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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은이)
연아람 (옮긴이)
민음사 (국내 출판사)
2021-07-30 (국내 출간일)
원제 : Ultimate Price: The Value We Place on Life (2020년)

1장 돈이냐, 생명이냐? 10
2장 쌍둥이 타워가 무너지던 날 18
3장 ‘법 앞의 평등’은 없다 54
4장 생명 가격표가 수돗물의 수질을 결정한다? 86
5장 기업은 인간의 생명으로 이윤을 극대화한다? 118
6장 나도 할아버지처럼 죽을래요 152
7장 생명 가격표와 삶의 질 172
8장 아이를 낳아도 될까? 206
9장 고장 난 계산기 234
10장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64

나온지 얼마 안 된 신간입니다. 제가 이 책을 보게 된 계기는...

https://twitter.com/minumsa_books/status/1425366591114514435?s=20

출판사인 민음사의 이 트윗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관심이 있던 주제라 냉큼 주문 넣어서 읽었는데...으음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문해능력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어려운 밸류에이션을 수식 하나 없이 텍스트로 설명하려는 컨텐츠 때문인지 일반 책보다 읽기 쫌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워낙 다양한 각개 분야에서 생명 가격표가 의사 결정에 사용되는 메커니즘을 하나씩 설명하다 보니 이 방법론 저 방법론 이 변수 저 변수 다뤄서 머리 아픈 부분도 있구요. 읽다가 좀 길을 잃은 것 같으면 10장의 앞 부분에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가독성있게 요약하고 있으니 10장 첫 부분을 먼저 읽고 각론을 읽는 것도 방법입니다.

 

오프닝이자 가장 압축된 이 책의 요약은 이러합니다.

- 생명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고 하지만,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사람의 생명에 가격이 매겨지고 있다

- 그 가격 산정 매커니즘은 상당히 불공정할 때가 많고, 인종, 민족, 연령, 성별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통념대로 노인보다 젊은이가,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가, 외국인보다는 내국인이, 낯선 사람보다 가족이 더 가치있게 매겨집니다. 여성은 음...피해자의 입장일 때는 더 높게 매겨지지만, 소득 가치로 보면 남성보다 낮게 매겨지는 측면이 있어요)

- 가격이 부당하게 저평가된 쪽에서 고평가된 쪽으로 불공정이 발생한다.

 

'생명에 가격 매기기'는 테러 보상금, 민사 사건 배상금, 형사 사건 형량, 각종 규제, 생명 보험, 건강 보험, 인공 유산 등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또한 주체도 정부(테러 보상, 판결, 각종 규제, 건강 보험) 뿐 아니라 민간 기업(각종 규제, 생명 보험 등), 그리고 개인(인공 유산)별로 다양한 주체가 생명 가격표를 토대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고 삶의 질을 뒤흔들 수 있는 의사 결정을 내립니다.

 

공개된 자료의 한계가 있는지라 장 별로 논의의 깊이가 균질하지는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결정 과정이 많이 공개될 수 밖에 없었던 911 테러 보상금이나 각종 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은 생명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나 관련 변수에 대해서 세밀하게 분석합니다. 그러나 결과치만 알려져 있고 결정 과정이 불투명한 형사 사건, 인공 유산 등에 대해서는 결과치를 가지고 역추적해서 이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다시 이를 논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생명 가격'이라는 광범위한 테마에 대해서 일반 교양서적 한 권으로 풀어갈 때의 한계에 대해서도 이해합니다만 불균질성이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불균질함에도 불구하고 성감별 낙태에 대해서 성별 기대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 고찰하고, 고령 사회로 이행하면서 여성의 돌봄노동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러한 차이가 일부 보정될 것이라고 본 분석 등은 꽤 깊이가 있었습니다. 

 

미국 저자가 미국 사례를 주로 쓴 책이다 보니 한국인의 입장에서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한 서평도 보았습니다만...제가 보기엔 미국과 한국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물론 미국이 선진국 중에서 소득 등 변수에 따른 생명 가격 편차가 가장 큰 편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건강 보험 등 정책에 있어서 공공재적 성격을 미국보다 더 반영하는 편이기는 하죠. 하지만 미국의 위상이나 한국에 끼치는 영향력, 그리고 일부 민간 섹터가 끊임없이 이행하고자 하는 모델이 바로 미국의식 편차 큰 자본주의 모델임을 생각할 때 이 책은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이건 조심스런 얘깁니다만, 최근 한국의 젊은 세대 등 일각에서 점점 '숫자로 측정 가능한 일부 능력에 따른 기계적 차등 평가'가 '공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확산됨에 따라 이 책의 극단적인 사례가 멀지 않은 미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점 분석만 있고 대안은 없다-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전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게, 이 책에서는 이미 인간의 생명이 가치로 환산되고 이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가격산정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불공정한 변수 투입과 왜곡을 인식한 후 이를 보정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서 구체적인 대안(민감도 분석, 비경제적 가치 감안, 최소 최대값)에 대해서도 일부 제언하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은 향후 이뤄질 연구의 몫이라고 봅니다.

 

덧. 아, 그리고 각종 규제에 사용되는 비용-편익분석 방법론을 이 분야 전문가답게 매우 쉽고 깔끔하게 제시한 책이라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해당 챕터는 읽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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