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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퇴근해서 정말 지쳤을 때 먹을 요리' 얘기하다가 번아웃 레시피 얘기를 제가 꺼냈거든요. 그때 찍어놓은 제 책 사진도 있길래(이누카이 쓰나씨 죄송.... 그래도 컨텐츠 나와 있는 건 네 장이니 봐 주시길;) 잡담겸 올려 봅니다.

저는 요리책 읽는 걸 좋아합니다. 제게 요리책은 읽거나/사용하거나 둘 중 하나죠. 그 중 요즘 트렌드인 '대충대충 만드는 요리'책 류도 여러권 있습니다. 오늘은 그 대충대충 레시피북 얘깁니다.

1. 번아웃 레시피
이누카이 쓰나 (지은이), 김보화 (옮긴이) | 벤치워머스 | 2020년 4월
이 책은 바쁘고 지친 현대인들이 '사먹는 건 질렸고, 그래도 뭘 만들어서 먹고 싶다'가 느껴질 때 요리 기술 거의 없이 할 수 있는 레시피를 HP 5%/20%/50%/80% 남았을 때로 각각 분류해서 실어놓은 책입니다.

저 표지에 끌려서 작년 이맘때쯤 갓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을 샀었습니다.

이건 HP 5%일 때 만드는 요리들 예시. 사실 이 책의 기획의도와 제일 맞는 것은 HP5%/20%일 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리시간은 1분~5분 내외고 대부분은 레토르트 꺼내서 따고 담고 부재료(파 등등)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서 담고 렌지나 토스터에 휙 돌리고 그 수준입니다. 요리가 아니라 거의 조합 수준이에요. 아참, 그래도 60%/80%일 때 카테고리가 의미가 없는 건 아닙니다. 여기선 대부분 고탄수 레토르트의 조합입니다만 죄책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냉동야채를 쓰는데 힘이 남아돌 땐 그 냉동야채를 다듬거나 사 놔야 되거든요;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되었을 때는 평이 썩 그리 좋진 않았는데, '이게 무슨 요리냐' '사먹는 것보다 뭐가 이게 건강하냐' 비판이 주였습니다. 사실 뭐 워낙 레토르트 왕국인 일본에서 달짝지근한 양념된 가공식품(이 분들 마요네즈랑 치즈 엄청 사랑합니다)을 조합하는 거다 보니 딱히 건강식이라고 하긴 힘듭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히 이런 거라도 조합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컵라면보다는 건강한 요리들인데, 여기 요리들이 컵라면에 물 붓고 기다리는 수준이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하다가 늘면(+시간이 어쩌다가 생기면) 요리에 재미가 붙어서 하나둘씩 할 수 있는 거죠.

2. 귀차니스트 즈보라의 아침밥/후다닥 아침 레시피
오노 마사토 (글),최유진 (옮긴이),오다 마키코 효형출판 2017-08-01


'즈보라'라는 일본어 자체가 '대충대충'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두 책 다 같은 일본 작가가 썼구요, 아침밥을 먹느니 차라리 5분이라도 더 자는 걸 택할 평범한 직장인을 대상으로 '그래도 뭐라도 먹을 기대로 아침을 깨는 게 낫지 않겠니'하고 삶은 계란부터 차근차근 풀어놓는 아침 레시피 북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즈보라씨가 귀차니스트 개그할 때랑, 요리 여러가지를 늘어놓다가 무리수 개그할때, 그리고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나 파르페 등 '뭐 이런 걸...' 싶을 때 '괜찮아요, 살 안 쪄요, 아침이니까!'하고 데헷 거릴때 등등입니다. 주로 개그군요. 네, 제게 ㅇ이 책은 개그북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는 집에서 해 먹어 보았습니다. 한국 출판사 전언에 따르면 괴식같은 '토마토 치즈 덮밥'도 맛있다고 합니다;

3. 20만원으로 즐기는 혼 밥 한달 생존기+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혼밥 한 달 생존기(야채편)
오즈 마리코 (지은이), 김혜선 (옮긴이) | 숨쉬는책공장 | 2018년 2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일본인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이분은 도쿄에서 사무직 직장을 다니면서 만화를 그리는 투잡러인데,월 식비 10만원+외식비 10만원=총 월식비 20만원으로 '슬렁슬렁 즐겁게' 살고 계신 분입니다. 가끔씩 돈이 남기도 함 ㄷㄷㄷ 그 와중에 스위츠나 커피나 맥주도 사먹음요. 그리고 살고 있는 집도 3.3평짜리 1LDK고 200L짜리 냉장고의 냉동고 면적이 47L인데 '넉넉해서 많이 넣을 수 있다'라고 좋아합니다. 화구 1개짜리 레인지를 쓰면서 '요리 간단하게 할 수 있어요'를 시전하는 거 보면 뭐지 싶어요;;;

실제로 보면 꽤나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즐겁습니다. 제가 워낙에 이런 생활류 만화 좋아하는 것도 있고, 본인이 '이런 나'를 꽤나 충실히 즐기고 있어도 같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식품 원재료가격(특히 소분)이 한국보다 싸진 지는 몇년 되어서도 있습니다. 저 재료로 장을 보면 한국에선 1.5배~2배는 족히 나올 겁니다;;;

뭐, 이래저래 투덜거려 놨지만 다섯권 다 머리 비우고 싶을 때 재독 다독하는 책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레시피를 써먹을 생각 안 하고 그저 보면 재밌을 책들이에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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