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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실직한지도 이제 어언 1년 2개월이 되었습니다. 이쯤 되니 그간 근황을 물어보는 지인들의 물음 샘플도 엔간히 쌓이고, 거기에 대답하는 제 반응도 이력이 붙어서 글로 남길 만큼이 되었어요.

일단 상태 개괄을 하자면 '실직한 노처녀'란 참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대하기 난감한 상태라는 겁니다. 특히나 이 지방에서는 이 나이의 여자란 남편의 사회적 성공이나 아이들의 학업에 대해서 물으면 딱 좋은데(심지어 본인이 사회 생활을 하고 있어도 남편과 아이의 근황만 꾸역꾸역 묻기도 합니다;) 그것도 없고, 직장 생활도 안 하고 있으니...

이건 이것대로 난감해 보이고 말입니다(참고로 저 책은 읽어봤는데 제목하고 일러스트가 다 했습니다. 딱히 내용은 알차다고 보기 힘들어요)

그런데도, 혹은 그러니까 제 근황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은 가끔 있습니다. 이럴 때 제가 머릿속에 넣어두는 건 두 가집니다.

첫번째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나에게는 중요한 사실을 타인은 모르는 경우도 있고, 들었으나 까먹는 경우도 많고, 지금 얘기해줘도 TMI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더 많습니다.

두번째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아주 큰 호의도, 그렇다고 대단한 악의도 없습니다. 타인의 불행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동시에 자신이나 가족은 이 사람보다 낫다며 비교우위적인 만족을 느끼며, 심지어 그걸 얘기조차 한다 할지라도 안타까움도, 만족도 진심일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안타깝다고 해도 뭐 딱히 물질적인 도움은 안 줍니다. '화이팅!' 뭐 그런 거죠.

이제 세부 상황별로 들어가 봅시다.

​1. 질문 : 요즘 뭐해? / 대답 : (건강이 무척 안 좋아져서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 와서 쉬고 있어요.

괄호 안은 오래간만에 만나거나(제 기준은 '1년에 한 번 만나면 짱친 절친'입니다) 고향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에게는 꼭 부연설명의 서사로 붙여줘야 할 얘깁니다. 일단 오래간만이다 보니 왜 고향에 내려왔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고, 들었더라도 까먹는 경우도 많고 일단 겉보기에는 상당히 멀쩡해 보이다 보니(심지어 화장을 잘 하면 이뻐보이기조차 합니다!) '대체 왜?'에 부합하는 원인관계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쯤되면 이제 듣는 사람은 슬슬 심각해지며 절반은 아 괜히 얘기했다고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저라는 인간은 일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관짝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 회사를 그만둘 유형이 아니거든요. 이쯤에서 '화이팅!'으로 마무리짓고 떠나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말을 더 이어갑니다.

​2. 질문 : 그럼 뭘로(뭐 해먹고) 살고 있어? / 대답 : 모아놓은 돈 까먹고 살고 있어요.

이 대답은 두 가지 함의를 지닙니다. 일단 '모아놓은' 돈은 있되 까먹고 살고 있는 처지니 나한테 돈 빌려달란 얘긴 하지 말라는(독신자의 돈은 사회 공공의 것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얘기이기도 하고, 육친 등골 브레이킹은 안 하고 내 돈으로 먹고 산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등골 브레이킹에 대해서 얘기할 게 좀 많은데, ‘여자가 무슨 돈을 벌어 다 부모님이나 남편한테 받은 돈 쓰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이 지방에 특히 심한 사고에다 즤 아부지가 (실속은 없는) 지방 작은 유지쯤 되셔서 제 이른 퇴직에 대해 이리 넘겨짚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나 제 고질병의 원인제공자 첫번째 *씨는 동네방네에 ‘쟤 아부지가 (근무하는 사업장) 건물주라서 쟤가 그거 믿고 퇴직한 거니 걱정 안 해도 된다’라고 퍼뜨리셨다고 ㅋㅋㅋ

일단 즤 아부지는 이미 은퇴하고 사업장 넘겨준지 4년이 되었고, 그 사업장 건물은 임대에다 권리금 0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전 스물 이후로 집에서 보조 못 받고 제가 벌어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기대할 건 없습니다. 맏손자가 있는데 딸 따위 ㅋ(노후보장은 되어 있는 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뭐 대충 이런 기분입니다. 그 때도 대화 1도 없이 넘겨짚더니 여전한 건 여전하시네요...

​3. 질문 : 그럼 이제 결혼해야지? / 대답 : 아...(눈을 내리깔면서) 초산 연령도 지났는데요...
​이런 유형의 질문을 하는 분들 대부분은 여자의 결혼에서 효용 가치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거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공정위 위원장 후보에 대해 울산 중구 5선 양반이 한 쉰소리를 보면 아주 재밌는 맥락이 나옵니다. 결혼 얘기는 바로 뛰어넘고 애를 낳으라고 함 ㅋ) 또 심각해집니다. 얘는 왜 나한테 이런 걸 알게 하지...이쯤에서 손절 속출.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제 나이를 물어보고(사실 상대방 정확한 나이를 기억하는 경우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정부 정책에서도 벗어나는 나이임을 알게 됩니다. 건강하기만 하면 요즘 세상에...를 시전하려 하지만 1번이 생각나서 장벽.

그럼 이제 포기하고 ‘진작에 결혼하지 그랬어!!!’를 시전하지만 이 말은 ‘왜 내게 이런 난감한 상황을 주냐’ 이외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10년전 일을 어쩔 수 없다는 걸 다 알고 있거든요.

7-8년 있으면 재취 드립이 나올 거 같은데 그때 가서 고민을 해볼까 합니다.

3-1. 그래도 멋진 연애는 해 봐^^
​일단 이 경우까지 거의 안 옵니다. 일단 저랑 동년배거나 그 이상의 경우 아이를 낳기 힘든 나이의 여자가 연애의 쓸모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기혼이든 비혼이든 이 나이대거나 이상의 경우 연애도 강권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며 제 나이보다 아래인 남자들은 꼰대소리를 할 의지는 충분히 있으되...

...나이든 여자 자체에 관심이 없음 ㅋ

저도 뭐 두세번 들어보긴 했는데 그저 심각하지 않게 ‘아 ㅋ 굳이 ㅋ’ 정도로 넘깁니다. 심각했다간 옛사랑의 상처가 크다는 식으로 오해를 빚을 소지가...

대충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겠는데요. 중요한 건 자신의 처지도, 남의 호기심도 적당대충하게 넘길 수 있는 자세입니다. 저도 하루하루 관짝웨이팅일 때는 ‘왜? 건강해보이는데’ 한 마디에도 빡쳤었지만 관짝에서 좀 멀어지고 그냥 병자가 된 지금은 그저 건강해보이나부다 웃습니다.

화이팅 ㅎ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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