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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오후 두시에 하는 창극 나무물고기달 보러 부산에서 남해에 갔는데  남해보물섬시네마는 오후 두 시에 나무 물고기 달을 취소하고 썰매 대작전 어쩌구 애니메이션을 상영합니다. 어쩐지 초딩 관객들이 선생님들과 와그르르 와서 음? 어려울 텐데? 했는데...
...그러나 저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습니다(엔간하면 쫌 물러서라는 멘션 들림)

오후 7시 50분에 하는 경남 산청에는 미리 전화로 확인하고 갔습니다. 네카구글맵이 가는 법 다 뻘소리하길래 서부경남의 허브 진주 경유해서 감
...네 이렇게 오늘도 광기를 전시하네요 ㅋㅋㅋ

뻘정보인데 군면리 단위에서 군면리 단위로 대중교통을 타고 바로 이동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네이버맵에선 37km를 택시를 타고 갔다가 또 다른 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하라고 하더라구요. 그 지역의 교통 중심으로 시외버스 타고  간 다음 갈아타면 됩니다.
남해터미널->진주터미널->산청터미널 2시간

오후 7시 반, 산청군작은영화관에서 나무물고기달을 보았습니다.
-3연 기도 메타+VOD 소장서비스 강력소취, 현대인들 마음의 응급 키트로 딱임.
-아 이 극은 달빛극장 원형무대가 제격이다
-음? 대중적인데?
-여덟 배우 다 실력이 무시무시함
-물고기는 정말 사랑스럽다

제가 이 극을 대중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첫번째로 동양적 환타지이지만 복선을 딱딱 회수하고 현실을 기반으로 한 데다가 인간중심적입니다. '귀신보다 집값이 무섭다'처럼 한국인들이 유독 환타지에도 현실 기반+이치에 맞는 걸 무척이나 원해요. 저도 그렇고.

첫 번째 장면에서 세 달지기들, 그 중에서도 퍼시픽 달지기가 혀를 끌끌 차는데 이는 극 중간에 순례자(이 분도 퍼시픽;)가 미혹에 빠진 모습으로 전개되고, 다시 세 달지기가 최후를 보는 모습이 반복되며 떡밥이 회수됩니다.

그리고 소녀와 소년, 물고기와 사슴나무들이 결핍된 것과 바라는 것, 무서워하는 것이 분명히 나타나고 그게 어떤 영향을 주며 어떻게 끝나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깔끔하게 끝맺어줍니다. 이를 풀어주는 달지기들은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매번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매번 자비롭습니다.

대중성의 두 번째 이유는 작창 위주로 흘러가지만 반복 변주되며 멜로디와 리듬이 쉽고 중독성이 있습니다. 모 기자께서 이 극에 대해 실험은 좋은데 오래 남는 게 없다고 까셨는데 전 그닥..
'아무것도 모르고 길을 떠나가네'
'몰라몰라 아무것도 몰라'와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가 얼마나 중독적인데.

제가 창극을 속성으로 배워서 그닥 아는 건 없습니다만 봤던 창극 중 가장 작창>>>대사 비중인 것 같습니다. 대사 치는 시간보다 춤 추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음. 이자람님이 작창하셨는데 56곡(...이었나?;)이나 맡겼다며 절레절레...중요 프레이즈가 반복변주되고 단순해서 작창이 대사 역할을 함.

아 그리고 국립창극단 배우들이야 다 에이스들이지만 이번 여덟분들은 이제 얼굴도 마이 익고(...) 해서 음색과 스타일, 몸짓 쓰는 것까지 다 눈에 들어오니까 매력이 정말 굉장하다는 게 다시 들어왔습니다. 이번에 눈에 들어왔던 분은 이야기소리꾼-사슴나무역 왕윤정님.

다른 사슴나무인 김우정 배우는 좀 더 러블리하고 소녀스럽게 풀어가는 게 있는데 왕윤정 배우는 도끼에 찍히고 살이 말라붙은 걸 묘사할 때 아주 무자비할 정도로 피를 토하는 가창과 표정, 몸짓이셨음. 판소리 찾아봐야겠어요.
기다려라 리건<-;;;

달지기-이야기소리꾼-순례자 역을 맡은 퍼시픽님은 옴-할때 오두미교 교주님의 사짜 연기가 생각나서(사짜 연기에 세계 제일인자인듯) 내적 웃음을 유발했고 아 맞다 퍼시픽님이 나이키 식으로 물구나무 서는 거 봤음...요즘 뭐 많이 구경하네요 역시 서울은 문화가 다양해.

아 그리고 전원 다 이야기소리꾼이지만 달지기로 역할이 고정되어 있는 분은 서정금님과 이소연님 두 분이고 나머지는 계속 옷을 갈아입으면서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넘나듭니다. 그렇다 보니 어두운 원형무대 뒤로 나가서 금방 갈아입고 다시 등장하고 이 연출이 필수. 그리고 빙빙 도는 원무에 딱.

뭣도 모르고 하늘극장 작다고 뭐라 한 저를 매우 쳐라. 원형극장의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나물달이에요. 작지만 알찬 구성.

우리(...) 물고기만 해도 이야기소리꾼-물고기-코끼리-미혹시키는 존재-이야기소리꾼으로 계속 역할이 변합니다. 김수인이 안 나올 때는 몇 분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나올 때마다 워낙 특이한 길이에 프로포션이라 매우 알아보기 쉬움. 그 무지기치마같은 프릴 치렁치렁때문에 더 길어보임.

그리고...그리고...
김수인은 정말 또라이같고 사랑스럽습니다...
제니 표정+난 내가 이쁜 거 알아요 장원영표정+수인이에게도 주접이 필요합니다 흘기는 표정 이게 막 무한대로 제공됨. 예를 들어
-물고기가 용이 되었다지?(흐뭇 이쁜척)
-썩어버렸다던데?(수인이에게도 주접이 필요합니다 눈흘김)

그리고 맨날 춤춰요 맨날 턴해요 쉴 때가 없어요 소녀와 소년이 티격태격할 때도 뒤에서 사슴나무 둘하고 웨저래 하고 눈땡글 굴리며 리액션하고 있구요 뭐 흐릿하게 아웃포커싱된 뒤쪽에서도 때록때록거리며 내말이<-;;; 하고 있습니다

더쿠 마음으로 가장 사랑스러웠던 거야 단연 '뻐끔뻐끔 뿅뿅뿅'이었지만 소리꾼 팬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건 코끼리 진양조. 제가 지금까지 들었던 김수인 소리 중에서 소리꾼으로서 기량을 가장 잘 보여준 게 코끼리 파트였어요. 이걸 다시 들으려면 3연을 해야 하는구나.

수미산에서 태어났지만 '내가 살 곳은 여기가 아니다'하고 가장 비천한 곳으로 스스로 내려온 존재, '더럽고 아름다운'것이 응축된 여의주를 기꺼이 내어주고 자신을 희생한 다음 용이 되었다는 서사는 당연히 부처와 예수가 떠오르죠.

굳이 따지자면 예수보다는 부처에 가까운 존재겠군요. 예수는 완벽한 존재였지만 부처는 인간 그 자체이고 현실세계를 받아들이는 존재니까요. 저는 매우 세속적인 인간이라 여기 동양철학, 특히 인도철학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아 좋긴 좋은데...뭔가...구체적으로 표현을 못하겠...' 약간 이 기분.

저는 그래서 국립극장 창극 VOD 서비스 중에서 나무물고기달이 제일 급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나락을 쳤을 때 힘이 되는 경구와 책, 음악, 영상을 모아놓은 응급 키트가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키트에 이 극을 넣어놓고 싶어요.

저는 세상을 논리와 이지로 풀어가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니 세상에 모든 일은 결국 마음에 달려 있고 좋은 일도 나쁜 일, 매혹도 공포도 다 마음이라는 이 극의 메시지가 참 마음에 드네요.

물론  팬이 많고 초연 재연때에도 좋은 평을 들었던 극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여러 모로 제약이 있었던 게 아쉽네요. 그리고 세상은 더욱 난잡해졌으니 더 이 극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3연이 필요합니다(기도메타) 그러면 눈에 또 많은 게 더 들어오겠네요.

달빛상영회 때 '으어...으어...좋은데...뭐라 말할 길이 없네...'할 때보다 수다가 길어졌군요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ㅎㅎ

덧. 나무 물고기 달은 딱 두 명이서 봤는데요 전남 장성에서 퇴근하고 두 시간 동안 차 몰고 오신 분이셨습니다
"수인님 때문에 오셨죠?"
네 마자여...
서로가 서로를 대단타 하며 서로의 안전을 빌어주며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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