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제목은 거창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그냥 복붙한 겁니다. 이 개정안은 조세특례제한법(어...간단히 말하자면 각종 비과세와 세금 공제, 감면 등 세금을 전략적으로 '깎아'주는 부분만 따로 법으로 묶어놔서 법 개정을 쉽게 해 놓은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시행령(법보다는 영이 건들기 쉽죠)과 세트인 농특법 시행령(조특법으로 세금을 감면받으면 기본적으로는 감면분 20%에 대해서는 농특세를 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개정해서 안 내게 해줘야 감면이 100% 완성되는 거죠) 3월 17일 국회 기재위에서 부분 수정의결 통과되었구요, 24일부터 31일까지 입법예고 상태(...지금 상태에서는 요식절차라고만 생각하심 됩니다, 거의 다 왔어요)로 4월 초에 공고되면 바로 발효 가능한 상태예요.

개인과 소속된 회사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제 감상은 '신속하게 조특령(그리고 농특령) 차원에서 건드릴 수 있는 건 건드려서 결과물을 뽑아냈다' 정도입니다. 그리고 되게 급했던 거 같아요. 원래 입법예고 파일에서 있을 수 없는 편집상 실수가 여러개 보여서;;;(아, 컨텐츠 에러가 아니라 단순 편집 실수인데 원래 기재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것; 하긴 이 속도로 보면 며칠 밤 잠도 안 잤을 거 같아서;;;)

2년간 총 세금 혜택 예상 규모는 1.9조원입니다. 이 비는 세수를 어디서 메꿀지 담당자가 또 머리터지고 있겠군요.

개정안 요약 복붙 및 코멘트.

➊ 감염병 특별재난지역(대구·경산·봉화·청도) 소재 중소기업(개인․법인사업자)에 대해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최대 15~30% 소득․법인세 감면)을 2배 수준으로 확대(‘20년 한시)

ㅇ 소기업* 60%, 중기업** 30% 소득ㆍ법인세 감면

* 업종별 매출액이 10~120억원 등, ** 업종별 매출액이 400~1,500억원 등

- 유흥주점업, 부동산임대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대부분 업종에 적용(네거티브 방식)

※ 대상자: 총 13만 명, 세수효과: △3,400억 원

->이건 뭐 누구나 예상하던 정책이라 코멘트 생략.

➋ 간이과세자* 납부면제 기준금액을 ‘20년 한시적으로
연매출 3,000만원 → 4,800만원으로 상향

* 유흥주점업, 부동산임대업 제외
※ 대상자: 총 17만 명, 세수효과: △200억원

->사업자는 기본적으로 물품 매출에 따른 부가가치세를 내야 합니다. 여기서 영세 사업자는 간이과세자로 세금 신고 및 금액을 경감시켜주는데 그게 간이과세자, 그리고 납부면제는 그 중에서도 더 영세한 사업자인데 간이과세자 납부면제 기준금액을 올려준다는 얘기는 '너네 힘드니까 엔간하면 2년간 한시적으로 부가세 신고납부를 안 하게 해주겠다'입니다.

➌ 연 매출액(부가가치세 제외) 8,000만 원 이하 일반 개인사업자*의 부가가치세 납부세액을 ’20년 말까지 간이과세자 수준**으로 경감

-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기간에 집중 지원하기 위해 적용기간을 단축(2년→1년)하되, 감면 기준금액 상향

* 간이과세제도 배제 업종(제조업, 도매업 등)도 포함(단, 유흥주점업, 부동산매매·임대업 제외)
** 간이과세 방식 : [매출액 × 업종별 부가율(5~30%) × 10%]

->2번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시면 됩니다.

➍ 임대인이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인하하는 경우 ‘20년 상반기(1~6월) 인하액의 50%를 임대인 소득세·법인세에서 세액공제

->여론을 의식, 건물주가 임대료를 인하한다고 말만 하고 꼼수로 인상하는 경우 세액공제액을 도로 토해내는 보완책을 덧붙였습니다.

➎ ‘20.3~6월 중 승용차 구매시 개별소비세 70% 한시 인하(100만원 限)

->소비 진작의 꽃은 승용차죠. 차 사세요. 전 안 사지만.

➏ ‘20.3~6월 중 체크‧신용카드 등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2배 수준(15~40% → 30~80%)으로 확대

* 공제율 변화 : (신용카드) 15→30% (체크카드, 현금영수증 등) 30→60%
(전통시장·대중교통) 40→80%

※ (참고) 근로자가 총급여의 25%를 초과하여 사용한 신용카드‧직불카드‧현금영수증 등 사용금액에 대하여 소득공제 허용

->돈 쓰세요.

➐ 기업지출 확대에 따른 소상공인 등 매출 확대 유도를 위해 기업 접대비 손금산입 한도를 ’20년 한시적으로 상향

->기업체 영업담당 여러분, 거래처랑 밥 많이 먹고 술 많이 드시고...(후략)

➑ 해외진출기업이 국내사업장 신설 외에 기존 국내 사업장을 증설하는 방식으로 국내로 이전‧복귀하는 경우에도 유턴기업 세제지원* 적용

* 소득·법인세 5년/3년간 100% + 추가 2년간 50% 세액감면

->미국 등 선진국 세제지원에도 꼭 들어가 있는 항목입니다. 한국의 해외사업장이 대부분 아시아 등 코로나 주요 피해지역에 있으니 꼭 필요한 조치죠(아, 동유럽에도 있는데 동유럽도 지금 박살 중)

어... 풀 버전은

http://www.moef.go.kr/lw/lap/detailTbPrvntcView.do?searchBbsId1=MOSFBBS_000000000055&searchNttId1=MOSF_000000000032808&menuNo=7040000

 

기획재정부

입법·행정예고

www.moef.go.kr

요기 있습니다. 의견 제출 가능한 상태니 꿈을 펼쳐보세요. 아마 급해서 안 들어줄 것 같습니다(...)

-끝-

728x90

외노자 1편

https://kiel97.tistory.com/entry/%EB%82%98%EB%8A%94-%EC%99%9C-%EC%84%9C%EC%9A%B8%EC%9D%98-%EC%99%B8%EB%85%B8%EC%9E%90-%EA%B3%B5%EB%85%B8%EB%B9%84%EA%B0%80-%EB%90%98%EC%97%88%EB%8A%94%EA%B0%80-1

 

나는 왜 서울의 외노자 공노비가 되었는가-(1)

추억팔이하면 나이든거라던데, 뭐 어쩔 수 없죠. 시간을 거슬러가서, 97년-제가 붙어놓은 서울대를 포기하고 집에서 도보 통학 가능한 지거국을 갈 때로 돌아갑니다. 사실 제 인생은 포기와 적응의 연속이었던지라..

kiel97.tistory.com

외노자 2편

https://kiel97.tistory.com/entry/%EB%82%98%EB%8A%94-%EC%99%9C-%EC%84%9C%EC%9A%B8-%EC%99%B8%EB%85%B8%EC%9E%90-%EA%B3%B5%EB%85%B8%EB%B9%84%EA%B0%80-%EB%90%98%EC%97%88%EB%8A%94%EA%B0%80-2

 

나는 왜 서울 외노자 공노비가 되었는가-(2)

제가 하고 많은 고시-유사고시-준고시 중에서 회계사를 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 전공이 경영학이거든요. 물론 그 시대의 지방 인문계 여고생이 그러하듯(개중에서도 제가 다닌 여고는 미션스쿨이라 긍가 쫌 심..

kiel97.tistory.com

심리 중인 보고서에 이런 거 저런 거 좀 고쳐줬으면 좋겠다고 피드백이 와야 하는데 안 오네요. 일단 3편이나 계속 씁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02년이 되었습니다. 2월에 전 졸업하고 백수가 되었죠. 마침 합격자수도 천 명으로 늘었고, 유예생(당시 고시는 1차 시험 합격자에게 그해, 그리고 그 다음해 두 번 응시권을 주고 과목 중에서 하나라도 과락이 발생하거나 합격인원 등수 밖이면 싹 떨어뜨리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두 번 떨어지면 리셋되어 1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은 부분합격이라 시간이 해결해주는 식이더군요)이던 저는 '이번엔 붙겠지' 기분으로 맘편했습니다. 당시에는 5백명에서 천 명이 되는 게 저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태를 인식 못 하고 있을 때니까요. 세상 잘난척 하지만 3년 넘게 공부를 하다 보니 세상 물정에 좀 어두워져 있었나 봅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당시는 2002년 월드컵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열광의 도가니판이었는데요, 그리고 제가 살던 곳은 원체 좀 정열...적이기도 했고, 전무후무한 월드컵 본선 첫번째 승리를 일궈낸 때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축구를 꽤 좋아해요. 게다가 이탈리아 팀도 잘생겼고, 스페인 팀도 잘생겼고... 카시야스, 인자기, 말디니... 추억의 그 이름들...말디니 오빠 이번에 확진판정 받으셨던데 아무쪼록 완치되시길 미남의 별 아래서 빌어봅니다.

그리고 저는 또 운명적 사랑에 빠졌습니다.

오른쪽 분요. 아니 실은 1+1...더블더블 콤보...

시간이 없고 뻘짓을 하면 안 될때마다 불타오르는 제 종특답게 저는 시험을 불과 한달 앞두고 금사빠적 사랑에 불타올랐습니다. 남들 보기엔 공통점이 없다고 하지만 대체로 저는 메이저 안에 마이너같은데 코어가 탄탄한 쪽에 불타오르는 특성이 있습니다(다다음번에는 이 공식도 좀 깨지는 편입니다) 김남일송종국이 메이저였지만 황홍도 꽤나 매니아층이 탄탄한 장르...(머나먼 황령산) 그나저나 저 분들 저땐 세상 다 산 노장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 보니까 제 막내 사촌동생보다 더 어리네여 어허허허.... 그리고 서브로 반지의 제왕 2차 창작에도 좀 빠져있었고 슬램덩크 동인계도 곁다리로...(어이구 창밖에 벚꽃이 만개했네여...)

3-4위 결정하는 터키전 치르고 딱 4일 후에 저는 한양대에서 2차 시험을 치렀습니다. 결과는 추석을 끼고 나왔구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시험 평균성적이랑 비교해 보니까 꽤나 우수해보였다는 거지만 수석 차석 아니면 등수는 의미없죠. 도대체 재무관리는 왜 그렇게 쓸데없이 잘 나왔지 그날 어쩐지 화장이 잘 먹더라니;;;(헛소리중)

회계사 업계는 입도선매 시장입니다. 합격자 발표가 추석 언저리에 나오고, 당일-다음날-그다음날쯤 소위 말하는 빅4, 삼일-안진-삼정-한영이 한꺼번에 면접을 봐서 바로 합격여부 발표를 내고, 그 다음 소위 말하는 중견이나 로컬이 면접을 봅니다. 그러나 2001년까지는 빅4에서 수습 회계사 거의 모두를 트레이닝시킬만한 여력이 있었고, 수습을 떼고 라이센스 등록을 마친 후 자기 살길 찾아서 이직하는 게 보통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카드사태 등등 IMF 아시아 외환위기 를 극복해보려던 한국 경기부양책의 헛점이 드러나면서 버블이 살짝 터졌어요. 당시에 회계법인 몇개도 직격탄을 맞았고 합격자는 두 배로 늘렸지만 빅4는 150명-200명밖에 뽑지 못했습니다. 로컬은 신규를 굳이 뽑을 능력도 의지도 없었구요, 남은 800명은 이제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1년차 수습 교육때 금융감독원 앞에서 살 길 찾아달라고 시위할 때 참여하기도 했지만 여의도 칼바람을 맞으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니...'란 기분이었습니다.

확실히 저는 3년 동안 꽤나 무디고 나이브해졌던것 같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지역 안에서 한정하자면 제 학벌은 괜찮은 편이었고, 아마도 그 지역 안에서 저는 합격자 중에서 제일 어렸을 테고, 전공자였고 학점도 제일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처참했던 다른 분들에 비하자면 영어도 잘 했고 말이죠. 합격자 발표가 나자마자 참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지역 내 회계법인 지사에 면접보러 가면서 '설마 내 자리 하나 없겠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당시 얘기에 따르자면 그 지역 내 회계법인 지사들은 '여자는 한 명은 뽑자'라고 도원결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들어갔을 땐 남자친구 있냐 결혼하면 그만둘거냐 애 키우면서 되겠냐 등등 지금 기준에서 보자면 고용노동부에 집어넣을만한 빻은 소리를 한참 해대더니(...근데 최근 업계에서 들은 얘기로는 2014년에 합격하신 분도 비슷한 면접을 봤다고...아아 서울은 강제로 후두려맞아서라도 개명하는데 어떻게 발전이 없어 발전이...) 결국 저를 떨어뜨리고 비전공자에 미모의 분을 뽑으셨다고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고시반 남자 선배분들이 실실 웃으며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물론 다 붙었죠. 그 후로 제가 몇달을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취직하려고 고생하는 걸 꽤나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걸 보면 공짜로 고생포르노 관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문제도 풀어드리고 꽤나 친절하게 대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이틀만에 전국의 입도선매는 끝났으므로 이제 회계법인 장은 끝났습니다. 글쎄요, 제가 지사 면접을 포기하고 바로 본사로 갔다면 취업에 성공했을까요? 그럴 것 같진 않습니다. 당시에 제가 존경하던 지도교수님이 "음 그래 키모씨야 너는 똑똑하고 잘 하지만 뭐랄까 조금...딱딱해서 여성스러운 점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어..."라고 빻빻을 시전하셨거든요. 아직도 그 교수님이랑은 잘 지냅니다만 일생에 도움이 안 되기로는 선배들과 비슷합니다. 

마침 9월 중순이라 일반 회사 취업은 반쯤은 날렸지만 해 봐야죠. 마침 몇개 금융공기업과 대기업 재무팀은 일반 직원 공채에 회계사 자격증을 얹어서 뽑는 상황이었습니다. 2002년은 인터넷 응시와  오프라인 지원이 기묘하게 섞여 있을 때라서울과 고향을 정신없이 오가야 했습니다. 원서쓰는 법도 잘 모르고, 토익 점수 새로 따고, 면접하는 법 익히고... 그 와중에도 또 사랑은 불타올라서 아까 그분이 잠깐 몸담던 포항 스틸러스에 직관하러 정신없이 스틸야드를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무궁화호(...) 입석으로 올라가서 채용 직전 신체검사를 받던 중, 최고혈압 80을 찍게 됩니다. 아니 이건 원래 제가 아니고 웅앵시전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든, 20대의 작고 마른 여자가 그렇게 전국을 누볐으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러던 중 2002년 연말에 부모님이 들어서 흐뭇해하실 회사 세 군데에서 비슷비슷하게 통지가 날아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에 가면서 서울로 올라가게 됩니다.(그 중 하나, 실제로 신입 연수까지 며칠 받았던 모처는 좀 웃기는 면접기라 따로 글 쓰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728x90

제가 하고 많은 고시-유사고시-준고시 중에서 회계사를 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 전공이 경영학이거든요. 물론 그 시대의 지방 인문계 여고생이 그러하듯(개중에서도 제가 다닌 여고는 미션스쿨이라 긍가 쫌 심한 편이어서 경영학-경제학 진학자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경영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제가 정말 관심있던 문학 평론 분야는 어지간히 어그로를 끌지 않으면 자력으로 먹고사는 건 고등학생이 보기에도 참 힘들어보여서 그나마 학부 졸업하고 바로 취직하기 용이한 전공을 택하게 된 거죠. 90년대 중반이면 아직 한국의 미약한 버블시기였는데...휴...그때도 비관적이었구나 나새끼...

그리고 사시나 행시 등 고시에 비해서 비교적 준비 기간도 짧고(회계사 시험도평균 수험기간이 3~4년인 시대였습니다만 당시 사시 10수는 그리 드물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선생...유아낫언론...) 손절 및 일반사회 재진입도 비교적 용이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리고 98년 12월 31일 지는 해를 보면서 비장하게 결심을 하고 99년 초에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정말 책 이름이 이렇습니다;;; 미쳤냐 다시 태어나면 돈 많은 집안에 태어나야지 뭐하러 고시같은 걸...) 따위의 합격서를 찾아보고 시장 조사를 쫌 해 보고요, 흐음 연 500명 합격자면 붙고 나서 걱정은 없겠네 판단 내리고 공부방법론과 공통추천서적을 추려내고 있을 즈음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들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XHd_MHNcd4

이분 말이죠...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의 랩과 안무 담당, 터프가이, 색깔은 블루, 숫자는 35 쓰시는 장우혁씨... 참고로 저는 저 원본 비디오테입을 꽤 괜찮은 화질로 아직도 가지고 있으며 비슷한 시리즈들을 줄줄이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야 뭐...길가다 우연히 봤는데 외모가 너무 제 취향이라서요.

당시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는 3집 활동을 마무리할 때였는데, 이수만씨의 전략 등등에 따라 본의아니게 대중과 유리된 신비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였습다만 그래도 그간 못 봤던 1~3집 영상을 챙겨보거나 각종 떡밥을 줏으려면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망하려면 같이 망하자고 비슷한 나이대의 20대 팬들과 피씨통신에서 만나(놀라운 얘기겠지만 2002년까지 피씨통신은 아직 한줌단 유저들이 살아있었습니다;) 각종 친목과 망상 음모론을 펼치느라 도끼자루가 썩어도 한참을 썩었습니다. 그리고 서브컬쳐(팬픽이라고 하죠 녜;;;)를 하루에 1메가씩(메모장 텍스트 1메가가 얼마나 양이 많은지는 나중에 보시면 압니다) 읽어제끼고 토론하느라 정신없었죠. 당시에 저는 전문리뷰어, 즉 뽐뿌질 담당이었는데 작가님들에게 이 부분은 이게 좋았고 이 부분이 사람 미치게 하고 그러니 다음 편 좀 젭알...이라는 걸 꽤나 고급지게 써내서 서로가 서로를 망치고 있었...그리고 그런 걸 꽤나 잘했습니다(먼산) 심지어 그분들 중 몇 분과는 아직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원래 고시생활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심지어 고시에 성공한 사람들조차도 아련한 눈으로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그때만큼 논 적이 없었다'라고 하지요. 고시 공부를 하다 보면 책상 위의 먼지 한 톨조차도 법인세법보다 재미있어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부와 전공 속성상, 회계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시생보다 좀 더 좋게 말하면 유연하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 때가 더 묻어서 잘 노는 면이 있지요. 아직도 기억나는 건데 93학번 한 분이 자기가 방금 법대에서 여성 사시생 한 분이 반팔티 목 부분이 얼마나 늘어졌는지 목에...

이런 걸 찝고 다니는 걸 봤다며 넌 혹시라도 그러지 말라고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시생 생활 내내 화장을 하고 치마 차림으로 차려댕기고 심지어 2차시험날에도 풀메이크업을 하고 다녔던 저는 선배님 몰골을 바라보며 (음...나한테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말입니다.

여튼, 고시생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뻘짓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뻘짓 중에서도 그다지 유해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도 서울과 지방의 고시 정보 격차는 심했던지라 선배들 중 상당수는 시험철 몇 달 전에 신림동이나 연대에서 하숙하면서 특별반을 들으러 댕겼는데 신림동은 여자도 싸다며 저에게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전해주었습니다(...ㅅㅂ 나보고 그런거 알아서 어쩌라고...;;;)

아, 저는 2차시험 두 번 빼고는 서울에 올라간 적은 없습니다. 굳이 시간도 들고 돈도 들고 뭐...대신에 강의테입이라고, 정말 카세트테이프에 서울에서 잘 나가는 교수들 회계학/세법/재무관리 이런 거 녹음한 걸 인근 고시서점에서 사서 듣고 공부를 했습니다. 한 세트에 43개 뭐 그랬는데요, 듣다보면 겁나 지루합니다. 특히 법인세법이나 재무회계 2같은 경우는 듣다보면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죠. 하지만 지거국 교수님들보다는 덜 지루했기 때문에;;;

이런 걸 도서관에서 듣고 쌀집계산기를 뚱땅거리다 보면 법대생들의 짜증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사실 회시용 쌀집계산기는 무소음에 가깝긴 합니다만 헌법 뭐 그런 거 보다보면 뭐가 짜증이 안 나겠어요;;; 그래서 00년엔 단과대 꼭대기층에 있던 회계사 고시반에 들어갔습니다. 딱히 뭐 단과대에서 잘해주는 건 없었구요, 전용 칸막이 도서실 공간과 공용 서적, 그리고 1년에 두번 정도 술자리 지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고인물들 91 92 93 94 선배들;;;(당시에는 500명으로 합격인원이 증원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번 낙방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가만...그러고 보니 89도 있었어;;;) 이곳에선 나름 입실 지원자가 많았기 때문에 입실 시험을 쳤는데요, 잘 쳐서 들어갔습니다.

쉽게쉽게 쓰는데 어려움은 좀 있었던 거...같기도 하네요. 일단 제 학과 친구들은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각종 모임이나 학과수업이 분리되는 것에 대하여 양해도 구하고,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마음도 써야 하구요... 그나마 수험 생활의 고충을 나눌 수 있는 고시반 선배들은 저를 동료로 봐 주지 않았습니다(아니 뭘 그렇게 풀어헤친 것도 아닌데 가슴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면 어쩝니까. 그러니까 이때까지 사회 생활도 못하지) 혹시나 시험이 안 될 경우에 대비해서 전공은 계속 경영학으로 가져가면서 수강도 경영학 위주로 하고, 회계학은 부전공으로 했기 때문에 학과와 본체 밸런스 잡기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학점은 여전히 매우 좋았습니다. 뭐, 그런 거라도 잘 해야죠.

-다음 편에서 계속-

728x90

추억팔이하면 나이든거라던데, 뭐 어쩔 수 없죠.

시간을 거슬러가서, 97년-제가 붙어놓은 서울대를 포기하고 집에서 도보 통학 가능한 지거국을 갈 때로 돌아갑니다. 사실 제 인생은 포기와 적응의 연속이었던지라 엔간한 건 별로 안 아쉬워하는데 서울대는 정말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전 제가 봐도 좀 뻣뻣합니다. 그래도 사회 물 좀 먹었다고 억지웃음도 지으면서 유연하게 굴 때도 있긴 한데, 그것도 디폴트가 뻣뻣한 가운데 나온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뻣뻣한 여자를 설명할 때 '쟤 서울대 나와서 그래'라고 하면 설명이 쉬워지는 구석이 있죠. 그리고 제가 그 학벌을 입고 있었으면 공노비가 된 후, 그리고 지금까지 숱한 '존재 의미 증명'을 위해 했던 자격증 수집이 좀 줄었을지도 모릅니다.

왜 포기했냐, 제가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 역차별의 시대에 무슨 아들과 딸스러운 얘기냐...라고 하실 수 있겠는데 즤 집은 남들 보기엔 중산층 안에서 약간 윗길로 보일 수도 있겠는데 가족 구성원 입장에서는 정말 실속없었습니다. 어릴 때는 정말 집이 금방이라도 망하는 줄 알았어요. 아부지는 머리는 좋으신데 실생활쪽은 약해서 재테크에는 재능도 없고, 개룡남답게 줄줄이 딸린 동생들에 부모 건사도 하셔야했고, 빌려주고 못 받은 돈도 많고(...) 그리고 이건 겪어본 분들만 아는 건데, 집에 중증 장애아가 있으면 돈이 아주 많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를 돈 많이 드는 유학생활을 시킬 생각도, 서울로 '내돌릴'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습니다(아부지께서는 갱북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고장 출신답게 여자팔자 개팔자-여자는 내돌리면 깨진다 등등의 신조가 있었습니다-아니 지금도 있으시지 참...)

그래서 뭐, 학교는 공짜로 다니고 한 학기에 100만원씩 얹어 받긴 했습니다. 당시에 아주 훌륭한 여사님이 기부하신 장학금이 있었거든요. 그걸로 97년 여름에 호주 한달 어학연수도 다른 장학생 애들이랑 갔다왔어요. 90년대 한국식 버블의 막차를 탄 셈이죠.(여담인데 멜버른은 재미없고 음식도 맛없지만 시드니에 드글드글한 약쟁이는 없습니다) 그리고 97년 겨울에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98년 2학기를 끝내고 골똘히 생각이란 걸 해보게 됩니다. 경제가 망이라 졸업하는 예비역 92학번들과 현역 95학번들이 일자리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꼬라지를 겪고 있는 게 보이더라구요. 저는 가정사 등등으로 인해 좀 비관적이고 현실적인 편입니다. 그리고 예비역 92학번들에게는 쥐꼬리만큼이라도 돌아가는 입사 원서가 95학번 여자 선배들에게는 전혀 돌아가지 않는 것도 당연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지역 경제는 서울보다 더 열악해서 그나마 향토 기반으로 하고 있던 회사가 줄도산을 하는 꼴도 보였습니다.

저는, 음...학점이 좋죠. 아주 좋습니다. 근데 그건 이 시대에 별로 도움이 안 되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뽑아갈 만큼 예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2년 뒤에 제 자리는 학원 강사와 방문 학습지 교사(...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외엔 없어 보였습니다.(실제로 2001년~2002년에 졸업한 제 여자동기들 중에서 특출나게 예쁜 한 명만 롯데에 취직하고 나머지는 죄다 저 테크 아니면 공무원 준비로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비정규직(...이라는 용어가 처음 생기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청소 경비용역까지 죄다 정규직이었어요)에서 몇년 돈벌다가 그나마 어릴 때 20대 후반쯤 해서 어디 신실한 형제님과 결혼으로 퇴직하고 가정을 꾸릴 제 모습도요.

형제님과 결혼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98년 12월에 결심했습니다. 회계사 시험 공부를 하자.

-다음 편에서 계속-

728x90

이제 알바도 대략 일주일~열흘이 남았습니다. 휴 힘내자 나새끼...

며칠 전에 저는 부모님의 요구로 非 스마트 tv와 스마트폰을 연결해서 영상을 미러링하는 케이블선을 구입, 이에 대해 리뷰한 바가 있습니다. https://kiel97.tistory.com/entry/%EC%95%84%EC%9D%B4%ED%8F%B0-tv-%EB%AF%B8%EB%9F%AC%EB%A7%81-MHL-%EC%BC%80%EC%9D%B4%EB%B8%94-%EC%96%BC%EB%A6%AC%EB%B4%87-S2000-%EB%A6%AC%EB%B7%B0-%EC%B6%94%EC%B2%9C

 

아이폰-tv 미러링 MHL 케이블 얼리봇 S2000 리뷰-추천

https://shoppinghow.kakao.com/search/mhl%20%EC%BC%80%EC%9D%B4%EB%B8%94%20%EB%AF%B8%EB%9F%AC%EB%A7%81%20s2000/&docid:P5093561496&srchhow:Cexpo 대한민국 최저가 가격비교 쇼핑! 쇼핑하우 by kakaocommerce..

kiel97.tistory.com

사실 부모님이 보고 싶은 영상이란, 온라인 예배 스트리밍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동참해야 하죠. 딸년이 요즘 월화수목금금금이든 전날에 잠을 못자서 헤롱헤롱하든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한지 대충 3주쯤 된 거 같은데요, 여기서 요구조건이 좀 더 추가되었습니다. 즤 가족이 다니는 지역교회에서 zoom 어플을 이용, 이 예배의 절반 남짓은 영상 회의 방식으로 지역 신자들끼리 소통하는 시간을 갖자는 겁니다. 음 뭐...좋아요 좋아... 저는 사실 '안 보니 좀 궁금하네?' 정도고 그리 절실하게 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부모님 마음은 그게 아닌 거 같고 말입니다. 여튼 zoom 어플을 제 핸드폰에도 깔았습니다.(참고로 즤 아부지는 동년배들 중에서 개명하신 편이라 zoom 어플을 이미 사용할 줄 아십니다. 다만 그걸 일반 티비에 연결해서 크게 보는 변칙은 좀 어려워하시는 편)

오늘 아침에 부모님 댁으로 갔어요. 이미 즤 부모님 스마트폰으로 예배 시작하기 전에 신자들끼리 zoom 어플을 통해 소통의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거 저도 깔아놨는데 티비로 크게 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건 좋다고 하십니다. 근데 연결해 보니 zoom 어플은 과거 하두리; 내지는 아프리카 초기(...네 저는 인터넷 고인물;;;)가 생각나는 매우 구린 화질이었습니다. 좋게 생각해 보자면 어떤 면에서는 어떤 기종과 연결 속도에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적합한 저화질... 아까도 말했다시피 전반부는 서울의 본점;을 영상을 그대로 스트리밍하는 거잖아요? 근데 zoom 어플이 아니라 스트리밍을 하면 티비로 보기 훨씬 화질이 좋은데요?(하두리와 hd화질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zoom을 나와서 스트리밍에 연결을 했습니다. 부모님, 특히 아부지 얼굴이 확연히 어두워지십니다.

...이미 좀 역정이 올라온 상태에서 아부지의 멘트는 '저거(스트리밍) 못 쓰겠다' 하십니다. 기도를 제 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티비 무시하시고 본인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와서 다시 zoom어플로 들어와서 보시려고 하는데 사람이 많이 접속해서 긍가 오류가 나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저는 저대로 과로와 스트레스에 찌들려서 좋은 마음 먹고 효도차 아침에 여기까지 곱게 차려입고(...영상 예배지만 곱게 의관을 정제해야 합니다 녜...;;;) 와서 선의로 좋은 화질로 보여드리려고 한 건데 제가 역정을 들을 일입니까. 잠깐 빡쳤다가 머릿속에 바로 드는 생각.

내가 해드리고 싶은 일을 해드리는 게 아니라 이 분들이 원하는 걸 해드려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똑같은 영상을 보는 그 한 시간 남짓동안 기왕이면 좋은 화질의 티비로 편하게 보시는 게 낫지만, 부모님들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같은 지역 교인들도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보고 있는 그 zoom이라는 동일한 플랫폼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 구린-_- 화질로 똑같은 타이밍에(zoom은 스트리밍보다 렉이 좀 걸려서 몇초 늦더군요) 보는, 하나라는 경험을 하고 싶으신 겁니다. 그게 그분들이 보기 편한 큰 티비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스마트폰의 좁은 화면으로 봐도 크게 문제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순순히 제 스마트폰을 바로 조작, 스트리밍을 나와서 zoom에 접속해서 큰 화면 tv에 그 하두리-_-화질을 띄워서 한 시간은 중앙방송을, 남은 한 시간은 지방방송, 영상회의로 온전히 만족하실 수 있게 해 드렸습니다. 훨씬 좋아하시더군요.

오늘 오전의 교훈

-내 의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대로 해주자

-나는 신심이 그다지 없구나(그럴 줄 알았다)

-덕후들이나 고화질 좋아하지.

-이시국에 zoom은 돈벌겠다. 상장했는지 찾아보자.

-엔간하면 부모님들 좋아하는 대로 맞춰드리고 제일 원하는 신실한 신자와의 결혼은 피할 여력을 벌자.

-그리고 엔간하면 다 큰 부모자식은 따로 살자.

-끝-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