도 극 전개에 매우 적확하게 조화롭다(단, 여기서 특별출연한 박서준은 제외.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고는 있는데 너무 못하더라고요. 특히 그 ‘씨발’은 진짜...물론 잘 사는 집에 명문대 들어간 도련님의 씨발은 어색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써프라이즈 외쿡인보다 더 못함...)

-영상에서 기능적인 스토리텔링과 미학적인 롱테이크가 잘 어우러져 있다

-억지스럽지 않은 공감과 개그 포인트가 많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봉감독의 장점입니다. 그리고 이건 관객들에게 주인공 가족에 대한 몰입과 호감을 증폭시키는 데도 일정 역할을 하구요. 송강호 가족은 사지육신 멀쩡하지만 전원 백수로 반지하 빌라에 삽니다. 하지만 전개되면서 나름 사정이 조금씩 노출됩니다. 아버지(송강호)는 대왕카스테라를 비롯한 자영업 등등을 여러번 말아먹었고, 아들(최우식)은 군대 가기 전 두번, 그 후에 두 번 대입에 실패했죠. 그리고 딸(박소담)은 예체능 입시에 여러번 물먹었구요. 그리고 실질적인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장혜진)은 피자박스 조립같은 생계형 알바라도 끊임없이 물어오고 있구요. 이들이 극초반에서 핸드폰 요금이 미납 정지된 상황에서 남의 집 와이파이 물어오기에 집착하는 이유도 금방 설명됩니다. 피자박스 알바를 물어오려면 문자나 카톡이라도 와이파이로 살려야 되니까요. (현대 한국인은 핸드폰이 없으면 자기 정체성과 생존 자체에 애로사항이 심각합니다. 전날 저녁에 금융사 핸드폰 인증을 하려다 배터리가 다 나가서 좌절을 해서 꼭 이런 게 아니라...ㅠㅠ) 일이 없어서 그렇지 실무 능력도 출중한 사람들입니다(아들딸이 대충 배우고 검색한 가락으로 과외하는 능력보다 더 감탄한 건 어머니가 그 짧은 시간 내 짜파구리를 끓여내는 능력) 그리고 그 피자박스 알바 정산을 하는 옥신각신에서 알바 자리를 따내려는 아들의 매력 발산-__-* 타임을 통해 이들이 뭔가 알바 자리라도 잡을 노오력을 하지 않으려는 건 아니다+이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기존 비슷한 계층의 알바 자리를 밀어내야 한다(이 이슈는 이선균 가정의 가정부 자리를 가지고 제대로 다시 나옵니다)+이들 가족의 외형적 호감, 즉 매력도가 상당하다 라는 여러가지 암시를 줍니다.

...그리고 그 매력은 아들이 이선균 딸의 영어가정교사자리, 딸이 이선균 아들의 미술 테라피스트 자리, 아버지가 이선균의 운전기사 자리, 어머니가 이선균 집안 가정부 자리를 면접불패로 줄줄이 꿰어차면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아니 이 정도면 송강호 집안의 이선균 집안 매력 정복기 수준 아닌가요;;;

아, 물론 외형적 호감도로 얘기하기엔 너무 불순하죠. 여러가지 계기가 더 있습니다. 명랑가족완전고용기는 ‘지인의 소개로 더 믿음직한 알음알음채용’에 기반을 둔 거고, 시발점은 아들의 친구인 박서준이 교환학생을 가는데 과외 제자인 이선균 딸을 딴 동년배;들 소개시키기엔 미덥지 않고 믿을 만한(친구의 계층을 보고 그만한 깜냥이 안 된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 건지 암튼 둘 다 오판임이 바로 드러났죠) 친구에게 소개시킨 거죠. 이 정도야 한국 영화에서 흔히 있는 ‘너, 나랑 일 좀 하자’ 정도일 건데 딸이, 아버지가, 어머니가 몇 가지 트릭만 써도 바로 줄줄이 엮여들여가는건요? 딱히 믿음갈만큼도 아닌 ‘새 고용인’들의 소개잖아요?

그건 고용주인 이선균이 귀찮아서입니다-__-;;; 와이프인 조여정은 일찍 결혼해서 젊고, 집안 실무에 경험이 없으며 천진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죠. 얼마나 나이브한지 뭐 좀 아는 척 하며 컨트롤하려고 해보려 하지만 바로 고용인들에게 ‘심플하다’라고 파악될 정도죠. 아들과 딸이 과외 교사 자리를 따 낸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교사직은 자녀의 장래를 담보하고 정보 비대칭성이 있다는 점에서 갑을이 미묘하게 오가는 자리예요), 아버지의 운전 자리 기사와 어머니의 가정부 자리는 기존 자리를 트릭으로 밀어내고 따낸 거고, 이선균이 의사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했습니다. 극중에서 여러번 나오다시피 이선균은 벤처기업 사장으로 와이프보다는 덜 나이브한 사람이죠. 그런데 왜...?

귀찮아서라니까요. 이선균 말마따나 기사나 가정부를 대체할 사람은 엄청나게 많아서 기존 사람들의 흠결을 검증할 생각은 안 하고 짜르는 의사결정은 손쉬운데, 그 공백에 따라 자신이 운전해야 하는 불편함, 와이프의 서투른 가사에 따른 불편함을 견디면서 인사검증을 계속하는 건 힘든 겁니다. 물론 본인 기업(아...그나저나 another brick이라는 그 기업명 보면서 핑크 플로이드 생각한 동년배;없나요? 없겠지...) 핵심 멤버 고용할 땐 분명히 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기업의 외주 고용처럼 ‘보잘것지만 정작 없으면 성가심. 그래도 있으면 확실해야 하는’ 그런 일이니까요.

고용주의 귀찮음에 따라 availability bias가 발생, 송강호 가족은 완전 고용을 달성하고 기사식당 돼지불백에서 소갈비로, 필라이트 맥주캔(술쟁이 입장에선 보다 뿜었습니다. 이들이 정말 알콜 쓰레기면 진로나 국산맥주 페트병을 끼고 살았을 겁니다)에서 하이네켄 맥주캔으로 소소한 노동임금 상승의 기쁨을 느끼자마자 바로 위기가 닥쳐옵니다, 아니...자초한 거라고 해야 할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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