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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보다 더 큰 손 그 손등에 불거진 핏줄 매우 좋아합니다
강행군으로 목이 갔다며 연신 신경쓰는 모습

사진이라는 게 현장을 그대로 담는 것인데 찍는 사람 별로 천차만별이 되는 이유는..
- 피사체가 찍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표정이 다르고(영국의 마거릿 공주가 욕조 속에서 티아라를 쓰고 들어가 당시의 남편이 찍을 때 환하게 웃는 사진을 그래서 좋아합니다)
- 포착하는 각도와 순간이 다르고
- 수많은 사진 중 고르는 취향이 다르기 때문인 듯 합니다.

저어기 혀 쏙 내민 사진을 고른 이유를 참 현학적으로 포장하려고 애씁니다-_-

대전시립연정국악원 김수인 춘향가 요약:
이몽룡이 이해 안 가는 MZ소리꾼 김수인
부내나는 황포에 옥골선풍 잘생김 연기 맥스
어사출도와 월매 씬 너무 본인 취향인 거 티남
기생춤과 월매덩실덩실 춤선 이쁨
완창도 절창도 보러 오래요

판소리 다섯마당 김수인 춘향가 후기 들어가겠습니다
앞에서 대전연정국악원 주최측에서 나오셔서 판소리와 국립창극단, 젊은 소리꾼, 이번 판소리 다섯마당의 의의, 동초제 춘향가에 대해서 차분하면서 유창하게 풀어주셔서 좋았습니다 그리고...우리의 것은...
부내입니다 네 진짜요

주최측, 김수인명창(이라고 매번 불러주심), 고수님의 한복, 부채, 버선, 갓, 물이 담긴 도자기, 그 모든 것에 고급스런 부내가 그득그득 흘러넘쳤습니다 하다못해 부채에 달려있는 자그만 노리개 술조차 부내넘치는 우리의 것 세계....

아참 동초제 춘향가는 초대 국립창극단장 동초 선생께서 춘향가 각 대목의 좋은 부분을 다 넣어서 최대 아홉 시간, 짧게 해도 여덟 시간이라고 하네요. 근데 오늘 60분 들어보니 그럴만두...옥중상봉부터 어사출도, 상봉, 월매 엔딩까지 한 시간이 후딱 가요

소개가 끝나고 드디어 나타난 '얼굴 진짜 작다'(오늘 하도 많이 수근덕거려서 김수인 개명한줄...) 김수인 선생. 22시간만에 뵙네요. 가을이라 추워보이지 않게 입겠다더니 골드에 가까운 황포에(아 바지도 부내났...) 중짜 크기 갓 썼더니 뭔 이메다임. 판소히 다섯마당 중에선 이몽룡 최적화이긴 함

꽤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춘천에서 공연하고 왔더니 목이 많이 간 것 같아서 컨디션이 걱정이 되지만 최선을 다하...하더니 '그러니까 여러분이 추임새를 해 주시면 많은 힘이 되겠습니다'하고 씩 웃는데 관중들을 쥐락펴락...추임새는 진짜 잘 나왔어요

옥중상봉부터 하는데 이 부분이 힘이 많이 들어가지만 '진진하고 아정한' 맛이 있다고(...가 애 옹알이하듯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보니까 역시 모태 소리꾼) 이게 느리지만 사람의 감정을 쥐었다폈다 춘향이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거라 들으면서도 꽤 진력 소모가 되었어요

옥중상봉 주요 씬 마치고 나서 '물 좀 마시겠습니다'하고 긴장 확 풀리는 모습. 여기까지가 소리꾼들도 힘이 많이 들어가서 긴장하는 대목이래요. 그 담 옥중씬은 몽룡이가 어밍아웃하고 싶었지만 월매가 알았다간 바로 남원 일대에 소문 다 내서(장모를 너무 잘 아는 사위)참는다는 월매 까는 얘기.

몽룡이가 어밍아웃 못한 이유는 옆에 있던 월매가 '새수없어서' 소문 퍼뜨릴까봐였는데 단어 뜻은...
말이나 짓이 줏대에 맞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고 소갈머리가 없다...
아 웨 춘향전에서 제일 현실적인 인물이구만 ㅋㅋㅋ

동초제가 길어서 감정선이나 속사정을 차분차분 짚어주는 편이라 좋더군요(아 전 어린이 춘향전 후반부 읽다가 어사또 미친새낀가 했던 기억이...) 물마시고 끊고 간 이유를 알 거 같아요 그 이후부터는 꽉 막힌 속이 슬슬 풀리기 시작합니다

오늘 대전국악원 측에서 소개할 때 창극단 분들이 판소리할 때는 소리만 하시지만 연기나 몸짓이 티가 날 때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끄덕)
사또잔치 기생춤을 2초쯤 추는데 그렇게까지 요염하게 출 일인가...

그 다음에 변학도 생일잔치-어사출도는 김수인이 완전 날라다님. 특히 어사출도에서 우르르 밀려드는 고저장단과 각 고을 수령-변학도-수하가 허둥지둥 자빠지는 해학적 묘사를 10분동안 숨도 안 쉬고 속사포랩처럼 하는데 와...우리 말맛이라는 게 이런 거군요

끝나고 잠시 또 물 마시는데 고수님께서도 '사랑에 또 빠진 이승민 표정'(그런 거 아시죠)으로 진짜 잘해요 하고 환호가 이어지고 그랬어요.
+)중간에 수인이가 '본관'은 변학도라고 설명해줘서 판소리 초보인 저는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후반부 내내 어사또-본관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 다음은 어사또가 춘향이 떠 보는 장면. 힙리꾼선생께서는 잠시 끊으시고 춘향이 정절 때보다 더 이해 안 간다는 표정으로
'진짜 나쁜 놈이죠'
'그냥 안아주면 되는데'(어머 오빠)
'전통은 전통이고 고전은 고전이고...배운 거니까...중얼중얼'
라고 몽룡이를 엄청나게 까셨습니다
모두까기 선생(아 월매 안 깜)

김수인의 몽룡 춘향 앞담화..아니 사설치레도 어제 다섯 마당의 취지(젊은 유명소리꾼 다섯 무대)와 판소리초보 다수의 청중들을 고려해서 미리 준비한 듯 했어요 이 분 본인의 퍼포에 엄청 사전에 신경쓰는 듯 해서...

하긴 뭐 춘향이도 몽룡이 알아본 다음엔 서울 사람 독하다며 까니까 뭐...(평생 까임 획득)

그리고 제가 춘향가에서 제일 사랑하는 월매의 태세변환 엔딩. 월매에 완전 빙의해서 초반에 민구스러워하다가 엄마 찾으니까 그때부터 열녀춘향 난 배로다 어사장모 나가신다 하고 건들건들 뽐내시며 휘르르르 돌고 덩실덩실 춤추는데 춤선 너무 이쁨.
몽룡이 해봤으니 월매 특출해주면 안될까(진지)

아 맞다 오늘 춘향가 하기 전에 목 푸는 단가는 동초제 사시사철, 앵콜은 적성가하고 진도아리랑. 이미 그 때 목이 꽤 잠겨 있던 게 티가 나더군요. 강행군이었지...노래도 춤도 안 추는 나도 지금 너 따라다니다 객사 일보직전이다;

-이렇게 김수인 주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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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22일에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한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이 공연은 10월에 과천에서도 했는데요, 당시 공연 후기는
https://kiel97.tistory.com/entry/%EC%B0%BD%EA%B7%B9-%EB%82%B4-%EC%9D%B4%EB%A6%84%EC%9D%80-%EC%82%AC%EB%B0%A9%EC%A7%80-%EA%B3%BC%EC%B2%9C-%EA%B3%B5%EC%97%B0-%EA%B0%90%EC%83%81-%ED%8C%94%EC%B2%99%EC%9E%A5%EC%8B%A0-%EB%AF%B8%EB%82%A8-%EA%B2%B8-%EB%AF%B8%EB%85%80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 과천 공연 감상-팔척장신 미남 겸 미녀

왼쪽부터 홍백가 역의 박애리, 사방지 역의 김수인, 남자 역이라면 다 했는데 사이비교주로 남은 유태평양, 여자 역 다 했는데 다 큐티섹시했던 전영랑. 사방지 감상: 극 이름답게 김수인 100분

kiel97.tistory.com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1. 11월 21일 첫번째 공연

첫 번째 날의 베스트 샷. 비결은 1열 중블입니다. 평생 처음일세.

아오 이 공연 조명이 세서 사방지 얼굴 하얗게 날아가거나 누렇게 뜨거나...물론 전 동영상 찍은 후 무지성 캡처 갈겨서 무보정으로 올리기 때문에 예쁘게 살리지 못했습니다;


죄다 흔들리고 안 맞는데 주관적인 제 취향이라...
-오늘 루방지 눈에 반짝반짝 별 박음
- 화사해요 화사해
-그 와중에 본체 특유의 밑 내려까는 서늘한 표정에 치임

(대충 이런 표정)

공연 얘기를 좀 해 보자면...

사방지는 큰 수정은 없었는데 과천 버전이랑 미세하게 대사가 바뀌었으며 몸짓 동선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사방지의 남자 버전(자신을 사랑해 주는)과 여자 버전(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리고 사방지가 둥글게둥글게 손을 잡고 아하하 웃으며 빙글빙글 돌 때 찡하더군요

아 그리고 과천보다 무대와 객석 사이 가 매우 간격이 넓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계단이 없습니다 홍백가가 무대에서 훌쩍 내려와서 대사치길래 어케 들어가려나 했는데 한 걸음에 그 높은 무대를 훌쩍 타고 넘음 멋져요 ㅠㅠ

아 근데 홍백가 역의 박애리님 뮤지컬 시카고의 여자교도소장 마마 모튼 맡으면 겁나 잘하실 거 같지 않나요? 허스키하게 마마 단독 넘버 부르며 깃털춤 추는 거 상상되어버림....

음 저도 사방지 무대 크기가 지금보다 2/3 정도로 줄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지역문화상생사업이라 과천과 춘천에서 대극장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사정은 감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탄복한 명 트윗처럼 국악인은 각각이 4시간짜리 1인극을 소화 가능하고 여기 나온 네 분이 제각각 다른 매력으로 탑을 찍는 분들이라 흡입력으로 먹고 들어가는 부분이 많아요

사방지는 오두미교의 열세번째 제자인데 이 교는 노골적으로 기독교 교리를 여기저기 차용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12는 천계의 완전 숫자고 13은 가롯 유다 등을 상징하는 불길하고 괴이쩍으며 악마의 숫자입니다. 고로 처음부터 사방지는 방주에 올라가지 못할 운명이었음
(그래도 돈도 바치고 몸도 바치고 마음도 바쳤는데 곰교주는 너무해따)

사방지가 화쟁선비의 잘린 머리를 들고 걸어다니다가 묻어주는 장면에서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가 떠올랐습니다. '여왕 마고'에서도 나오는데, 애인 라몰이 정쟁에 휩쓸려 죽자 위험을 무릅쓰고 잘린 머리를 청해서 손수 묻어줍니다. 소설 '적과 흑'에서도 이 장면은 변주됩니다. 피와 미인...좋지요.

사방지의 아름답고 슬프며 박복한 인생을 반추하며 감상에 젖어 있다가 파모 쓰고 말끔하게 메컵 지운 채로 에헤헤 잘 보셔써여 하는 아름다운 청년 김수인 동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무대에선 음기충천하면서 오프에선 어쩜 저렇게 몸건강 마음건강이냐...대단타


2. 11월 22일 두번째 공연

이날 커튼콜 컨셉은 프리마 돈나. 이날은 우블. 죄다 하얗게 날아가고 초점 안 맞고 해서 쫌 속상했는데 사방지 특유의 슬프고 처절하도록 화사한 느낌이 잘 살아서 좋았습니다.

 

공연 얘기를 쫌 하자면...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내 평생에 유태평양과 김수인의 트월킹을 볼 줄이야 ㅋㅋㅋ

사방지 1막에서 그 어엄청난 가사의 노래 있잖아요 그거 부르면서 용ㄷ...암튼 그 가사에서 수인이와 태평양씨가 라이트한 트월킹을 했구요 그 다음 여자랑 놀아나(...)는 가사에선 박애리씨와 수인이가 쫌 끈적한 동선이 있었습니다
저 진짜 신기한 구경했음 ㅋㅋ 오래 살아야지

사방지는 소재와 전개가 파격적이고 호불호 갈리며 불편할 수는 있지만 설명은 의외로 바로바로 해 주고 친절한 편입니다 홍백가의 '나같아서 그렇고 너같아서 그런다'라거나 사방지의 남자 버전과 여자 버전, 두꺼비 비유 등이 그러하지요. 하긴 설명까지 난해했으면 해체주의 창극될뻔.

방주 탈 때 퍼시픽 교주님이 계속 사짜 말투 쓰다가 사방지한테 너 방주 못 탐 하고 정색할 때 진짜 웃겼어요. 
왜 욕쟁이 할머니가 컨셉으로 구수한 쌍욕하다가 외상 달라고 하면 싹 안면몰수하고 표준말로 '죄송한데 저희 가게는 일시불만 받아요'할 때 기분이랄까요.

사방지는 연신 시련을 겪으면서 독한년, 나쁜년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홍백가의 장기말로 이용당할 뿐입니다. 홍백가는 포식자인 전갈, 사방지는 피식자인 두꺼비죠. 둘 다 시작은 밑바닥인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둘의 천성에 차이가 나서도 있지만 상황과 시대 인식 차이 때문도 있습니다.

홍백가가 사방지에게 독한 년이 되어라고 했을 때 그(그녀)가 한 일은 자신을 질시하는 하녀들의 기를 눌러주기 위해 가장 약자인 언청이 하녀를 공격한 겁니다. 정작 자신이 홍백가의 큰 그림에서 어떻게 이용당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죠. 왜 굳이 '간성이지만 남자에 가까운' 그를 수절과부 독수공방에 밀어넣었을까?

그러니까 사방지는 인터섹슈얼(어지자지;)로서 성적인 독특함과 매혹(어...이런쪽 수요도 꽤 있습니다; 광대패에서 그런 쪽으로 꽤 이용당했을 것;)적인 외모가 있는데 그걸 뒷받침하는 시대 인식과 공격력은 평범한 대중에 가깝습니다. 예쁜데 무른 여자가 어떤 박복한 팔자가 되는지는 뭐...말하지 않겠습니다;ㅁ;

2-1. 11월 22일 퇴근길 후기

제가 생전 첨으로 누군가의 퇴근길이라는 걸 해치지 아나요 거리두고 해 봤는데요 까먹을까봐 그냥 잡담식으로 쓰레 이어갈게요 아 우리 애는 왜 이렇게 얼굴이 쪼끄매서 거리 두고 보면 잘 보이지도 않고 날은 어둡고...아참 그 전에 태평양님도 봤음 관객들이 옴마옴치 사바하라고 하니까 맑고 힘있는 옴마옴치 무반주로 해주심

공연 끝난지 얼마 안 돼서 옷 싹 갈아입고(어제 영상에서 본 거랑 같았던 듯?) 화장 말끔히 지우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오시...(아 처음 뵈었더니 내외를 하게 되...)던데요 멀리서 보기에도 피부가 반들거려서 클렌징 뭐 쓰냐고 물어볼걸 머리가 하얘져서 까먹...

대사 잘 안 나와서 속상했다고 하는데 음 세 번인가(정확할 겁니다, 전 좀 집요한 면이 있어서) 타이밍을 살짝 놓친 적이 있긴 했죠. 근데 워낙에 사방지 대사량이 으마으마해서...

갓 들고 가던데 내일 대전 공연에서 쓸 갓이라고 하더라구요 가을에(아참 가을 아니지 하고 혼자서 중얼중얼하는데 귀엽;) 너무 추워보이지 않게 내일 공연 옷 골랐다고 합니다 내일의 꽃;은 어사 출두..'크레즐 출두야'라고 센스터지게 덧붙여주심

사방지 두 의상 중에서 뭐가 마음에 더 드냐고 물어보니께 '해녀 의상요'하고 허를 찌름 아 맞다 루방지 옷 세 벌이었다...농담이고 후반의 자주색 벨벳 옷이 더 좋았대요. 초반에는 막 얻어터지고 했는데 후반에는 자기대로 좀 산 거 같다고(그냥 전 자주색이 더 이뻐서 좋음)

해녀 장면을 정말 좋아한대요 그 때가 사방지가 유일하게 밝게 산 때라 일부러 더 밝게 (연기)한 점도 있다고. 그리고 옴마옴치도 너무 좋아한다고 ㅋㅋㅋ 태평양형이 너무 잘한다며 갑자기 퍼시픽유 남팬모드 되심 ㅋㅋㅋ

그리고 팬들이 내일 보자고 하니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도 귀엽; 아 그리고 서울 돌아가는 사람들 여기서 바로 가는 사람들 분분하니까 다 들어주고 챙기고 하는 것도 좋아 보였습니다(니가 뭔들..) 에헤헤 감솹합니당 심지어 순박해 보이기까지하는 본체를 보니 사방지를 성불시킬 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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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공연 평 쓰기 전 서설:

- 해오름극장 2층 북라운지에는 패왕별희 관련 주요 책 두 권이 있습니다. 왼쪽 핑크색 책은 전설적인 경극 배우 메이란팡의 친우이자 동료인 경극작가 제여산이 집필힌 패왕별희 대본집이고 오른쪽은 영화 패왕별희 팬북이예요. 영화는 경극 패왕별희의 두 주역에 대한 생애를 다룬 영화라 극중극으로 약간 관련이 있습니다. 왼쪽도 창극하고 스토리가 꽤 차이납니다. 창극은 경극을 토대로 창극화를 시키고 1부(오강의 노래, 홍문연, 전술과 전략을 세우다, 십면매복)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과 한신, 맹인 노파, 어린 항우 캐릭터는 창극 오리지널입니다.

-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제여산의 패왕별희 대본집을 볼 가치가 있는 이유는, 경극의 역사와 이해 주요 남녀 배역 설정 초한전 배경 등이 나옵니다
정사에서는 항우의 전장마다 따라다니던 우희라는 애첩이 있었고 패왕 죽음 후 종적이 묘연하다는 얘기만 있는데 몇백년 지난 후세에 비극적인 사랑 얘기가 살이 붙기 시작합니다

- 근데 초반에는 이랬습니다
우희: 검을 주세요, 죽음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항우: ㅇㅇ(칼 줌)
우희: 으악 쥬금(자결)
...진짜 대륙인의 다이렉트함이란...이걸 항우가 필사적으로 말리고 쌍방 애절한 연애로 만든 게 제여산이 쓴 패왕별희라네요
...옛날 버전으로 봤으면 이게 뭐야 하고 승질냈을 듯

-아참 항우의 경극 분장에서
검은 안색-사납고 조급한 성격
처진 눈-박복함(눈 처진 자로서 슬픔)
얼굴의 일만 만자-단명하니 후세에는 오래 살라고 그려줌(...)
우희는 검무가 특기고 말을 탈 줄 아는 여성이라 일반 경극 여성 역할과는 다소 다른데 이게 복식에 반영되었대요

- X세대 소녀라면 다(글쎄요...) 그렇다시피 10대 때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를 봤었는데 영어 제목이 'farewell, my concubine(내 첩이여, 영원히 안녕)'을 보고 미묘했지요 요즘 치면 원앤온리 궁중로맨스인데 후궁으로 들어앉히려는 황제공(어이..남주) 본 느낌이랄까 근데 좀 찾아보니 우희 또는 우미인이라고 불렸던 절세미녀가 항우의 전장을 계속 따라다녔고 항우의 사후에 종적을 알 수 없었고, 항우에게 정처든 다른 여인이든 언급이 전혀 없는 건 사실이더라구요

- 그러니까 신분이 고귀한 게 공식이었던 항우에 비해 신분이 분분하긴 하나 미천한 건 확실했던 우희는 첩이나 시녀의 신분인 총희가 아니었을까 해요. 워낙 초한대전이 중요하고 반대쪽 유방이 여치와 결혼으로 정치적 결합을 다졌는데 항우가 정처가 있었으면 안 나왔을리가 없어요

- 물론 언제나 정처를 들이기 전에 첩이나 시첩을 먼저 들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긴 했죠. 하지만 고종의  첫사랑 이상궁처럼 왕이 사랑에 돌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항우는 애초에 그런 독재형 권력자였구요. 그래서 아마 우희는 원앤온리 첩이라는 묘한 지위가 아니었을까요

- 누가 더 못하고 덜했을까요 원앤온리 첩과 동귀어진한 항우였을까요 헌신한 정처를 몇번이나 적진에 던졌지만 결국 황후로 만들고 첩 척부인에게 총애를 줘서 황후를 괴물로 만든 유방일까요
...아 둘 다 별루야 근데 로맨스로 패왕별희가 유방여치보다 남는 이유를 알겠어요

- 우희가 신분이 낮아서 정처는 못 되었지만 항우의 원앤온리 애첩일 거라고 얘기했는데 창극에서는 여군사들이 '왕비마마'라고 부르고 경극 대본에선 우희의 오빠는 '귀비'(고위 후궁), 오히려 신하들은 황후라고 부릅니다 공식적인 황후가 없으면 최고위 후궁이 황후 대행을 하지요

- 항우가 정처가 없고 총애가 몰빵되니 우희가 존귀한 대접을 받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항우가 정략결혼 카드를 안 써먹은 게 이 커플의 명줄을 앞당긴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유방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여치를 생각하면 더욱 더)

1. 패왕별희 공연 단상

패왕별희 제1부 11월 14일 감상:
패왕님 목소리가 성우보다 멋짐
815님 겁나 간사한 유방 삼킨 연기
여치님 날 가져요(갖다 버릴 듯)
퍼시픽유 개갈굼당함 쫌 불쌍
온통 시꺼매서 다 안 보이지만 제일 길다랗고 얼굴 작고 팔다리 기이하게길고 춤선 아리따운 까마귀 찍으면 됨
한나라 말단 병사 김수인 으앙 쥬금

아참 우미인은 1부에 제대로 나오는 건 딱 한 부분입니다 우희로 여자 아이돌 십자들기씬 나왔는데 오른쪽 든 수인까마귀가 너무 커서 쫌 비대칭으로 들린 우미인 직관하니 현웃 터지려는 거 참음

 

패왕별희 제2부 11월 14일 감상
제6막 패왕별희가 클라이맥스고 역발산기개세 창 정말 멋졌음 
우희의 검무는 준수씨의 코어 차력쇼임
준수씨는 어떻게 저걸 다 추고 숨 하나 안 흐트러뜨리고 노래를 부르냐
우리 까마귀 오늘은 커튼콜에서 여치뒤에 디멘터처럼 조낸 불길한 눈빛으로 서 있었음(취향)



패왕별희 제1부 11월 15일 감상:
오글 덕인지 어제에 비해서 우리 까마귀의 얼굴과 기깔나는 춤사위도 잘 보이고 한나라 최약체 말단 군졸의 긴장한 표정과 으앙 혼자 쥬거써여도 잘 보임
그냥 사랑의 눈이 뜨인 건가...
이제 어둠에서 안 보이는 게 없다 밤 빗길 운전도 잘 할 거 같아(기분 탓임)

 

패왕별희 제2부 15일 감상:
6막 마지막에 김수인 이번에도 썩 잘 싸운 건 아니지만 안 죽음
어제 불길한 무표정은 촬영 컨셉인 걸로
김수인 패왕우희 커플팬임 커플인사할때마다 함박웃음짓고 뿌듯해함 
소매 꼭쥐고 박수 커엽
막 내려가고 퇴근 임박하니 두 손 흔들흔들 빠빠이하며 흐뭇해함

 

2. 패왕별희 공연 자체에 대한 잡설

- 저는 이 창극의 클라이막스는 패왕별희긴 하지만 서사 자체는 패왕우희가 아니라 영웅 항우의 극적인 몰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창극 제1부는 창극 오리지널이나 마찬가지인데
제1부는 초나라와 오나라의 지략과 정치, 대립에 주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오리지널이다 보니 창 중심입니다. 여기서 경극적 요소는 패왕과 우희의 제스추어 정도임.
제 1막 오강의 노래: 항우는 왜 망했는가에 대한 오프닝
제 2막 홍문연: 항우의 잘못된 선택으로 몰락의 실마리가 됨
제 3막: 전술과 전략을 세우다: 유방이 한신과 여치의 계획으로 반전을 마련
제 4막: 십면매복: 항우의 대패

- 제2부는 전쟁의 비참함, 항우의 본격적인 몰락, 연애적 요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제 5막: 사면초가: 초나라 노래로 항우와 우희는 고립됩니다
제 6막: 우희의 자살로 패왕과 우희는 영원히 이별합니다
제 7막: 오추까지 잃은 패왕은 자살합니다   

- 경극에서는 항우가 계략에 속아 몰락하는 것부터 바로 보여줍니다. 창극이 롤러코스터처럼 제2막에 항우를 최고조로 띄워줬다가 그 다음부터 몰락을 경극보다 길게 보여주는 셈인데요, 호불호가 이 부분에서 갈릴 것 같습니다...만 제 취향이에요. 모든 것이 갖춰진 주인공이 한순간의 충동이나 유혹, 잘못된 선택으로 몰락하는 걸 좋아합니다. 제레미 아이언스의 데미지도 그래서 좋아하고 남들이 사이다라고 좋아하던 연희공략보다 계황후가 망하는 서사 여의전을 좋아함. 그래서 항우의 한순간 잘못된 선택에서 풀려나가는 기나긴 몰락도 제 취향.

- 70전 불패의 명장이던 항우는 유방을 풀어주고 한신을 경시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게.증폭되면서 몰락을 맞게 되죠 이 사람은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요

- 우희는 계속해서 강동으로 돌아가 천하 영웅들을 설득하고 후일을 도모하자고 설득하는데 항우는 전혀 호응이 없습니다 실패를 추스리고 남에게 숙이는 걸 못하는 거죠 실은 초한전에서 이겨서도 좋은 정치가가 되었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현대에 태어났으면 전쟁영웅이었지만 전쟁 후에 적응 못하고 PTSD에 시달리게 되었을지도

- 항우의 한번 실패로 인한 완전 꺾임이 패왕별희 원작하고 차이점인데, 우희는 항우가 후일을 도모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는 걸 알고 패왕이 살아있을 땐 걸림돌, 죽은 다음엔 팔려가는 신세를 피하고자 자신을 깔끔하게 정리해버린 거죠

- 우희의 자살은 항우에게 매우 큰 타격은 되었지만 죽음을 결심할 계기는 명마 오추의 죽음이었죠. 우희와 오추는 비슷한 의미라는 점이 7막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아 항우가 우희를 지극히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일반적인 사랑과는 좀 결이 달라요.

- 유방의 여치는 원경왕후의 매운맛 버전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난세의 정치적 파트너로 그 이상을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집안 배경 지략 카리스마 상황 판단 용인술 뭐 하나 뺄 게 없지요 난세가 평정된 다음엔 권력을 나누지 못하니 유방이 버리다시피 함

- 우미인은 난세가 아닐 때 총희로서는 최고죠. 미모와 재주로 항우를 위무해 주고 지극한 사랑으로 감싸줍니다. 하지만 그녀의 출신은 미천하고 상황판단이나 지략은 없다시피합니다. 절세미인은 몰락 후 공신 다툼의 대상이 되죠

-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패자도 사랑합니다 왜 관우 오자서 항우 귀신을 한국 무당들이 신으로 모시고 그러겠음요;;; 아 맞다 오늘 도창...아니 맹인 노파가 살아서는 영웅 죽어서는 귀신의 으뜸이라 했던가요 우희도 기능;과 무관하게 서사로 사랑받습니다

- 아 맞아요, 맹인 노파와 어린 항우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저는 극 S라 함의 뭐 이런 데 약하긴 한데 시간 구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서 비극은 되풀이된다는 걸 보여주는 듯도 합니다. 초나라의 구슬픈 백성들 노래도 그랬고 말이죠.

- 스토리 외 얘기를 하자면 패왕별희가 국립창극단이 구현할 수 있는 화려함의 극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간 봤던 다른 극들이 각각 유니크함(특히 심청가)을 추구했던 게 이해가 감
우리(언제부터 우리) 패왕님 자수 화려하고 고급짐 우희는 맨날 흰 옷 입히고(뎨둉합니다 우희는 유령이나 환영으로 나올 때만 흰 옷이고 현실세계에서 입고 댕기는 빨간 옷 디게 이뻤음) 지는 싸울 때 무겁구로 주렁주렁...

- 딴 얘긴데 패별 6장의 우희 빨간 옷이 화양연화 장만옥 치파오(그 날씬한 장만옥이 숨도 못 쉬었다고 하죠, 어떤 옷은 아예 입힌 채로 꿰맸다고 하고)만큼이나 몸선에 가혹한 옷이더군요. 준수씌 안 그래도 늘씬한 사람이 더 빼느라 고생했겠어요

- 우희가 항우의 모든 전장을 따라다니면서 선녀같은 미모를 유지하려면 백조 물밑 발짓처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듯 
우희 성격상 전장에 시녀(호위 여군사 몇명만 있는 느낌)에 치장 휘감고 다니지 않을 거 같고 항우가 살뜰하게 챙기지 않고 혼자 새벽에 귀밑머리 그리고 다이슨으로 머리말고(...)

 

3. 커튼콜

14일의 커튼콜입니다. 이 날은 촬영이 있는 날이라 긍가 수인이는 매우 무표정했고 여후님 방향을 매우 불길하게 바라보는 게 찍혔습니다. 

무대 앞쪽으로 나와서 우아하게 절하는데 매우 멋졌습니다. 난 춤을 놓은 적이 없다고 백 번 말을 하는 것보다 극상의 기량으로 보여 주는 게 더욱 마음에 듭니다.

 

15일의 커튼콜입니다. 이 날따라 인형미 쩔음.

아니 근데 오늘 커튼콜에서 루떤까마귀가 눈을 스윽 내려뜨면서 우아하게 펄럭이며 절하고 다시 눈을 스윽 올려뜨며 날아들어가는데 심장이 덜컥하는 서늘한 느낌이

그의 최애커플(임이 분명한) 항우우희가 인사하자 환하게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퇴근이 다가올수록 점점 신명나는 모습입니다

 

막공 후기를 보니 오늘 커튼콜에서 수인이 표정이 제일 환했나 보군요. 퇴근 좋아하는 건 여전하구나...

-담주에 춘천하고 대전에서 보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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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창극 패왕별희 자둘 공연 시작은 오후 7시 반이었지만 아침 열한시 전에 도착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의 직장인지라 덕후 투어를 하려구요.

해오름극장의 위용입니다. 밤이 되면 저기 전면에 23년~24년 레퍼토리 시즌 홍보 영상이 계속 뜹니다. 안돼...내 자리 없어...

최애가 매일 출근하는 연습실입니다. 전 추임새 클래스로 가 봤습니다.

최애의 연습실(그니까 사무실)

최애의 사물함

최애의 신발장

그 공기 습도 온도...(광기임)

국립극장은 최근에 관객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해오름극장 2층에 공연예술관련 책을 볼 수 있는 북라운지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관련 해시태그를 SNS에 올리면 해오름극장 1층의 카페 할인도 되고 추첨해서 뭐 이것저것 준다고 합니다(자세한 내용은 1층 카페 안내 참조)

이쪽 서가와 오른쪽 서가는 분기별로 바뀌는 현재 공연 관련 책자. 지금은 패왕별희, 세종 관련 책자가 있습니다. 상시 구비 책자는 국악, 관현악, 오페라, 연극, 창극, 무용 등 공연예술 관련 땐실한 내용의 책이 많습니다. 천국같음.

왼쪽은 패왕별희 경극 대본, 오른쪽은 영화 패왕별희 팬북입니다.

흑요석 작가의 한복 그리는 법 책. 아름답고 내용이 알찹니다.

공연장 2층이 저 멀리 보입니다. 그리고 23~24 레퍼토리 안내 책자도 있군요. 내 표 없어...

공연 표나 특별한 등록이 없어도 언제든지 책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의자는 안락하고 콘센트도 많아요. 

그리고 열두시가 되어 배가 고파진 저는 달오름극장 반지하에 있는 달쉼터에 가서 셀프 라면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수인이가 추임새 클래스 마칠 때쯤 '라면도 있어요오~'하고 잔망을 떨었던 그 곳.

요렇게 생겼습니다. 키오스크에서 셀프계산하고 먹으면 됩니다. 컵라면 이천원. 봉지라면 사천원. 

신라면, 너구리, 안성탕면
수인이는 무슨 라면을 좋아할까요? 아마 가장 대중적인 신라면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전 갱상도의 딸이고 맵찔이니까 안성탕면을 먹겠습니다

면발 굵기에 따라 버튼을 지정한 후 조리를 누르면 물부터 조리까지 다 알아서 됩니다.

잘 끓고 있군요.

뇸뇸. 혼밥 난이도 레벨 하. 다들 각자 남 신경 안 쓰고 혼밥 또는 듀오 플레이합니다
오늘은 기럭지나 머리 묶은 걸로 봐서 국립무용단임이 분명한 분들이 라면을 끓이면서 연습의 고충을 토로...

 

다 먹었으니 달오름극장과 하늘극장 오른편에 있는 공연예술박물관으로 가 봅시다. 저의 버킷 리스트 최애 공연 영상을 보러. 

국립극장 공연 영상은 공연예술박물관 1층 오른편의 자료실 들어가 사물함에 짐 맡기고 헤드셋 대여해서 PC로 보면 됩니다. 별도 대여 절차나 신분증 필요없음 믿고 가는 세금의 맛. 아참, 국립극장 공연 영상 뿐 아니라 각종 국내외 유명 공연 DVD도 대형 티비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의 버킷 리스트 1번 리어 러닝타임 2시간 59분 25초 ㄷㄷㄷ
화질은 720p쯤 될 듯요. 화질에 비해 사운드는 상당히 좋습니다.

분명 개쌍놈인데...잘생겼어...죽을 때 오열하던 거니릴의 마음을 알 거 같애...

리어 후기는 내년 상반기쯤 몰아서 하겠습니다.

시간이 떠서 21년 버전 나무 물고기 달을 반쯤 보았습니다. 다음에 와서는 나머지 반과 김수인-김우정 버전 춘향전을 보면 되겠군요.

 

공연예술사랑단 동행이 와서 같이 해오름극장 L층 안내실 왼편에 있는 센트럴 윤잇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초록초록 무럭무럭.

식사를 하지 않고 커피만 하고 싶다면 시즌 호박 케이크+커피 두 잔(13,000원)이라는 좋은 선택지도 있습니다.

가격은 1인 기준. 근데 전채나 후식이 꽤 양이 많습니다. 1인 세트+1인 단품 추가해도 2명이 먹기에 좀 벅찹니다(동행이 양이 적음)

국립극장 패키지를 대비하여 지방에 사는 저는 공연 네 개를 보고, 서울에 사는 공연예술사랑단 동행은 공연 여섯개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가로 밥을 선불로 받음. 팜 풰이보릿 셋 B+단품+하우스 화이트 와인 한 잔.

단품 그린 페스토 파스타. 페스토도 맛있었고 고급 하몽을 때려넣어줘서 좋았음.

연어 타르타르. 옆의 소스를 얹어서 빵 위에 올려서 먹으면 됩니다. 맛나욤.

펌킨 세이지 리조또. 보리와 이태리 쌀이 섞여서 속이 편안한 맛.

계절과일 크림치즈. 크림치즈와 그린 소스를 바삭바삭이와 곁들여먹으면 와인이 쭉쭉 넘어갑니다.

테이블간 간격도 매우 넓고 분위기도 좋은 데 비해 부담은 적어서 식사하기 좋습니다. 혹시 시간이 없는 분이라면 해오름 1층 카페의 샌드위치(6천원)은 여전히 있으니 바삐 드시고 들어가기에는 좋을 듯.

식사를 마치고 전 패별 자둘 공연보러 들어갔습니다. 후기는 따로 쓰겠습니다.

-알찬 덕후투어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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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이상 시의 돼먹지 않은 패러디입니다)

코지 판 투테 요약:
재기발랄한 21세기 한국 버전 남녀는 다 그래
이승민 종합 세트(를) 관찰(하는) 예능
이승민 눈썹 생물설
돈피디 취향 소나무
이승민 거어어업나 조각상이고 키 더 자란 듯
이승민 반팔로 옷 갈아입는 거 보셨어요? 전 봤어요

모짜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를 롯데콘서트홀에서 관람했습니다. 원래 세 시간이 넘는 오페라인데요, 인터미션을 없애고 2막에 잠깐 무대정리가 있는 80분짜리로 압축했습니다.

이번 코지 판 투테 낮공은 롯백 에비뉴엘에서 브런치 여유롭게 먹은 유한부인들이 보기에 좋은 살롱 오페라(치고는 홀이 좀 크지만)인데 이런 인프라가 한강 이남 일부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게 참...
-하루를 다 털어먹은 자발적 지방 관객의 중얼중얼

실제로 그 유한부인들이 나가면서 '저 피디한 저이가 누구야?' '아 그 팬텀싱어...'하고 대화하는 걸 들었음

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사이즈에 비슷한 입지/기능으로 해운대 벡스코 오디토리움이 있잖아? 싶지만 이 가격으로는 스탶 출연진 세트 그랜드 피아노 연주자 거마비나 충당할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엑스포무새 천분의 일만 떼서 지역 균형 문화 예산을 여기다 써라

살롱 오페라로 만들면서 앞부분을 과감하게 자르고 각색해서 돈 알폰소가 모든 것을 조종하는 화자 예능 피디로 본인과 관찰 대상을 소개하는 식으로 대체합니다.

원작에서 하녀로 사랑을 부추겼던 데스피나는 유능한 예능작가로 나와 등장인물이 즐겨 가는 카페 주인으로 위장취업해서 여인들을 조종하는 역할이죠. 따라서 돈 알폰소가 하녀 데스피나를 매수하는 장면은 없어졌습니다. 변장한 남자 둘 자살 소동등도 잘랐구요.

무대는 콘서트홀 크기에 비해 매우 크고 깊은 편인데요, 왼오로 나누어 오른쪽은 카페에서 두 커플과 데스피나가 사랑의 각축전을 벌이고, 왼쪽은 스탠바이미가 설치된 소파에서 돈피디가 실시간으로 관찰하면서 조종합니다. 그리고 무대 위에는 그랜드피아노 독주로 반주가 있구요

보조 무대로 무대 오른쪽 뒷편에 벤치가 있는데 주로 플러팅이 이뤄집니다. 따라서 무대는 좌우로 분할되어 있고, 실시간으로 흘러가면서도 왼블-관찰하는 자, 우블-관찰당하는 자 이렇게 갑니다. 왼블인 전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돈 피디를 관찰하는 강같은 은혜를 입음

지난번에 제가 예상했다시피(근데 다 예상 가능) 두 커플은 21세기 한국의 20대이고 페란도와 굴리엘모는 군인, 굴리엘모의 짝인 피오르딜리지와 페란도의 짝인 도나벨라는 자매 사이입니다. 돈 피디는 나는 홀로 유한도전 등의 예능을 히트시킨 피디구요, 유능한 작가와 함께 이 관찰 예능을 꾸밉니다

자기 소개 오프닝 장면에서 승민이는 갈색 바지에 검은 반팔티, 연한 스트라이프 오프화이트 셔츠를 입었는데요...키 더 큰 듯... 하필이면 데스피나가 좀 쪼꼬미시라 더 커 보였어요. 말 그대로 무대 뒤로 드나드는 문짝하고 거의 차이가 안 나서 살짝 구부리고 드나드는 걸 보고 웃음 ㅋ

그리고 존노님 실물은 처음 뵈었는데 어쩌면 사람 뒷통수가 저렇게 완벽하게 동글동글 구형일수 있지...이목구비 겁나 동그랗고 피부 좋으시고 정말 쿼카가 현신하셨습니다. 기복없이 아름다운 음색으로 아리아 독창하실 때 진짜 반했음

돈피디 소개 후 카페에서 페란도와 굴리엘모, 돈피디가 내기하는 3중창이 나오는데 돈피디는 연인의 정절을 확신하는 남자들에게 왕요구르트와 과자를 줍니다 대놓고 어린애 취급ㅋㅋㅋ 나중에 일이 다 들통나는 모임에서는 두 커플에게 맥주를 주죠.

돈 알폰소의 캐릭터는 좀 복잡합니다. 원래 돈 알폰소는 젊을 때 연애에 단단히 데인 독거노인같다면(...) 지금 돈 피디는 닳고 닳은 30~40대 예능피디같아요. 오 이거 화제성 쩔겠다 하고 덥썩 물어서 극을 진행시키고, 상냥하면서도 냉소적이고 비아냥 쩔며 악취미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해내는 이승민이 만 24세라는 걸 생각하자면 와...원래 나이가 생각 안 날 정도로 연기 잘 하더라구요. 그리고 대사 칠 때나 아리아 부를 때나 깊고 낭랑한 소리가 롯콘의 울림 좋은 음향과 합이 잘 맞았습니다.

이 오페라의 재밌는 점은 보통 합을 맞추는 독창, 2중창, 3중창, 합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자 관찰당하는 자들이 사랑이 어쩌고 정절이 어쩌고 부르고 있으면 돈피디(가끔은 데스피나도 합세)가 (주인공이 슬픈 이별을 하면서 사랑을 맹세할 때) '웃겨서 못 견디겠군' (남자들이 내기의 승리를 확신할 때) '후회하게 될 텐데' '기뻐 죽겠어(..배신타임)' 엇박으로 들어가서 복잡해요

관찰하는 자와 관찰당하는 자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각 상반되는 얘기를 하며,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하긴 피오르딜리지와 도나벨라도 핸드폰으로 각자의 애인 모습을 자랑하는데 서로 화면을 안 봄(...) 자세히 봤으면 이 사단이 안 났을지도.

그리고 승민...아니 돈피디는 왼쪽 무대에서 소파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스탠바이미를 보면서 오른쪽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데 오른쪽을 강조하느라 왼쪽은 푸르스름한 어두운 조명이라 그의 이태리적인 얼굴 음영이 더욱 잘생겨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와 진짜 잘생겼음

그리고 그는 상황에 따라서 자세를 계속 바꿉니다. 
여자들이 정절에 대해서 노래할 때-한 팔을 나른하게 소파 위에 올리고 한 다리를 다른쪽 무릎에 방만하게(...) 올려서 매우 지루해함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쪽이 덕성을 노래할 때-지루해서 아예 드러누워 버림

이제 슬슬 넘어간다 싶을 때-튀어나올 정도로 머리를 쭉 빼고 소파 끄트머리에 엉덩이만 얹어서 집중함
상대적으로 열정적인 커플이 수위 높은 불꽃 플러팅할때-아예 소파 위에 쭈그려앉아서 입벌리고 보다 앞으로 넘어질뻔함
보수 커플이 로맨틱해질때-누워 있다 한 팔을 괴고 점점 일어나서 목빼기

황급히 오페라 얘기로 돌아가자면 21세기 한국 로컬라이징답게 재밌는 설정이 많습니다.
페란도와 굴리엘모가 안경과 카이저 콧수염을 달고 변장했는데 데스피나가 질색팔색을 하면서 '와 프링글스'하거나(아니 근데 동글동글 존노씨가 동글안경에 콧수염 다니 진짜 프링글스) 저 모습에 넘어가다니;;;

'여자 나이 열 다섯이면' '나는 금발 남자가 마음에 들어' 아리아 부를 때는 스크린에 아예 노래방 화면을 띄워서 마이크 들고 얼큰하게 노래부릅니다. 
작사: 로렌초 다 폰테
작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하고 노래방 자막으로 크게 떴을 때 저를 포함 모든 관객들이 개폭소.

아참, 크로스되는 커플의 옷 선택도 의도적인 것 같더라구요. 자매 중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쪽은 하늘색 바지정장, 얌전한 쪽은 연핑크 원피스를 입혔어요. 그리고 크로스 커플될 때 꽃핑크(존노 꽃핑크 너무 어울림)-연핑크, 파란색-하늘색 이렇게 이뤄질 것을 암시.

결국 두 여자는 변장한 두 남자의 유혹에 각각의 방식으로 넘어가버리고 배신당한 남자들은 독이나 쳐먹어라;하면서도 상황을 즐깁니다(여담인데 바뀐 여자들이 남자들 각각에게 꼭 맞는 취향인 걸 시간 안배로 압축해서 좀 아쉬웠음) 그리고 돈 알폰소는 거어업나 기뻐함. 파우스트가 지옥에 갈 때; 그리고 콘스탄틴이 지옥에 떨어질 때 악마가 저렇게 기뻐했을까요; 아니 그냥 그는 시청률에 쩔었고 덩치 큰 어린이들에게 현실을 자각시켜 현명한 어른을 만들고 싶었을 뿐입니다. 눈썹 싹 움찔하고(눈썹이 살아있음) 입 한쪽 끌어올려서 웃는데 참 매력적이더군요.

이 버전에서는 아예 팜플렛에서 '이 작품은 문제가 많습니다'하고 자기신고하고 들어갑니다. 모짜르트의 명오페라치고 구시대의 빻은;면을 인정했는데 이걸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가 아니라 코지 판 투티(남자 여자 다 그래)로 하면서 tutte가 tutti로 스크린에서 철자가 똑 떨어지는 게 빅재미

저는 일해야 돼서 허겁지겁 마무리하자면 재연을 해도 보러갈 의향이 기꺼이 있는 재기발랄한 오페라였습니다. 각 가수의 역량도 뛰어났고(데스피나역의 이해나님 알라뷰) 무대도 소 오페라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뽑아냈고 연주도 음향도 좋았어요.

다정하게 조롱하는 닳고닳은 예능피디를 완벽하게 소화한 승민이는 커튼콜에서는 그저 순박하고 무대에 행복해하는 강아디로 돌아갔습니다. 갭차이가 또 치이네요.

-이것은 오페라 후기인가 이승민 관찰 후기인가 아무튼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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