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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공연 평 쓰기 전 서설:

- 해오름극장 2층 북라운지에는 패왕별희 관련 주요 책 두 권이 있습니다. 왼쪽 핑크색 책은 전설적인 경극 배우 메이란팡의 친우이자 동료인 경극작가 제여산이 집필힌 패왕별희 대본집이고 오른쪽은 영화 패왕별희 팬북이예요. 영화는 경극 패왕별희의 두 주역에 대한 생애를 다룬 영화라 극중극으로 약간 관련이 있습니다. 왼쪽도 창극하고 스토리가 꽤 차이납니다. 창극은 경극을 토대로 창극화를 시키고 1부(오강의 노래, 홍문연, 전술과 전략을 세우다, 십면매복)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과 한신, 맹인 노파, 어린 항우 캐릭터는 창극 오리지널입니다.

-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제여산의 패왕별희 대본집을 볼 가치가 있는 이유는, 경극의 역사와 이해 주요 남녀 배역 설정 초한전 배경 등이 나옵니다
정사에서는 항우의 전장마다 따라다니던 우희라는 애첩이 있었고 패왕 죽음 후 종적이 묘연하다는 얘기만 있는데 몇백년 지난 후세에 비극적인 사랑 얘기가 살이 붙기 시작합니다

- 근데 초반에는 이랬습니다
우희: 검을 주세요, 죽음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항우: ㅇㅇ(칼 줌)
우희: 으악 쥬금(자결)
...진짜 대륙인의 다이렉트함이란...이걸 항우가 필사적으로 말리고 쌍방 애절한 연애로 만든 게 제여산이 쓴 패왕별희라네요
...옛날 버전으로 봤으면 이게 뭐야 하고 승질냈을 듯

-아참 항우의 경극 분장에서
검은 안색-사납고 조급한 성격
처진 눈-박복함(눈 처진 자로서 슬픔)
얼굴의 일만 만자-단명하니 후세에는 오래 살라고 그려줌(...)
우희는 검무가 특기고 말을 탈 줄 아는 여성이라 일반 경극 여성 역할과는 다소 다른데 이게 복식에 반영되었대요

- X세대 소녀라면 다(글쎄요...) 그렇다시피 10대 때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를 봤었는데 영어 제목이 'farewell, my concubine(내 첩이여, 영원히 안녕)'을 보고 미묘했지요 요즘 치면 원앤온리 궁중로맨스인데 후궁으로 들어앉히려는 황제공(어이..남주) 본 느낌이랄까 근데 좀 찾아보니 우희 또는 우미인이라고 불렸던 절세미녀가 항우의 전장을 계속 따라다녔고 항우의 사후에 종적을 알 수 없었고, 항우에게 정처든 다른 여인이든 언급이 전혀 없는 건 사실이더라구요

- 그러니까 신분이 고귀한 게 공식이었던 항우에 비해 신분이 분분하긴 하나 미천한 건 확실했던 우희는 첩이나 시녀의 신분인 총희가 아니었을까 해요. 워낙 초한대전이 중요하고 반대쪽 유방이 여치와 결혼으로 정치적 결합을 다졌는데 항우가 정처가 있었으면 안 나왔을리가 없어요

- 물론 언제나 정처를 들이기 전에 첩이나 시첩을 먼저 들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긴 했죠. 하지만 고종의  첫사랑 이상궁처럼 왕이 사랑에 돌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항우는 애초에 그런 독재형 권력자였구요. 그래서 아마 우희는 원앤온리 첩이라는 묘한 지위가 아니었을까요

- 누가 더 못하고 덜했을까요 원앤온리 첩과 동귀어진한 항우였을까요 헌신한 정처를 몇번이나 적진에 던졌지만 결국 황후로 만들고 첩 척부인에게 총애를 줘서 황후를 괴물로 만든 유방일까요
...아 둘 다 별루야 근데 로맨스로 패왕별희가 유방여치보다 남는 이유를 알겠어요

- 우희가 신분이 낮아서 정처는 못 되었지만 항우의 원앤온리 애첩일 거라고 얘기했는데 창극에서는 여군사들이 '왕비마마'라고 부르고 경극 대본에선 우희의 오빠는 '귀비'(고위 후궁), 오히려 신하들은 황후라고 부릅니다 공식적인 황후가 없으면 최고위 후궁이 황후 대행을 하지요

- 항우가 정처가 없고 총애가 몰빵되니 우희가 존귀한 대접을 받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항우가 정략결혼 카드를 안 써먹은 게 이 커플의 명줄을 앞당긴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유방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여치를 생각하면 더욱 더)

1. 패왕별희 공연 단상

패왕별희 제1부 11월 14일 감상:
패왕님 목소리가 성우보다 멋짐
815님 겁나 간사한 유방 삼킨 연기
여치님 날 가져요(갖다 버릴 듯)
퍼시픽유 개갈굼당함 쫌 불쌍
온통 시꺼매서 다 안 보이지만 제일 길다랗고 얼굴 작고 팔다리 기이하게길고 춤선 아리따운 까마귀 찍으면 됨
한나라 말단 병사 김수인 으앙 쥬금

아참 우미인은 1부에 제대로 나오는 건 딱 한 부분입니다 우희로 여자 아이돌 십자들기씬 나왔는데 오른쪽 든 수인까마귀가 너무 커서 쫌 비대칭으로 들린 우미인 직관하니 현웃 터지려는 거 참음

 

패왕별희 제2부 11월 14일 감상
제6막 패왕별희가 클라이맥스고 역발산기개세 창 정말 멋졌음 
우희의 검무는 준수씨의 코어 차력쇼임
준수씨는 어떻게 저걸 다 추고 숨 하나 안 흐트러뜨리고 노래를 부르냐
우리 까마귀 오늘은 커튼콜에서 여치뒤에 디멘터처럼 조낸 불길한 눈빛으로 서 있었음(취향)



패왕별희 제1부 11월 15일 감상:
오글 덕인지 어제에 비해서 우리 까마귀의 얼굴과 기깔나는 춤사위도 잘 보이고 한나라 최약체 말단 군졸의 긴장한 표정과 으앙 혼자 쥬거써여도 잘 보임
그냥 사랑의 눈이 뜨인 건가...
이제 어둠에서 안 보이는 게 없다 밤 빗길 운전도 잘 할 거 같아(기분 탓임)

 

패왕별희 제2부 15일 감상:
6막 마지막에 김수인 이번에도 썩 잘 싸운 건 아니지만 안 죽음
어제 불길한 무표정은 촬영 컨셉인 걸로
김수인 패왕우희 커플팬임 커플인사할때마다 함박웃음짓고 뿌듯해함 
소매 꼭쥐고 박수 커엽
막 내려가고 퇴근 임박하니 두 손 흔들흔들 빠빠이하며 흐뭇해함

 

2. 패왕별희 공연 자체에 대한 잡설

- 저는 이 창극의 클라이막스는 패왕별희긴 하지만 서사 자체는 패왕우희가 아니라 영웅 항우의 극적인 몰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창극 제1부는 창극 오리지널이나 마찬가지인데
제1부는 초나라와 오나라의 지략과 정치, 대립에 주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오리지널이다 보니 창 중심입니다. 여기서 경극적 요소는 패왕과 우희의 제스추어 정도임.
제 1막 오강의 노래: 항우는 왜 망했는가에 대한 오프닝
제 2막 홍문연: 항우의 잘못된 선택으로 몰락의 실마리가 됨
제 3막: 전술과 전략을 세우다: 유방이 한신과 여치의 계획으로 반전을 마련
제 4막: 십면매복: 항우의 대패

- 제2부는 전쟁의 비참함, 항우의 본격적인 몰락, 연애적 요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제 5막: 사면초가: 초나라 노래로 항우와 우희는 고립됩니다
제 6막: 우희의 자살로 패왕과 우희는 영원히 이별합니다
제 7막: 오추까지 잃은 패왕은 자살합니다   

- 경극에서는 항우가 계략에 속아 몰락하는 것부터 바로 보여줍니다. 창극이 롤러코스터처럼 제2막에 항우를 최고조로 띄워줬다가 그 다음부터 몰락을 경극보다 길게 보여주는 셈인데요, 호불호가 이 부분에서 갈릴 것 같습니다...만 제 취향이에요. 모든 것이 갖춰진 주인공이 한순간의 충동이나 유혹, 잘못된 선택으로 몰락하는 걸 좋아합니다. 제레미 아이언스의 데미지도 그래서 좋아하고 남들이 사이다라고 좋아하던 연희공략보다 계황후가 망하는 서사 여의전을 좋아함. 그래서 항우의 한순간 잘못된 선택에서 풀려나가는 기나긴 몰락도 제 취향.

- 70전 불패의 명장이던 항우는 유방을 풀어주고 한신을 경시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게.증폭되면서 몰락을 맞게 되죠 이 사람은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요

- 우희는 계속해서 강동으로 돌아가 천하 영웅들을 설득하고 후일을 도모하자고 설득하는데 항우는 전혀 호응이 없습니다 실패를 추스리고 남에게 숙이는 걸 못하는 거죠 실은 초한전에서 이겨서도 좋은 정치가가 되었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현대에 태어났으면 전쟁영웅이었지만 전쟁 후에 적응 못하고 PTSD에 시달리게 되었을지도

- 항우의 한번 실패로 인한 완전 꺾임이 패왕별희 원작하고 차이점인데, 우희는 항우가 후일을 도모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는 걸 알고 패왕이 살아있을 땐 걸림돌, 죽은 다음엔 팔려가는 신세를 피하고자 자신을 깔끔하게 정리해버린 거죠

- 우희의 자살은 항우에게 매우 큰 타격은 되었지만 죽음을 결심할 계기는 명마 오추의 죽음이었죠. 우희와 오추는 비슷한 의미라는 점이 7막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아 항우가 우희를 지극히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일반적인 사랑과는 좀 결이 달라요.

- 유방의 여치는 원경왕후의 매운맛 버전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난세의 정치적 파트너로 그 이상을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집안 배경 지략 카리스마 상황 판단 용인술 뭐 하나 뺄 게 없지요 난세가 평정된 다음엔 권력을 나누지 못하니 유방이 버리다시피 함

- 우미인은 난세가 아닐 때 총희로서는 최고죠. 미모와 재주로 항우를 위무해 주고 지극한 사랑으로 감싸줍니다. 하지만 그녀의 출신은 미천하고 상황판단이나 지략은 없다시피합니다. 절세미인은 몰락 후 공신 다툼의 대상이 되죠

-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패자도 사랑합니다 왜 관우 오자서 항우 귀신을 한국 무당들이 신으로 모시고 그러겠음요;;; 아 맞다 오늘 도창...아니 맹인 노파가 살아서는 영웅 죽어서는 귀신의 으뜸이라 했던가요 우희도 기능;과 무관하게 서사로 사랑받습니다

- 아 맞아요, 맹인 노파와 어린 항우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저는 극 S라 함의 뭐 이런 데 약하긴 한데 시간 구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서 비극은 되풀이된다는 걸 보여주는 듯도 합니다. 초나라의 구슬픈 백성들 노래도 그랬고 말이죠.

- 스토리 외 얘기를 하자면 패왕별희가 국립창극단이 구현할 수 있는 화려함의 극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간 봤던 다른 극들이 각각 유니크함(특히 심청가)을 추구했던 게 이해가 감
우리(언제부터 우리) 패왕님 자수 화려하고 고급짐 우희는 맨날 흰 옷 입히고(뎨둉합니다 우희는 유령이나 환영으로 나올 때만 흰 옷이고 현실세계에서 입고 댕기는 빨간 옷 디게 이뻤음) 지는 싸울 때 무겁구로 주렁주렁...

- 딴 얘긴데 패별 6장의 우희 빨간 옷이 화양연화 장만옥 치파오(그 날씬한 장만옥이 숨도 못 쉬었다고 하죠, 어떤 옷은 아예 입힌 채로 꿰맸다고 하고)만큼이나 몸선에 가혹한 옷이더군요. 준수씌 안 그래도 늘씬한 사람이 더 빼느라 고생했겠어요

- 우희가 항우의 모든 전장을 따라다니면서 선녀같은 미모를 유지하려면 백조 물밑 발짓처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듯 
우희 성격상 전장에 시녀(호위 여군사 몇명만 있는 느낌)에 치장 휘감고 다니지 않을 거 같고 항우가 살뜰하게 챙기지 않고 혼자 새벽에 귀밑머리 그리고 다이슨으로 머리말고(...)

 

3. 커튼콜

14일의 커튼콜입니다. 이 날은 촬영이 있는 날이라 긍가 수인이는 매우 무표정했고 여후님 방향을 매우 불길하게 바라보는 게 찍혔습니다. 

무대 앞쪽으로 나와서 우아하게 절하는데 매우 멋졌습니다. 난 춤을 놓은 적이 없다고 백 번 말을 하는 것보다 극상의 기량으로 보여 주는 게 더욱 마음에 듭니다.

 

15일의 커튼콜입니다. 이 날따라 인형미 쩔음.

아니 근데 오늘 커튼콜에서 루떤까마귀가 눈을 스윽 내려뜨면서 우아하게 펄럭이며 절하고 다시 눈을 스윽 올려뜨며 날아들어가는데 심장이 덜컥하는 서늘한 느낌이

그의 최애커플(임이 분명한) 항우우희가 인사하자 환하게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퇴근이 다가올수록 점점 신명나는 모습입니다

 

막공 후기를 보니 오늘 커튼콜에서 수인이 표정이 제일 환했나 보군요. 퇴근 좋아하는 건 여전하구나...

-담주에 춘천하고 대전에서 보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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