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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에서 두 번째 총서 '창극의 변화와 도약'을 얼마 전에 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무료 다운 가능. 

https://www.ntok.go.kr/kr/Museum/Archive/ResearchBook

 

공연예술박물관 - 조사·연구 > 연구총서

 

www.ntok.go.kr

다 읽었으니 감상문을 쓰겠읍니다. 저는 불과 7개월 전 '베니스의 상인들'로 창극에 입문한 아가-_-로서 영상 포함 감상 작품이 열 손가락 미만이지만 이럴 때가 용감한 법이죠.
일단 두괄식 구성으로 시작해 봅니다.

이 도서는 창극 전문가들이 창극과 대표 단체 국립창극단에 대해 조망한 논문을 엮어 만들었습니다. 역사 격인 총론과 창극의 각 요소인 각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론에는 연출/작창/해외작품/영상/배우 등에 대해 다뤘습니다. 245페이지라 버거우면 관심분야만 골라서 먼저 읽어도 되며 요점만 파악하려면 각 논문의 요약편을 읽어도 얼개를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넵 저는 꼼수에 강합니다)

각론에서 연출은 창극의 역사와 관점, 지향점이 보이고 작창에서는 음악 구성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외 작품은 창극의 현대화와 시대 정신에 대한 고민이 보이고 영상은 기대 안 했는데 매우 독특한 소재 선정으로 현대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 그리고 배우는 주조역의 인물론 등이 나옵니다. 대체로 구성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살짝 일관성에 대해서 아쉬웠던 점은(이건 편집자의 몫)

1. 최초의 창극이 1892년 '춘향전'인지 1908년 '은세계'인지 총론 1.2에서 갈린다는 점(저는 '춘향전'이 최초의 창극이고 '은세계'가 창극의 얼개를 갖춘 최초의 창작 창극이라는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2. 창극에 대해서 광복 이후에는 1962년 창단된 중심 단체인 국립창극단 위주로 서술되어 있지만 50년대~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종의 대척점이었던 여성국극배우에 대해서는 배우론에서 유일하면서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좋다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일관성 면에서 약간 의문이;

 

총론 1 '판소리에서 창극으로'는 19세기 극후반부터 20세기 극초반을 주로 다루며 판소리에서 창극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대해서 서술하며 현재 창극의 한계와 제언이 있습니다. 개화기에 태동하였지만 일제강점기에 풍속을 문제로 끊임없이 규제받았던 창극에 대해 알 수 있어요.

총론 1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1908년 최초의 창작 창극 '은세계'입니다. 개화기 소설가이지만 친일파-_-이인직은 이름을 빌려주었을 뿐 개입하지 않았으며 사실 이를 구실로 김옥균빠..아니 추앙하는 최병도와 탐관오리와의 대립 민중의 목소리를 실어서 대중의 호응을 얻어냈습니다. 미묘한 부분은 이 때 '은세계'는 그 때 갈급한 시대 상황을 드러내서 대중의 많은 공감을 받았지만 광복 이후에 리메이크된 작품은 소통과 공감에 실패합니다. 이는 서사의 동시대성이라는 점에서 많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총론 2 '국립창극단이 걸어온 60년'은 앞의 각론에 대한 프리뷰 역할을 합니다.
요약: *안숙선* 명창, 배우, 단장, 예술감독, 작창가, 소리 지도자 등을 오랫동안  해 오신 분...
*김성녀* 터닝 포인트

각론 1 '국립창극단 연출 작업의 흐름'에서는 주요 연출자들과 주력 포인트에 따른 변화 등을 서술합니다.
- 60년대 이진순 연출은 ‘판소리를 근간으로 전통예술 양식 체계화'를 주창했고
- 70년~80년대대 허규 연출은 '전통극 문화 복원, 보완.재창조를 통한 현대화'와 민중 강조(솔까 이 시대 연극 연출자 출신 치고 그쪽;에 경도되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
- 90년대 김홍승 연출은 오페라의 극적 요소 도입
- 90~00년대 박성환 연출은 국내외 창작 작품 도입
- 각국의 해외 연출가 초빙을 통한 다양화
- '10년대 이후 고선웅, 배요섭, 남인우 연출 등의 각양각색 새로운 시도 등이 있겠습니다

여담인데 '정년이'의 연출가 남인우씨가 제가 참 좋아하는 '천하장사 마돈나'로 창극 '내 이름은 오동구'를 연출했더라구요? 트랜스젠더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다니 비범한 국립창극단...궁금해집니다

아 그리고 24~25시즌에 예상되는'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 대해 최초의 18금 창극으로서 여성 주인공인 ‘옹녀’ 의 시점으로 극을 전개, 사랑과 삶에 관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해석했다는군요. 처음엔 이름만 듣고 ㄷㄷ했는데 기대가 됩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 대해서는 여러 각론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다루어집니다. 결말은 가부장적이고 순응적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각본 인용을 읽어 보니까 키링 겸 인간 딜도 변강쇠를 품어주는 성님 옹녀인 거 같아서ㅋ 좀 지켜봐야 될 듯요.

각론 2 '창극의 시대별 작창과 반주'에서는 시대와 작품별 음악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는 데 제가 여기에 있어서는 배움이 특히 짧은 관계로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아주 이른 시기인 60년대 초반부터 작창과 배경 음악에 대해 깊은 고민과 파격, 변화를 도모해 왔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각론 3 '국립창극단 무대에 활용된 영상'은 사실 가장 특이한 논문 소재이다 보니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① 무대 공간 배경 ② 작품의 시간성 구현③ 작품의 서사 및 음악 상징, 보완 장치로 창극을 현대화시켰으며 인터랙티브 요소도 도입했다는 분석이 ISTJ의 마음에 쏙ㅋ
또한 음성과 서사로 설명해주는 '도창'을 영상이 때로는 보완하고 때로는 대체해 왔다는 설명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전투씬 등으로 무대 상영에 한계가 있는 적벽가에 영상이 하는 역할  재미있었어요.

'창극의 변화와 도약' 총서 각론 4 '국립창극단의 해외 원작 레퍼토리'에서 제가 자첫했던 '베니스의 상인들'은 시간 한계로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창극 기존 팬들에게 이 극이 이질적이었고 엇갈린 평이 나왔나에 대해서 약간의 단초는 잡았습니다.

아래 캡처에 나오는 대로 국립창극단의 해외 원작 창극은 2009년 이후로 동서양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해 왔는데요(맥베스 부인, 메디아, 트로이의 여인들 등이 땡겼) 제가 패왕별희와 리어 외엔 본 게 없어서 재인용이 조심스럽습니다만

첫째, 해외 원작의 경우 타문화 이야기가 우리 문화로 변이되는 지점이 관객에게 큰 쾌감을 줄 수 있다. 둘째, 관객이 이미 이야기의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면 플롯을 변형하고 압축하는 데 부담이 적다. 셋째, 원작의 예술성에 의탁하여 원작의 문학을 구현한 예술 작품으로서 이어받을 수 있다(인용)

그리고 이 제각각인 해외 원작 창극에서
-여성의 한(恨)으로 치환된 비극성: 여성이 주로 수난당하고 희생하는 비극, 그리고 전통적 가치인 충효를 크게 벗어날 수 없는 고민(코델리어의 효, 메데이아가 자식을 죽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희생자로서 비쳐야 한다는 점, 우희의 지고지순함 등) <-저는 특히 이 부분에서 '베니스의 상인들'이 이질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도창과 코러스, 그리고 민중의 목소리를 읽어냅니다. 특히 저는 그리스 연극을 좋아하는 점에서 소실된 그리스희비극이지만 오페라의 원형이 되었고 그것이 다시 창극에 영향을 주면서 그리스식 코러스가 도창과 합창에 영향을 주는 점에 대한 분석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각론 5 '창극 배우의 역사와정체성'에서는 제가 지극히 사랑하는 신재효 선생의 광대가-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 얘기가 오프닝을 뙇 장식합니다 ㅋㅋㅋ 여기서는 총체적인 연기인 '너름새'를 강조해요. 창극은 사실적인 극 연기이지만 손짓, 발짓, 어깨춤, 과장, 시늉, 발걸음 등이 전통적 너름새에 기반을 두고 수행해야 되는 등 창극의 다른 요소와 마찬가지로 '내일의 전통'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한 듯 합니다.

아 1908년의 창극 춘향전에서 이도령 역의 최득이는 '20대의 젊고 모양 좋은 광대로 〈너름새〉가 잘 어울리며, 소리하는 양은 우람하여 장안 의 인기를 독점하다시피 하였다'라고 합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100여년전에도 얼빠 ㅋㅋㅋ 나는 전통계승임

국립창극단 이후로 배우 세대를 나눠보자면
1세대 명창 배우시대('62~'79): 인간문화재, 판소리 중심
2세대 창극 배우시대('80~'99): 1세대를 사사하고 배우로서 정체성 확립
3세대 스타 배우시대(00~현재): 판소리 대학 전공, 창극을 넘나들며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는 스타 배우 이렇군요. 
마지막 제언쪽에 눈길이 간 게 창극단에 들어가서야 창극 연기에 대해서 배우는 게 거의 다이다 보니 ‘배우’이자 ‘광대’로서의 역할이 넘나들 수 있는 ‘창극 배우’가 체계적인 시스템 하에서 길러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이건 저도 창극배우들 인터뷰에서도 여러 번 본 적 있음)

 

휴 이렇게 깨알같은 254페이지를 한 달음에 읽게 만든 김수인씨께 완독의 영광을 돌리구요 겉핥기나마 창극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여담으로 위키디피아의 창극 항목은 자세한데 과거 내용과 한계에 머물러 있구요 나무위키는 최근 웨이브에 대해 집중한 감이 있어서 이 총서를 좀 더 대중적으로 다듬은 홍보자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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