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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 노르망디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로부터 

데이비드 호크니,마틴 게이퍼드 (지은이),

주은정 (옮긴이)

출판사: 시공아트

국내 출간일: 2022-01-24

원제 : Spring cannot be Cancelled

국내 정가: 25,000원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비싼 화가'(대체로 설명할 때 잘 먹히는 경구라 저는 가끔 써먹습니다)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친구이자 평전 작가, 미술 전문가인 마틴 게이퍼드와 2018년부터 2020년 넘어까지 주고받은 수많은 실제 만남, 전화, 페이스타임, 이메일, 그의 작품과 다른 화가들의 작품, 심지어는 논문까지 담은 책입니다. 실제로 둘의 대화나 이메일 내용이 직접 꽤나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이 위대한 화가(아 죄송합니다 요새 먹고살자고 영어 원문을 자주 봤더니 영어식 표현이...)의 말을 가까이서 듣는 것 같은 효과를 줍니다.

 

2018년에 호크니는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살기 시작했는데요...

(저는 가끔씩 제가 가진 짤 자랑하려고 포스팅하는 것 같습니다;ㅁ;)

여기서 노르망디는 바닷가 메인에 시골과 알콜중독이 좀 겹쳐 있군요. 제가 기억하는 노르망디는 프랑스 소설 '여자의 일생'(예쁘고 돈 많고 착하고 사랑을 믿고 줏대없는 여자가 인생ㅈ되는 이야기;;;) 배경으로 거친 바다에 잇속 빠르고 프랑스치고는 좀 춥고...암튼 에 별로였어요('여자의 일생' 자체가 암울한 얘기라서 뭐 인상이 좋을 리가;;;)

 

그런데 호크니가 말로, 글로, 그림으로 묘사하는 노르망디를 보자 그런 선입견은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모네의 지베르니, 고흐의 아를을 보고 느꼈던 것처럼 노르망디의 아름다움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저는 살면서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해 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요...(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저는 좋은 상태든 나쁜 상태든  그럭저럭 만족하고 적응하는 편이고,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라서요) 호크니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엄청난 부(...아 이게 1도 안 부럽다면 거짓말이겠지만;)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 미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80이 넘는 나이에서도 점점 그 저변을 넓혀가는 끊임없는 호기심과 지성, 그리기를 놓지 않고 조수와 기술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얻어가며 최첨단 앱을 써서 전진하는 작품 세계,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규칙적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자기 관리(너무 인간미 없으려다가 담배 안 끊는 거 보고 좀 안심했음<-;;;) 지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소중함을 잊지 않고 계속 교류하는 자세,

 

결정적으로 그가 사랑하는 그림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인간적인 관심과 애정도 계속 이어가는 마틴 게이퍼드같은 친구가 있다는 게 참 부러워졌습니다. 

 

일화에 보면요, 마틴 게이퍼드가 아내와 함께 트란실바니아를 여행하고 있을 때 호크니가 15세기 러시아 성직자이자 미수사가인 파벨 플로렌스키가 쓴 역원근법에 대한 독특한 주장의 80페이지 글을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게이퍼드는 산에서 아이폰으로 그걸 다 읽었어요(사랑이다...) 역원근법이라는 게 르네상스 때 표준으로 자리잡은 원근법과는 달리 여러 소실점과 중심을 가지는 기법인데요, 게이퍼드는 이걸 이해하고 호크니가 이 이론에 흥미를 가진 이유를 그의 지금까지 작품세계에서 읽어내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호크니는 다음 이메일에서 당연히 80페이지짜리 논문을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을 이어나갑니다(아 님 쫌...)  

 

미술에 관한 책으로도 훌륭합니다. 호크니의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공간 해체와 재조립, 큰 스크린, 여러 소실점과 다양한 터치, 찰나가 아니라 시간이 계속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작품, 영원하지 않고 계속 변하는 색상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구요. 호크니가 비단 그의 우상인 피카소와 현대-인상파 화가 뿐 아니라 르네상스, 고전파, 중세의 여러 나라를 넘나드는 그림에 깊은 감명을 받고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브뤼헐이나 카라바흐(넹 저는 그림도 좀 익스트림한 걸 좋아합니다)를 좋아한다는 걸 보고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 상승. 그리고 비단 그림에만 머물지 않고 영화, 미디어 아트, 심지어 태피스트리에서까지 영감을 받습니다.(아놔 그놈의 호쿠사이는 왜 글케들 좋아하는 거야 나도 좋아한다만;)

 

그림과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넓어지고 깊어진, 그리고 현실적이면서도 좀 부드러워진 기분입니다(응 기분만 그래;) 추천.

 

미술 관련 다음 책은 호크니와 프랜시스 베이컨을 동시에 다룬 책입니다. 베이컨이 누구냐면...

이거 그린 양반요. 제가 그랬잖아요 전 익스트림한 취향이라고 ㅋㅋㅋ(근데 나홍진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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