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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전 얼리버드 티켓은 5월~6월간 사용 가능합니다. 원래 5월만 사용 가능이었는데 수요예측을 잘못해서 긍가 사람이 엄청 몰려서 6월까지로 연장을 해줬죠. 저는 거기에 맞춰서 비행기를 예매하고 6월 8일에 서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다녀갔습니다. 그 전부터 사람 많다는 악명은 들어왔는데 설마 평일 쌩아침 열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많았습니다.

제가 탄 버스는 예술의전당에 정확하게 내리는 버스였는데요, 이미 내릴 때부터 대학생들과 아이를 동반한 어머님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그냥 그들에게 묻혀서 갔습니다. 한가람미술관에서 예매권을 표로 바꿔서 일행과 도킹해서 줄을 섰는데 줄이 줄이...엄청나더라구요. 줄 사진도 찍었습니다만 초상권은 소중하니까 포기. 관람 인원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대기시켰다가 입장하는 뭐 그런 시스템이었는데 30분 기다렸다가 들어가보니 그래도 내부 관람 인원이 너무 많아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하긴 한가람미술관이 전시를 잘 한 적이 별로 있었나; 아 이건 한국 전시 관리 쪽의 얘기지만 작품명과 설명이 너무 깨알같은 폰트로 되어 있어서 보기 힘들었습니다. 이건 제가 중년이라 그런 것 같기도;

 

이번 전시회는 프랑스 피카소박물관의 소장 110여점이 왔는데요, 그이의 길고 긴 연대에 따라 구성해 놓았습니다.

1.바르셀로나에서 파리, 혁명의 시대

여기에선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 없었습니다. 제가 초기 청색시대를 좋아하는데 그때 그림이 안 와서 좀 섭섭했음;

 

2.질서로의 회복,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

피카소가 고전주의 화풍을 그렸다는 썰은 여기서 처음 들었습죠; 그의 세번째 여인인가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생활하면서 고전주의를 잠깐 시도했었는데 의외로 구도도 멀쩡, 색감과 비례도 멀쩡하게 잘 그려서 아아 역시 멀쩡한 걸 잘 그리는 사람이 변칙도 잘 그리는 거였구나 생각했습니다. 어린 아들 그린 그림에서는 사랑이 느껴져서 잠깐 뭉클할 뻔하다가 17세의 모델 마리 테레즈와 바람나서 고전주의도 결혼생활도 파탄났다는 썰을 보고 그럼 그렇지 하고 혀를 찼습니다.

 

3.블라르 연작

이건 프랑스의 유명한 화상 블라르가 주문한 에칭 판화 연작입니다. 에칭답게 워낙 가늘고 꼬불꼬불해서 근시처럼 눈을 찡그리고 한참 보지 않으면 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풍운아 미노타우로스 연작에서(이말년 말고 미노타우로스에 이렇게 집착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니;) 그의 육체미와 양감에 대한 집착을 알 수 있었으며, 화가와 모델 시리즈에서는 모델은 이쁘고 어리고 쭉쭉한데 화가는 쫌 뭐랄까 제우스같이 권세있고 나이도 있고 좋게 말하면 풍채랄까 그런게 느껴지는 나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모델을 끼고 놀고 있길래 좀 입맛이 썼습니다. 애정은 차치하고 권력 관계가 그대로 느껴진다고나 할까요;ㅁ;

 

4.새로운 도전, 도자기 작업

니엡, 전 도자기 전문 작가가 이 방대한 작업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림과는 달리 여기서의 완성도는 좀 떨어져보였거든요. 하지만 원시적인 생명력은 참으로 엄청나서 그런 디테일들은 다 덮더라능. 아프리카 미술이 생각나는 작품이 꽤 많았습니다. 저는 목신이 새겨진 도자기가 맘에 들어서 일행에게 사져 사져를 시전해보았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5.피카소와 여인

여인이 바뀔 때마다 연대기가 바뀌었던 피카소답게 여인을 그린 테마를 따로 구성해놓았습니다. 거기서 제일 유명한 그림이 하단에 있는 이 '마리 테레즈의 초상'인데요, 저는 이 그림을 알고 있을 때는 피카소가 피카소했구나 하고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른 여인들을 그려놓은 그림들하고 한 방에서 비교를 해 보니까 애정 뿜뿜에 그녀의 미모와 눈부신 젊음을 어찌나 이상화해서 잘 그려놨는지, 이런 선녀가 따로 없는 거예요. 첨 봤을 때에는 뭐야 아바타에 나오는 족속인가; 했던 그녀의 청색 피부도 어찌나 청신함을 잘 형상화해놓은 거던지요...근데 이번 전시회에는 포함이 안 돼 있는데, 마리 양하고 깨질때쯤 그림하고 비교하면 또 다르다길래 보고 싶은 악취미가 생겼습니다.

6.전쟁과 평화, "한국에서의 학살"

네 이번 전시회의 슈퍼스타는 이거죠. 아예 방 하나를 그림 하나에 할애해놓았습니다. 그림도 가로 2m라 큰 편이었습니다만, 게르니카(8m)에서 나오는 압도성이나 감동은 떨어진다는 게 같이 간 지인의 평. 사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게르니카, 시체 안치소에 이은 반전 3부작 중 가장 평이 박한 편입니다. 이번 관람전의 주석에 따르자면...

사실 이 작품은 피카소가 프랑스 공산당에 기념비적인 입당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공개한, 정치 사상이 들어가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한국전이 냉전 시대의 비극이었고 유럽 각지의 공산당쪽에서는 미국을 등에 입은 남한의 북침썰을 제법 진지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보니 미제 총잡이가 한국 민중을 짓밟는 비극성을 생생하게 드러내주길 바랬는데...공개된 그림을 보니 썩 그렇게 미제와 한국 민중이라는 게 잘 드러나 있지도 않아서 실망을 했고, 미국은 미국대로 아니 우리 슈퍼스타 피카소가 빨갱이가 되더니 이런 그림을...해서 사망시까지 쫌 많이 힘들었다는 썰.

저는 이 그림 자체에는 아주 큰 감명을 받지는 못했는데 그림의 썰은 재밌더라구요. 특히나 오른쪽의 박해자-왼쪽의 피박해자 구도가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이나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과 궤를 같이 한다는 건 매우 흥미있었습니다. 둘 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라 긍가;

 

7.마지막 열정

깐느해변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 감상으로 끝.

 

보러 가실 분들에게 팁을 드리자면 어차피 얼리버드때는 사람이 너무 많을 거라서 7월 초~중순에 어린이들 방학 직전을 노리고 정가로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 잘 봤습니다만 어차피 언제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면 좋은 환경에서 보는 것도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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