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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닐 메타,아디티야 아가쉐,파스 디트로자(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의 PM(프로젝트 매니저)입니다. 그래서 PM이 하는 일이 뭔데?라는 질문을 위해 색인에 PM이 무엇인지도 충실히 수록해 놓았습니다. 좀 언피씨한 얘긴데, 이름만 듣고도 아아 인도계열이겠다 역시 IT...했는데 나중에 저자들 사진 보니 맞더라능...)

출판사: 윌북

국내 출간일: 2021-01-20 (넵, 싱싱합니다)

원제 : Swipe to Unlock (그런데 말입니다. 'IT 밀어서 잠금해제'라고 충실히 번역하는 게 좀 더 섹시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이건 저 영어 원제만 봐도 영드 셜록의 에피소드 201이 생각나며 아아 아이린 애들러 잘 지내죠 하고 감동으로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저같은 인간이나 그렇고 'IT 좀 아는 사람'이라는 로칼라이징 제목이 좀 더 한국에는 맞는 거 같습니다. 이 300여페이지의 책 하나로 IT 문외한들도 IT 좀 아는 사람으로 행세할 수 있다니, 얼마나 한국인들의 욕망에 들어맞게 가성비 맞는 얘깁니까。실제로도 베스트셀러 올랐으니까 출판 전문인 센스가 낫네요. )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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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IT 기초 지식
1장 소프트웨어 개발
구글 검색은 어떻게 작동할까?
스포티파이는 어떻게 나에게 맞는 곡을 추천해줄까?
페이스북은 뉴스피드에 표시되는 게시물을 어떻게 정할까?
우버, 옐프, 포켓몬고의 기술적 공통점은?
틴더는 왜 페이스북으로 로그인하라고 할까?
《워싱턴 포스트》 기사는 왜 제목이 두 개씩 있을까?

2장 운영체제
블랙베리는 왜 망했을까?
구글은 왜 제조사에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제공할까?
안드로이드폰에는 기본으로 깔리는 쓰레기 앱이 왜 그렇게 많을까?
세계 3위 모바일 운영체제는 뭘까?
맥도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3장 앱경제
앱 다운로드는 왜 대부분 무료일까?
페이스북이 사용자에게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떼돈을 버는 비결은 뭘까?
뉴스 사이트에는 왜 그렇게 ‘협찬기사’가 많을까?
에어비앤비는 무엇으로 돈을 벌까?
로빈후드는 주식거래 수수료를 안 받고 무엇으로 돈을 벌까?
광고나 사용료 없이 앱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있을까?

4장 인터넷
‘google.com’을 입력하고 엔터를 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터넷으로 정보를 전송하는 것과 핫소스를 배송하는 것의 공통점은?
정보는 어떻게 이 컴퓨터에서 저 컴퓨터로 이동할까?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는 왜 산맥까지 뚫어가며 광케이블을 직선으로 깔았을까?

2부 IT 업계의 핫이슈
5장 클라우드 컴퓨팅
구글드라이브와 우버의 공통점은?
클라우드 속에 있는 것은 실제로 어디에 존재할까?
왜 포토샵을 소유할 수 없게 되었을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왜 스스로 오피스를 비웃는 광고를 내보냈을까?
아마존 웹 서비스는 어떤 서비스일까?
넷플릭스는 신작 공개일에 폭증하는 시청자를 어떻게 감당할까?
오타 하나로 인터넷의 20%가 다운된 이유는?

6장 빅데이터
타깃은 어떻게 아버지보다 먼저 딸의 임신을 알았을까?
구글 같은 대기업은 어떻게 빅데이터를 분석할까?
아마존에서는 왜 10분마다 가격이 바뀔까?
기업이 많은 데이터를 소유하는 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7장 해킹과 보안
범죄자가 컴퓨터를 ‘인질’로 잡는 법?
온라인에서 마약과 도난 신용카드 번호는 어떻게 거래될까?
와츠앱은 어떻게 와츠앱도 읽을 수 없게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걸까?
FBI는 왜 애플에 아이폰 해킹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을까?
해커는 어떻게 가짜 와이파이 네트워크로 개인정보를 탈취할까?

8장 하드웨어와 로봇
바이트, KB, MB, GB가 뭘까?
컴퓨터와 휴대폰의 CPU, 램 같은 사양은 무엇을 의미할까?
애플은 왜 구형 아이폰을 느려지게 만들까?
휴대폰의 지문인식은 어떤 원리로 작동할까?
애플페이의 작동 원리는 뭘까?
포켓몬고의 작동 원리는 뭘까?
아마존은 어떻게 1시간 배송 서비스를 제공할까?
아마존은 어떻게 30분 만에 물건을 배달할까?

3부 IT 비즈니스의 미래
9장 사업적 판단
노드스트롬은 왜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할까?
아마존은 왜 손해를 보면서까지 프라임 회원에게 무료배송을 할까?
우버는 왜 자율주행차가 필요할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왜 링크드인을 인수했을까?
페이스북은 왜 인스타그램을 인수했을까?
페이스북은 왜 와츠앱을 인수했을까?

10장 신흥국
서양 IT 기업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려고 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케냐인들은 어떻게 피처폰으로 모든 것을 결제할까?
위챗은 어떻게 중국의 ‘공식’ 앱이 됐을까?
아시아에서는 어떻게 모든 것을 QR코드로 결제할까?
동서양 IT 기업의 전략은 어떤 면에서 다를까?

11장 기술정책
어째서 컴캐스트는 사용자의 검색 기록을 팔 수 있을까?
무료 모바일 데이터는 어떤 점에서 소비자에게 해로울까?
영국 의사가 구글 검색 결과에서 자신의 의료사고 기사를 없앤 방법은?
미국 정부는 어떻게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상산업을 만들어냈을까?
어떻게 하면 기업이 데이터 유출에 책임을 지게 만들 수 있을까?

12장 미래 전망
자율주행차의 미래는?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갈까?
가짜뉴스 영상과 음성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은?
페이스북은 왜 가상현실 헤드셋 개발사를 인수했을까?
수많은 기업들이 아마존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뭘까?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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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목차만 봐도 현대인들이 이 중 하나 이상에는 낚여들어가게 잘 구성해놨습니다. 아, 그리고 알라딘에 리뷰 영상 링크도 있길래 저보다는 훨씬 정석적인 분이라 가져와 보았읍니다.

youtu.be/iyze_L4OAVc

그나저나 저 알라딘 홈페이지 카드 뉴스의 입사 10년차 시니어분 말인데요....도대체 꼰대인턴; 뭐 그런 걸로 입사했는지 왜 주름에 흰머리가 성성하고 IT에는 백지에 가까운 걸로 설정해놨는지 모르겠습니다. 10년차야 이미 어릴 때부터 PC 접하면서 산 애들이라 오히려 지금 어린 세대보다 더 능숙할 때도 있고(요새 애들은 모바일에 익숙해서 PC는 좀 모르는 구석이 있;;;) 하다못해 저같은 70년대생 X세대-_-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다 겪으며 적응해가는데 말이죠. 

 

X세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디지털 초창기부터 접해서 쫌 그런 건 있어요. 괜히 니들이 윈도95를 아냐 보석글을 아냐 뭐 이런 쓸데없는 부심만 있고 현재의 정신없이 바뀌는 조류에는 허겁지겁 살아남으려고 조각조각 업데이트를 해서 이게 어떤 맥락인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 건지 거시적으로 볼 시간이 없었어요. 저만 해도 망중립성을 두 줄 정도로 설명은 할 수 있는데 이게 어떤 점에서 논쟁이 되고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업데이트 한 거 다 까먹음(...) 그럴 때 이 책은 유용합니다.

 

업계에서 날리는 PM이라 그런지 일반인들이 어떤 수준이고 어떤 욕구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압니다. 이 분들은 이 책을 잘 상품화했고, 서브 상품도 책 안에 하나 만들었어요. '너네가 알다시피 우리는 페북, 구글, MS의 잘 나가는 PM이고 해서 잘 나가는 기업 취업 담당자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30페이지짜리 기막히는 템플릿과 매뉴얼이 있는데 말야, 이거 99달러에 전문업체에 팔던 건데 우리 책 '사서 읽은 리뷰' 아마존에 써서 인증해주면 그 매뉴얼 공짜로 줄게.' 이렇게 말이죠. 꽤나 혹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물건을 파는구나... 아마존을 그렇게 쩌는 존재로 그린 것도 이걸 위한 빌드업이었나...(아님)

 

아 맞다. 그리고 세계 IT 업계의 큰 흐름에 비하면 한국이 얼마나 작고 작은 존재인가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충 중국권의 서브시장쯤으로 보는 듯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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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영국 이코노미스트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발간일: 2020-12-15

2017년부터 새해를 맞는 저만의 의식 중 하나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서 나온 새해 세계경제대전망을 읽는 것입니다. 특별히 세계 잡지 중에서 이코노미스트를 제일 좋아하지도 않으며, 가끔 재수없어하며(영어가 너무 고급지게 현학적이라서 뜻을 짐작 못하면 자괴감이 아니라 외부에 대한 공격성으로 해결합니다) 세계와 서양을 보는 뷰에 비해서 한국을 비롯한 변방을 볼 때는 특파원들의 수준에 따라 굴곡이 심하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매년 초(사실은 그 전해 말)에 나오는 이 책은 매년 읽을 만 합니다. 

경제, 금융, 정치, 과학, 기술, 문화, 각 지역별 분석까지 다면적인 분석과 1년치 전망이 들어가는데 그 칼럼니스트가 앞의 개괄 섹션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 분야에서 짱먹는 사람들입니다. 온라인을 다루면서 유튜브 CEO가 쓴다거나, 지역 경제를 다루면서 핫한 도시 시장이 쓰거나, 국제를 다루면서 국제 기구 사무국장이 쓰는 식입니다. 그러니 이들의 분석은 자신들이 앞으로 1년간 할 일들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초석이고, 전망은 일부분은 자신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불완전하나마 자기 예언적이고, 그래서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나 한국 정치권과 언론에서 굉장히 얕게 다루는 탄소배출권과 녹색성장에 대한 광범위한 투자는 워낙 나라 내외 온도차가 크다 보니 꼭 보시라는 말밖에는 못 드리겠습니다.

보자... 또 뭐가 있나...작년의 전망과 작년의 실제를 비교하는 칼럼에서는 이코노미스트지가 오픈AI사가 개발한 AI GPT-2에 졌다고 인정하는데 가만 보면 순순히 인정하는 게 아닙니다. COVID-19가 얼마나,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재난이었는지 장황하게 늘어놓고 그래도 우리는 “중국의 주요한 변화로 인해 세계 경제에 엄청난 격동이 올 것”을 맞췄다고 합니다. 참으로 애매모호한 예언입니다. 주요한 변화가 대체 뭔지 알게 뭡니까. 차라리 인도 소년이 더 자세하게 예언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계경기 둔화와 트럼프 재선 실패는 맞췄다고 하는데...그래 잘했다.

보자.... 유럽 섹션은 자기들의 장기이다 보니 꽤 강하고 풍성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웨덴의 집단 면역 사태 후 달라진 내외적인 면에 대한 분석과 헝가리의 정치 분석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관광 산업에 많은 의지를 하고 있어서 경기가 특히 더 후퇴했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대해 꽤나 동정적인 분석을 하고 있었는데요...저도 그 흐름에 맞게 읽고 있다가 옆에 있는 스페인 토막기사에 확 깼습니다.

그래요...상황이 허락한다면 2021년 1년 내내 전세계에서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엄청난 축제를 열고 싶다는 거죠.... 제 1세계, 특히 남부유럽인들의 대책 없는 해맑음과 낙관주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어쩌면 저럴 수 있을지 놀랍긴 한데 부럽진 않아요. 이미 저는 자원 하나 없이 치열한 인간경쟁의 지옥도를 벌이는 K-사회에 익숙해진 몸...이제 느긋한 남쪽 유럽에 간대도 적응할 것 같지도 않아...

음, 그리고 중국은 작년에도 경제가 선방했고 올해도 가장 경제성장이 가장 눈부실 예정입니다. 국경선상의 여러 분쟁에도 불구하고 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혹은 미국을 뛰어넘는 국민 호감도를 얻어내고 있구요, 올해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을 거하게 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대외적으로 공표할 겁니다.(전 좀 낚인 게, 아시아 섹션에서 '두 거인 사이에서' 라면 당연히 중국과 일본에 낀 한국일 줄 알았는데 미국과 중국에 끼인 동남아시아 얘기였습니다, 쳇)

 

말 나온 김에 얹자면 한국 대접은 여전히 박합니다. 별도 분석은 없구요. 코로나 사태 대응이나 경기 선방에 대한 언급에서도 대부분 제외되어 있습니다. 뭐 굳이 으쓱으쓱할 필요는 없는데...하면서 읽다가 마지막에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해 경제 전망을 하는 섹션에 등장한 걸 발견했습니다. '관전 포인트'로 '트럼프와의 뜨거운 사랑에서 깨어난 김정은이 다시 핵 문제로 어지럽게 할 것이다' 뭐 이런 언급 발견. 그래 참 퍽이나 흥미진진하겠다.

 

많이 투덜거렸지만 나름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었고, 권할 만큼은 됩니다.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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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 -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은이),
강주헌 (옮긴이)
김영사(출판사)
2019-06-10(출간일)
원제 : Upheaval: Turning Points for Nations in Crisis (2019년)

읽었다고 말하나 사실 읽지 않은 책 탑 오브 탑에 꼽히는(...)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한국을 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코스트코 사장처럼 '한국만 생각하면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라거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한국 캐릭터를 등장시키거나 하지는 않지만 한국 인터뷰도 달갑게 꽤 많이 합니다. 한국에서 총균쇠가 세계 3위 판매 실적을 거뒀거든요. 이번에는 영문판과 한국판이 세계 최초로 동시에 출간되었을 정도예요. 그래서 '총균쇠'를 읽었을 때 혼자 열받았었던 '일본이나 한국이나 너네 민족 뿌리도 같고 한데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이런 새수빠진 소리는 이제 안 하겠지 하고 좀 안심을 하고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결론은요? 사람 쉽게 안 변합니다. 특히나 다이아몬드 교수처럼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서 주된 정보를 구하는 부류들은  특히나 경험의 함정에 잘 빠져요. 그 함정은 전체적으로 보자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꽤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총균쇠보다는 친절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연구의 방향, 책의 구조, 그리고 책의 목적에 대해 꽤나 간명하게(이 사람치고는) 설명합니다. 구조는 미시->거시->미시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개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위기 극복에 영향을 주는 주요 열두가지 요인 모델을 현대사의 일곱 국가에 적용시켜 위기 대응 과정을 설명하고 현대에 가장 중요한 환경 등 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시사점을 던집니다. 개인이 국가 사례에서 어떻게 통찰을 얻을 수 있는지는 각 사례마다 흩뿌려져 있으니 알아서 줍줍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국가적 위기 해결을 위한 주요 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 

②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국가적 책임의 수용 

③울타리 세우기. 해결해야 할 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조건 

④다른 국가의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지원 

⑤문제 해결 방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국가의 사례

 ⑥국가 정체성 

⑦국가의 위치에 대한 정직한 자기평가 

⑧과거에 경험한 국가 위기 

⑨국가의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 

⑩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

 ⑪국가의 핵심 가치 

⑫지정학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요렇습니다. 

물론 위기의 유형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핀란드와 일본처럼 외국의 공격 등 외부 요인으로 위기를 맞을 수도 있고, 칠레와 인도네시아처럼 정치적 갈등 등 내부 요인으로 위기를 맞은 국가도 있으며,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처럼 2차 대전 이후 점진적으로 확대된 위기를 겪은 국가로 분류해서 각각 열두가지 요인 모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요인과 선택이 불가능한 요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위기를 극복해 나갔는지 설명합니다.

 

문제는 이 사례의 첫번째인 핀란드가 꽤나 우울하고(2차 세계 대전 언저리에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국민의 몇 분의 일이 날아가고 영토도 꽤나 줄었습니다.) 장황한 서술이라 핀란드의 벽을 넘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립니다. 그래도 읽을 만 합니다. 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완독한 여자인걸요. 성경 개역한글판 구약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나면 세상 어떤 책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간 핀란드에 대한 조소섞인 '중립국의 탈을 쓰고 러시아에 붙어서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평을(최근에 읽은 부스의 책도 이런 식이었음) 들춰보면,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나 한국처럼 '지정학적 위치를 바꿀 수 없으며 매우 중요하고 골치아픈' 나라에서 참고할 만한 사항 몇개를 줍줍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델 자체를 따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두번째로 일본 말인데요, 일본은 19세기의 개항 당시에는 서양의 외세 세력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힘의 균형도 전혀 안 맞고. 하지만 일본은 핀란드와 달리 서양 세력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해달라는 거 적당히 해 주면서 외국 유학 지원도 받고 시간을 벌어서 훌륭한 침략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일본 지도에 동해가 'sea of japan'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_= 어차피 표기에 분쟁이 있으니 영문판이나 일본판에 저러는 거야 별 상관이 없는데 한국에 팔아먹으려고 들어왔으면 '동해'라고 로칼라이징하는게 편집자의 자세 아니겠습니까. 제 입장에서 더 심각했던 건 조선통신사를 '외면적으로는(중국 등에 명목적으로 내세울 명분으로는' 공물의 형태를 취하면서...'라는 부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통신사를 문화 교류를 위해 일본의 초청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통신사가 주로 문물을 가르쳐주는 식이었다고 역사 교과서에 서술합니다. 일본에서는 통신사가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 조선이 일본에게 공물을 바치는 식이었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형식적으로'라는 단서를 달면서 일본의 주장을 고대로 싣는 것은 마무리에서 '자료 조사에 큰 공을 세운 일본인 어시스턴트'의 내용을 비교 검증할 사람이 없었다는 얘깁니다. 

 

승질은 그만 내고, 일본편에서 줍줍할 수 있었던 유용한 통찰은, 메이지 유신은 일본인들이 다른 국가의 사례를 충분히 조사하고 취사선택하여 자신에게 맞는 구조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만 2차세계대전에는 의사결정자인 군부 세력들이 주적인 미국 등에 대한 해외 경험이 일천하여 적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못해서 망해버렸다는 얘기였습니다. 역시 큰 돈을 주고 해외 연수를 시키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칠레와 인도네시아는 자국민 탄압 얘기가 너무 꿀꿀하고 익숙해서(...) 넘어갔고,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미 알고 있는 사례라 큰 반전 없이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말미에 현재 지구가 공통으로 당면하고 있는 환경, 분열 위기에 초강대국인 미국이-트럼프 치하에서- 열두가지 요인에서 어떤 부족함을 보이는가는 좀 시원하긴 했는데 결국 그 미국에 영향을 받는 나라로서 굉장히 꿀꿀하기도 했습니다.

 

나라 얘기는 나라 얘기고, 결국 저는 개인으로서 위기 극복 모델을 좀 써먹어보기로 했습니다. 특히나 일본이 제 2차세계대전 이후에 빠진 '자기 연민'을 피하기로 말이죠. 저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상대 빌런들에 대해서 피해자로 제 자신을 규정했었는데요, 이제는 슬슬 벗어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일방적인 자기 연민은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다이아몬드 교수님. 다음에도 한국 시장이 기대되신다면, 특히 한일사 부분에서 교차검증할 에디터를 두심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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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나 아렌트

번역: 김선욱

출판사: 한길사-한길그레이트북스

책소개(알라딘)-한나 아렌트의 저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책. 이 책에서 체계화 된 '악의 평범성' 에 대한 고찰은 "악의 문제에 대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여"로 평가 받는다.

1942년 1월 독일 베를린 근교. 나치의 고위관리들이 모여 유대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the final solution)에 필요한 계획을 논의한다. 여기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1906-1962)은 문제의 책임을 맡아 '마지막 해결책'인 유대인 대량학살의 집행자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중동을 전전하다 1960년 5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에서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된 아이히만은 예루살렘으로 이송돼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아이히만의 재판 소식을 들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정됐던 대학 강의를 모두 취소하고 잡지 '뉴요커'의 재정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한다. 그리고 보고서 형식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뉴요커에 연재했다.

아렌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자"였다. 심지어 그는 전혀 도착적이거나 가학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머리에 뿔이 난 '괴물'이 아닌 평범한 한 인간이었던 것. 책은 이러한 아이히만의 행동을 세 가지의 무능성 -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으로 구분하고, 이로부터 '악의 평범성'이 생겨나는 과정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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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된 계기는 간단했습니다. 책의 명성은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위용을 보고 잠시 들춰보니...

자기 전에 읽으면 저를 잘 재워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_-;;;

그리고 2주간 힘겹게 꾸역꾸역 자기 전마다 읽으면서 그 믿음은 이윽고 현실이 되었습니다. 마치 의식의 흐름과 같은 작가의 서술방법과 원전의 만연체와 번역체를 그대로 고수한 번역자(근데 이 분, 한나 아렌트 저작은 거의 다 했더라구요?;;;)의 환장미 넘치는 콜라보는 저의 신경을 피곤하게 만들어서 잘 재워주었으나, 가늘어진 신경줄이 도중에 자꾸 깨는 것까지는 막진 못했습니다. 아이히만씨 이미지가 너무 강력했거든요.

 

 

 사실 대표 자료 사진이라고 책 앞머리에 있는 예루살렘 법정에서의 아이히만의 모습은 한나 아렌트가 말했다시피 '평범하다'라고 하기에는 기괴하고 소름이 오싹 끼치는 느낌입니다. 신경증 때문에 고개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요, '나는 악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도 내 자리에 왔다면 나와 같은 일을 했을 것이다'라는 아이히만의 항변이 안 먹힌 건 저 이미지 탓도 있었을 겁니다. 하긴 뭐 아무리 천사같은 외모를 가졌어도 제 3국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경찰들에게 납치당했을 때부터 그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을 겁니다만.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가 주로 공들이는 내용은 '아돌프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과 '이런 아이히만의 범죄를 예루살렘 법정에서 얼마나 정의롭게 다루었는가'입니다. 이 테마를 위해 아이히만이 어떤 성장 이력을 지녔고, 어떻게 출세했는지를 꽤나 자세히 서술해요. 놀라웠던 것은 제가 이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유대인 학살 일급 전범'으로서의 이미지로는 뭔가 굉장히 장군급의 무시무시한 이력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이히만은 하류층 가정에서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로 자라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학교를 중퇴하고, 이런저런 영업사원 일 말고는 사회생활에서 이렇다한 이력을 쌓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세를 확장하고 있던 나치스에 들어가서 유대인 전문가로서 유대인을 독일 제국 밖으로 이주(추방이죠 뭐)시키는 임무를 꽤나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그리고 히틀러의 정책이 '전 유럽에서 유대인을 절멸시키는 것'으로 바뀌자 아우슈비츠 등 강제수용소가 있는 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죽음의 전 단계까지 이동시키는 일을 열정적으로 수행합니다. 자신을 '하수인'이라고 변명해도 될 만한 것이, 그는 유대인 이주에 관한 일만 수행했고, 출신이나 좁은 전문성으로 승진은 중령급까지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 문제에서 한 우물만 파다 보니 유럽의 각 국가에서 유대인 이동을 위해 하는 전형적 절차를 고안하고, 복잡한 동선을 조정하고 이동을 완료하기까지 너무 많은 부분에 관여했어요. 이 '이동을 위한 전형적 절차'는 이러합니다.

1. 한 지역에서 유대인 고위 계층으로 이루어진 유대인 위원회를 설립합니다.

2. 유대인 위원회는 해당 지역의 유대인 명단을 확보하고. 아이히만이 전달하는 독일 제국의 지침에 따라 노란 별을 달게 하고 개인의 사유 재산을 한 곳에 모읍니다.

3.아이히만은 독일 제국의 이름으로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독일제국 동쪽으로 유대인 이동을 시작합니다.

4. 유대인 위원회를 신뢰한 유대인들은 너무나 놀라울 정도로 순순히 지침대로 이동하고, 이동 중에 가스 열차로 살해당하거나 집단 노동을 견디기 힘든 사람들은 단체 수용소에서 가스실에 갑니다. 독일 회사에서 대가 없이 부과하는 강제 노역은 남은 튼튼한 사람들도 죽게 만듭니다. 

'왜 유대인은 그렇게 큰 저항없이 죽게 되었는가'라고 힐난해서는 안 되지만, 정상적인 의문으로 간직할 수는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협상에 굉장한 재능을 가져서 유대인 고위층에게 유리한 협상을 잘 이끌어냈고, 상당 부분에서 고위층은 가장 많이 살아남았고, 리더들을 신뢰한 유대인 대중들은 전쟁의 말기까지 별 저항없이 가스실로 끌려갔습니다.

여기서 유럽-즉 독일제국에 합병되거나 주축국이거나 상당 부분 협력한 나라들에서 유대인 학살을 어떻게 대응했는가는 나라별로 굉장히 다릅니다. 루마니아처럼 아이히만을 비롯한 독일인들이 채 손을 쓰기 전에 너무나 열심히 학살해버려서 독일이 투덜거릴 정도의 나라도 있고, 덴마크나 노르웨이처럼 독일에 정치적으로 협조적이었으나 유대인에게 살 길을 제공해서 거의 살아남게 만든 나라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스펙트럼 사이에 폴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등의 나라가 있어요. 이들의 독일과의 정치적 관계나 반유대주의, 그리고 유대인의 그 나라 내 입지에 따라서 어떻게 이런 대응이 극과 극으로 갈라지는지에 대해서 아렌트는 부분적으로는 설명합니다만 우리가 가장 본능적으로 예상해 볼 수 있는 하나-국민성에 대한 언급은 극도로 아낍니다.

아이히만은 유럽 각 나라에 직접 나타나서 이동 관련 협상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대리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죽음의 전 단계, 이동에 대해서 그가 한 일이 많다는 것은 뒤집을 수 없는 수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명의 유대인도 직접 죽이거나, 죽이라고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그를 한 민족의 절멸에 대한 책임을 묻고, 더 나아가서 인류에 대한 범죄로 유죄를 선고할 수 있을까요? 아렌트의 의견은 그럴 수 있다, 이지만 실제 예루살렘 법정에서 이러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중대한 절차상 결함이 있다는 입장입니다.(이 절차에 대한 논평은 철학과 법학이 마치 용 두마리가 뒤얽혀 용트름하는 것처럼 복잡하게 서술되어 있어 요약을 포기합니다) 

다시 아이히만으로 돌아가 봅시다. 아이히만은 단 한 명의 유대인도 직접 죽이지 않았고, 실제 동부 지역에서 학살 현장을 견학할 때마다 꽤나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송 일이 그 학살로 가는 계단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너무나 잘하려고 열심이었고, 전장 말기가 되어 저명한 상사들이 중단하려고 하자 '나는 총통 말만 듣는다'는 식으로 계속 수용소로 유대인들을 밀어넣으려고 했습니다. 도대체 왤까요;;;

일단 변변찮은 신분인 그가 출세를 위한 사다리로 유대인 문제에 집착했을 거라고 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열심이었고, 항명의 위기를 무릅쓰면서까지 일을 완결시키려고 하는 건 출세를 넘어선 거대한 집착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 양반은 심지어 칸트의 정언명법을 들이댑니다;;;

칸트 선생은 인간은 법에 대한 복종 이상을, 법의 배후에 있는 원리와 자기의 의지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 '법 배후의 원리'가 칸트 원래 의도인 '실천이성'이 아니라 아이히만에게는 '총통의 의지'였습니다. 총통이 유대인을 절멸하라고 했으니 법을 따르는 정도가 아니라 법의 제정자인 것처럼 아주 철저하게 행동했다는 겁니다. 아렌트 선생에게는 이게 독일인에게는 아주 일반적인 관념이라고 하네요;;; 아 무서워 독일인;;; 난 주축국하고는 별로 안 맞아 안 맞아;;;

아이히만은 유대인 6백만명을 죽이는 데 책임이 있습니다. 실로 거대한 악행이죠. 그런데 악행에 비해 그의 내면의 악은 실로 어디에나 있을 법하게 초라하고 평범합니다. 총통의 의지와 혼연일체가 되려는 동기는 있되, 그 행동에 반드시 필요한 건전한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이입이 결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을 수 있으며 이들이 요긴해질 상황에서는 거대한 악행으로 다시 나타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이 책이 왜 엄청난 비판과 격론의 대상이 되었을지 알 만 합니다. 1960년은 이스라엘이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고,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며,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거세게 외칠 때였습니다. 그런데 악마가 아닌 평범하고 생각할 줄 모르는 남자를 묘사하고, 그리고 이 남자에게 실행된 정의의 방법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으니 유대인이든 유대인이 아니든 아픈 곳을 찔린 느낌이었을 겁니다.

덧. 그리고 이 책은 '연애를 유명한 사람과 하지 말자'라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스승인 하이데거와 한때 연애를 했었는데요, 하이데거의 반유대인 사상으로 결별했습니다(후에 그럭저럭 화해했지만) 그런데 이 책은 하이데거의 사상이 제자인 아렌트에게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지만 직접적으로는 하이데거와 무관해요. 그런데도 제 3자가 아렌트를 평할 때마다 계속 하이데거 연애 염불을 욉니다. 하긴 보부아르 얘기할 때도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얘기를 빼놓질 않죠. 필요하지 않을 때는 좀 놨으면 좋겠습니다. 하이데거 얘기를 할 때 아렌트를 빼먹을 때도 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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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화에 대해서는 애정만 있을 뿐, 뭐라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 따위는 가질 능력도 의지도 없으므로 잡문밖에 못 쓰겠습니다. 고로 번호 순으로 잡상만 조금 쓰겠습니다.

0.애정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전 한국영화에서 '여자떼주물'은 잘 되어야 다음 작품도 잘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는 망하건 말건 잘도 나오는데 하고 투덜거리지만 현실은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주인공 세 여배우가 다 마음에 듭니다. 고아성이 아역으로 울라불라불라숑인가 암튼 어린이 드라마에서 키워질할때부터 귀여워했었고, 이솜은 워낙에 냉미녀 스타일이라 얼빠의 기질로 좋아하고, 박혜수는...귀엽잖습니까.

www.youtube.com/watch?v=794uHZ55JDM

그 셋이서 이렇게 귀여운데 보러 가야죠. 

0-1. 그리고 개봉 첫날에 팔아주겠다고 두 달 전에 코로나를 무릅쓰고(아, 그러고 보니 그때 전국 신규 확진자가 몇십명대였어요...그립네여) 세 표 보태겠다고 부모님을 모셔갔는데 한 분은 도덕의 화신이고 다른 한 분은 조금이라도 텀이 있으면 주무십니다. 그런데 두분 다 아주 개운하고 말끔한 표정으로 재밌게 잘 봤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마지막으로 모셔간 영화가 국가부도의 날이었으니께 그것보단 마음이 편하셨겄지... 효도했으니 더욱 더 기특합니다.

1. 이 영화에 대해서 이 시대때 태어나지 않았거나 혹은 사리분별을 못날 나이였던 젊은이들이 저게 어디가 95년이냐, 80년대 소품이나 설정을 95년이라고 하는 거 아니냐 라고 하는데 그분들이 보셨던 건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여'라거나 오렌지족의 하루 영상이나, 혹은 90년대를 고증한 영상물 정도일 겁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줄여서 삼토반의 그 당시 고증은 다른 영상물보다 꽤 정확한 편입니다. 젊은이들이 요즘 세상이 힘들다 보니 90년대를 실제보다 번영하고 낭만적이고 꿀빨았던 세대로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당시는 꽤 후졌습니다. 엔간한 레퍼런스는 일본에서 가져오고, 비만 오면 페놀 혹은 페놀보단 덜 유독한 유해물질을 공공연히 방류하던 시대였어요. 그리고 그 공장을 밀고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지어졌...tmi.

 

 

그리고 그 시절의 그리움을 못 잊는 분들은 아직도 회사의 윗자리에서 고색창연한 일을 시키시는데요, 저는 2010년대 중반에 평일 네시 반마다 윗분의 요구로 저런 단체 체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2. 예고편에서도 모습을 나타내서 알고 있었지만, 영어 요정(왜 좀 집요정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타일러는 연기를 곧잘 했습니다. 그리고 타일러가 너무 쉬운 수준의 영어를 가르치자 삼토즈 제 4의 멤버라고 해도 무방한 분(이솜이랑 같이 서 있으면 길쭉길쭉 현대적 미모라 눈이 훤했습니다)이 손을 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여상에서 1, 2등하고 들어온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빨리 가죠'라고 했는데 이해가 갑니다. 95년에 7~8년차가 쌓이려면 88년에 들어왔을 텐데, 그땐 속된 말로 '날리는' 여상들은 입결이 엔간한 인문계 여고보다 높았어요. 그 자부심과는 별로 상관없는 단순 보조 업무를 하게 될 거라고 입사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3. 대졸(음...이걸 일본처럼 종합직/일반직 이렇게 나눌 수도 있고 5급/6급 이렇게 급수로 나눌 수도 있는데 삼진그룹의 정확한 관리체계가 기억이 안 나서;) 사원들은 고졸 사원들에 대해서 마치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하면서 각종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는 서류나 대화를 마구 흘립니다. 알아들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했겠지요. 그리고 잡무와 서류관리하는 여직원은 안 바뀌는게 자신들에게 편하기 때문에 입사 이래로 발령지를 바꾸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이번 사건처럼 필요한 때가 생기면 교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역적에서 아모개가 말한 것처럼 '윗분들은 노비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노비들은 하는 일이 그것밖에 없다 보니 주인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고 한것처럼요.(아, 고졸사원 비하 의도 전혀 없습니다)

 4. 마케팅부에는 부장도 여성이고, 입사한지 몇년 안 되어 이솜과 동년배;로 보이는 대졸 여직원도 있습니다. 93년쯤에야 대졸여성 대규모 공채가 이뤄졌던 걸로 봐서, 여성 부장은 특채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말단에만 여성직원들을 겨우 배양하기 시작한 다른 그룹에 비해 오너 가족도 아닌 듯한 여성 부장이 있는 삼진 그룹은 꽤나 비범합니다.(그래서 '그 그룹같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걸지도;)

4-1. 대졸여직원은 이솜이 뛰어난 아이디어로 주목을 받자 이솜이 미모로 임원들을 꼬셔;서 성공을 이뤄낸다는 식으로 모함하는데요, 그녀는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녀들은 입사한지 채 3년도 안 되었을 터이고 남자동기들보다도 군경력 3년은 승진에서 밀릴 테고 또 여러가지 '충성심'이나 '결혼육아'문제로 밀릴 터인데, '대리' 그룹으로 밀고 올라오는 또다른 '고졸여직원'그룹하고 어떻게 기수를 나누고 승진 TO를 딸지 그걸 고민할 때예요.(여담인데 제가 알고 있는 모 회사에서는 그렇게 고졸여직원들을 한참 승진 안 시키고 있다가 어느 순간 승진 물꼬가 터지면서 한참 나이어린 대졸 여직원들이 와르르르 승진에서 밀리고...먼산) 물론 그녀의 행동이 그런 경쟁심에서 나왔다고 하면 말은 되겠지만 너무 치졸하고 앞뒤를 잘 못 보는 캐릭터로 보여서요.

아무튼 여성의 연대는 참 좋은 얘기입니다만, 지배계층이 여성을 여러 층위로 나눠서 가두리양식장에서 경쟁을 시키면 꼭 연대가 잘 되는 건 아닙니다.

5. 상무 역을 맡은 백현진씨 말인데요. 전 보자마자 알았습니다. 당신이 여기 왜 나와...이분은 20여년 전 어어부 프로젝트 할 때도 알았고, 잘 나가는 화가일 때도 알았고, 자우림하고 합동무대할 때도 알았고...그리고 특유의 패도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나오자마자 분위기를 휘어잡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 분이 무슨 드라마에서 개장수로 나와서 사람 여럿 무섭게 잡았다던데 보고 싶네요. 그리고 영화 황해의 개장수와 쌈붙으면 누가 이길지도...;
근데 절 모르지만 절 싫어하게 생기심.

6.이 영화의 전-결 부분 말인데요, 너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결말'이라고 봅니다. 아니 일단 내부고발자로 시작되었잖아요. 큰 그룹에 뼈를 묻은 직원들 입장에서 내부고발자를 반길 리 없습니다. 그러면 이걸 하나 더 꼬는 사건-검머외 사장의 M&A  음모가 하나 들어와야 됩니다. 그래야

오너집단인 회장-자신의 오너십을 지키고 빡대가리인 상무 아들을 다시 CEO로 내세울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직원-일본에 회사가 넘어가서 발생할 대규모 해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삼토반즈-진실을 알리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세 개 집단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악의무리인 검머외 사장을 무찌를 수 있는 겁니다. 솔직히 상업영화인데 결말은 좀 밝아야죠. 전 아직도 스윙키즈의 충격적인 결말에서 치유가 못 된 사람입니다.

6-1. 뭐 좀 전 직업 때문에 떠오른 거라면... 그 당시 재벌집단은 워낙에 순환출자로 구조가 꼬이고 꼬여 있었는데 제일 큰 회사 주주총회로 어케 쉽게 해결이 됐나봐요. 삼진은 역시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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