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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 저녁, 저는 저녁을 대충 먹고 까무룩해지는 정신에 비몽사몽하니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불면증 환자가 입면 시간 외에 눕는 것은 수면위생에 어긋나고 의사들도 가급적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만, 요즘 날씨가 춥고 시려서 긍가 피할 길이 없네요) 그런데 문자 소리가 나서 겨우 정신이 들었습니다. 

 

회계사회에서 온 문자입니다.문자의 내용인즉슨...

 

0. 너네 감사한다고 힘든 때인 거 다 안다.

 

1. 근데 코로나19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심해져서 자산손상 이슈때문에 기업이랑 너네랑 싸운다며?

 

2. 금융위에서 그거 뻔히 알고 2021.1.11자 감독지침 내놨고 오늘자로 후속지침 내놨다.

<감독지침 주요 내용> 2021.1.11

회사가 재무제표 작성시점에 이용가능한 내외부 증거를 토대로 최선의 추정을 하였고 충분히 공시한 경우->회계오류라 판단하지 않음

1) 미래현금흐름추정시 사용한 가정이 명백히 비합리적이지 않으면 회계오류가 아님

2) 할인율 추정시 비합리적 시장변동을 제거하기 위해 할인율 조정범위 제시

 

<후속지침 주요내용>2021.2.8.

1. 외부감사인은 회사의 추정치가 명백히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하여 회사의 추정치를 부인한다면 그 이유를 회사에 충분히 설명할 필요

 - 감사인은 기업의 회계처리 등(회계추정 포함)에 대하여 회계감사기준에서 요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함

2. 감독당국은 기발표한 감독지침 내용을 향후 회계감리에서도 적극 고려할 것을 명확히 함

 - 코로나 19의 종결 및 회복시기 등 추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의 추정치가 명백히 비합리적이지 않고, 충분히 공시한다면 향후 회계감리 시 조치대상이 아님

 

3. 위의 지침 잘 숙지하고 회사하고 잘 커뮤니케이션하고 "전문가적 판단"을 잘 발휘해봐라.

 

이런 내용이 정말정말정말 긴 문자로 왔습니다. 자산손상(impairment)라는 게 뭐냐면 자산이 재무상태표에 기재되어 있는 금액, 장부가치(book value)라는 거 있죠? 그것보다 자산을 매각하거나 사용해서 회수될 금액이 적다면 자산이 손상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부금액이 회수가능액(공정가치, 사용가치 중 큰 금액)을 초과하는 금액을 손상차손(impairment loss)라 봐서 

(차) 손상차손 xxx(장부가액-회수가능액)          (대) 해당자산 xxx

이렇게 재무상태표의 자산도 감액하고, 손익계산서상 손실도 인식합니다. 회사에겐 당연히 안 좋은 거죠. 근데 요즘 코로나19때문에 매출도 떨어지고 조업도 강제휴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회사의 기계나 공장같은 유형자산이나 브랜드가치같은 무형자산, 또는 중국의 생산기지 자회사같은 자회사주식의 손상을 의심할만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 때 단계는...

1.회사가 내외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최선의 추정을 하여 자산손상액을 제시함(혹은 안 일어났으면 안 할수도 있죠)

2.회계사가 회사의 추정치에 대해서 전문가적 의구심-_-을 가지고 분석, 재계산한 추정치와 차이 제시

3. 1과 2의 차이에 대하여 회계사의 추정치를 따르거나,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여 회계사를 설득하거나, 근거없이 거부하여 최악의 경우 감사보고서상 감사의견이 비적정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금융위, 금감원 등 회계감독 당국은 코로나19로 인한 회계환경 불확실성 증대를 이유로 자산손상 등 회계추정에 대하여 꼼꼼히 살펴보라는 주문을 2020년 상반기에 넣은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즌이 다가오면서는 '현실과 대상회사의 펀더멘털을 생각해 보렴'하는 시그널을 넣고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 시그널의 사례는....

1. 기업 대상 대출금이 연장이 되었다고 무조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 말렴(2020년 중반)

2. 이번 조치 두 개네요.(연결 범위 유예조치는 감사 현실 반영만 한 것으로, 펀더멘털과는 그리 관련이 없습니다)

이번 조치는 자산손상에 대해 회사의 합리적인 근거를 예시로 드는 것이 아니라 몇몇 예시를 포함하여 '비합리적인 근거가 명백한 경우'를 빼면 합리적으로 보는 등 회사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으로 감사인이 '오버하여' 보수적으로 보지 않아도 되게 해 놨습니다. 여러 모로 감사인에게도 부담을 덜어놓은 조치죠.

 

그런데나 왜 이 보기드물게 현실적이고 자세한 지침을 감사 시즌 한창인 지금에서야 내놓은 걸까요...자세한 지침은 1월 11일에 나왔지만 이 지침이 힘을 받게 된 건 2월 8일의 후속지침 때문입니다. 즉 후속지침이 없이는 1.11 조치는 미완인 거죠. 시점에 대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때려치지만 않았을 곳의 고객회사들의 성향과 역량을 생각해 보았을 때, 회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감액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저 지침으로도 커버하기 힘든 노력이 많이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이번 시즌은 건너뛰길 잘했어요. 돌아갈지도 장담할 순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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