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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도 써먹은 적 있는 '여전한 건 여전하구나...'라는 건 구남친 밈에서 비롯한 건데요, 예전 구남친 밈이 새벽 두시에 전화와서 '자니...?하는 거였다면 요즘 구남친은 인스타의 구여친의 일상글에다가 쓸데없이 리플을 답니다. '파스타 좋아하는 건 여전하구나' '추위 타는 건 여전하구나' 뭐 이런 거 말이죠. 하도 그러다 보니 '여전한 건 여전하구나'로 퉁치는 거죠.

여러번 언급했습니다만 저는 구회사를 예상보다 20년 8개월 먼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실은 이래저래 그 예상기한을 훨씬 더 앞당기게 되긴 했습니다만ㅋ 어쨌든 회사 경력은 그 회사 하나 뿐이기도 하고, 그만 둔 후에도 1분기에 한번씩은 꼭 자다가 구회사에서 다시 일하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네년이 퇴직했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고 실은 휴직이었다!이제 계약직으로 네년이 마지막으로 하던 일을 다시 하도록 해라!' 뭐 이런...개같은...하면서도 꾸역꾸역 일을 하던(이게 포인트죠) 중 잠을 깹니다. 자도 잔 거 같지 않아요.

구회사가 제게 구남친적으로 질척거린다는 망상을 하는 건 아닙니다.(아마 오히려 그 반대겠지요 ㅋ 저는 그다지 쿨하지 못한 인간이니까요) 당연히 대한민국의 조직이 그러하듯이 그 조직은 직원 하나가 예상보다 더 빨리 퇴직하든 말든 잘 굴러갈 것이고, 실제로도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몇몇 직원들이 뭐 그런 직원이 있었다 정도로 기억을 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저는 그랜저 광고의 박차고 나간 박차장처럼 그랜저를 새로 장만해서 나간 것도 아니라서(있던 차도 팔았음) 뭐 그리 대단한 기억을 남긴 것도 아니구요. 결국 이 모든 것은 구회사에 대한 저의 무의식의 표출일텐데... 일련의 네다섯번 꿈을 종합해 본 결과, 이 꿈은 대한민국의 상당수 예비역들이 꾼다는 '군대 두 번 간 꿈'과 일맥상통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 회사를 나가는 과정도 꽤나 원만하고 평범했습니다. 일본 드라마나 뭐 그런 데서 나오는 대로 괴롭히는 상사를 크게 망신주고 사이다 대사를 쏘아주고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매우 드뭅니다. 더 좋은 조건으로 렙업해서 나가지 않는 한은 불만이 있어서 나가는 것일텐데 그걸 멋있게 복수하지 않는 것은, 현실은 회사와 회사, 업계와 업계가 긴밀히 이어져 있으며 reference check와 평판이 몇 다리 안 건너는 좁은 바닥이거든요. 저는 지금 아주 먼 지방에서, 동종은 아니지만 연관은 있는-정확하게 말하면 갑과 을-업계쪽에 있으니까요. 뭐 딱히 오래하고 싶은 생각이나 잘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남은 세월 동안 일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니 말이죠.

나간 후 띄엄띄엄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구회사의 근황을 듣습니다. 제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니던 시절과 여전합니다-여전한 건 여전하구나

다니던 시절보다 좋아졌습니다-저 다닐 때 좀 그러지 그랬어요

다니던 시절보다 나빠졌습니다-아직 그런 얘기는 없습니다. 발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하다하다 알바처의 공문으로도 구회사의 근황을 전해듣습니다. 하나는 업계 자세한 얘기라 언급을 안 하겠지만 좀 뿜기는 얘기였고(...) 두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이 문제는 일반적인 사항이라 언급해도 괜찮습니다)

경영평가성과급은 퇴직금 산정시 최근의 대법원 판결(한국감정원 2015두36157 2018.10, 한국공항공사 2018다231536 2018.12, 한국주택보증공사 2016다 239680 2018.12, 한국전력기술 2018다270753 2019.10)에 따르면 근로의 대가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경영평가성과금은 퇴직금의 기준이 되는 평군임금에서 제외한다"라는 기존의 예산편성지침을 개정(2019.12.4)하여 각 기관별로 보수체계의 특성을 감안하여 결정하도록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 기관별로 노조가 유사한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이 진행중인 기관도 있고 소송까지 제기하지 않은 기관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바 기재부장관이 매년 발표하는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성과급의 예산 편성에 관한 내용이,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집행지침에는 경영실적 평가결과의 후속조치로서 확정된 기준에 따라 공공기관 경영평가성과급을 산정지급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포함되어 있어 대부분의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서 경영실적 평가결과에 따라 경영평가성과급을 지급하는 시기, 방법, 조건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어 KIFRS는 1037 문단14와 KIFRS 1019 문단 61에 근거하여 기관별과 달리 회계처리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각 기관에 따라 배당금지급 여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감사원 감사의 지적 가능성을 고려하여 우리 법인의 공공기관 감사에서는 일관되게 회계처리가 될 수 있도록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공문 내용을 보고 '여전한 건 여전하구나...'하고 한동안 끅끅대고 웃었습니다. 설명충 얘기 들어가자면 다음과 같아요. 제가 퇴직하기 직전에 하던 일은 공공기관에서 급여를 기획하는 쪽이었어요. 공공기관에서는 1년에 한 번, 직전년도의 기관 경영평가를 소관부처에서 실시하고 그 평가등급 결과를 반영하여 전 직원에게 경영평가성과급을 지급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지침에 따라 1년치 인건비 예산을 짜고 촘촘하게 관리하는 것도 그 팀 일이었어요. 또 다른 일이었던 퇴직금 산정에는 당시 기준에선 경영평가성과급이 평균임금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나간 다음에는 공공기관에서 소송을 제기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더군요. 마침 구회사 노조에서도 소송을 추진하길래 저도 자료를 보냈습니다. 자료는 고스란히 제가 있던 팀으로 가겠죠. 팀에서 저와 같이 일하던 양반들ㅋ은 제 자필서명을 보면서 '잘 지내는 모양이네'하고 웃으면서 돌려보셨던 모양입니다. 뭐 모르면서 좋을 대로 말하는 건 여전하구나 ㅎ

세월은 그때로부터 1년이 더 지나갔고 이제 2019년도 회계감사 시즌입니다. 2019년에 각 공공기관별로 직원들 퇴직금이 적정하게 산정되었는지를 쪼렙 회계사들은 검증해야 하고, 그 때 퇴직금의 베이스가 되는 평균임금에 경영평가성과급이 들어가야하는지가 중요 이슈 사항입니다. 공공기관 특성상 직원들 근속연수가 길어서 산입 여부에 따라 굉장히 큰 금액이 달라지거든요.

'너네 거의 다 소송중인 거 안다. 그러니 예전처럼 정해주진 않겠다. 너네 리스크는 너네가 지고 잘 판단해라'는 지침을 내린 기획재정부도 여전하고, 예산을 심의하는 금융위원회도 여전했을 거고, 진행단계인 소송을 가지고 어쩌라고 하면서 모종의 결정을 작년 11월쯤 내렸을(저는 아마 그 결정을 알 것 같습니다) 예전 팀의 그 양반들도 여전했을 거고...

그저 모든 것이 여전한 건 여전하군요. 근황 잘 알겠습니다. 웃다가 이제 전 구회사와 드디어 이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여전하세요.

덧. 알바를 시작한 후에는 구회사에 다시 일하게 되는 꿈은 아직 꾼 적이 없습니다. 알바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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