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과 나

루이비통 모노그램 몽소 크로스 바디백(LOUIS VUITTON-M51187)-오리지널리티란 무엇인가

키엘97 2021. 5. 2.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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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단종되어 공홈에서 사진도 못 구하고 대충 구글 이미지 검색해서 데려왔습니다)
10여년 전 병행수입 매장에서 샀던 루이비통 몽소 PM 바디크로스백입니다. 제가 이걸 정말 별 생각없이(아마 야근에 쩔어 있을 때가 아닌가 싶은데) 샀던지 라인 이름도 까먹고 있어서 며칠 전까지 포쉐트 메티스 모노그램 클래식 버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보증서도 이사하다가 중간에 없어지고...하긴 지금 보증서 있어서 뭐하나;

 

그러나 저는 이 가방을 무진장 애착가방 수준으로 들고 다녔습니다. 이 가방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 길이26cm × 높이19cm × 폭7cm이라 책 한 권은 너끈히 들어간다

- 어떤 옷이든 엔간하면 잘 어울린다

- 어깨에 메거나(전 신체구조상 크로스는 못합니다) 들고 다닐 때 각각 이미지가 다르다

- 모노그램(물론 가죽 트리밍이 있긴 합니다만) 이라 비와 습기에 비교적 생각없이 들고 나갈 수 있다

- 손잡이나 가죽끈이 태닝되어도 비교적 멀쩡해 보인다

 

그래서 이 가방은 특히 마지막 부서 재직 시절 지박령처럼 콕 박혀 있는 저와 제 자리에서 거의 언제나 함께했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좋아했다기보다는 몸이 힘드니까 가방 바꿔들고 다니기도 귀찮았는데 무슨 옷을 입든 비교적 어울리는 가방이라 옷만 바꿔입고 시치미떼고 앉아있기 제격이었습니다(아 물론 당시 제 부서 팀 사람들은 제가 머리를 박박 깎고 러시아식 곰가죽 모자를 쓰고 와도 못 알아볼 양반들이었어요)

 

근데 가방도 10여년 그렇게 휘뚜루마뚜루 들고 굴리고 하다 보니 탈이 나더라구요. 일단 손잡이 한쪽의 금장 못이 떨어져나가니 연결된 가죽끈까지 가방에서 떨어져나갔고, 옆면 가죽에 엄청난 크랙이 생겼습니다. 거기다 안쪽 이염은 말도 못할 수준이었어요. 역시 고가 가방 휘뚜루마뚜루는 그런 가방을 에코백처럼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었습니다. 마침 주변 아파트 단지에 명품수리 체인점이 생겼길래 가지고 가 봤어요.(루이비통 매장은 보증서도 없고 시간이 너무 흘러서 포기; 그리고 단종된 상품에 아직 지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제가 치과나 미용실에서 단골로 듣는 멘트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어요?"를 듣고 말았습니다 흑.. 

 

수리 기사님은 여러가지를 제안했는데...

-핸들의 금장 징을 새로 만들어서 박는다

-크로스 가죽끈은 못 살리니 새로 만든다

-역시나 가방 옆면 두 개도 크랙이 너무 심하니 뜯어내고 다른 가죽으로 한다

-버튼 금장에 기스가 많이 나고 오래된 티가 나니 금장도 교체한다(금장 교체 유무에 따라 가격이 확 달라집니다)

-가방 안쪽 면도 이염이 있으니 뜯어내고 다른 가죽으로 교체

이거... 가방 하나 새로 만드는 거 맞죠?

수리비는 65만원 들었구요, 딱 한 달 걸렸습니다. 실은 이 한 달도 기한 다가올 때쯤 너무 태평한 것 같길래 좀 쪼아서 맞춘 것;;; 

그리고 완성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뭐 안 바꾼 게 읎다 싶을 만큼 가죽과 금장 있는 부분은 다 교체했구요(아, 안 한 건 열쇠와 한쪽 어깨끈 금장이 있긴 하네요) 저는 크로스백 안 하고 그냥 어깨에다 걸고 다닐 거니까 좀 짧게 해달라고 했더니 원본의 길이보다 훨씬 짧아지고 끈 조절하는 부분도 없어졌습니다. 전 만족해요.

 

이제 예전만큼 막 휘두르고 다닐 만큼은 아니고 조금은 조심해가면서 10년 더 써야겠습니다. 아냐 이게 할매들한테도 어울릴 디자인이니까 좀 더 수선하면 평생 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고가 브랜드의 내구성에 대해 정말 의심스러워하는지라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습니다.

 

앞면 옆면 핸들 끈까지 다 교체되고 원본과 '비슷해진' 가방을 보니 과연 고가 백의 오리지널리티라는 것은 무엇인가 의구심이 듭니다. 그리스 신화인가 동유럽 신화인가의 빌런 신에게 잡혀 몸의 사지와 장기를 하나씩 교체당하며 나는 무엇인가를 부르짖은 인간의 기분이 지금 백의 기분인가 싶기도 하고...(근데 그 신화 아무리 찾아도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음울하기 그지 없어서 교육용으로는 영 아니라 잘 안 보이는 건가)

 

덧. 다음 프로젝트는 고야드 생루이 PM백(보통 쇼핑백이나 기저귀 가방으로 들고다니시는 아주 큰 숄더백 그거요)인데 솔직히 이건 10년동안, 특히 미국에서 너무 막굴려서 가죽이 산산이 삭은 수준이라 얼마나 견적이 나올지 벌써부터 떨립니다.