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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주 얘기는 두 가지를 굳이 갖다붙여서 하나의 포스트로 만드는 게 컨셉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씩 쓰려고 하니 뭐 딱히 길게 쓸 것도 없고 해서.

료미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쩔어주는 대기를 보며 나온 일행은 근처 대릉원에 단풍 구경을 갔습니다.

마침 날씨가 흐려서 좀 아쉬운데, 바람불고 흐린데 비해 춥지는 않아서 돌아다니긴 괜찮습니다.

붉은 낙엽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게 이뻐요.

여기 나무들은 수령이 제법 되어 보입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계십니다.

어...근데 말이죠, 가까이서 보면 나무에 매달린 단풍 거개가 꽤 버석버석합니다. 한동안 비도 거의 안 오고 꽤 건조했잖아요. 그래서 단풍 특유의 쫙 펴진 물기가 없고 말려서 버석한 느낌입니다.

마르고 버석해도 특유의 흥취는 있습니다.

뭔가 신령스러워 보여서 한 컷.

나쁜 짓 하면 저주받을 것 같은 분위기.

그리고 이건 일행이 찍어준 제 뒷모습인데요, 실제보다 꽤나 키가 크게 나와서 매우 씐나서 동네방네 자랑을 했습니다.

구경 다 하고 대릉원 건너편 카페에서 차 한잔 한 다음 서경주로 건너가서 예술의 전당으로 이동했습니다.

경주답게 기와지붕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이 건물, 겉에서 보면 꽤나 커 보이죠? 안에 들어가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예매자에게 미리 링크를 보내서 디지털 문진표를 작성하게 하거나, qr체크인을 하는 일처리가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직은 여기까진 코로나 2차 웨이브가 크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하긴 여기 있는 동안 경주에서도 결혼식, 파자마파티(꼭 그렇게 찍어서 말을 해야 시원했냐;;;)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안전 문자가 오더라구요.

들어가자마자 대형 배너가 보이길래 잽싸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후원해 주신 한국수력원자력 사랑합니다. 넉넉한 후원 덕분에 프로그램북을 공짜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경주 예술의 전당 10주년 축하드립니다.

또 한 컷 찍고 사진 찍어준 일행 찍어주는 품앗이도 했는데 어쩐지 사진 찍히는 일행이 안절부절하는 겁니다. 다 찍고 뒤를 돌아보니 저희 뒤에는 사진 찍기를 기다리는 찐팬들이 줄을 아주 길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머글이 눈치없어서 죄송합니다;;; 그 중에 한 분은 자기 얼굴은 넣지도 않고 배너 풀컷만 아주 소중하게 찍어가시길래 아 그래 그 마음 알아 하고 괜히 감정이입하고 그랬습니다.

서 있으니 할 것도 없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들어갔습니다. 안은 요즘 공연장이나 영화관이 대개 그렇듯이 한 자리씩 띄워서 앉게 해 놓았습니다. 앞뒤로도 교차해서 자리를 놔서 최대한 공간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실은 좌석사이 공간이 좁은 편이라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요즘 조성진씨 국내 공연은 하루에 낮 세시, 저녁 일곱시 반에 두 번을 합니다. 낮에는 짧게 60분을 하고 레파토리는

1. 슈만 유모레스크 op.20 

2. 브람스 6개의 소곡 op.118

3.쇼팽 스케르초 2번

요렇습니다. 밤은 여기서 두 개를 더 추가해서 본공연만 90분인 모양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일행과 우리야 경주에서 일정이 추가돼서 이렇게 보니까 고마운데 요즘 국내 일정이 너무 빡빡한 거 아니냐 좀 있으면 대전하고 여수까지 뛴다며 어이구야 해외를 못 나가니 국내가 더 빡빡하네 다이죠부 등등을 나눴는데요,

실제로 본 조성진씨는 키도 커보이고 당당한 체구답게(어...그게 티비로 볼 때는 좀 여리해 보이셨는데 실물은 다릅디다. 무대 위의 존재감이 커서 긍가...수트가 참말로 잘 어울리더만요) 괴물같은 체력으로 쟈근 머글의 걱정 따위는 날려버리는 격정적인 연주를 하셨습니다. 저는 3>>>2>>>1 순서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음악 취향도 그렇고, 조성진씨와 곡과의 상성도 그 순서로 잘 맞는 것 같아서요. 프로그램북을 다시 읽어봤더니 쇼팽의 '애증'이 잘 드러난 곡이라고 해서 격뿜...(저는 실생활에서나 2차에서나 참 애증 좋아합니다. 그 취향 어디 안 가네여)

제가 오케스트라나 4중주는 쫌 보러 다녔는데요, 피아노 공연은 참 오래간만이었어요. 그래서 60분간 인터미션 없이 25분-25분-10분 이렇게 이어지는 본공연에서 그냥 사람 하나 척척척 들어가서 쓱 인사하고 척 앉아서 바로 연주하고 바로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건 좀 새로웠습니다. 보통 순서대로 악기 이리저리 조정하고 지휘자 들어오고 낑낑 조율하고 하느라 시간 대박 걸리는데 이 사람은...아니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심하게 군더더기가 없더라구요.

더 대박은 본공연 60분 뒤에 벌어진 일이었는데요, 잠깐 일어서서 박수 좀 치고 있으니까 바로 또 척척척 그래 덕후들아 니들이 원하는 걸 알아(라고 말했다는 건 아닙니다;)하고 나와서는 바로 앉아서 치고 또 나갔다가 박수 계속되니까 두번째로 또 앵콜하고 나갔다가 또 인사 좀 할 것 같이 손 흔들더니(으음? 그의 어색한 미소와 손 흔들기는 머글인 저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바로 앉아서 또 세번째 격정적인 연주;;;

그래서 저는 앵콜곡으로

1.쇼팽 스케르초 4번

2.쇼팽 스케르초 1번

3.쇼팽 스케르초 3번을 35분동안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조성진씨 왜이러신대요;;;; 팬들 반응 봐도 세번째는 웅성웅성하는 거 보니까 딴 데서 이렇게까지는 안 한 모양인데 경주 땅이 마음에 들었나 격한 일정 소화하시다 보니 더 업글되셨나;; 근데 더 무서운 건 세 시간도 안 돼서 저녁 공연할 건데 그 공연은 더 퀄이 좋을 것 같은 느낌조차 들었단 말이죠...

조성진 한번 쌩귀로 들어보자 했다가 계탔네요 계탔어...오늘 일기써야지 했는데 이제 썼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자야죠. 아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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