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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두달하고도 조금 전에 저는 채널을 돌리다가 tvn의 철인왕후 2편을 보게되었습니다. 혐한 논란에 대해서는 워낙 커뮤 좋아하는 인간이라 잘 알고 있었는데, 마침 심심했던 데다 소수서원에서 촬영현장을 본 의리(알고 보니 그 장면은 남자가 빙의한 중전이 사랑의 라이벌(...이라고 후궁은 굳게 믿음)인 빈에게 불꽃 플러팅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로 몇 분 더 볼까 하다가...

 

대왕대비의 남동생이자 세도정치의 키맨 김좌근 훈련대장으로 나오는 김태우(가수아님, 영화배우/드라마배우, 71년생)에 다시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시'가 뭐냐면 제 마음속에는 커어어다란 바가 있어서 그 바의 진열대에 여러모로 아끼는(...) 사람 또는 캐릭터들을 고이고이 모셔뒀다가 떡밥이 다시 주어지면 화르륵 다시 불타오릅니다. 저랑 같이 매체 보다가 제가 쫌 미묘한 말투로 '아 저 배우(가수/정치인) 좋아했었는데...'하면 그 시그널입니다. 사람들을 제일 놀래킨 사례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었습니다(또라이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포승줄에 묶여서 끌려가는 전대협 의장을 보고 반한 어린이) 여튼 생각보다 그 진열대는 매우 크고 넓은 편이고 주로 중년에 집중되어 있지만 노년/청년도 간혹 있고, 남자가 거개지만 여자도 생각보다 많고 그렇습니다. 그 중에 김태우씨가 있다는 얘기지요.

 

 

 

제가 보고 다시 뻑 넘어간 씬은 대왕대비전에 무심하게 앉아서 곁불 화로를 뒤적뒤적하는 거였는데 그 무심하고 서늘하게 깔린 눈과 무표정, 그리고 진심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 누이에 대한 충성맹세 등등이 어우러져 넘어갔습니다. 보자... 그 외에도 편전에서 낮은 목소리로 깽판치는 씬은 거의 다 최애고, 사람 해꼬지하는 씬도 거의 다 마음에 들고, 중전한테 엿먹고 아연해하는 씬도 마음에 듭니다(이 사람한테 멕이는 사람은 중전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그 도발에 넘어가서 칼 바꾸고 남들은 못 알아채게 혼자 식식거려요) 보자..근데 마지막에 망하는 씬은 매우 보고싶으면서도 보고싶지 않더라고요. 이 사람이 작정하고 몰락하면 엄청나게 불쌍해지는 포텐이 있습니다.

 

그런데 71년생이라 90년대~00년대 필모가 집중되어 있고, 거의 다 조연을 한 배우에 대해서 제가 더 무엇을 팔 수 있을까요. 위키피디아(꺼라위키 아님)에서 필모를 뒤적이면서 제 취향의 드라마나 영화는 다 볼만큼 봤고, 이제 유튜브에서 거스러기(무릎팍 도사 출연분이나 뭐...)나 줍줍할 게 좀 있었습니다. 보자...접속부터 관상(너무 병약미인이셨음)까지 볼 만한 영화는 엔간히 봤고, 아무리 제가 김태우씨가 보고 싶어도 징비록의 선조를 보고 싶진 않습니다. 뭔가 순정희생깡패;로 나오는 드라마도 있는 거 같던데 이 사람도 제레미 아이언스처럼 '멀쩡하게 잘 살 수 있는데 예기치 않은 순간에 뭔가에 사로잡혀 탈선하면서 인생 망하는 역할을 잘 해서 별로 보고 싶진 않더라구요.

 

자, 그럼 안전하고 무난한(...) 홍상수 영화 두 편을 파 보도록 합시다. 이미 일전에 봤었던(전 유지태도 제 마음속에 모셔놨거든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안 봤는데 고현정이 포스터에서 너무 김태우 잡아먹는 본능적인 생기에 넘쳐서 안 보고 넘어갔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 되겠습니다. 해변의 여인은 역할이 좀 작은 것 같아서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2004년산이니 16...아니 17년만에 다시 보게 된 셈인가 그런데 근 20년 전이고 홍상수는 옛날 사람이니까 ㅋ 성 인식이 정말 빻았더라구요. 옛 선배에게 끌려가서 성폭행 당했다고 고백하는 성현아를 여관에 데리고 가서 여관 욕실에서 나신, 특히 음부 부위를 비누로 빡빡빡 닦아주고(너무 그러면 질염 걸려요;) '내가 널 깨끗하게 해주는 거야' 섹스를 시전하는 김태우는 정말...음... 그래놓고는 공개된 연인인 성현아를 버려두고 도피성 유학을 가버리는 김태우나, 버려진 선배의 여자를 줍줍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유지태(순정이 없지는 않았지만)나 너무 그시대 한남스러웠습니다.

물론 7년만에 유학에서 돌아온 김태우, 그리고 성현아와 애저녁에 깨지고 부유한 여자와 결혼한 유지태가 다시 만나서 또 술 마시다가-_- 무슨 앤솔로지 연성하는 것처럼 충동적으로 둘이 택시타고 부천으로 찾아가서 성현아를 만나는 건 더 심했죠. 제가 성현아였으면 아이고 이 덜자라고 와꾸만 늙은 화상들아 하고 추운 길바닥에 버렸을 텐데 집에 데려가서 성현아 버릴 때 자기도 아팠다며 끅끅대는 김태우를 데리고 이 방 가서 동침하고 저 방 가서는 빨아달라는 유지태한테 빨아주는...에 참으로 남자가 좋아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만하게 행동하는 성현아도 참 환장스럽더라구요.

 

하지만 제일 문제는 7년만에 다시 나타난 유지태가 엄청나게 살이 쪄 있었다는 겁니다! 젠장... 올드보이에서 2년밖에 안 지났구만 이게 머선 일이고.... 홍상수가 찌우랬나 ㅠㅠ 찌우니까 머리는 기이하게 작고 덩치크고 배나오고 변태곰인형 같잖아 ㅠㅠ

 

여러모로 난감한 영화였지만 저는 챙길 건 챙겼습니다. 두 명과의 동침 그 다음날, 김태우는 성현아에게 신경질적입니다. 그리고 확 터지죠. '나 다 들었어!!! 나 한 잠도 안 잤어!!!' 와.. 저렇게 찌질하게 상처입은 어린애 어른 인간의 날것 징징 목소리... 저걸 김태우 말고 누가 하냐...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는 시대를 그럭저럭 따라가기도 하고 '이상한 현학적인 말로 날 헷갈리게 하지 마라. 나 그런 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라는 말로 감독을 멕인 고현정이 영화 중반에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남은 부분을 리딩해서 그런가 앞 영화보다는 훨씬 편합니다.

이 영화는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에게 재단당하는 영화 감독이 역시나 남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재단하고 댕기다가 옛 후배이자 노장 선배의 나이 차 많이 나는 처 고현정을 만나면서 '왜 이제야 만났죠 당신은 내 짝인데'하고 징징거리다가 고현정한테 '잘 알지도 못하면서'하고 일침을 받고 갑자기 폭발했던 열정을 찌질하게 삭히는 내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김태우가 집착하는 '짝'이 뭐인지 그의 징징대는 목소리로 다시 들으면 ‘이 기집 저 기집 신경 쓰지 않고 한 사람만 신경 쓰면서 사랑의 금자탑을 쌓는 거, 자기경멸하지 않고 사람이었다 동물이었다 하지 않고 쭉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라고 합니다. 그동안 후리하게도 잘 사셨는데 마음속에 꽃 한송이는 있으셨나봐요. 역시 극단적입니다.

여기서 김태우는 시종일관 사람들에게 멕임을 당하고 특히 고현정 앞에서는 기도 못 펴면서 하자는 대로 하고 하지 말자는 대로 안 하고 하지만 SM의 강도를 적절히 조율해 놔서 보기는 상당히 편합니다. 그냥 와 김태우 귀엽다(...)

 

 

 

이렇게 두 편을 감상하고 떡밥이 떨어진 저는 삼대 구년 전 보았던 미드를 한드로 로칼라이징한 '굿와이프'에서 김태우 나오는 역할만 재탕하고 끝냈습니다. 전도연이 남편의 스캔들로 법정에 컴백하는 변호사로, 유지태는 망할 놈인데 망하지는 않았으면 좋을 남편 역으로, 김태우는 가끔씩 나오는 유지태의 상사 검사인데 뼛속까지 검사스러운 검사이고 이혼하자는 아내에게도 검사스럽게 굽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에 다 차있다가 아내에게, 아내의 이혼 변호사인 전도연에게, 돌아온 유지태에게 연이어 어퍼컷을 먹고 아연해하면서도 꾸역꾸역 빌런을 해내는 그가 사랑스럽습니다(...)

 

이렇게 떡밥 별로 없는 김태우의 필모 미니탐험은 잘 끝났습니다. 이번에 김좌근으로 입덕하신 분들(있겠지 설마)는 대중적인 취향인 순정깡패로 나오는 드라마(안 봐서 그런가 이름 까먹음)부터 파시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철인왕후가 마블 또는 디씨 세계관으로 들어가서 김좌근 리부트가 된 다음 김좌근이 누나 대왕대비를 죽일까 말까 하는 순간도 잘 살려주고 원작에서는 헤테로스로운 면은 1도 없었는데 리부트에서는 나합이랑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하는 파워 헤테로도 해줬으면 하는데... 이 사람은 작심하면 너무 야해져서 안 하겠죠(시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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