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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갱상도 할재는 답이 없다

최근 일주일간 제 집에서 난민(정확하게 말하자면 난민과 약 50퍼센트 정도 상황이 비슷한 분들이지만 앞으로 난민으로 통칭합니다. 신상 문제가 있어서 국적이나 자세한 내용은 가립니다) 케어 활동을 했었습니다. 애초에 제가 이 활동을 신청했던 이유는

-제가 후원하는 NGO 단체의 체계적인 조직과 활동에 대한 신뢰
-건강 상태에 대한 근거없는 자신(신청 당시는 2월 초라 건강이 악화되기 전이었습니다)
-노니 장독깬다는 경험치 추구 편향
-재워주고 가끔 먹여주기만 하면 되겠지 하는 나이브한 전망

...등등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근거는 다 깨졌어요. 건강은 여러번 말했다시피 악화되어 있었고, 나머지도 다 예상과 다르더군요. 남아 있는 게 있다면 제 쓸데없는 개방성과 뭐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의욕밖에.

일단 난민 그룹 일주일 케어 활동은 호텔에서 숙박하고 그룹 버스와 가이드를 제공받는 단체와, 개인 집에서 숙박하는 개인으로 나뉘어집니다. 개별 숙박을 제공하는 쪽은 숙박과 기타 경비 일체를 호스트 부담으로 제공합니다(대신에 단체의 경비를 몸빵;해서 절감해준다는 보람과 난민을 일대일 케어해준다는 뿌듯함 등등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여기서 문제는 단체의 경우 숙박과 보안은 호텔의 체계적인 서비스를, 이동의 경우 단체 버스를, 식사는 준비된 식단을, 투어 등은 가이드 등 체계적이고 분화된 서비스를 제공받습니다. 그런데 개인은 호스트가 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당일날 밤까지 호스트로서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알려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니 심지어 일주일간의 일정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심지어 누가 제게 알려주는 연락선인지도;;;(이건 이유가 있었는데 나중에 밝혀집니다) 저는 의욕있는 사람이라 다른 경로로 해서 좀 정보를 줏어듣긴 했습니다.

입국, 활동 그리고 다른 장소로 이동까지 모든 단체 행동에 대해서는 임박해서야 의사 결정과 연락이 이뤄졌습니다. 이거야 이분들의 보안이나 워낙 변수가 많은 상황을 알기 때문에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런 연락을 제게 해 줘야 할 분이 갱상도 할재 한 분이었는데 R&R에 대한 사전 통지도 없었고 일주일간 제게 수십통은 했어야 할 연락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뢰하는 NGO는 여러 모로 유능하고 잘 조직된 곳이었지만, 갱상도 할재 변수를 생각하지 않았던 겁니다;;; 최소한 이 지방에서는 가족 단위로 난민 개인 케어 활동이 이루어졌고, 여자 혼자서 대표로 이런 활동을 하는 걸 낯설어합니다. 아니 애초에 삼종지도가 머리에 쳐들어가서 뽑히질 않는 건지 여자가 뭔가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진다는 자체를 믿지 않음;;; 아 좀 믿으라고...

그래서 못 미더웠던 갱상도 할재는 공식 라인에 있었던 저의 연락처를 꾸역꾸역 배제하고 저의 남자 육친 연락처를 어디서 구해와서 그쪽에만 연락을 했습니다. 그것도 딱히 신속하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저와 남자 육친은 같이 살지 않습니다
-남자 육친도 일이 있고 바쁜 분이라 바로 제게 전달해주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일주일 내내 저만 바라보고 있는 난민 두 분의 각종 돌발상황에 대처해야 하는데 가이드라인은 저를 외면하고 ㅋㅋㅋㅋ 이건 뭐 에어비엔비 호스트 정도나 생각했는데 조난 동물 임시보호활동이었음 ㅋㅋㅋ 심지어 동물에 대해 일자무식한 자인데 ㅋㅋㅋ

아, 사실 난민들 자체는 크게 문제없었습니다. 당연히 한국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고 영어도 못했지만 구글 번역기의 힘을 빌어 의사소통도 가능했습니다. 한국-해당국가 언어 번역은 50퍼센트 정확성도 없는 것 같았지만, 영어-해당 언어는 깔끔하게 잘 번역됩니다. 따라서 저는 일주일 동안 해당 국가 말은 단 다섯 단어밖에 배우지 못했고 대신 영어가 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국가 특성상, 그리고 단체를 마다하고 굳이 개인 활동을 선호하는 특성상 취향이나 호불호가 확실하고 그걸 잘 표현하는 타입들이었는데요(더불어 호기심도 대단히 많았습니다), 들어줄 만한 건 들어주고, 아닌 건 이유를 설명하면 바로 납득했습니다. 가이드의 능력은 아무래도 문제 해결 능력보다 손님의 무리한 요구를 끊어주는 능력+별 거 아닌 걸 대단하고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능력인 거 같습니다. 집 근처 번화가에서 적당한 가격의 중고 아이폰을 중개해주는 능력이라든가, 그걸 해당 국가로 로칼라이징해주는 능력이라든가, 관세 환급을 받아주는...(...)

저는 일을 좋아합니다. 해결하는 것도 뿌듯해합니다. 저 혼자일 때면 체계없고 계획없는 일정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제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경우, 제게 정보가 주어지지 않고 계획이 없는 상황을 매우 싫어합니다. 이미 4년 넘는 세월 동인 갱상도 할재 상사 두 명한테서 당한 트라우마가 있거든요.

일주일 딱 중간에 모임에서 이 갱상도 할재를 잠깐 만났는데, 저를 ‘삐진 기집애’ 취급해서 2차 환장 ㅋㅋㅋㅋ 내가 여자든 동물이든 뭐든 그냥 시키는 대로 나한테 연락을 하라고 제발... 할재와 내가 무슨 상관이관대 내가 삐지겠어...

그리고 그 할재는 끝의 끝까지 제 남자 육친에게만 전화를 했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불편과 위험한 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꿋꿋했습니다. 뭘까요 할재...

조난 동물 임보 활동...아니 난민 개인 구호 활동은 일주일간 여러 환장의 에피소드만 남기고 무사히,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NGO단체에서 피드백 설문이 왔는데, 이 얘길 했다간 저만 장유유서에 반하는 반사회적 인간이 될 게 뻔해서 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역 사회 내에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글로라도 쓰니 좀 체증이 내려가네요 후...

이번의 교훈은,

-구글 번역기는 영어 번역이 짱이다
-파파고 번역은 제3국의 경우 의외로 별로다
-자선의 마음은 돈으로 표현하자
-갱상도에서 유상이든 무상이든 일을 하지 말자

등등이 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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