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제가 실직한지도 이제 어언 1년 2개월이 되었습니다. 이쯤 되니 그간 근황을 물어보는 지인들의 물음 샘플도 엔간히 쌓이고, 거기에 대답하는 제 반응도 이력이 붙어서 글로 남길 만큼이 되었어요.

일단 상태 개괄을 하자면 '실직한 노처녀'란 참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대하기 난감한 상태라는 겁니다. 특히나 이 지방에서는 이 나이의 여자란 남편의 사회적 성공이나 아이들의 학업에 대해서 물으면 딱 좋은데(심지어 본인이 사회 생활을 하고 있어도 남편과 아이의 근황만 꾸역꾸역 묻기도 합니다;) 그것도 없고, 직장 생활도 안 하고 있으니...

이건 이것대로 난감해 보이고 말입니다(참고로 저 책은 읽어봤는데 제목하고 일러스트가 다 했습니다. 딱히 내용은 알차다고 보기 힘들어요)

그런데도, 혹은 그러니까 제 근황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은 가끔 있습니다. 이럴 때 제가 머릿속에 넣어두는 건 두 가집니다.

첫번째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나에게는 중요한 사실을 타인은 모르는 경우도 있고, 들었으나 까먹는 경우도 많고, 지금 얘기해줘도 TMI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더 많습니다.

두번째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아주 큰 호의도, 그렇다고 대단한 악의도 없습니다. 타인의 불행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동시에 자신이나 가족은 이 사람보다 낫다며 비교우위적인 만족을 느끼며, 심지어 그걸 얘기조차 한다 할지라도 안타까움도, 만족도 진심일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안타깝다고 해도 뭐 딱히 물질적인 도움은 안 줍니다. '화이팅!' 뭐 그런 거죠.

이제 세부 상황별로 들어가 봅시다.

​1. 질문 : 요즘 뭐해? / 대답 : (건강이 무척 안 좋아져서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 와서 쉬고 있어요.

괄호 안은 오래간만에 만나거나(제 기준은 '1년에 한 번 만나면 짱친 절친'입니다) 고향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에게는 꼭 부연설명의 서사로 붙여줘야 할 얘깁니다. 일단 오래간만이다 보니 왜 고향에 내려왔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고, 들었더라도 까먹는 경우도 많고 일단 겉보기에는 상당히 멀쩡해 보이다 보니(심지어 화장을 잘 하면 이뻐보이기조차 합니다!) '대체 왜?'에 부합하는 원인관계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쯤되면 이제 듣는 사람은 슬슬 심각해지며 절반은 아 괜히 얘기했다고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저라는 인간은 일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관짝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 회사를 그만둘 유형이 아니거든요. 이쯤에서 '화이팅!'으로 마무리짓고 떠나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말을 더 이어갑니다.

​2. 질문 : 그럼 뭘로(뭐 해먹고) 살고 있어? / 대답 : 모아놓은 돈 까먹고 살고 있어요.

이 대답은 두 가지 함의를 지닙니다. 일단 '모아놓은' 돈은 있되 까먹고 살고 있는 처지니 나한테 돈 빌려달란 얘긴 하지 말라는(독신자의 돈은 사회 공공의 것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얘기이기도 하고, 육친 등골 브레이킹은 안 하고 내 돈으로 먹고 산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등골 브레이킹에 대해서 얘기할 게 좀 많은데, ‘여자가 무슨 돈을 벌어 다 부모님이나 남편한테 받은 돈 쓰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이 지방에 특히 심한 사고에다 즤 아부지가 (실속은 없는) 지방 작은 유지쯤 되셔서 제 이른 퇴직에 대해 이리 넘겨짚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나 제 고질병의 원인제공자 첫번째 *씨는 동네방네에 ‘쟤 아부지가 (근무하는 사업장) 건물주라서 쟤가 그거 믿고 퇴직한 거니 걱정 안 해도 된다’라고 퍼뜨리셨다고 ㅋㅋㅋ

일단 즤 아부지는 이미 은퇴하고 사업장 넘겨준지 4년이 되었고, 그 사업장 건물은 임대에다 권리금 0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전 스물 이후로 집에서 보조 못 받고 제가 벌어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기대할 건 없습니다. 맏손자가 있는데 딸 따위 ㅋ(노후보장은 되어 있는 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뭐 대충 이런 기분입니다. 그 때도 대화 1도 없이 넘겨짚더니 여전한 건 여전하시네요...

​3. 질문 : 그럼 이제 결혼해야지? / 대답 : 아...(눈을 내리깔면서) 초산 연령도 지났는데요...
​이런 유형의 질문을 하는 분들 대부분은 여자의 결혼에서 효용 가치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거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공정위 위원장 후보에 대해 울산 중구 5선 양반이 한 쉰소리를 보면 아주 재밌는 맥락이 나옵니다. 결혼 얘기는 바로 뛰어넘고 애를 낳으라고 함 ㅋ) 또 심각해집니다. 얘는 왜 나한테 이런 걸 알게 하지...이쯤에서 손절 속출.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제 나이를 물어보고(사실 상대방 정확한 나이를 기억하는 경우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정부 정책에서도 벗어나는 나이임을 알게 됩니다. 건강하기만 하면 요즘 세상에...를 시전하려 하지만 1번이 생각나서 장벽.

그럼 이제 포기하고 ‘진작에 결혼하지 그랬어!!!’를 시전하지만 이 말은 ‘왜 내게 이런 난감한 상황을 주냐’ 이외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10년전 일을 어쩔 수 없다는 걸 다 알고 있거든요.

7-8년 있으면 재취 드립이 나올 거 같은데 그때 가서 고민을 해볼까 합니다.

3-1. 그래도 멋진 연애는 해 봐^^
​일단 이 경우까지 거의 안 옵니다. 일단 저랑 동년배거나 그 이상의 경우 아이를 낳기 힘든 나이의 여자가 연애의 쓸모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기혼이든 비혼이든 이 나이대거나 이상의 경우 연애도 강권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며 제 나이보다 아래인 남자들은 꼰대소리를 할 의지는 충분히 있으되...

...나이든 여자 자체에 관심이 없음 ㅋ

저도 뭐 두세번 들어보긴 했는데 그저 심각하지 않게 ‘아 ㅋ 굳이 ㅋ’ 정도로 넘깁니다. 심각했다간 옛사랑의 상처가 크다는 식으로 오해를 빚을 소지가...

대충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겠는데요. 중요한 건 자신의 처지도, 남의 호기심도 적당대충하게 넘길 수 있는 자세입니다. 저도 하루하루 관짝웨이팅일 때는 ‘왜? 건강해보이는데’ 한 마디에도 빡쳤었지만 관짝에서 좀 멀어지고 그냥 병자가 된 지금은 그저 건강해보이나부다 웃습니다.

화이팅 ㅎ

-끝-

728x90

https://thebillfold.com/a-story-of-a-fuck-off-fund-648401263659#.qyrs6vfn3

몇년전에 오다가다 링크된 쌀국 칼럼을 보게 되었어요. 너무 감명깊어서 영어 비전공자이지만 발번역을 했었읍니다. 솔직히 20대~30대들한테 노후 얘기해봤자 너무 먼 얘기고, "어차피 그때 국민연금은 다 없어질 건데" "그냥 죽을래"란 반응도 봐서.
너무 길어서 못읽겠다, 뭐 번역이 이러냐...하는 분들을 위해 한 마디로 줄이자면,
"회사가, 애인이, 가족이, ㅈ같이 굴 때 박차고 나올 자유를 얻기 위해서 돈은 꼭 필요하다"
(사족이지만, 쉽게 직장 그만두고, 애인하고 끝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ㅈ같아서 스트레스로 병 났지만, 먹고 살기 힘드니 계속 다닌다. 이런 얘기 많잖습니까.
부작용은..저처럼 됩니다 ㅋㅋㅋㅋ)

===========
당신은 대학을 졸업한 성숙한 여성이다. 티나 페이(당당한 독설 개그로 유명한 미국의 여성 코미디언)는 당신의 히어로이며 비욘세 노래는 당신에게 복음과 같다.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케어할지 잘 안다.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지킬지 잘 안다. 만약 어떤 남자가 당신을 친다면, 당신은 그 남자의 눈이 돌아가도록 팰 것이다. 당신은 "매드 맨"(회사 배경으로 한 유명 미드)을 봤고, 만약 누가 당신에게 회사에서 성희롱을 하면, 그에게 "꺼져버려"라고 하면서 면전에 커피를 부어버리고, 양손으로 뻑큐를 날리면서 문으로 걸어 나갈 거다.

당신은 이제 첫번째 인턴 자리를 구했다. 그리고 첫번째 신용카드를 받았다. 노드스트롬(미국의 유명 백화점)으로 가서 자축하면서 멋진 검은 가죽 스커트와 그에 어울리는 하이힐을 산다. 당신의 차는? 그건 대학생한테나 어울리는 차잖아. 리스를 해서 낡은 시빅(준중형 차)에서 최신형 어코드(중형차, 소나타급)로 바꿨다.

당신은 처음으로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 청구서를 받고, 그 금액을 확인한다.

당신의 삶은 "젊은 프로"가 써 있는 사진같이 멋있다. 당신과 당신의 직장 동료는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바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곳의 칵테일은 꽤나 비싸다.

대학시절 남자친구는 꽤 진지한 상태이다. 당신은 그의 집으로 이사해서 당신이 처음으로 장만한 커피 테이블을 늘어놓는다. 이케아에서 지른 금액은 당신의 새 카드 청구서 청구액의 반이나 된다.

당신은 인턴을 끝내고 취직했다. 당신은 카드를최소결제방식으로 바꾸고 이틀치 식료품과 주유를 하느라 카드한도를 꽉 채웠다.

당신의 은행 앱은 업그레이드되어 당신의 잔고를 보여준다. 반짝거리는 노드스트롬 백화점 카드는 정말 위급할 때만 쓸 수 있고, 당신은 7천달러의 빚이 있다.

당신의 남자친구는 월세를 잠깐 내달라고 한다. 당신은 몇달 후에 정직원이 될 거지만, 빚이 많다. 당신의 첫 월급은 꽉 막혀 있는 폐에 숨통을 터주는 공기 한 줄기와 같다.

당신의 멋진 새 상사는 그의 사무실로 당신을 불러서 애들 사진을 보여준다. 그는 자기 아들에 대해서 농담을 하고, 당신은 웃는다. 그는 당신의 팔에 자기 손을 올리고 잠깐 꽉 쥔다. 당신의 미소는 사라진다.

당신은 반반 내기로 한 공과금을 늦게 내서 50불의 연체료를 내게 됐다. 당신의 남자친구는 왜 그렇게 멍청하냐고 한다. "나는 바보가 아냐"라고 당신은 말한다. 당신은 바보가 아니지만, 다신 통장의 잔고 관리는 못 하고 있다.

당신은 직장 내에서 인맥 관리도 해야 하고, 칠면조 샌드위치 먹기도 지겨우니까 PF창(미국의 유명 레스토랑 체인)에 가자고 하는 새 직장 동료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누가 더 낼까? 당신은 남들이 당신을 "유능하고 멋진 젊은 여성"으로 봐 주게 하고 싶어서 당신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홀터 드레스를 산다. 당신의 상사는 그 드레스를 입으니 멋져 보인다고 하면서 빙글빙글 돌아보라고 한다. 분위기를 맞춰줘야 하니까, 시킨 대로 한다.

당신의 남자친구는 당신이 그 드레스에 얼마 줬냐고 말하고, 그거 입으니 통통해 보인다고 한다. 당신은 욕실에 가서 문을 잠그고, 남자친구는 문을 두드리지만 당신을 그가 좀 상처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잠든 후, 당신은 크레이그리스트(음...중고나라와 직방 합쳐놓은 거 같은 미국의 사이트)를 검색해서 방을 알아보지만, 월세가 엄청 오른 걸 확인하고는 인터넷 검색 기록을 지우고 잠이 든다.

몇주 지나서, 당신의 상사는 사무실에 당신을 불렀고 단 둘만 있다. 당신 뒤로 걸어가서는, 너무 바싹 붙어 서 있다. 그의 숨소리는 당신의 목을 간지럽힌다. 그의 손은 당신의 치마를 올린다. 당신은 움찔한다. 그는 "미안. 난 말이지..."라고 말한다.

딩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안다.다만 당신은 그걸 안 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당신은 그에게 "꺼져"라고 말하지 못했다. 당신은 은행에 159불밖에 없고, 차 리스료도 내야 하고, 카드 대금은 한도를 꽉 채웠고, 당신의 아빠한테 대출을 한번 더 갚아달라고 하기 전에 죽어버릴 거다. 모든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난 이 직업이 필요해"

"괜찮아"라고 내면의 목소리가 말한다. "그냥 잊어버려" 당신은 상사 사무실을 나오고, 사무실의 절반쯤 되는 여자 동료들에게 물어본 후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당신과 같은 비밀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된다.

아파트에서, 당신의 절친한 남사친이 전화한다. 당신이 전화를 끊은 후, 당신의 남자친구가 당신이 남사친과 통화하면서 얼마나 웃어제끼며 꼬리쳤는지 그와 섹스라도 할 기세였다고 말한다. 당신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 당신은 자리를 떠나려고 하지만, 그는 당신을 막아선다. 당신은 그를 지나쳐 가려고 하지만, 그는 당신의 손목을 잡고 눈을 바라보지만 당신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는 당신을 세게 밀쳐서 당신은 커피 테이블 위로 세게 넘어진다.

그는 울면서 미안해하는 것 같아서, 당신은 그날 밤은 남자친구 집에서 같은 침대를 쓴다. 당신은 어둠을 빤히 바라보며 남자친구 집을 나갈 돈을 모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해 본다. 그는 미안하다고 말했고, 그건 사고였고, 이번 딱 한번뿐이었잖아 라고 당신 자신을 납득시키는 게 당신 빚이나 돈을 생각하면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다음번엔 당신은 남자친구와 같이 외출할 거고, 그의 팔은 당신의 어깨를 감쌀 거다. 그리고 당신은 다른 여자들을 볼 때 그들의 긴 소매 밑의 손가락만한 크기의 멍을 상상할 거다.(그들도 데이트폭력의 희생자면서 참고 살 수 있다는 얘기)

자, 이 이야기가 역겨우면 앞으로 돌아가서, 당신의 이야기를 다시 써 보자.

만약에 어떤 남자가 당신을 때린다면, 누가 당신을 성희롱한다면, 당신은 "꺼져버려"라고 말하기 위해서 "좆까라 펀드"를 적립해놔야 된다.

당신이 가난뱅이 대학생처럼 산다고 생각해보자. 몇십년 연식이 되고 앞이 망가진 시빅을 몰고 다니고, 벼룩시장에서 산 옷을 입고. 당신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지만, 토요일에 웨이트레스 일을 한다. 당신은 개러지 세일(개인 벼룩시장)에서 커피 테이블을 산다. 힘들 거다. 당신의 학자금 대출이 짜증나지만, 당신은 여자친구들과 타코 트럭에서 산 음식으로 홈파티를 한다.

당신은 "좆까라 펀드"를 천불, 2천불, 3천불 모으고 6개월을 아무 도움없이 살 생활비를 모았다. 당신의 상사가 당신보고 "멋지네, 한바퀴 돌아봐"하면 "당신이 제 전문가로서의 도움을 필요하지 않다면 제 자리로 돌아가도 될까요?"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의 남자친구가 당신보고 멍청하다고 한다면 "다시 나보고 멍청하다고 했다간 나가버릴 거야. 그리고 나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상사가 당신을 만지려고 든다면 "꺼져, 찌질아"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쌍뻑큐를 날리며 문을 걸어나갈 거다. 시스템이 당신을 보호해주든 아니든, 당신은 당신을 혼자 돌볼 수 있다.

당신의 남자친구가 문을 막아서고, 손목을 잡는 행위가 위험해 보이면 당신은 그날밤 "좆까, 미친 놈아"라는 포스트잇을 남기고 떠날 수 있다. 당신은 멋진 호텔에서 룸서비스 샴페인을 마시면서 아파트를 알아보고 틴더(데이팅 앱)을 클릭한다.

"좆까라 펀드"가 든든하게 받쳐주고 당신이 더 멋진 새 직장을 구하면, 그때 더 멋진 까만 가죽 스커트를 사고, 멋진 컨버터블 차로 바꾸고, 절친하고 다음 여름에 태국으로 여행을 떠나라.

이게 훨씬 나은 얘기다.
그리고 아무도 당신에게 얘기해주지 않았던 얘기다.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