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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중반까지 한창 잘 활동하던 모 익명 커뮤니티가 올해 말까지만 운영된다고 해서 거기 있던 글 좀 살려 가져왔습니다.

저는 뭐 이제 퇴사한 입장으로서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뭐 그래도 있던 글은 아까워서.

썼던 시점은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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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많은 기업에 다님.
그리고 최소 3~4살은(군대+대학원/연수 크리)많은 남자들과 비슷한 경력과 직급에서 일하고 있음.

일단 남자 상사들한테 어떻게 하면 중간치기는 보일 수 있는지는 이전에 썼으니까 넘어가고,
이번에는 남자 동료들(동일 직급, 경력 비슷, 고과와 승진 경쟁상대들)하고 어떻게 지낼 것인지 좀 적어볼게.

대전제는...'그들은 그냥 경쟁자다'임.

아니, 난 지금 무슨 기업드라마 찍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야망 쩌는 여자도 아님. 나는 걍 짤리기 전까지 월급루팡하면서 순탄하게 회사 잘 다니고, 남들 평균만큼만 승진하고 싶은 여자임.

그러나, 그들한테 잘 보이려고 할 필요 없음. 사랑스럽게 보일 필요도 없음. 그들은 너랑 연애 안 함. 혹시나 사내연애를 할 거면 한 놈하고만 하면 됨(여러가지 이유로 사내연애는 비추지만). 그리고 니가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할 수록, 너는 계속 만만하게 보일 거임. 차라리 그 노력을 남자 상사들한테 쏟는 게 좋을 거임.

여자는 길러질 때 관계지향적이고 배려가 있을 수록, 좋은 것이라 배우지만, 남자들은 경쟁에서 이겨서 우월할 수록 좋은 것이라고 배움. 고로 네가 동료들에게 양보하고 희생하고 소소한 거 챙겨줄 때, 그들은 오 쟤는 저런 거 하려고 있는 년이군 하고 얕보기 시작함. 이것은 그냥 그들의 생태계임. 고로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땐 그들의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남자들은 어지간한 여초 직장이 아닌 이상, 여자들 생태계에 적응 안 해도 됨)

각론으로 넘어가겠음.

-호칭 
니가 알바가 아닌 이상 '오빠' 금물. 그가 직급이 있으면 직급으로 부르셈. "**팀장님" "**과장님" 그리고 너나 갸가 직급 없고 갸가 먼저 들어오면 "**선배님", 동기나 아랫기수면 "**씨" 이렇게 부르셈. 갸가 후배인데 너보다 나이 많다고 "**오빠"하면 그 순간부터 개족보되고 너는 아랫사람 됨. 갸는 나이 많은데 늦게 들어온 게 죄임.
예외사항으로, 니가 같은 학교 같은 과 직속후배인데+선배 남자가 늦게 들어온 경우는 사적으로 오빠나 선배 안 불러주면 네가 오히려 버릇없다 뒷담듣는 경우도 있음. 관행에 따라서 유연하게 대처하셈.

-친목
너를 이뻐하고 잘 해준다고 해서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음.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친하고, 그들끼리 중요한 정보 공유하고,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 그들사이에서 쉴드 쩜. 너는 아무리 친해도 그들의 담배모임+유흥모임의 핵심멤버가 될 수 없음.
그렇다고 여직원들끼리만 팔짱끼고 커피마시러 다니라는 건 아님. 적당한 시간 사이사이에 그들 사이에 껴서 바람도 쐬고, 맥주도 마시고, 지하식당에서 밥도 먹길 바람.

-사생활
남직원들의 사이에선 '여직원들 사생활을 걱정해주는 모임'이 7/24로 전개되고 있음. 그들은 어느 여직원이 자취를 하는데 늦게 들어간다던가, 어느 여직원은 이틀 연속으로 같은 옷을 입고 온다던가, 어느 여직원은 휴가 낸 게 남자친구랑 해외여행을 가는 것 같다던가 하는 얘기를 끊임없이 성적인 상상력을 덧붙여서 하고 있음. 너네가 이쁘든 안 이쁘든 거기 안주거리가 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임. 그러니 거기 장작을 보태지 않는 것이 수임. 남자친구가 있으면 남자친구 정보를 최소한으로 주면 되고, 자취를 하면 자취집 얘기는 안 하면 됨.

-업무
아까 총론의 연속인데,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성과를 겸손하게 얘기해야 한다, 튀지 마라, 보조만 해도 좋은 거다는 식으로 교육받음. 여자들 사회에선 뭐 그것도 나쁘진 않음. 그러나 남자들 사회에선 그랬다간 그냥 매번 밀리기 딱 좋음.
팀장이 네 업무를 칭찬할 때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발 이러지 마셈. '이번엔 **선배님이 도와주셔서 제가 **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가 딱 좋음. 네 성과를 구체적으로, 정기적으로, 그러나 너무 잘난척하지 않게 어필하는 법을 배워. 샘플로 지금 회사에서 잘 평가받고 있는 남자선배 어법을 주의깊게 듣고 따라해봐.
그리고 네가 여자라는 이유로 업무 배정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 거 같으면, 일단 주어진 일을 잘 하되 지금 더 좋은 업무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고, 지금까지 뭘 해왔는지 간단하게 정리해서 팀장하고 면담해봐. 팀장은 그러라고 있는 거임. 안 들어줘도 말은 해봐야 되는 거임.

-승진
남자 직장 상사들은 여자 후배를 대체로 이뻐하지. 그러나 승진때는 그 사랑을 대체로 까먹지-_- 전 팀장도 나보다 3년이나 늦게 들어온 남자후배보고 '**는 승진해야 되는데...'하고 나냔은 말 한마디 없더군-_-
뭐, 남녀차별이 쩌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체로 남자상사의 경우 여자 팀원을 '어린 여자 직원'으로 보지, 정확하게 기수가 어떻게 되고, 커리어가 어떻게 되는지 갸 얼굴에 대한 관심의 1/10도 없음. 고로 정기적으로/부정기적으로 너는 기수가 어떻게 되고, 승진연한이 어떻게 되고,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어필할 필요가 있음. 굳이 장광설 안 해도 됨. 그냥 일하다가, 회식하다가 한마디씩 해도 되고, 면담 때 길게 하면 됨.

나는 이걸 깨닫는데 몇년이 걸렸음.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직장바이직장, 사람바이사람임. 그러나 회사는 친목하는 곳이 아니라는 진실은 그대로임. 그리고 네가 네 밥그릇을 찾지 않는 이상, 아무도 네 밥그릇 안 챙겨줌. 도움이 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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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대략 9년이 지난 지금도 큰 줄기에서 바뀐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지역은 그으 뭐랄까... 구조적으로...(후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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