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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 -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은이),
강주헌 (옮긴이)
김영사(출판사)
2019-06-10(출간일)
원제 : Upheaval: Turning Points for Nations in Crisis (2019년)

읽었다고 말하나 사실 읽지 않은 책 탑 오브 탑에 꼽히는(...)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한국을 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코스트코 사장처럼 '한국만 생각하면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라거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한국 캐릭터를 등장시키거나 하지는 않지만 한국 인터뷰도 달갑게 꽤 많이 합니다. 한국에서 총균쇠가 세계 3위 판매 실적을 거뒀거든요. 이번에는 영문판과 한국판이 세계 최초로 동시에 출간되었을 정도예요. 그래서 '총균쇠'를 읽었을 때 혼자 열받았었던 '일본이나 한국이나 너네 민족 뿌리도 같고 한데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이런 새수빠진 소리는 이제 안 하겠지 하고 좀 안심을 하고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결론은요? 사람 쉽게 안 변합니다. 특히나 다이아몬드 교수처럼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서 주된 정보를 구하는 부류들은  특히나 경험의 함정에 잘 빠져요. 그 함정은 전체적으로 보자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꽤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총균쇠보다는 친절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연구의 방향, 책의 구조, 그리고 책의 목적에 대해 꽤나 간명하게(이 사람치고는) 설명합니다. 구조는 미시->거시->미시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개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위기 극복에 영향을 주는 주요 열두가지 요인 모델을 현대사의 일곱 국가에 적용시켜 위기 대응 과정을 설명하고 현대에 가장 중요한 환경 등 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시사점을 던집니다. 개인이 국가 사례에서 어떻게 통찰을 얻을 수 있는지는 각 사례마다 흩뿌려져 있으니 알아서 줍줍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국가적 위기 해결을 위한 주요 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 

②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국가적 책임의 수용 

③울타리 세우기. 해결해야 할 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조건 

④다른 국가의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지원 

⑤문제 해결 방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국가의 사례

 ⑥국가 정체성 

⑦국가의 위치에 대한 정직한 자기평가 

⑧과거에 경험한 국가 위기 

⑨국가의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 

⑩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

 ⑪국가의 핵심 가치 

⑫지정학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요렇습니다. 

물론 위기의 유형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핀란드와 일본처럼 외국의 공격 등 외부 요인으로 위기를 맞을 수도 있고, 칠레와 인도네시아처럼 정치적 갈등 등 내부 요인으로 위기를 맞은 국가도 있으며,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처럼 2차 대전 이후 점진적으로 확대된 위기를 겪은 국가로 분류해서 각각 열두가지 요인 모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요인과 선택이 불가능한 요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위기를 극복해 나갔는지 설명합니다.

 

문제는 이 사례의 첫번째인 핀란드가 꽤나 우울하고(2차 세계 대전 언저리에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국민의 몇 분의 일이 날아가고 영토도 꽤나 줄었습니다.) 장황한 서술이라 핀란드의 벽을 넘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립니다. 그래도 읽을 만 합니다. 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완독한 여자인걸요. 성경 개역한글판 구약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나면 세상 어떤 책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간 핀란드에 대한 조소섞인 '중립국의 탈을 쓰고 러시아에 붙어서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평을(최근에 읽은 부스의 책도 이런 식이었음) 들춰보면,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나 한국처럼 '지정학적 위치를 바꿀 수 없으며 매우 중요하고 골치아픈' 나라에서 참고할 만한 사항 몇개를 줍줍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델 자체를 따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두번째로 일본 말인데요, 일본은 19세기의 개항 당시에는 서양의 외세 세력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힘의 균형도 전혀 안 맞고. 하지만 일본은 핀란드와 달리 서양 세력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해달라는 거 적당히 해 주면서 외국 유학 지원도 받고 시간을 벌어서 훌륭한 침략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일본 지도에 동해가 'sea of japan'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_= 어차피 표기에 분쟁이 있으니 영문판이나 일본판에 저러는 거야 별 상관이 없는데 한국에 팔아먹으려고 들어왔으면 '동해'라고 로칼라이징하는게 편집자의 자세 아니겠습니까. 제 입장에서 더 심각했던 건 조선통신사를 '외면적으로는(중국 등에 명목적으로 내세울 명분으로는' 공물의 형태를 취하면서...'라는 부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통신사를 문화 교류를 위해 일본의 초청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통신사가 주로 문물을 가르쳐주는 식이었다고 역사 교과서에 서술합니다. 일본에서는 통신사가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 조선이 일본에게 공물을 바치는 식이었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형식적으로'라는 단서를 달면서 일본의 주장을 고대로 싣는 것은 마무리에서 '자료 조사에 큰 공을 세운 일본인 어시스턴트'의 내용을 비교 검증할 사람이 없었다는 얘깁니다. 

 

승질은 그만 내고, 일본편에서 줍줍할 수 있었던 유용한 통찰은, 메이지 유신은 일본인들이 다른 국가의 사례를 충분히 조사하고 취사선택하여 자신에게 맞는 구조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만 2차세계대전에는 의사결정자인 군부 세력들이 주적인 미국 등에 대한 해외 경험이 일천하여 적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못해서 망해버렸다는 얘기였습니다. 역시 큰 돈을 주고 해외 연수를 시키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칠레와 인도네시아는 자국민 탄압 얘기가 너무 꿀꿀하고 익숙해서(...) 넘어갔고,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미 알고 있는 사례라 큰 반전 없이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말미에 현재 지구가 공통으로 당면하고 있는 환경, 분열 위기에 초강대국인 미국이-트럼프 치하에서- 열두가지 요인에서 어떤 부족함을 보이는가는 좀 시원하긴 했는데 결국 그 미국에 영향을 받는 나라로서 굉장히 꿀꿀하기도 했습니다.

 

나라 얘기는 나라 얘기고, 결국 저는 개인으로서 위기 극복 모델을 좀 써먹어보기로 했습니다. 특히나 일본이 제 2차세계대전 이후에 빠진 '자기 연민'을 피하기로 말이죠. 저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상대 빌런들에 대해서 피해자로 제 자신을 규정했었는데요, 이제는 슬슬 벗어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일방적인 자기 연민은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다이아몬드 교수님. 다음에도 한국 시장이 기대되신다면, 특히 한일사 부분에서 교차검증할 에디터를 두심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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