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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얘기했다시피 저는 서점 가는 걸 매우 좋아합니다. 알바처 열 발짝 안에 대형 서점이 있는 것이 유일한 복지라고 꼽을 정도죠. 가서 오만걸 다 보는데 그 중 하나가 '신간 트렌드 읽는 것'입니다. 재작년에 제가 퇴사할 때 트렌드는 '퇴사하고 나를 찾기'(찾긴 뭘 찾아요 죽을 만큼 아니면 붙어있어야죠)였고 그 다음이 '독신'을 확장해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류의 독신자 공생 뭐 기타등등이 있었는데요...(아, '어피치 엉덩이로 살아도 괜찮아'류는 제외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책인 거 같긴 한데 지금의 저는 아닌 거 같습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도 떡볶이 안 좋아해서 제외)

요즘은, 코로나 빼면 안 됩니다. 과학으로 가면 코로나 방역/바이러스, 역사로 가면 역병의 역사, 경제로 오면 코로나 경제 전쟁/투자 전쟁 아무튼 오만때만 쪽에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해서 논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는 대중의 공포와 호기심, 가지 않은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건드린 걸 텐데요... 처세/직장 섹션에서는 여기에 파생된 주제로 '주도적인 재택 근무'를 논하고 있습니다. 한국 대부분의 직장-글고 전시간 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재택 근무란 여건이 되는 소수의 고용주가 시혜적으로 결정하는 것,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정규 집합 근무의 대안으로 부상하는 것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주도적인 재택 근무'란 이 정규직 전시간 근로자의 틀을 벗어나서 어떻게 자기주도적으로 근로 조건과 업무를 설계하고 제안해서 살아갈 수 있는가 이런 얘기죠.

일단 제가 처음으로 본 건 '나는 4시간만 일한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9565528

제목과 표지부터 직장인의 욕망을 낚아채는 데가 있습니다. 참고로 저기 '4시간'은 하루 네 시간이 아니라 일주일 네 시간입니다. 저는 하루에 네시간인 줄 알고 아니 이게 므야 하고 룰루랄라 낚아챘는데 알고 보니 일주일이라 이게 무슨 소리요 하고는 아연해지고 더 읽어보았습니다.

다 읽고 보니 아 시발쿰... 환타지... 1세계 백인 남성의 꿈...

작가인 팀 패리스는 이미 전작 '타이탄의 도구들'로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양반은 이번 책으로 부자 집안도, 명문대 출신도 아닌 본인이 최소한의 일만 그것도 원격으로 처리하며 여유있게 사는 삶의 비결을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일단 자신의 일이 아닌 것은 잘 거절합니다. 그리고 이미 정규직인 사람은 기존 고용주에게, 그게 먹히지 않는 사람은 다른 고용주에게 '원격 근무'가 고용주에게도 효율적인 도구임을 잘 협상해서 원격 근무로 전환하라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순한 저부가가치 업무는 인터넷 비서 서비스를 이용해서 다른 원격 근로자에게 위임하라고 합니다.(이 책의 상당 부분 리서치도 그 디지털 비서들이 써준 거라고 합니다. 참... 조영남씨가 생각나네요...포스트모더니즘의 세상;) 그렇게 벌어낸 시간으로 본인은 본연의 고부가가치 업무에 단시간 집중해서 더욱 몸값을 올려나가는 거죠.

아주 쓸모없진 않습니다. 특히 인터넷 비서 서비스 잘 골라내서 위임하는 법은 본인의 노하우가 잘 들어가 있어서 영혼이 실려있더군요. 그러면 베스트셀러 작가, 지식노동자 팀 페리스씨가 자신의 점심 약속을 이메일에서 골라내서 전화로 날짜를 잡고 레스토랑에 잡게 하는 건 중국의 왕씨가 하고, 이 책의 각종 재택 근무 현황과 미래에 대한 리서치는 인도의 라훌이 하고, 세금 신고와 납부는 위스콘신의 킴이 하게 시킨다고 칩시다. 그러면 세계 대부분의 원격 노동자들은 어느 입장일까요?

대부분이 왕씨, 좀 이력이 쌓이고 수완이 있으면 라훌씨, 그리고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킴이겠군요...;;;

이분은 원격근무에 대한 자기주도적인 협상이 이제 먹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얘기만 하는데, 이 분의 배경이 이미 지식노동을 드라마틱하게 성공시킨 전적이 있어서 주도권이 있으며, 재택근무가 먹히는 직종에 있고, 상당히 보편적이며 정규직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미국 출신이라는 점은 쓰지 않습니다. 뭐 알아서 봐야죠. 이 책 하나 읽고 남조선의 정규직 노동자가 회사를 때려친다면 귀 얇은 본인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팀 페리스 씨를 뭐라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꿈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나름의 통찰도 얻긴 했어요. 그리고 인터넷 비서 서비스도 좀 알아보고 연습해보려고 합니다.

두번째는 '전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있습니다' 한국 작가의 책입니다. 이 분은 보험 영업에서 부동산 경매로 전직하고 경매 전문 스타 작가가 된 분입니다. 역시나 경매로 돈 벌고 싶은 겸업 투자자들의 욕망을 잘 자극하신 성공 경력이 있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9325911

다 읽고 나서 머릿속에 남는 건...플래너...

적게 일하고 돈 버는 법은 의외로 책 앞에 나옵니다. 부동산, 주식 등 자본 소득/저작권 수입(유튜브 등도 들어갑니다)/자기 사업/몸값 높이기가 있죠. 작가는 이미 경매로 자본 소득을 올리고, 베스트셀러와 유튜브 영상으로 저작권 수입이 들어옵니다. 경매와 노하우 저작이 곧 본인의 사업이고, 이게 성공하면서 계속 몸값이 올라가고 있죠. 본인은 이걸 시간 확보에서 찾고 있는데요,

본인이 정말 원하는 목표 설정->불필요한 일을 줄여서 시간 확보->시간 관리 플래너 작성->만든 시간으로 수익 창출이라는 얘길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 책의 세부 카테고리는 '시간 관리'예요. 하고 싶은 건 있는데 이걸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불필요한 건 거절하거나 위임하고, 장기->중기->단기로 역으로 들어가는 플래너로 계속 피드백해서 자기 꿈을 따라가라는 얘깁니다.

저는 이미 4시간에서 헛웃음을 꽤 지었는지라 이 책에서는 기대치를 꽤 낮춰서 그런가, 시간관리에 대해서 여러 팁을 얻게 되었습니다. 쓸만한 건 몇개 있어요.

세번째는 '긱 워커로 사는 법'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9970286&start=slayer

하...이거 번역 누가 했고 국내 기획 누가 했냐...진정 이것이 최선이었습니까... 남조선의 어느 바쁜 독자가 '긱워커가 뭐지? 모르지만 나도 긱워커가 될테야!'하고 책을 사겠습니까...

심지어 GIG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선 본문 몇십페이지가 넘어가서야 나옵니다. 중세 시대에 유랑하며 공연하고 돈 버는 예술가 집단(오, 그거 알아...한국에선 그거 남사당패라고 그랬어)이 GIG인데 현대에선 독립형 일자리를 가리킨댑니다. 하... 잘 알았읍니다...

이 책은 1과 2에서는 비교적 스무스하게 넘어갔던, 내가 굳이 정규직 일자리를 위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들에 대해서 무진장 건조하고 냉정하게 알려줍니다

1.전문기술, 업무 경력과 성과, 함께 작업했던 클라이언트를 한 눈에 보여주는 온라인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2.자신이 속한 분야의 유용한 정보를 블로그에 올려 대중에게 공개한다.
3.독립형 근로자를 고용한 적이 있는 클라이언트를 찾는다-자신이 속한 업계에서 유명한 독립형 근로자의 클라이언트 목록 참고
4.클라이언트에게 이메일을 보내 그들이 왜 독립형 근로자와 함께 일했는지, 어떤 일을 맡겼는지, 어떻게 찾았는지 물어본다
최대한 간결하고 명확하게 이메일 작성, 간단하고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세 개 이하로 함
5.일이 아니라 조언 구함. 배우고 싶어하는 것을 어필.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
6.클라이언트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업무방향 잡음. 유능하고, 자신감있고, 전문적으로 보여야 함
7.구직사이트 업워크, 피플퍼아워, 프리랜서, 위워크리모틀리 등록 공격적 홍보활동으로 해결책 초점 최대한 많은 프로젝트 지원
8.떨어져도 추후 연락해도 괜찮은지 물어봄-또 맞는 일 생길 수 있음
9.자신이 속한 분야의 독립형 근로자 커뮤니티 알아봄 행사, 대화로 인맥 형성
10.검색, 조사, 해결책 제시,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시도
(위 요령들은 제가 에버노트로 축약 변형해서 정리한 거니 저작권엔 안 걸릴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긱 워커로 일을 따내려면 정규직 노동자로 입사하기 위한 취업 과정의 끈기와, 회사 홍보 영업부의 일을 다 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엔 안 나와 있지만 인사부와 법무실이 하는 근로계약 조건 관리와 자기 근로 환경 통제, 재무팀이 하는 재정/세무관리가 다 들어가 있죠. 본인은 이에 대해서 일부 위임할 순 있지만 위임을 잘 하기 위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듣보이기 때문에 일정 경력과 이력, 인지도를 쌓기 위해서 초반에 무한정 포트폴리오를 돌리고 까이는 데 익숙해지고 다시 도전하고, 무가나 저가의 일도 이력을 위해 맡는 희생도 일정 부분 필요합니다. 그래야 본 궤도에 오르니까요. 한 회사의 생로병사 사이클과 같습니다. 저걸 다 감수하고 살아남으면, 계속 가는 거고 아주 성공하면...

...책 써서 돈 버는 거죠 ;ㅁ;

이 책이 가장 유용하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정내미 떨어져서 저는 일단 알바를 계속하면서 탐색해볼 생각입니다. 제 업계는 미국에선 독립형 재택 근무가 꽤 일상화되어 있는데, 1년 가까이 몸담아 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한국에서 이 업계는 고 부가가치 업무와 저 부가가치 업무의 몸값이 너무 극단적이에요.
고부가가치 일-컨설팅, 감사, 세무자문(어... 상증세나 조세 쟁송요)
저부가가치 일-세무 기장
고부가가치 일은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회계법인에서만 일이 몰리고, 이를 따온 감사부 내에서만 소화하고 혹시나 역량과 인원이 모자란 경우에만 인하우스로 소화하지 법인 밖에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요.
저부가가치-안습...이 업계 기장료는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기장 직원에게 위임을 한다 쳐도 뭐 남을지 의문.

좀 더 탐색해 보죠. 굳이 이 업계를 계속 할 이유도 없고, 굳이 원격근무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더 넓게 말하자면, 굳이 일을 할 이유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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