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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이상 시의 돼먹지 않은 패러디입니다)

코지 판 투테 요약:
재기발랄한 21세기 한국 버전 남녀는 다 그래
이승민 종합 세트(를) 관찰(하는) 예능
이승민 눈썹 생물설
돈피디 취향 소나무
이승민 거어어업나 조각상이고 키 더 자란 듯
이승민 반팔로 옷 갈아입는 거 보셨어요? 전 봤어요

모짜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를 롯데콘서트홀에서 관람했습니다. 원래 세 시간이 넘는 오페라인데요, 인터미션을 없애고 2막에 잠깐 무대정리가 있는 80분짜리로 압축했습니다.

이번 코지 판 투테 낮공은 롯백 에비뉴엘에서 브런치 여유롭게 먹은 유한부인들이 보기에 좋은 살롱 오페라(치고는 홀이 좀 크지만)인데 이런 인프라가 한강 이남 일부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게 참...
-하루를 다 털어먹은 자발적 지방 관객의 중얼중얼

실제로 그 유한부인들이 나가면서 '저 피디한 저이가 누구야?' '아 그 팬텀싱어...'하고 대화하는 걸 들었음

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사이즈에 비슷한 입지/기능으로 해운대 벡스코 오디토리움이 있잖아? 싶지만 이 가격으로는 스탶 출연진 세트 그랜드 피아노 연주자 거마비나 충당할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엑스포무새 천분의 일만 떼서 지역 균형 문화 예산을 여기다 써라

살롱 오페라로 만들면서 앞부분을 과감하게 자르고 각색해서 돈 알폰소가 모든 것을 조종하는 화자 예능 피디로 본인과 관찰 대상을 소개하는 식으로 대체합니다.

원작에서 하녀로 사랑을 부추겼던 데스피나는 유능한 예능작가로 나와 등장인물이 즐겨 가는 카페 주인으로 위장취업해서 여인들을 조종하는 역할이죠. 따라서 돈 알폰소가 하녀 데스피나를 매수하는 장면은 없어졌습니다. 변장한 남자 둘 자살 소동등도 잘랐구요.

무대는 콘서트홀 크기에 비해 매우 크고 깊은 편인데요, 왼오로 나누어 오른쪽은 카페에서 두 커플과 데스피나가 사랑의 각축전을 벌이고, 왼쪽은 스탠바이미가 설치된 소파에서 돈피디가 실시간으로 관찰하면서 조종합니다. 그리고 무대 위에는 그랜드피아노 독주로 반주가 있구요

보조 무대로 무대 오른쪽 뒷편에 벤치가 있는데 주로 플러팅이 이뤄집니다. 따라서 무대는 좌우로 분할되어 있고, 실시간으로 흘러가면서도 왼블-관찰하는 자, 우블-관찰당하는 자 이렇게 갑니다. 왼블인 전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돈 피디를 관찰하는 강같은 은혜를 입음

지난번에 제가 예상했다시피(근데 다 예상 가능) 두 커플은 21세기 한국의 20대이고 페란도와 굴리엘모는 군인, 굴리엘모의 짝인 피오르딜리지와 페란도의 짝인 도나벨라는 자매 사이입니다. 돈 피디는 나는 홀로 유한도전 등의 예능을 히트시킨 피디구요, 유능한 작가와 함께 이 관찰 예능을 꾸밉니다

자기 소개 오프닝 장면에서 승민이는 갈색 바지에 검은 반팔티, 연한 스트라이프 오프화이트 셔츠를 입었는데요...키 더 큰 듯... 하필이면 데스피나가 좀 쪼꼬미시라 더 커 보였어요. 말 그대로 무대 뒤로 드나드는 문짝하고 거의 차이가 안 나서 살짝 구부리고 드나드는 걸 보고 웃음 ㅋ

그리고 존노님 실물은 처음 뵈었는데 어쩌면 사람 뒷통수가 저렇게 완벽하게 동글동글 구형일수 있지...이목구비 겁나 동그랗고 피부 좋으시고 정말 쿼카가 현신하셨습니다. 기복없이 아름다운 음색으로 아리아 독창하실 때 진짜 반했음

돈피디 소개 후 카페에서 페란도와 굴리엘모, 돈피디가 내기하는 3중창이 나오는데 돈피디는 연인의 정절을 확신하는 남자들에게 왕요구르트와 과자를 줍니다 대놓고 어린애 취급ㅋㅋㅋ 나중에 일이 다 들통나는 모임에서는 두 커플에게 맥주를 주죠.

돈 알폰소의 캐릭터는 좀 복잡합니다. 원래 돈 알폰소는 젊을 때 연애에 단단히 데인 독거노인같다면(...) 지금 돈 피디는 닳고 닳은 30~40대 예능피디같아요. 오 이거 화제성 쩔겠다 하고 덥썩 물어서 극을 진행시키고, 상냥하면서도 냉소적이고 비아냥 쩔며 악취미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해내는 이승민이 만 24세라는 걸 생각하자면 와...원래 나이가 생각 안 날 정도로 연기 잘 하더라구요. 그리고 대사 칠 때나 아리아 부를 때나 깊고 낭랑한 소리가 롯콘의 울림 좋은 음향과 합이 잘 맞았습니다.

이 오페라의 재밌는 점은 보통 합을 맞추는 독창, 2중창, 3중창, 합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자 관찰당하는 자들이 사랑이 어쩌고 정절이 어쩌고 부르고 있으면 돈피디(가끔은 데스피나도 합세)가 (주인공이 슬픈 이별을 하면서 사랑을 맹세할 때) '웃겨서 못 견디겠군' (남자들이 내기의 승리를 확신할 때) '후회하게 될 텐데' '기뻐 죽겠어(..배신타임)' 엇박으로 들어가서 복잡해요

관찰하는 자와 관찰당하는 자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각 상반되는 얘기를 하며,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하긴 피오르딜리지와 도나벨라도 핸드폰으로 각자의 애인 모습을 자랑하는데 서로 화면을 안 봄(...) 자세히 봤으면 이 사단이 안 났을지도.

그리고 승민...아니 돈피디는 왼쪽 무대에서 소파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스탠바이미를 보면서 오른쪽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데 오른쪽을 강조하느라 왼쪽은 푸르스름한 어두운 조명이라 그의 이태리적인 얼굴 음영이 더욱 잘생겨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와 진짜 잘생겼음

그리고 그는 상황에 따라서 자세를 계속 바꿉니다. 
여자들이 정절에 대해서 노래할 때-한 팔을 나른하게 소파 위에 올리고 한 다리를 다른쪽 무릎에 방만하게(...) 올려서 매우 지루해함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쪽이 덕성을 노래할 때-지루해서 아예 드러누워 버림

이제 슬슬 넘어간다 싶을 때-튀어나올 정도로 머리를 쭉 빼고 소파 끄트머리에 엉덩이만 얹어서 집중함
상대적으로 열정적인 커플이 수위 높은 불꽃 플러팅할때-아예 소파 위에 쭈그려앉아서 입벌리고 보다 앞으로 넘어질뻔함
보수 커플이 로맨틱해질때-누워 있다 한 팔을 괴고 점점 일어나서 목빼기

황급히 오페라 얘기로 돌아가자면 21세기 한국 로컬라이징답게 재밌는 설정이 많습니다.
페란도와 굴리엘모가 안경과 카이저 콧수염을 달고 변장했는데 데스피나가 질색팔색을 하면서 '와 프링글스'하거나(아니 근데 동글동글 존노씨가 동글안경에 콧수염 다니 진짜 프링글스) 저 모습에 넘어가다니;;;

'여자 나이 열 다섯이면' '나는 금발 남자가 마음에 들어' 아리아 부를 때는 스크린에 아예 노래방 화면을 띄워서 마이크 들고 얼큰하게 노래부릅니다. 
작사: 로렌초 다 폰테
작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하고 노래방 자막으로 크게 떴을 때 저를 포함 모든 관객들이 개폭소.

아참, 크로스되는 커플의 옷 선택도 의도적인 것 같더라구요. 자매 중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쪽은 하늘색 바지정장, 얌전한 쪽은 연핑크 원피스를 입혔어요. 그리고 크로스 커플될 때 꽃핑크(존노 꽃핑크 너무 어울림)-연핑크, 파란색-하늘색 이렇게 이뤄질 것을 암시.

결국 두 여자는 변장한 두 남자의 유혹에 각각의 방식으로 넘어가버리고 배신당한 남자들은 독이나 쳐먹어라;하면서도 상황을 즐깁니다(여담인데 바뀐 여자들이 남자들 각각에게 꼭 맞는 취향인 걸 시간 안배로 압축해서 좀 아쉬웠음) 그리고 돈 알폰소는 거어업나 기뻐함. 파우스트가 지옥에 갈 때; 그리고 콘스탄틴이 지옥에 떨어질 때 악마가 저렇게 기뻐했을까요; 아니 그냥 그는 시청률에 쩔었고 덩치 큰 어린이들에게 현실을 자각시켜 현명한 어른을 만들고 싶었을 뿐입니다. 눈썹 싹 움찔하고(눈썹이 살아있음) 입 한쪽 끌어올려서 웃는데 참 매력적이더군요.

이 버전에서는 아예 팜플렛에서 '이 작품은 문제가 많습니다'하고 자기신고하고 들어갑니다. 모짜르트의 명오페라치고 구시대의 빻은;면을 인정했는데 이걸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가 아니라 코지 판 투티(남자 여자 다 그래)로 하면서 tutte가 tutti로 스크린에서 철자가 똑 떨어지는 게 빅재미

저는 일해야 돼서 허겁지겁 마무리하자면 재연을 해도 보러갈 의향이 기꺼이 있는 재기발랄한 오페라였습니다. 각 가수의 역량도 뛰어났고(데스피나역의 이해나님 알라뷰) 무대도 소 오페라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뽑아냈고 연주도 음향도 좋았어요.

다정하게 조롱하는 닳고닳은 예능피디를 완벽하게 소화한 승민이는 커튼콜에서는 그저 순박하고 무대에 행복해하는 강아디로 돌아갔습니다. 갭차이가 또 치이네요.

-이것은 오페라 후기인가 이승민 관찰 후기인가 아무튼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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