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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좌사...아니 임우신씨의 생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의천도룡기 2019에서 양소와 조민의 관계성에 대해서 써 보겠습니다. 좀 더 부연 설명을 해 보자면 '깊은 이해와 가벼운 동족혐오'가 되겠군요.

 

양소와 기효부의 관계성이 아니라 저 둘을 다루는 이유는, 미리 써먹었기 때문이고 

https://kiel97.tistory.com/entry/%EC%9D%98%EC%B2%9C%EB%8F%84%EB%A3%A1%EA%B8%B0-2019-%EB%93%9C%EB%9D%BC%EB%A7%88-%EB%B2%84%EC%A0%84%EC%9D%98-%EC%96%91%EC%86%8C%EC%99%80-%EA%B8%B0%ED%9A%A8%EB%B6%80%EC%8D%B0

두번째로는 이들이 커플링으로서가 아니라 서로 비슷한 두 개체로서 맛집이기 때문입니다. 둘은 높은 지적 취향을 가지고 살짝(아니 실은 많이...) 비틀려 있는 존재이며 취향조차도 '올곧고 바른' 객체 매니아라서 서로에 대해 빠져들 가능성은 1도 없습니다. 둘 다 그건 아주 잘 알고 있죠.

 

사실 둘 다 서로를 아주 '기능적인' 존재로 다룹니다. 그 매개체는 역시 장무기죠.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명교즈를 조민이 처음 초청했을 때로 돌아가 봅시다. 조민 군주가 대접한 차에 대해서 한 번 다완을 달각거리고 이름을 정확하게 맞추면서 '하루를 말을 타고 내달려서 배달해야 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차'라고 속성을 맞춘 건 조민의 타겟인 장무기가 아니라 양소였습니다. 그리고 양좌사의 그 말에 명교즈가 '으응? 뭐 위험한 거라도 탔단 말인가?'라고 움찔할 때 정작 양좌사와 조민은 태연자약합니다. 양소는 조민의 고아한 취향을 알아맞혔을 뿐이고, 조민은 그런 양소에게 '양좌사는 차에 대해서 잘 아시는군요'라고 답할 뿐입니다.

사실 이 둘의 공통점은 높은 인문적 소양 뿐 아니라 '그것이 굳이 필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살짝 배척받는 환경'이라는 것에도 있습니다. 양소는 의천 19에도 나오다시피 수많은 인문학 서적을 섭렵했고 김용의 원전에서도 명교의 역사에 대해서 집필할 만큼(아아...명교 빠돌이;;;) 교양이 높습니다. 조민 또한 그녀의 무공보다 높은 교양을 가진 존재죠. 하지만 명교와 몽골에서 그러한 소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양소는 전 교주가 부여한 광명좌사라는 그의 빛나는 지위와(동북아에서 좌는 우보다 높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광명우사보다 살짝 우위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무공, 그리고 조민은 군주라는 타고난 고귀한 출신과 빼어난 지략 때문에 존중받습니다. 지극히 한족스러운 이들의 교양은 한족 주류에서 배척받는 처지라는 점에서 어울리지 않습니다. 한쪽은 사이비 중 개사이비 명교 넘버 투고, 다른 한쪽은 오랑캐 군주잖아요. 그리고 몽말명초라는 난세에서도 이들의 한가로운 교양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본연의 능력에서 그렇게 고강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인문학적 소양은 주변에서 조롱하기 딱 좋은 소재였을 겁니다. 실은, 일단 양좌사는 적이 많으니께 그 지위에도 불구하고 잘난 척 하고 있다고 꽤나 갈굼당했을 것...(...)

 

둘의 중요한 만남은 한참 뒤죠. 실은 그 동안 둘은 여러번 마주쳤습니다. 극의 후반까지 장무기는 어디 가든 양좌사를 대동하고 다녔으니 실은 장무기와 조민이 단 둘이 밀회하지 않은 이상 계속 본 셈입니다. 실은 그 둘의 밀회도 양좌사는 다 눈치깠을 겁니다. 무기는 단순하니까요, 어쨌든 둘의 중요한 두번째 만남은 피의 결혼식...아니(맞구나;) 장무기와 주지약의 결혼식입니다. 이 때까지도 어쩌면 양소는 자신의 영민한 머리를 애써 합리화시키며 장교주와 주장문의 결혼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그것이 이제 교주가 중원 메인스트림으로 보내려는 명교의 미래와, 교주의 미래와, 그리고 자신과 기효부의 이루지 못했던 비원(얼핏 보기에 양소-기효부와 장무기-주지약은 거울 이미지처럼 비슷하니까요)을 이루는 길이니까요. 그래서 주지약에 대한 숱한 의심을 가라앉혔을지도 모릅니다. 명교 No.2로서든, 장무기의 양붜붜로서든(의천 19에서의 양소의 매력적인 면은 두 요소를 다 보여준다는 거죠. 명교에서 그를 인간으로서 존중해주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구요) 둘의 결혼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이죠.

 

그게 와자자자창창 깨진 게 피의 결혼식(아 몰라 이렇게 쓸래)에 조민이 쳐들어왔을 때입니다. 김용 할배의 영악한 점인데요, 그 특유의 정파와 사파 관계의 모호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비틀고 있습니다. 중원의 명문정파에 의해 언제나 의심받고 죄를 뒤집어쓰면서 멸문위기에 처했던 게 명교였는데요, 그 명문정파의 논리로 조민을 사파 요녀로 몰아붙이며 배척하는 거죠. 양소는 피의 결혼식에서 조민의 돌격에 대해서도 지극히 기능적으로 대응합니다. '지금 우리 교주가 기쁜 결혼식을 하고 있는데 꼭 이렇게 쳐들어와야겠냐' 물론 조민은 얘기할 대상이 양소가 아니라 장무기이니까 장무기에게 예전의 약속을 얘기하며 결혼을 중지하라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양소의 말 '조낭자, 몸 조심하시오(保重)' 여기서 임우신은 그 특유의 미묘한 표정과 목소리로 0.5초만에 모든 것을 전달합니다. '니가 뭘 하고 싶은지도 알아 그리고 니가 왜 왔는지도 알아 하지만 이건 내 주군의 절대 망칠 수 없는 행사 날이니까 니가 더 이상 치고 들어오면 난 어쩔 수 없어'라고요.

 

물론 조민은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죠. 그래서 크게 쳐맞고 피의 결혼식은 끝났고(...) 이후에 몽골 군주로서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야인이 되어 장무기를 찾아왔을 때, 다른 명교즈는 군주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렸지만, 양소는 '조낭자'라고 부르며 선을 긋습니다. 그에게 조민은 언제나 똑같았거든요. 다른 세상 다른 관계성에서 만나면 백만분의 일 확률로 지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이렇게 마주 보는 한 서로를 이해하고 너무 잘 알아서 희미한 혐오로 서로를 마주하는 두 사람요. 

 

그리고 그가 조민을 이해하는 건 한 분야가 더 있습니다. 그와 조민은 동류의 사람에게 미쳐 있거든요. 올곧고 올곧아서 끊임없이 올곧음을 추구하는 부류, 기효부와 장무기. 그는 피의 결혼식에서도 조민이 장무기를 사랑하는 걸 알기 때문에 그 막장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굳이 말하자면 올곧은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상대를 소유하는 것에 주력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망쳐서라도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사람도 있죠. 하지만 양소와 조민은 상대의 올곧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대의 바른 길에서 궁극적으로 미움받고 싶어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인 겁니다그래서 양소는 같은 취향 뿐 아니라 같은 '망한 사랑'을 하는 이유로 조민을 '조낭자'로 받아들인 겁니다. 망한 사랑을 하는 이상 나를 죽여도 상대를 망하게 할 일은 없으니까요.

 

의천 원전 뿐 아니라 19의 열린 엔딩에서도 공식 여주 조민과 조력자 양소가 뭐 어떻게 만나고 생각하고 할 여지는 없습니다. 그냥 그들은 서로를 적당히 이해하고 적당히 혐오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성은 참으로 맛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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