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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이 밝았습니다.


새해하면 떡국이죠. 주인장이 떡국을 참하게 끓여주었습니다. 챠밍 포인트는 지단.

오늘은 동행 두 명이 서울에 돌아가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여 오전엔 켄싱턴리조트 주변 강정마을과 해군기지를 아우르는 올레 7코스를 잠깐 걸었습니다.


여행의 반은 날씨라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강정천이 바다와 합쳐지는 게 진짜 느낌있고 이쁜데 사진으로 찍어놓으니 이게 뭐야...ㅠ

동행 두 명은 공항으로 가고, 저는 어제 못 간 아라리오뮤지엄으로 갔습니다.

물류의 중심지 천안 터미널 오너 모 여사님의 아들 씨 킴씨(한국 이름 김**씨인데 까먹었습니다)는 일찌기 천안에서 무진장 큰 아라리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으로 국내외 작가들의 ‘오르는’ 작품을 사들이면서 큰 손이 되셨습니다(...만, 제가 이 지점에서 주목하는 건 그렇게 오른 작품들을 수십년째 안 팔고 쟁여놓고 계속 사들일 만큼 쩔어주는 재력 ㅠ) 그리고 서울 요지와 제주도 세 곳에 아라리오 뮤지엄을 만들어 놨죠.

본관격인 극장 개조한 건물 가서 세 곳 다 갈 수 있는 패스를 16,000원에 끊었습니다.


앤디 워홀하고 키스 해링은 어디 가나 많으니까요 :)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중국 작가들, 인도작가들 작품이 많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극장 하나를 통째로 개조한 거다 보니 몇십미터짜리 난파선이나 엄청나게 큰 소가죽괴물형상;도 너끈하게 들어가더군요.

15분 거리를 걸어가서 동문모텔 1,2관을 개조한 곳으로 갔습니다.

저는 여러번 얘기했다시피 예수쟁이다 보니 기 이딴 거 별로 안 믿는 편인데 제주도의 재래시장 한 켠, 몇십년간 어중이떠중이들이 머무른 모텔 공간에 흐르는 기운은 정말 압도적이더군요. 거기다 적절하게 예전 삭고 쩔어버린 이불과 벽지, 욕실을 현대미술로 재구성을 해 놓고 샴쌍둥이 몇십쌍을 가지고 에덴동산을 만들어놓질 않나, 세밀한 피규어 수백수천개로 전쟁과 지옥도를 재현해 놓질 않나...

...좋았단 얘깁니다(익스트림 매니아)


그나마 티스토리 심의에 안 걸릴 작품들만 몇 개. 아래에서 두번째 꽃다발남;은 인도네시아의 바스키아로 불리는 에코 누그로호 Eko Nugroho 작품인데 문 옆에서 맞닥뜨려서 어우 시발 깜짝이야;라고 육성으로 터졌는데 보면 볼 수록 매력있어서 인터넷으로 이 양반 다른 작품도 찾아봤는데 좋네요.

2호점은 제가 쫌 좋아하는 구본주 조각가의 개인전을 통째로 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첫번째 조각 이름이 아빠의 청춘...(먼산)

마지막 조각은 이 작가의 시그니처나 매한가지인 부나방처럼 날아가는 샐러리맨상을 몇천개 유선형으로 모빌을 만드는 거였는데 끝내 완성하지 못한 유작이에요. 어디 대기업 로비에 걸어두면 하이퍼리얼리즘으로 극찬받겠지...그리고 그 회사엔 우울증 걸린 직원들이 늘어나겠지;;;

다 구경하니 두 시 넘었네요. 고사리해장국을 먹으러갑니다. 이 분야 갑인 우진해장국은 정초인데도 사람이 몰려들어 한 시간 가량 기다렸습니다(여기 몇 달 산 동행 말로는 이렇게 짧게 기다린 건 처음이라고)


비주얼로 먹는 음식이 아니니까요. 훌륭합니다. 고사리가 이렇게 쇠고기맛이 나는 풀이었단 말인가. 냉기가 노골노골 풀리고 술 안 먹고 해장하는 기분이라 술 한잔 걸치면서 실시간 해장을 하고 싶더군요.

재밌던 게 여기가 1월 1일부로 8천원에서 9천원으로 대표 메뉴들 가격을 전격 인상했는데 머나먼 나라에서 온 듯한 캐셔 아가씨가 그걸 전달 못 받았는지 버벅거리면서 다른 직원들 눈치를 보는 게 매우 안쓰러웠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가격이 천원씩 계속 오른다는 얘길 동행과 주고받았는데 옆자리 갱상도분들이 그 얘길 찰떡같이 받아서 그게 다 문재인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며(...)

맛있게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숙소로 머나먼 길을 돌아가 밤늦게까지 부어라 마셔라.

1월 2일 새벽에 나와서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셔틀을 기다립니다.


뭐 추상화같은데 그냥 강정마을 새벽 풍경입니다.

한시간 넘어 겨우 제주 공항 도착. 아슬아슬하게 아침 비행기를 탔습니다.

주인장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쌩고생을 덜 한 거 같아서 다음번엔 부산항에서 밀항하는 기분으로 밤배를 타고 갈까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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