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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잘 주무셨나요. 

저는 하던 대로 열두 시쯤 잠이 들었는데, 이집트인이 캘리포니아의 한국인 일거리를 스카이프 전화로 새벽 한 시에 시키는 인터내셔널한 꼬라지를 당하고 신둥건둥 자다가 다섯시쯤 또 잠이 깼습니다. 하지 가까워져 오니 영 일찍 깨네요. 암튼 이제 잠도 다 깼으니 커피 한 잔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얼굴에 열을 내리는 고무팩도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3박 4일 서울 여정 우려먹기도 이제 마지막 포스팅에 들어갑니다.

토요일 저녁 모임은 좌장께서 점지해 주신 서순라길 '이다'입니다. 이 길은 안국역에서 좀 동쪽으로 더 가서 돈화문 우편에...그러니께 제가 좋아라하는 '카페 기억'도 지나서 1~2분쯤 가면 있는 고즈넉한 길입니다. 가을에 한 번 더 오고 싶은 길이네요. 대충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자그마한 한식 기반 레스토랑이 많습니다.

요렇게 생겼습니다. 예약시간은 다섯 시(업장 규모도 크지 않고 인기가 꽤 있어서 예약 안 하면 가기 힘듭니다. 예약은 캐치테이블) 4시 45분쯤 도착했더니 오픈 준비하고 있다고 좀 있다 들어오랩니다.

정문 바로 옆에 걸려 있는 메뉴는 이렇습니다. 물론 노안 엔트리가 읽기에는 너무 작은 활자입니다만, 이렇게 들어가기 전에 메뉴를 걸어놓는 모습은 매우 아름다워 보입니다. 마침 정문 밖에 나뭇길도 참 아름답고 괜찮은 벤치도 있어서 앉기 좋습니다.

1부 저녁 다섯시가 다 되어서 입장. 예약 자리는 2층에 있습니다. 2층 올라가는 계단 각도가 쫌 급해서 와인을 쳐마시면 위험할 수도 있겠습니다.

기왕이면 창가 자리가 좋겠는데 그건 일찍 예약이 끝난다는 좌장님의 설명. 안쪽에서 푸릇푸릇한 밖을 내다보는 것도 좋습니다. 테이블간 간격은 멀어서 대화하기 좋고 제가 좋아하는 깔끔간결 모던 인테리어. 루프탑 있다는데 거긴 안 가봤음.

음식과 와인을 시켜봅시다.

여기 와인은 죄다 내추럴 와인입니다. 제가 예전부터 유기농 와인과 내추럴 와인의 차이가 뭔지 궁금하면서도 핑프짓을 고수하고 있었는데요, 여기 소믈리에님께서 '유기농 포도를 쓰면서 정제나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맛이 일반 와인보다 독특하다'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유기농 와인보다 더 나간 거군요. 호오. 제가 고른 건 Ise marani Shavkapito 2020년산. 그루지야...아니 조지아산입니다. 조지아가 너무너무 러시아가 싫어서 러시아식 표기인 그루지야에서 조지아로 바꿨다던데 저는 옛날 사람이라-_- 그루지야가 더 입에 붙습니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러시아보다 소련, 중국보다 중공(그만해;)

어쨌거나 조지아는 저렴하지만 평판 높은 와인으로 유명하며 온천 등 관광지도 볼만한데 여행 비용이 매우 낮아서 한 달 살기로 떠오르고 있어서(제가 알면 다 안다는 얘깁니다 넵) 에스토니아의 꿈을 버리고 가 볼까 싶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당분간은 무리. 와인이라도 마셔 봅시다. 물론 내추럴 와인의 특색이 강해서 조지아 와인이 이렇다 라고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 대충 마음에 들었음.

구운 버섯, 양송이 버섯 소스, 라디치오, 말린 양파. 좌중에 팩트폭력배가 있는데 어머 이거 참 맛있는 버섯 요리다-근데 이런 데서 좀 비싼 양송이 버섯 같은 거 쓰지 마트에서 990원에 떨이로 파는 버섯 썼네 근데 맛있다(양송이 버섯은 소스로 썼대 하고 제가 얘기해줬더니) 어머 그래서 맛있었나 근데 그래도 좀 비싼 거 쓰지 그래도 맛있다..라는 의식의 흐름을 보였습니다.

바질 파스타, 방울 토마토, 그라다파노 치즈. 당연한 얘기지만 바질 향이 강하고 숏 파스타와 잘 어우러집니다. 

항정살, 참나물 샐러드, 태운 칠리소스. 항정살은 이가 슥 지나가도 잘릴 만큼 부드럽게 조리되었고 참나물은 아까 팩력배가 나물 매니아라 거의 다 먹어치웠는데 신선하댑니다. 그리고 여기가 소스 맛집입니다. 

마지막으로 시킨 돌문어, 감자 메쉬, 스리라차 마요. 누가 시켰겠어요 당연히 갱북의 딸, 저죠(...) 오래간만에 갱북 빼고 돌문어를 제대로 조리한 집을 보았습니다. 거기다가 스리라차 마요가 정말 잘 어울려서 오늘의 베스트 되겠습니다.

계절마다 제철 재료를 써서 메뉴가 바뀝니다. 조용한 곳에서 친밀한 4인 정도까지 모임하는 데 매우 좋을 듯 합니다. 한 접시당 가격은 만원~2만원대고 음식 양은 많지 않은 편. 아, 그리고 최대 2시간까지 있을 수 있고 주문 마감은 1시간 반까지만 받습니다.

만_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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