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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으로 오신 분들은 저는 의학쪽 전문성은 1도 없으므로 여기서 본 얘기를 실행으로 절대 옮기지 말고 병원 가시길 권해드립니다) 

어제 저는 에너자이저 조카 2호와 놀아주고 밤 열시에 뻗었는데 익일 두시 30분에 눈이 떠졌습니다. 아, 이건 불을 켜놓고 잠이 들어서였구나 싶어서 불을 끄고 도로 눈을 감아봤는데 잠이 안 옵니다. 그냥 포기하고 일어났습니다. 이건 마치 스님의 취침-기상시간 ㅋㅋㅋㅋ 108배가 수면에 좋다는데 해볼까 싶어요 ㅋㅋㅋ

말씀드렸다시피 몇달간 꽤나 바빴습니다.대략 아침 일곱시 반에 강제 기상해서 커피 한잔 들이붓고 정신차려서 일을 시작해서 밤 늦게 일을 끝냈는데요, 특히나 머리 쓰는 일을 하면 바로 자기가 좀 힘듭니다. 전 직장 상사는 '머리에서 공장 기계 빡세게 돌리다가 바로 멈추는 게 되겠냐'라고 명쾌하게 요약해주셨는데 그래도 잠은 자야 합니다. 다시 수면제 처방을 받을까 하다가 저는 비벤조다이아제핀 계열도 수면제 특유의 부작용이 좀 안 맞아서 그 동안 선물로 받은(...잠 못 자서 죽기 직전까지 가면 그런 선물도 꽤 들어옵니다) GNC멜라토닌을 입면 2~3시간 전 한알씩 먹고 잤습니다. 역시나 전문성 1도 없는 환자 입장의 케바케 입면 효과, 의존성 및 부작용(+의 상관 효과가 있습니다) 순서는

수면제(처방약)>>>>>수면유도제(시판약)>>멜라토닌(수면 보조 호르몬)>>>>>보조 건강식품(마그네슘, 글리신산, 카모마일 기타등등) 인 듯 합니다. 불면 증상이라는 게 서서히 깊어지는 게 아니라 뭔가 누적된 내부 문제가 두둥하고 터지는 쪽에 가까워서 한번 잠이 못 들기 시작하면 미약한 수단으로는 바로 효과를 보기 힘들어요. 그런데 잠을 못 자서 생기는 문제는 매일매일 체력과 해야 할 일에 영향을 미치는 거라 매일 매일 자기 전에 초조해지고-아 이러다가 더 잠을 못 자는데 신경을 안 써야지 하고 또 신경을 쓰고 그러다가 더 잠을 못 자고...망. 이랬습니다. 지금은 일을 거의 쉬는 상태라 압박감이 거의 없어서 다행입니다.

다행히 이번에 제가 한 일은 그리 책임지는 게 없어서 심리적 압박감이 매우 덜해서 멜라토닌으로도 수월하게 하루 5~7시간 정도 수면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비하자면 선녀 수준이죠. 문제는 일을 끝내고 나서-그니까 3월 말부터 멜라토닌을 끊었더니 그 때부터 수면 시간이 5시간 내외로 짧아졌습니다. 좀 애매한 시간이죠. 그간 불면 경험(...)으로 쌓인 빅데이터를 봤을 때+수면클리닉 의사양반 의견으로는 하루 최소 네 시간만 자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아주 큰 문제는 없습니다. 저도 지금 큰 문제는 없어요. 머리도 쌩쌩하게 잘 돌아갑니다. 낮잠도 안 자요. 문제는 이게 지난번, 또는 지지난번처럼 수면제를 먹어도 네 시간도 못 자는 상태의 전조가 아닌지(가장 최악의 상태에서 수면다원검사를 받았을 때 저는 수면제를 먹고 입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총 4시간의 수면시간 내내 80번을 깨는 발작적인 상태였습니다. 자도 잔 상태가 아닌 거죠;), 그리고 누적된 수면부족이 지난번처럼 장기 종양 활성화로 이어지는 게 아닌지 뭐 이런 합리적인 의구심이 생깁니다. 저는 이제 젊지 않지만 제 종양이 다시 커지기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거든요.

수면 부채라는 건 몇십년전에 한 의사양반이 주창한 개념인데 이후에 발전 계승되면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적정 수면 시간인 7~8시간 미만으로 잠을 잤다간 모자란 잠이 누적되어서 본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갉아먹는다는 거죠. 낮잠이나 주말 몰아자기로는 빚 갚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번 불면증이 발병하면 24시간 내내 못 자서; 원체 먹물들이란 너무 많이 알아서 문제인데 저는 몇년전에 요쪽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되었을 때부터 열심히 수면 과학과 정신의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문제는 알면 알수록 암울해져서 더 악영향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딱히 도움이 안 된게 전 직장 동료는 밤새 못 자서 퀭해진 제 면상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들리게 낭랑한 목소리로 "키모씨야 내가 어제 신문에서 수면부채라는 걸 읽었는데 이런이런 거고 읽다가 니 생각이 들었어"라고 해서 다 알고 있는 얘기니까 날 머리 휘갈겨서 강제로 잠들게 할 게 아니면 닥쳐줄래 라고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에이 할 걸 그랬어 할 얘기 다 참았다가 이모냥 이꼴 된 건데 그럼 후련해서 그날 잠이 10분이라도 더 늘었을지도; 이미 좆되고 더 좆될 사람에게 너 좆될 거야라고 해봤자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그녀가 쌍년인지 그냥 선의의 넌씨눈인지 좀 고민했었는데, 그때도 알고 있었고 지금 냉정하게 판단해도 후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다만 서울 분들은 상냥한 썅내를 기본으로 탑재한 경우가 꽤 많지요.

암튼 돌아가서; 당시에 주변 사람들은 '키모씨는 왜 잠을 못 자는가'에 대해서 역시나 도움이 안 될 토론을 벌였는데요,

-니가 예민해서 그렇다(...라는 게 당시 지방의 제 직속상사, 제 불면증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분이 하신 얘기였는데요, 육친이 동일한 증상이 나타나서 일상에 중대한 지장을 겪으면서 이 얘기가 쏙 들어갔습니다)

-니가 착해서 그렇다(...입바른 소리 안 하고 말을 아끼는 경향이 있는데, 착해서라기보다는 그게 유리하니까;)

-교통사고의 후유장해다(미국 그거요)

-유전이다(부계, 모계 중 한 쪽이 내림으로 잠을 잘 못 잡니다)

넷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넷 중 여럿일 수도 있고 넷 중 넷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선후 인과관계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제 종양 때문에 불면증이 생긴 걸지도 몰라요. 분명한 건, 병원 어딜 가도 근원적인 원인에대해서 밝혀주진 않습니다. 알 방법도 없구요. 너는 이제 퇴사도 하였고 머머리팀장도 안 보는데 왜 다시 잠을 못 자냐고 하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몸, 그리고 정신 상태는 대충 '사고 침수 차량'에 비길 만하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네요. 사고로 침수되어 속속들이 차 내부 엔진까지 물과 각종 오염물이 들어간 차량 중에서도 폐차는 안 하고(...뭐 언제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비한 차량은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굴러갈지 모르지만 언제 다시 퍼질지 모릅니다. 제 몸 저도 잘 몰라요. 그리고 숱하게 뵌 의사양반들도 본인들의 전문분야 안에서, 제가 찾아가는 그 시간 안에서 알 뿐이죠.  

저는 제 의지력 따위 믿지 않습니다. 지금은 더더욱요. 그리고 이게 내부 진행-발병-치료-치료 효과 발생까지 각각 시차가 꽤나 커서 발현된 후에는 이미 늦은 상태라는 걸 압니다. 그래서 미리 병원을 가볼까 해요. 아마 병원 가도 과거에 수차 겪었던 것처럼

-약물 처방

-비약물 요법

-수면 위생 권고

이 큰 틀 안에서 돌아갈 것 같군요.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은 천지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혹시나 심각하지 않더라도 저는 잃을 게 없습니다~_~

혹시나 검색하셨다가 낚인 분들을 위하여 수면 위생 정보를 쓰자면,

- 수면 시간은 규칙적으로, 가급적 밤 10시~2시는 수면시간으로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만 저도 불가능하므로, 열두시 전에는 잠을 자려고 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수면에 도움이 됩니다만, 격렬한 운동은 오히려 방해가 되므로 입면 3시간 전에 끝내는 게 좋습니다. 경험상 5~10분 잔잔한 숙면 스트레칭은 자기 직전에 해도 괜찮고,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TV, PC, 태블릿,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은 입면에 방해가 되므로 3시간 전에 끝내는 게 좋(..습니다만, 저도 불가능하므로 1시간 전에 끝냅니다. 전문성 1도 없는 경험을 얘기하자면, 스마트폰>>>PC>>TV 순으로 입면 직전에 해롭습니다.

-입면 전에는 필사, 독서 등 안정적인 두뇌 활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수면용 잠옷은 입면 직전에 입어서 두뇌가 '수면 시간이다'를 구분해 주도록 합시다.

-샤워는 수면을 도와줍니다만 너무 입면에 임박한 상태에서 뜨거운 샤워는 몸을 활성화시켜 방해가 됩니다. 미지근한 물로 적당한 시차를 두고 합시다.

-침대는 수면과 섹스를 위한 장소로만 쓰고 다른 활동에는 쓰지 않습니다. 침실은 가급적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만 사용해서 침실에 들어가면 두뇌가 수면 준비로 인식하도록 합니다.

 -침실은 암막커튼, 안대 등을 활용하여 어둡고 약간 서늘한 상태로 유지합니다. 

-입면 전 그리고 각성 상태에도 가급적 시계를 보지 않습니다. 몇신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침실에서 휴대폰과 시계를 치우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무소음 시계를 사용합니다.

-중간에 잠이 깨면 다시 잠을 청하되 15분이 넘어가면 거실 등 독립된 공간으로 이동해 가벼운 내용의 독서 등 단조로운 활동을 합니다. 잠이 오는 경우에만 다시 침실로 이동합니다.

-혹시나 못 잤다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는 일어나서 스트레칭 등으로 몸을 깨웁니다. 그리고 가급적 밖으로 이동하여 밝은 자연광으로 각성 상태를 유지해 줍니다.

-커피, 녹차 등 카페인은 아침에 각성시키는 용도로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카페인 내성 및 각성 시간에 따라 카페인은 제한하여야 합니다.

-자기 전에 전자기기를 치우고 할 활동으로 독서, 필사 외에도 수면일기 쓰기가 있습니다. 제가 미친듯이 돈 썼던 수면클리닉에서 몇 부 빼돌린 건데(...) 당시에도 저는 제가 재발될 가능성을 놓지 않았습니다 ㅋㅋㅋ 입면시간, 기상시간, 카페인 섭취시간, 식사시간, 운동시간, 본인의 컨디션 등등을 타임테이블 안에 기록하는 겁니다. 본인 마음 정리하기에도 좋고 의사양반 참고하기에도 좋습니다.

-저도 하기 힘들었던 건데 단기간에 좋아지긴 힘들다고 마음 정리하는 게 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도 단기간에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체로 6~8주, 혹은 더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면으로 일상생활과 인간관계, 체력이 갈려나가는 건 매일매일의 현실이므로 절망감 또는 초조함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인생은 원래 고통이고 견뎌야 한다'는 불경이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므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예수쟁이가 말하고 있습니다)

-남들의 걱정과 조언, 그리고 분석을 좀 초연하게 넘길 필요도 있습니다. 딴에는 걱정된다고 하는 얘긴데 딱히 도움 안 되는 경우도 많고(술을 진탕 마셔보라거나 ㅋ) 한국 특유의 정서로 '예민종자' '의지박약'으로 몰아가는 경우는 분노도 들 겁니다. 뭐 '그래 예민한데 어때서'로 넘길 때도 있어야겠고 적당히 손절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적당히 비우지 못하고 상태가 심해지면 '나는 머리만 대도 잠드는데'하는 사람들한테 질투어린 분노가 들 수도 있습니다. 퍽이나 좋겠다.

-불면증을 졸랭 낭만적인 상태로 표현하는 예술작품을 보면 '뭐 어쩌라고' 싶습니다. 맨날 짝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잠못이룬다는 장범준씨 말입니다.

-반대로 부드럽고 낭랑한 목소리로 지루한 문학작품을 읽어주는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팟캐스트로 절 재워주신 김영하씨 감사합니다. 특히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제 수면버튼(경증 한정). 감사해서 책 사드렸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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