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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이 여자가 별별 후기를 다 찌는구나 싶겠지만 저는 지금 '나의 신경정신과 병동 입원기'를 시리즈로 연재하고 싶어서 손톱이 드릉드릉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원래 블로거란 다 관종이에요.

여러분들은 돈을 빌려주고 떼이고 받아낸 적이 있으십니까? 전 직장인이 된 이후 1년에 몇번씩은 저한테 돈 빌려달라는 얘길 심심찮게 들어 왔습니다. 일단 그 직장이 평균 연봉이 공개될 때마다 네이버 뉴스로 때려대는 곳이기도 했고(...사실 뭐 탑티어 사기업에 비하면 별로 잘 받는 것도 아니긴 했는데;;; 그러나 공노비가 그렇듯이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살아야죠;) 남편도 없고 애도 없으니 특별히 돈 들어가는 곳도 없어서 즤들한테 줄 돈도 분명 꿍쳐두고 있을 거라는 오해도 사기도 했고(저는 술 마시고 미식 탐방하고 옷 사고 여행가고 덕질하느라 용처가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없고 애가 없으면 내 돈 나한테 쓰고 살아야지 왜 늬들한테;) 제 인상이...참 애매한 게요;;; 뭔가 냉랭해 보이기도 하고 착해 보이기도 하고 왔다리갔다리 해서 아 쟤가 씨알도 안 먹히게 보이는데 알고보니 거절을 잘 못하는 호구구나 하는 매니아들이 좀 몰려드는 타입이기도 했습니다(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음요). 결정적인 건요...

돈 빌려달라는 사람은 당신에게만 그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ㅋㅋㅋ 그들은 마음속에 지인 리스트를 풀로 만들어 놓고, '나한테 빌려줄 만한 돈이 있을 것 같은 사람' '심약해서 땡빚을 내서라도 빌려줄 사람'을 추려낸 다음 그 사람들한테 ㄱ에서 ㅎ 순이든 키 순이든 와꾸 순이든 브라 컵 순이든...아 헛소리다; 암튼 나래비 세워서 전화를 돌리고 있고 당신은 그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당신이 안 빌려주면 큰일 날 것처럼 얘기하겠지만, 그건 아니에요. 다음 순번한테 전화를 할 겁니다.

저는 돈 빌려달라면 대체로 거절합니다. 그거 일일히 들어주면 제 통장 거덜나요. 대체로 핑계는 집에 돈이 묶여있다거나(서울에 집이 있을 때는 꽤 괜찮은 사유였습니다) 투자상품에 돈이 묶여있다거나(그러나 투자상품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꼭 있어서 안 먹히는 경우도;) 그랬죠. 그런데 일부에겐 빌려줍니다. 대체로...

-상환 능력이 매우 충분하고 금전 윤리도 있으나 매수와 매도 중에 잠깐 유동성이 모자라서 요청해온 경우(아부지와 그 후계자;가 대표적인 각각 사례였습니다)

-소액이라 날려도 큰 문제는 없는 경우(제게 소액의 기준은 n십만원입니다)

-진짜 호구질했던 경우(사랑이 죄죠 쯧)

근데 이 세 가지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는 상태에서 n백만원을 빌려주고 2년간 돌려받느라 전전긍긍한 사례가 있습니다. 인생의 수치죠. 근데 그 때 좀 감안은 해주셔야 되는 게...마침 대학원을 마치고, 절대 가고 싶지 않았던 곳으로 원격지 발령이 내정되어 있어 멘탈이 상당히 좋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빌려달라고 한 사람은 대중문화 취미 업계에서 만난 사람이고 상당히 돈독한 사이였습니다. 만난지는 당시 기준으로 15년은 됐었어요. 저는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회사원은 부업이다시피 했고, 본인 스스로의 정체성은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컨텐츠라는 게 굉장히 매니악한 시장을 대상으로 돈이 꽤 되는 수익원이긴 했는데, 그만큼이나 돈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그 컨텐츠 생산을 위해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죠. 굳이 전세계를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다닐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죠. 그러다 현금 유출입에 mis-match가 생기고(나중에 들어보니 회사 공금에 손을 댔다는 소리를;;;) 해서 여기저기 연락하다 저한테까지 온 거죠. 전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간절하게 읍소하고 당시 멘탈도 별로였고 해서 빌려줬습니다. 물론 아주 멘탈이 나간 건 아니라서 온라인에서 차용증 양식을 다운받아서 모든 양식을 자세하게 작성하고 각자 자필서명에 인감까지 받았구요, 계좌이체로 증거까지 남겼습니다. 여기서 한 번이라도 이자를 주고받는 게 증거력이 올라갈 수도 있는데요...그게 그렇게 쉽진 않죠;

차용증상 만기는 2개월이고 양해를 구한 기간은 3개월이었는데, 본인이 양해를 구하는 텀도 점점 길어지고 읍소도 뭔가 성의없어집니다. 여기서 재밌는 건, 세상에는 '빌려주는' 그룹과 '빌리는' 그룹이 따로 있으며, 그 둘 사이에 교집합은 생각보다 매우 미미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빌려주는 그룹은 회계상 발생주의(내가 돈을 빌려줬으니까 나는 돈을 도로 받을 권리가 있다)를 채택하며 빌리는 그룹은 본능상 현금주의(돈이 들어왔으니 이 돈은 내꺼다)가 체화되어 있습니다. 내가 돈을 받았으니 이 돈은 내꺼예요. 그런데 계속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면 짜증나고 야속하기까지 하죠. 사람이 저렇게까지 정이 없나. 이게 그들의 논리입니다. 빌려준 사람들은 스크루지(아니 근데 스크루지 넘 불쌍하지 않나요; 뭐 딱히 많이 잘못한 거 같지도 않더만)나 샤일록(아니 근데 샤일록 넘 불쌍하지 않나요; 뭐 딱히 많이 잘못한 거 같지도 않더만 222)가 아닌 이상 무조건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갚아달라고 하는 상황을 스스로 목도하게 됩니다. 빌려간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은 다리 잘 뻗고 잡니다.

그리고 더 복장이 터지는 건 이 사람들은 님에 대한 부채 상환이 매우 후순위라는 겁니다. 자기 여행 갈 거 다 가고, 덕질할 거 다 하고 연애할 거 다 하고 인스타에 흔한_일상_샷 뭐 이런 걸로 자기 돈 쓰는 거 자랑하지만 님에게 갚을 돈은 없어요. 그래도 될 만큼 둔감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 컨텐츠 크리에이터;가 2년간 온갖 곳을 돈 쓰고 댕긴 정황을 여러 경로로 들었지만... 그 사람은 갚을 생각이 없더만요. 그래도 할 건 해야 하니 기록이 남는 수단을 통해 꾸준히 상환을 독촉했습니다.

그러다가 1년 반째, 제가 있는 400km 떨어진 곳까지 와서 저녁을 먹고 간 후(그래도 성의를 보이렴; 하고 제가 말해서 이뤄진 거였어요) 이 사람은 그 다음날...

돈을 더 빌려달라는 요구를 해 옵니다 ㅋㅋㅋ

이유는 말하지 않고 아니 싫어; 하고 딱 잘라 말하니 한동안 연락이 없더군요. 마침 회사에 바쁘던 일도 마무리짓고 열받았던 저는 그분의 회사에 돈을 갚으라는 내용증명을 보냅니다. 사실 내용증명 별 거 아니에요. 우체국에 가서 주소만 제대로 적혀 있으면 다 보내줍니다. 근데 일반인들은 많이 쫄거든요.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사연인즉슨...

자기가 요새 재무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는데 이게 마무리되면 돈을 갚겠다는 겁니다 ;ㅁ;  

저는 기업구조조정은 좀 아는데 개인회생은 한 번도 실무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아 귀찮아; 공부해야 하나 싶어서 대충 회사에 굴러다니던 매뉴얼 좀 읽어봤습니다. 개인회생은 보통 전문 법무사 끼고 진행하는 건데, 이 사람의 금융기관-개인 채권자 대상 부채 목록을 풀로 만들어서 법원에 신고하고 이 사람의 재산상태와 소득 전망(아무래도 월급이 확실한 경우가 좋죠)을 소상히 밝히면 가부간에 정해주고, 개인회생 대상 부채에 대해서 매달 이 사람의 월급을 최소생활비조로 1/2 정도 공제하고 착착 갚아나갑니다. 일단 전 물어봤습니다. '내 채권이 니 개인회생재단에 들어가 있니?'

없댑니다. 

말인즉슨 저 체계적인 관리를 받아가며 단계적으로 상환을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데, 차라리 개인회생재단에 넣지 않고 제도권 밖의 부채로 남겨놓으면 올해 내로 상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지;;; 그리고 자기가 이제 몇 달 후에 개인회생절차 인가를 받고 압류를 받으면 월 50만원만 생활비로 남겨놓고 다 뺏기니까 그 후에는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지 222 여기서 채무자의 정신상태를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데, 자기와 채권자를 혼동합니다. 채권자 입장에선 월 50만원만 제외하고 돈 갚는데 쓰면 빨리 받을 수 있고 좋잖습니까.

그리고 payopen과 dart 등 각종 소스를 검색해서(그녀의 회사는 나름 네임드였거든요) 월 50만원이 아니라 월 150만원은 생활비로 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던 저는 더 이상의 이성적인 대화는 포기하고 법무사와 다이렉트로 대화를 했습니다. 근데 법무사는 생활비 공제 내역에 대해선 순순히 월 150만원이라고 인정해주긴 했습니다만 이 개싸움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이 사람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제도권 밖의 부채로 남겨두려고 해도 자긴 법의 보호를 받는 목록에 대해서만 고객을 대행해서 잘 해두면 되는 상태였고, 이미 거의 인가 직전이었거든요. 귀찮은 일만 하나 더 생기는 거죠.

일단 저는 그간의 차용증, 이체 기록, 독촉 문자와 그녀의 답장 등등을 기반으로 해서 소액 소송을 준비하고 다시 한 번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너무나 허무하게 n백만원이 입금되더라구요. 글쎄요. 아마 법무사가 쟤 좀 호구 아닌듯;하고 말을 해줘서였을지도.

그리고 전 몇 달 후에 뜻밖의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 당시 익혔던 개인회생과 월급 압류에 대한 지식은 관리자로서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돼요.

아, 급 요약하자면...빌려주지 마세요. 혹시나 약점이라도 잡혀서 빌려줘야 된다면 차용증 풀로 남기고, 이체 기록 남기고, 이자 한번이라도 주고 받으시구요... 중간중간 본인의 차입을 인정하고 상환 의지를 밝히는 기록을 남기십시오. 그래도 받을까 말까예요. 사채꾼 우시지마가 괜히 염세주의자가 아닙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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