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베이컨-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 -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대담
프랑크 모베르 (지은이),
박선주 (옮긴이)
그린비 (출판사)
2015-03-10 (국내 출간일)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인 프랜시스 베이컨과 프랑스의 에세이스트 프랑크 모베르의 대담집. 베이컨은 인간의 얼굴이나 신체를 기괴하게 비튼 회화 작품으로 인간에 내재한 잔혹함과 공포, 불안을 유례없는 방식으로 형상화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이 대담집은 베이컨이 이러한 회화 세계를 구축한 동기들,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작가와 화가, 회화를 향한 그의 열정 등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베이컨의 개인적인 관계나 추억을 담담하면서도 유쾌한 어조로 기록하고 있다. 이 대담집을 통해 우리는 화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타고난 예술가일 뿐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기도 한 베이컨의 복합적인 면모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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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는 독서 습관 중 아주 좋지 못한 게 하나 있는데요. 지금 몸이 시원찮다 보니(그러면서 팬싱 갈라는 참 잘도 댕긴...) 도서관까지 가기가 여의치 않아서 일단 '시니어 북 딜리버리'(시니어 일자리 창출 사업인데요, 도서관에 딜리버리 신청을 하면 작은 도서관에 배달된 책을 시니어 분들이 집까지 배달해 주시는 겁니다. 반납은 작은 도서관으로 하면 됩니다) 서비스로 집까지 도서관 책을 배달 받습니다. 책 욕심은 드럽게 많아서 한도 꽉꽉 채워서 3권을 대출 받은 다음 2주 동안 못 읽고 어영부영하다가 연체된 채로 반납하고, 연체 기간 동안 대출이 정지되어 고통받고, 그리고 또 딜리버리 받고, 또 연체되고...(...)
이번에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와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그리고 그 외 1권(이 쪽은 AI 관련인데 영 진도가 안 나가네요. 다음에 완독 시도)을 빌렸는데요, 리뷰 쓰고 언능 반납하려고 리뷰에 손을 대 보았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영국 출신의 꽤 유명한 현대미술 화가입니다. 이 분은 기괴하고 폭력적이며 잔혹한 그림으로 유명한데요, 제일 유명하면서 티스토리 심의에 안 걸릴 만한 그림으로는 대충 이런 게 있습니다.
... 저는 이 그림을 십수년 전에 처음 보았는데요, 꽤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매혹되었습니다(제 예술 취향 중 상당수는 제법 익스트림한 편입니다. 아 다 그런 건 아니고요; 심지어 요새 꽂힌 분도 상당히 익스트림한 편;) 그리고 리움 컬렉션(베이컨 그림 조낸 비싼데 암튼 삼성 돈도 많아;)에서 다른 정육점 시리즈;들을 보면서 더 흥미가 갔구요.
아, 그리고 저는 예술가가 능력있는 인터뷰 진행자와 자신의 인생과 예술 세계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책을 꽤 좋아합니다. 물론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를 언어로 생생하게 표현할 만큼 말주변이 있어야 하고(의외로 이거 못하는 사람 꽤 많음) 인터뷰 담당자가 노련하게 잘 끄집어내야 하고(그러려면 인터뷰 상대에 대한 애정-최소한 그 사람의 예술에 대해서라도-과 예술에 대한 지식은 기본입니다) 둘이 상성이 잘 맞아야 합니다.
다행히 베이컨과 대담자 프랑크 모베르는 이 모든 특성을 갖추고 있어서 훌륭한 인터뷰집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베이컨씨가 소싯적에 파리에서 좀 화려하게 노셔서(...) 프랑스어에 능통한지라 대담은 통역 없이 프랑스어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 히치콕 오빠와 트뤼포와의 대화는 영어, 프랑스어 뿐 아니라 영화에 해박한 통역이 필요했지요. 하긴 뭐 독일어였다면 바로 가능했겠지만.
이 책은 여러 모로 모순적이면서도 충실한 화가 베이컨을 잘 보여줍니다. 자신의 그림이 고가에 팔렸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도 돈을 주변 사람에게 아낌없이 퍼 주고 소박한 생활을 하며, 전통적인 그림을 해체하는 작업을 평생 했으면서도 고전적인 화가들, 그리스 극작가들, 서양 문화의 전통을 숭배하고 경모합니다.(이 책의 제목인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도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의 한 문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 번역을 거쳐서인지 아주 딱 들어맞지는 않습니다만; 가장 가까운 번역은 '인간의 피냄새가 나를 미소짓게 한다'라는 거라는데 그건 그거대로 또 충격적;)
여러 모로 베이컨에 대해 잘 알게 되어서 만족스러운 책이었지만 두 가지 약간의 불만 사항이 있다면 예산과 컨셉의 문제겠지만 베이컨의 여러 대표작에 대해서 논의했지만 그 그림에 대해서 흑백이라도 삽화가 실려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림 하나 랩탑으로 검색하고, 책으로 읽고...이 과정을 거쳤는데 뭐 머릿 속에 더 잘 남긴 하네요(노린 건가;) 그리고 그의 먼 조상인 철학가 '프랜시스 베이컨'과 일맥상통하는 점에 대해서 모베르가 뒷편에 논문식으로 남겼는데 제가 사상가 베이컨에 대해서 아는 바가 짧아서 그런가 그리 공감가지는 않았습니다.
덧. 같이 빌린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은 호크니, 베이컨, 프로이트 등 20세기 중후반의 영국에 살았던 혁신적인 화가들에 대한 책입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연상의 남자들을 유혹하는 데 재능이 집중되었던 젊은 시절의 베이컨'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