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가수 안예은의 여름 호러 쏭 '창귀'는 8월 1일에 나왔고 저는 소문만 대충 듣다가 8월 5일에 처음 들었습니다. 처음엔 어 졸라 무서워; 하고 그냥 딴 거 했는데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재생이 되고 한 번 듣고 넘어갈 거 두 번 듣고 세 번 듣다가 머릿속에 창귀가 씌인 건지 예수쟁이가 나무~아미~타~불 얼씨구나 좋다 절씨구나 좋다 중얼중얼거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호랭이가 멸종하길 다행이에요... 안 그러면 씌여서 잡아먹힐 뻔 ;ㅁ;

https://youtu.be/8UUDyQyuvwI

게 누구인가 가까이 와보시게
옳지 조금만 더 그래 얼씨구 좋다
겁 없이 밤길을 거니는 나그네여
내 말 좀 들어보오
나뭇잎 동동 띄운 물 한 잔 마시며
잠시 쉬어 가오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우하사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나는 올해로 스물하나가 된 청년인데
범을 잡는다 거드럭대다가 목숨을 잃었소만
이대로는 달상하여 황천을 건널 수 없어
옳다구나 당신이 나를 도와주시게
얼씨구 좋다 어절씨구 좋다 그대
나와 함께 어깨춤을 덩실 더덩실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이 밤
산신의 이빨 아래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무꾸리를 해보자 네 목숨이 곤히 붙어있을지
무꾸리를 해보자 미천한 명줄이
언제고 이어질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 사이에는 웅신님이
연못 바닥에는 수살귀에 (아수라발발타)
벽공너머에는 불사조가
나그네 뒤에는 도깨비가 (아수라발발타)
교교하다 휘영청 만월이로세 얼쑤
수군대는 영산에 호랑이님 행차하옵신다
얼씨구 좋다 어절씨구 좋다 그래
어디 한 번 어깨춤을 덩실 더덩실
하찮은 네 놈 재주를 보자꾸나
이곳이 너의 무덤이로다
얼씨구 좋다 어절씨구 좋다 우리
모두 함께 어깨춤을 덩실 더덩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혼령이 되어 또 왔네)
눈을 뜨면 사라질 곡두여 이 밤
산군의 길 위에서
너를 데려가겠노라

======

가사는 위와 같습니다...존무 ㄷㄷㄷ

'창귀'라는 게 한국 전통 귀신, 귀신 중에서도 악귀입니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창귀로 호랑이의 노예-수발놈-_-이 되어 길 안내, 식사 시중 등 각종 수발을 들다가 자신과 같은 신세로 산사람을 잡아먹히게 해야 겨우 풀려나서 저승으로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창귀 신세를 면하려고 가족 친척 친구 사돈의 팔촌까지 다 찾아가서 잡아먹히게 하려고 갖은 수를 다 쓰기 때문에 창귀가 밤에 부르고 꼬이면 들은 척도 하지 말라-는 게 구전설화인데요, 그냥 밤에는 험한 데 나다니지 말고 얌전히 있을 것이며 지인이 호환을 당했다고 구하려고 따라가거나 복수한다고 줄초상 치르지 말고 우리라도 목숨을 건지자는 (전) 호랑이의 나라다운 설화라 하겠습니다.

 

이 창귀 쏭은 안예은 본진인 트위터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어서 각종 존잘님들이 창귀를 주제로 한 연성을 쏟아내고 계시니 존잘의 연성이 어떤 것인가를 구경하고 싶으시면 트위터에서 검색해보시길. 전 눈호강 많이 했습니다. 거개가 호러라 제 취향은 아니긴 한데 존잘이란 취향을 뛰어넘는 것이라. 그리고 여러 가지 2차 해석들도 돌아다니고 있는데 개중 흥미있었던 것은 '햇님달님' 설화의 호랑이가 자신이 잡아먹은 오누이의 어미인 척 목소리를 흉내낼 줄 아는 것이 실은 잡아먹은 어미가 생전의 목소리를 내며 아이들을 잡아먹으라고 인도하는 창귀가 되었다는 거였습니다;ㅁ; 그러나 최고는 역시 본인이 하는 연성이겠죠.

https://www.youtube.com/watch?v=13-YRd7pOM0&t=42s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에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다만 제가 말을 더 얹고 싶은 것은 화자인 '범을 잡는다고 거드럭대다가 목숨을 잃은 스물하나 청년'이었으나 이제는 악귀화 진행이 다 되어버린 창귀의 선명한 악의와 조롱입니다.

 

창귀는 처음엔 은근하게 추어주며 꼬입니다. 그러다가 문제의 '범을 잡는다고 거드럭대다 목숨을 잃었소만'에서 자분자분하던 목소리는 한과 광기로 폭발합니다(안예은 특유의 확 뒤집어꺾는 매력적인 창법인데 아주 또렷또렷하니 듣기 괜찮아요) 비명횡사했는데 황천길도 못 가고 자신을 죽인 짐승의 시중을 들고 있다니 그 분노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네의 눈앞에 있는 자신이 사람이 아닌 악귀임을 스스로 처음으로 소개하는 부분이죠. 그리고 '옳다구나 당신이 나를 도와주시게'에서 나그네에게 자신의 억울한 죽음과 창귀로서의 노예 라이프까지 떠넘길 것임을 밝히고는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앞에 창귀가 분노가 있다고 했죠. 근데 그 분노는 호랑이에 대한 분노는 아닙니다. 호랑이는 자신이 범접하기에는 너무나 큰 존재이죠. 대신 그 분노는 자신이 꼬여낼 인간, 그 중에서도 특히 진작에 꼬임을 당해서 해방을 시켜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이제야 나타난' 인간-이미 공포로 제정신이 아닐 가련한 청자에게 굴절 분노로 가서 조롱과 악의의 형태로 표현됩니다.(왜 예전에 아라비안 나이트의 에피소드 있잖아요. 갇혀서 자기를 구해주면 세상 다 주겠다고 하다가 점점 대답없는 기다림에 지쳐서 결국 자기를 구해주는 사람은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하는 거 그거 생각나더라구요; 사람...이 경우엔 악귀는 언제나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나 호랭이한테 싱싱한 인간 밥때에 제대로 배달 안시켜준다고 개갈굼을 당하는 처지는...어우;)

 

조롱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전과 후를 갈라쳐서, 전 부분을 다시 되밟아보면 그 의뭉스러움에 소름이 끼칩니다. 나중에 '미천한 명줄'에 '하찮은 네놈'로 후려칠 거면서 앞에선 왜 그렇게 존대해주면서 살살 꼬였는지. 그리고 나그네 모셔가면서 창귀가 '신령님이 보우하사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거 있잖아요. 거기서 신령님이 아무래도 산신, 호랑이인 거 같아요. 아무리 해 봤자 여긴 산이고 산신이 보우하사 너는 산신의 밥이 될 것이다 이렇게 들려서 흑흑. 그리고 악의야 뭐... 반전부터 마지막으로 치달을수록 더욱 더 선명해집니다.  재밌는 건 청자를 죽음보다 더 못한 길로 몰아갈 악의가 더 강해질수록 화자의 홀가분함과 기쁨은 더 강해집니다. 이제 해방되어 저승으로 떠날 테니까요. 마지막 '이 밤 산군의 길 위에서 너를 데려가겠노라' 부분은 순수한 어린아이의 목소리와도 같습니다.(아니 쫌 애기동자 내림한 무당 목소리 같기도 해;;) 순수한 선과 순수한 악, 기쁨과 악의는 통한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다 들은 제 감상: 쟈 황천가도 제정신되기 힘들 것 같은데...그냥 악귀가 이제 체질인디-_-;;;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