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고 많은 고시-유사고시-준고시 중에서 회계사를 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 전공이 경영학이거든요. 물론 그 시대의 지방 인문계 여고생이 그러하듯(개중에서도 제가 다닌 여고는 미션스쿨이라 긍가 쫌 심한 편이어서 경영학-경제학 진학자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경영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제가 정말 관심있던 문학 평론 분야는 어지간히 어그로를 끌지 않으면 자력으로 먹고사는 건 고등학생이 보기에도 참 힘들어보여서 그나마 학부 졸업하고 바로 취직하기 용이한 전공을 택하게 된 거죠. 90년대 중반이면 아직 한국의 미약한 버블시기였는데...휴...그때도 비관적이었구나 나새끼...
그리고 사시나 행시 등 고시에 비해서 비교적 준비 기간도 짧고(회계사 시험도평균 수험기간이 3~4년인 시대였습니다만 당시 사시 10수는 그리 드물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선생...유아낫언론...) 손절 및 일반사회 재진입도 비교적 용이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리고 98년 12월 31일 지는 해를 보면서 비장하게 결심을 하고 99년 초에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정말 책 이름이 이렇습니다;;; 미쳤냐 다시 태어나면 돈 많은 집안에 태어나야지 뭐하러 고시같은 걸...) 따위의 합격서를 찾아보고 시장 조사를 쫌 해 보고요, 흐음 연 500명 합격자면 붙고 나서 걱정은 없겠네 판단 내리고 공부방법론과 공통추천서적을 추려내고 있을 즈음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들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XHd_MHNcd4
이분 말이죠...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의 랩과 안무 담당, 터프가이, 색깔은 블루, 숫자는 35 쓰시는 장우혁씨... 참고로 저는 저 원본 비디오테입을 꽤 괜찮은 화질로 아직도 가지고 있으며 비슷한 시리즈들을 줄줄이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야 뭐...길가다 우연히 봤는데 외모가 너무 제 취향이라서요.
당시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는 3집 활동을 마무리할 때였는데, 이수만씨의 전략 등등에 따라 본의아니게 대중과 유리된 신비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였습다만 그래도 그간 못 봤던 1~3집 영상을 챙겨보거나 각종 떡밥을 줏으려면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망하려면 같이 망하자고 비슷한 나이대의 20대 팬들과 피씨통신에서 만나(놀라운 얘기겠지만 2002년까지 피씨통신은 아직 한줌단 유저들이 살아있었습니다;) 각종 친목과 망상 음모론을 펼치느라 도끼자루가 썩어도 한참을 썩었습니다. 그리고 서브컬쳐(팬픽이라고 하죠 녜;;;)를 하루에 1메가씩(메모장 텍스트 1메가가 얼마나 양이 많은지는 나중에 보시면 압니다) 읽어제끼고 토론하느라 정신없었죠. 당시에 저는 전문리뷰어, 즉 뽐뿌질 담당이었는데 작가님들에게 이 부분은 이게 좋았고 이 부분이 사람 미치게 하고 그러니 다음 편 좀 젭알...이라는 걸 꽤나 고급지게 써내서 서로가 서로를 망치고 있었...그리고 그런 걸 꽤나 잘했습니다(먼산) 심지어 그분들 중 몇 분과는 아직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원래 고시생활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심지어 고시에 성공한 사람들조차도 아련한 눈으로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그때만큼 논 적이 없었다'라고 하지요. 고시 공부를 하다 보면 책상 위의 먼지 한 톨조차도 법인세법보다 재미있어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부와 전공 속성상, 회계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시생보다 좀 더 좋게 말하면 유연하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 때가 더 묻어서 잘 노는 면이 있지요. 아직도 기억나는 건데 93학번 한 분이 자기가 방금 법대에서 여성 사시생 한 분이 반팔티 목 부분이 얼마나 늘어졌는지 목에...
이런 걸 찝고 다니는 걸 봤다며 넌 혹시라도 그러지 말라고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시생 생활 내내 화장을 하고 치마 차림으로 차려댕기고 심지어 2차시험날에도 풀메이크업을 하고 다녔던 저는 선배님 몰골을 바라보며 (음...나한테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말입니다.
여튼, 고시생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뻘짓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뻘짓 중에서도 그다지 유해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도 서울과 지방의 고시 정보 격차는 심했던지라 선배들 중 상당수는 시험철 몇 달 전에 신림동이나 연대에서 하숙하면서 특별반을 들으러 댕겼는데 신림동은 여자도 싸다며 저에게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전해주었습니다(...ㅅㅂ 나보고 그런거 알아서 어쩌라고...;;;)
아, 저는 2차시험 두 번 빼고는 서울에 올라간 적은 없습니다. 굳이 시간도 들고 돈도 들고 뭐...대신에 강의테입이라고, 정말 카세트테이프에 서울에서 잘 나가는 교수들 회계학/세법/재무관리 이런 거 녹음한 걸 인근 고시서점에서 사서 듣고 공부를 했습니다. 한 세트에 43개 뭐 그랬는데요, 듣다보면 겁나 지루합니다. 특히 법인세법이나 재무회계 2같은 경우는 듣다보면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죠. 하지만 지거국 교수님들보다는 덜 지루했기 때문에;;;
이런 걸 도서관에서 듣고 쌀집계산기를 뚱땅거리다 보면 법대생들의 짜증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사실 회시용 쌀집계산기는 무소음에 가깝긴 합니다만 헌법 뭐 그런 거 보다보면 뭐가 짜증이 안 나겠어요;;; 그래서 00년엔 단과대 꼭대기층에 있던 회계사 고시반에 들어갔습니다. 딱히 뭐 단과대에서 잘해주는 건 없었구요, 전용 칸막이 도서실 공간과 공용 서적, 그리고 1년에 두번 정도 술자리 지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고인물들 91 92 93 94 선배들;;;(당시에는 500명으로 합격인원이 증원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번 낙방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가만...그러고 보니 89도 있었어;;;) 이곳에선 나름 입실 지원자가 많았기 때문에 입실 시험을 쳤는데요, 잘 쳐서 들어갔습니다.
쉽게쉽게 쓰는데 어려움은 좀 있었던 거...같기도 하네요. 일단 제 학과 친구들은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각종 모임이나 학과수업이 분리되는 것에 대하여 양해도 구하고,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마음도 써야 하구요... 그나마 수험 생활의 고충을 나눌 수 있는 고시반 선배들은 저를 동료로 봐 주지 않았습니다(아니 뭘 그렇게 풀어헤친 것도 아닌데 가슴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면 어쩝니까. 그러니까 이때까지 사회 생활도 못하지) 혹시나 시험이 안 될 경우에 대비해서 전공은 계속 경영학으로 가져가면서 수강도 경영학 위주로 하고, 회계학은 부전공으로 했기 때문에 학과와 본체 밸런스 잡기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학점은 여전히 매우 좋았습니다. 뭐, 그런 거라도 잘 해야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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