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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1997년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분분한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겠지만, 그 당시를 체험했던 한국인이라면 97년 IMF 구제금융이 수위에 올라갈 겁니다. 전 97학번이었는데 1학년과 그 이후가 현격하게 나뉘었죠. 그 전까진 공부 잘하면 취직 되겠거니에서 날고 기어도 이 낯짝으론 여자가 영남에서 멀쩡한 데 가기 힘들겠다 싶어서 자격증을 수집할 결심을 2학년 때 하게 됩니다.

거기다 금융으로 밥먹고 살았고 하니 이 영화는 제 흥미를 저격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가장 제가 끌렸던 이유는...

영화 ‘혈의 누’ 와 같이 조선이(대한민국이) 왜 쫌 진보란 것을 하려다 내부 권력자들의 아집으로 망하는가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왜 얘가 교이쿠상도 아닌데 일본식 양반계급 저격논리에 물들었냐 하실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그러한 면이 없지 않잖습니까.

걍 잡담식으로 본 사람만 알만한 얘기 풀겠습니다. 스포 들어갑니다.

1.90년대 종금사는 은행 증권사보다 연봉도 최고급인데다가 일종의 투자은행적 업무까지 안 다루는 게 없는 최고의 직장이었습니다. 안전지향적 수재들이야 은행에 갔지만 똘똘하고 야심있는 애들은 종금사에 꽤 갔죠. 빛아인씨가 종금사 과장이란 건 꽤 그럴듯합니다.

문제는 종금사 97 신입 연수장에서 신입들에게 딴 데 가지 말라며 현금봉투를 나눠주길래 인사부 연수팀인 줄 알았던 빛아인씨가 갑자기 본사 자금조달팀이나 할 만한 해외전화를 연수 버스에서 겁니다. 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지점 소속 개인금융 PB더라구요...뭐지;;; 소규모 부띠끄도 아니고 종금사면 대기업인데 말입니다.

우리 빛아인씨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영화적 허용이라고 해 둡시다.

2.실제로 한국은행이나 금융감독 당국엔 97년도 당시에 팀장급 여자가 없었습니다. 구 회사도 겨우 90년대 초반에야 중견 여직원을 뽑기 시작했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죄다 나가고...3-4년차 똘똘한 애널리스트 박진주(전 이 여배우 좋아합니다. 아우 똘망똘망해)가 가장 근접한 설정일 겁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이 영화의 카산드라가 김혜수인데요.

아...예언을 믿긴 했네요. 다만 해결책을 아무도 믿지 않았을 뿐이지. 결과로 보면 그게 그거죠.

3. 메인 빌런 조우진(근데 왜 빛아인씨가 크레딧 두번쨀 차지하는 겁니까. 전 안 봤지만 미스터 선샤인이다 뭐다 해서 요즘 상종가지 않나요)이 맡은 재정경제부 차관 역이 너무 평면적인 악악악역이지 않냐는 의견이 꽤 있던데, quasi-공노비로서 그 조직 분들을 만나본 제 의견으로는...

똑같던데요-_- 그 선민의식, 의사결정자로서의 압도적 우월감, 도덕성 따위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우위 인지, 그리고 조직에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소명 의식까지 말입니다. 그 조직 참 똑똑해요. 근데 참...(후략)

3.김혜수에게 대외비를 강요한 위정자들이 실제로 이익이 될만한 ‘우리가 남이가’들에게 국가 부도 위기 정보를 공유하고, 김혜수는 육친인 오빠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건 그래서 시사점이 있습니다. 김혜수도 나름 명문 나오고 소속이 있어서 그 위치까지 갔겠지만, 마이너라서 지킬 수 밖에 없는 지독한 결벽성이 있을 거예요.

4.빛아인씨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넘 연기가 투자하는 조태오지 않냐, “하... 돈에 미쳤지만 위악 속에 고뇌하는 나” 연기가 부담스럽단 지적도 나올 만 합니다. 근데 제가 본 386(97년에 과장 달았으면 60년대 후반생일 겁니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좀 있어서요 ㅋ 걍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봤습니다.

5.오히려 오렌지족 투자자(크레딧에 배역 이름이 ‘오렌지’라고 나와서 족터짐) 류덕환이 더 놀랍더만요. 아니 우리 한떨기 수선화같던 더콴이가 왜...연기 잘 하네...근데 왜 ㅠㅠ

6.허준호씨가 90년대엔 방황하는 터프가이 청춘으로 날렸던 분인데, 그 시대를 그렇게 살아내니 짠하더만요.

7.진지먹은 설명충 모드로 들어가자면, 한은은 대출 업무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뒷방 늙은이...아니 연구소 모드보단 검사권이 더 있을 때라 시중은행에 영향력은 있었을 겁니다.

8.이 영화를 빅 쇼트의 한국판 마이너 카피 정도로 보는 해석도 있는데, 혈의 누 1997로 보는 저는 그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애시당초 빅쇼트는 뭘 해도 이길 수 밖에 없는 글로벌 투자은행 이너서클의 머니게임이구요, 변방의 이 나라는 뭘 해도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9.97년도 기업에 대한 잣대 전가의 보도는 부채비율 200프로였구요, 은행은 BIS 8%였습니다. 양인들은 언제나 야만인들이 익숙치 않은 숫자를 들이미는 걸 좋아하죠. 다음 번엔 뭘까요? 이래봤자 또 당하겠지만 ㅋ

10.현재 씬에서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보고서를 던지는데, quasi-공노비로 너무 익숙한 양식이라 터졌습니다.

끝난 김에 한국판 위아더 월드 ‘하나 되어’ 뮤비나 보고 갑시다. 뜻하지 않은 아픔을 겪은 건 맞는데 갑남을녀가 앞만 보고 달려간 게 아픔의 원인이었을까요 ㅋ
https://youtu.be/ADct5rBI1Ng

-시간 날 때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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