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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나 아렌트

번역: 김선욱

출판사: 한길사-한길그레이트북스

책소개(알라딘)-한나 아렌트의 저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책. 이 책에서 체계화 된 '악의 평범성' 에 대한 고찰은 "악의 문제에 대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여"로 평가 받는다.

1942년 1월 독일 베를린 근교. 나치의 고위관리들이 모여 유대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the final solution)에 필요한 계획을 논의한다. 여기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1906-1962)은 문제의 책임을 맡아 '마지막 해결책'인 유대인 대량학살의 집행자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중동을 전전하다 1960년 5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에서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된 아이히만은 예루살렘으로 이송돼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아이히만의 재판 소식을 들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정됐던 대학 강의를 모두 취소하고 잡지 '뉴요커'의 재정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한다. 그리고 보고서 형식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뉴요커에 연재했다.

아렌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자"였다. 심지어 그는 전혀 도착적이거나 가학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머리에 뿔이 난 '괴물'이 아닌 평범한 한 인간이었던 것. 책은 이러한 아이히만의 행동을 세 가지의 무능성 -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으로 구분하고, 이로부터 '악의 평범성'이 생겨나는 과정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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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된 계기는 간단했습니다. 책의 명성은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위용을 보고 잠시 들춰보니...

자기 전에 읽으면 저를 잘 재워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_-;;;

그리고 2주간 힘겹게 꾸역꾸역 자기 전마다 읽으면서 그 믿음은 이윽고 현실이 되었습니다. 마치 의식의 흐름과 같은 작가의 서술방법과 원전의 만연체와 번역체를 그대로 고수한 번역자(근데 이 분, 한나 아렌트 저작은 거의 다 했더라구요?;;;)의 환장미 넘치는 콜라보는 저의 신경을 피곤하게 만들어서 잘 재워주었으나, 가늘어진 신경줄이 도중에 자꾸 깨는 것까지는 막진 못했습니다. 아이히만씨 이미지가 너무 강력했거든요.

 

 

 사실 대표 자료 사진이라고 책 앞머리에 있는 예루살렘 법정에서의 아이히만의 모습은 한나 아렌트가 말했다시피 '평범하다'라고 하기에는 기괴하고 소름이 오싹 끼치는 느낌입니다. 신경증 때문에 고개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요, '나는 악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도 내 자리에 왔다면 나와 같은 일을 했을 것이다'라는 아이히만의 항변이 안 먹힌 건 저 이미지 탓도 있었을 겁니다. 하긴 뭐 아무리 천사같은 외모를 가졌어도 제 3국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경찰들에게 납치당했을 때부터 그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을 겁니다만.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가 주로 공들이는 내용은 '아돌프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과 '이런 아이히만의 범죄를 예루살렘 법정에서 얼마나 정의롭게 다루었는가'입니다. 이 테마를 위해 아이히만이 어떤 성장 이력을 지녔고, 어떻게 출세했는지를 꽤나 자세히 서술해요. 놀라웠던 것은 제가 이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유대인 학살 일급 전범'으로서의 이미지로는 뭔가 굉장히 장군급의 무시무시한 이력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이히만은 하류층 가정에서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로 자라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학교를 중퇴하고, 이런저런 영업사원 일 말고는 사회생활에서 이렇다한 이력을 쌓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세를 확장하고 있던 나치스에 들어가서 유대인 전문가로서 유대인을 독일 제국 밖으로 이주(추방이죠 뭐)시키는 임무를 꽤나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그리고 히틀러의 정책이 '전 유럽에서 유대인을 절멸시키는 것'으로 바뀌자 아우슈비츠 등 강제수용소가 있는 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죽음의 전 단계까지 이동시키는 일을 열정적으로 수행합니다. 자신을 '하수인'이라고 변명해도 될 만한 것이, 그는 유대인 이주에 관한 일만 수행했고, 출신이나 좁은 전문성으로 승진은 중령급까지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 문제에서 한 우물만 파다 보니 유럽의 각 국가에서 유대인 이동을 위해 하는 전형적 절차를 고안하고, 복잡한 동선을 조정하고 이동을 완료하기까지 너무 많은 부분에 관여했어요. 이 '이동을 위한 전형적 절차'는 이러합니다.

1. 한 지역에서 유대인 고위 계층으로 이루어진 유대인 위원회를 설립합니다.

2. 유대인 위원회는 해당 지역의 유대인 명단을 확보하고. 아이히만이 전달하는 독일 제국의 지침에 따라 노란 별을 달게 하고 개인의 사유 재산을 한 곳에 모읍니다.

3.아이히만은 독일 제국의 이름으로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독일제국 동쪽으로 유대인 이동을 시작합니다.

4. 유대인 위원회를 신뢰한 유대인들은 너무나 놀라울 정도로 순순히 지침대로 이동하고, 이동 중에 가스 열차로 살해당하거나 집단 노동을 견디기 힘든 사람들은 단체 수용소에서 가스실에 갑니다. 독일 회사에서 대가 없이 부과하는 강제 노역은 남은 튼튼한 사람들도 죽게 만듭니다. 

'왜 유대인은 그렇게 큰 저항없이 죽게 되었는가'라고 힐난해서는 안 되지만, 정상적인 의문으로 간직할 수는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협상에 굉장한 재능을 가져서 유대인 고위층에게 유리한 협상을 잘 이끌어냈고, 상당 부분에서 고위층은 가장 많이 살아남았고, 리더들을 신뢰한 유대인 대중들은 전쟁의 말기까지 별 저항없이 가스실로 끌려갔습니다.

여기서 유럽-즉 독일제국에 합병되거나 주축국이거나 상당 부분 협력한 나라들에서 유대인 학살을 어떻게 대응했는가는 나라별로 굉장히 다릅니다. 루마니아처럼 아이히만을 비롯한 독일인들이 채 손을 쓰기 전에 너무나 열심히 학살해버려서 독일이 투덜거릴 정도의 나라도 있고, 덴마크나 노르웨이처럼 독일에 정치적으로 협조적이었으나 유대인에게 살 길을 제공해서 거의 살아남게 만든 나라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스펙트럼 사이에 폴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등의 나라가 있어요. 이들의 독일과의 정치적 관계나 반유대주의, 그리고 유대인의 그 나라 내 입지에 따라서 어떻게 이런 대응이 극과 극으로 갈라지는지에 대해서 아렌트는 부분적으로는 설명합니다만 우리가 가장 본능적으로 예상해 볼 수 있는 하나-국민성에 대한 언급은 극도로 아낍니다.

아이히만은 유럽 각 나라에 직접 나타나서 이동 관련 협상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대리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죽음의 전 단계, 이동에 대해서 그가 한 일이 많다는 것은 뒤집을 수 없는 수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명의 유대인도 직접 죽이거나, 죽이라고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그를 한 민족의 절멸에 대한 책임을 묻고, 더 나아가서 인류에 대한 범죄로 유죄를 선고할 수 있을까요? 아렌트의 의견은 그럴 수 있다, 이지만 실제 예루살렘 법정에서 이러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중대한 절차상 결함이 있다는 입장입니다.(이 절차에 대한 논평은 철학과 법학이 마치 용 두마리가 뒤얽혀 용트름하는 것처럼 복잡하게 서술되어 있어 요약을 포기합니다) 

다시 아이히만으로 돌아가 봅시다. 아이히만은 단 한 명의 유대인도 직접 죽이지 않았고, 실제 동부 지역에서 학살 현장을 견학할 때마다 꽤나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송 일이 그 학살로 가는 계단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너무나 잘하려고 열심이었고, 전장 말기가 되어 저명한 상사들이 중단하려고 하자 '나는 총통 말만 듣는다'는 식으로 계속 수용소로 유대인들을 밀어넣으려고 했습니다. 도대체 왤까요;;;

일단 변변찮은 신분인 그가 출세를 위한 사다리로 유대인 문제에 집착했을 거라고 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열심이었고, 항명의 위기를 무릅쓰면서까지 일을 완결시키려고 하는 건 출세를 넘어선 거대한 집착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 양반은 심지어 칸트의 정언명법을 들이댑니다;;;

칸트 선생은 인간은 법에 대한 복종 이상을, 법의 배후에 있는 원리와 자기의 의지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 '법 배후의 원리'가 칸트 원래 의도인 '실천이성'이 아니라 아이히만에게는 '총통의 의지'였습니다. 총통이 유대인을 절멸하라고 했으니 법을 따르는 정도가 아니라 법의 제정자인 것처럼 아주 철저하게 행동했다는 겁니다. 아렌트 선생에게는 이게 독일인에게는 아주 일반적인 관념이라고 하네요;;; 아 무서워 독일인;;; 난 주축국하고는 별로 안 맞아 안 맞아;;;

아이히만은 유대인 6백만명을 죽이는 데 책임이 있습니다. 실로 거대한 악행이죠. 그런데 악행에 비해 그의 내면의 악은 실로 어디에나 있을 법하게 초라하고 평범합니다. 총통의 의지와 혼연일체가 되려는 동기는 있되, 그 행동에 반드시 필요한 건전한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이입이 결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을 수 있으며 이들이 요긴해질 상황에서는 거대한 악행으로 다시 나타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이 책이 왜 엄청난 비판과 격론의 대상이 되었을지 알 만 합니다. 1960년은 이스라엘이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고,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며,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거세게 외칠 때였습니다. 그런데 악마가 아닌 평범하고 생각할 줄 모르는 남자를 묘사하고, 그리고 이 남자에게 실행된 정의의 방법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으니 유대인이든 유대인이 아니든 아픈 곳을 찔린 느낌이었을 겁니다.

덧. 그리고 이 책은 '연애를 유명한 사람과 하지 말자'라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스승인 하이데거와 한때 연애를 했었는데요, 하이데거의 반유대인 사상으로 결별했습니다(후에 그럭저럭 화해했지만) 그런데 이 책은 하이데거의 사상이 제자인 아렌트에게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지만 직접적으로는 하이데거와 무관해요. 그런데도 제 3자가 아렌트를 평할 때마다 계속 하이데거 연애 염불을 욉니다. 하긴 보부아르 얘기할 때도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얘기를 빼놓질 않죠. 필요하지 않을 때는 좀 놨으면 좋겠습니다. 하이데거 얘기를 할 때 아렌트를 빼먹을 때도 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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